♣ 세상의 모든 시조 : 정용국 시인 ♣
-2019년 6월 14일 금요일-
어금니
오십 년을 엎드려 못난 놈 시봉하며
온갖 고얀 냄새 거친 음식 받아내다
삭정이 앙상한 마디에 뿌리까지 삭았다
호사는 고사하고 말치레도 야박해
오금을 못 추며 세월을 갈았는데
얇은 귀 견디지 못하고 외통수로 내치네
두는 것이 화근이라며 가차 없이 들어내니
검은 뿌리 하늘 보고 은쟁반에 누우셨다
육탈한 저 맑은 정신이 언 뺨을 갈긴다.
문화주택 101호
햇빛도 나붓나붓 창문을 넘나들던
들레는 신혼 방은 반 지하도 좋았다
경의선 덜컹거리는 야근 길도 신났던
변두리 강매역은 이름도 넉넉했지
채마밭 널려 있던 뚝방 길 내를 따라
가난이 벌름거려도 뽀송했던 단칸방
불덩이도 지고 갔을 시름 통 둬 말가웃
약 오른 원고지에 심지를 묶어 놓고
밤새워 횃불을 켰던 문화주택 101호
날마다 다시 서는 이여
- 성산 일출봉
누구의 기다림이
저렇게 솟구쳤을까
마음 한 섶 물에 두고
한 자락은 뭍에 둔 채
왕관을 머리에 이고
밤마다 곧추서는 이여
깜깜절벽 끌어안고
바다에 무릎을 꿇어
천만근 불덩이를
온몸으로 받드시는
검은 돌 숨구멍을 채워
날마다 다시 서는 이여
부대찌개를 위하여
- 동두천
느끼한 햄 냄새가 눅눅한 골목을 돌아
생연동 구시장밥집 찌개 속에 앉아있다
허파를 다 내주고도 씩씩했던 동두천
김치와 몸을 섞어 품이 한결 둥그러지고
보산동 눈물 양념에 칼칼해진 국물 맛에는
불바다 핵미사일도 오줌을 지린다더라
투박한 이름에선 쓴 세월도 웃고 있지
마이클 중사님도 그 맛에 반했다는
어수동 간이역사가 졸고 있던 그 어름
고사목 궁전
호란이 도진 해에 벼락을 맞았다는
청량산 느티나무는 아직도 의젓해서
날마다 사초를 벼리며 맹서를 품고 산다
새벽녘 딱따구리 힘차게 목탁을 치고
오늘도 개미 일가는 굽은 길을 나섰다
땀으로 곡식이 여무는 아래 배미 논처럼
기둥만 남았어도 서너 아름 훌쩍 넘는
속을 비운 그늘에선 엄지벌레가 알을 슬고
낙향한 홍문관 교리도 정을 주며 버텼다는
너른 품 궁전에는 모사도 숨을 죽이고
달빛을 받아 내어 향기에 윤을 내는
알뜰한 목숨들만이 고슬고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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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국 시인은 경기 양주 출생으로 2001년《시조세계》로 등단했습니다. 시조집 『내 마음 속 게릴라』『명왕성은 없다』『난 네가 참 좋다』등이 있고, 현대시조 100인선『눈이 물고 온 시』등을 펴냈습니다.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창작과 시조 비평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다섯 편의 시조를 소개합니다.
「어금니」는 실감실정입니다. ‘오십 년을 엎드려 못난 놈 시봉하며// 온갖 고얀 냄새 거친 음식 받아내다// 삭정이 앙상한 마디에 뿌리까지 삭았다’라는 첫수의 진술에서 모든 것이 다 드러납니다. 엄청난 고역의 나날이었던 것이지요. 예전에는 십년마다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무려 다섯 배의 세월을 견디어 왔으니 놀랍기도 하지요. 어금니는 ‘호사는 고사하고 말치레도 야박해// 오금을 못 추며 세월을 갈았는데// 얇은 귀 견디지 못하고 외통수로 내’침을 당합니다. 그 모진 세월의 인종도 외면하고 ‘두는 것이 화근이라며 가차 없이 들어내니// 검은 뿌리 하늘 보고 은쟁반’에 눕게 됩니다. 시의 화자는 그 정황을 두고 마침내 ‘육탈한 저 맑은 정신’으로 보고 ‘언 뺨을 갈긴다’고 말합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진솔한 토로입니다.
「문화주택 101호」는 애잔하게 읽힙니다. ‘햇빛도 나붓나붓 창문을 넘나들던// 들레는 신혼 방은 반 지하도 좋았’고, ‘경의선 덜컹거리는 야근 길도 신났던’곳입니다. 그리고 ‘변두리 강매역은 이름도 넉넉했’기에 ‘채마밭 널려 있던 뚝방 길 내를 따라// 가난이 벌름거려도 뽀송했던 단칸방’이었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신혼의 단꿈에만 젖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붓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불덩이도 지고 갔을 시름 통 둬 말가웃// 약 오른 원고지에 심지를 묶어 놓고’나서 ‘밤새워 횃불을 켰던’곳이 바로 ‘문화주택 101호’였던 것이지요. 원고지에 약이 오를 정도이니 얼마나 치열하게 시와 쟁투를 벌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날마다 다시 서는 이여」는 성산 일출봉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실로 ‘누구의 기다림이/ 저렇게 솟구쳤을까’요. ‘마음 한 섶 물에 두고/ 한 자락은 뭍에 둔 채’로 ‘왕관을 머리에 이고/ 밤마다 곧추서는 이’를 부릅니다. 그는 또한 ‘깜깜절벽 끌어안고/ 바다에 무릎을 꿇어/ 천만근 불덩이를/ 온몸으로 받’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검은 돌 숨구멍을 채워/ 날마다 다시 서는’일을 되풀이 합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대상을 두고 이렇게 재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서 깊은 교감을 나누는 일이 시와 더불어 사는 이의 소소한 기쁨이 아닐까 싶습니다.
「부대찌개를 위하여」는 부제 ‘동두천’에서 무언가를 느끼게 됩니다. ‘느끼한 햄 냄새가 눅눅한 골목을 돌아/ 생연동 구시장밥집 찌개 속에 앉아 있’는 곳으로‘허파를 다 내주고도 씩씩했던 동두천’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김치와 몸을 섞어 품이 한결 둥그러지고/ 보산동 눈물 양념에 칼칼해진 국물 맛에는/ 불바다 핵미사일도 오줌을 지린다’고 노래합니다. ‘부대찌개’라는 이름은 정말 ‘투박한 이름’이지요. ‘쓴 세월도 웃’을 만합니다. ‘마이클 중사님도 그 맛에 반했다는/ 어수동 간이역사가 졸고 있던 그 어름’에 대한 느낌을 담으며 끝맺고 있군요. 시인 특유의 친숙한 정서와 접맥된 언어 부림이 맛깔스럽습니다.
「고사목 궁전」은 흥미롭게 읽힙니다. ‘호란이 도진 해에 벼락을 맞았다는/ 청량산 느티나무는 아직도 의젓해서/ 날마다 사초를 벼리며 맹서를 품고 산다’는 담백한 표현이 도리어 눈길을 끕니다. ‘새벽녘 딱따구리 힘차게 목탁을 치고/ 오늘도 개미 일가는 굽은 길을 나’서는데, 그 모습이 흡사 ‘땀으로 곡식이 여무는 아래 배미 논처럼’이라고 정겹게 보고 있군요. 또한‘기둥만 남았어도 서너 아름 훌쩍 넘는/ 속을 비운 그늘에선 엄지벌레가 알을 슬고/ 낙향한 홍문관 교리도 정을 주며 버텼다는’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너른 품 궁전에는 모사도 숨을 죽이고/ 달빛을 받아 내어 향기에 윤을 내는/ 알뜰한 목숨들만이 고슬고슬 살고 있’는 그곳으로 한번 찾아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봉화 청량산은 퇴계 선생이 사랑했던 곳입니다. 풍광이 예사롭지가 않지요. 고사목이 궁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사와 밀접한 연유 때문이겠습니다.
정용국 시인의 시편은 전통적 기율을 지키면서 시대적 요청에 답하고 있습니다. 현실과 역사를 직시하면서 새로운 목소리를 내기 위해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2019년 6월 14일 <세모시> 이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