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추어버린 혹은 과거속에 머물러있는 곳
곡선의 마을과 곡선의 마음들이 사는 곳
푸른 자연과 푸른 사람들이 있는 곳
생채기 난 날개 잠시 접고,
먹어도 마셔도 허기지고 목마른 네 영혼을 위해
나비야,청산도에 가자
처음에는 지천으로 있는 사스레피나무 냄새에 넌 얼굴 찡그릴지 몰라
그러나 곧 알게 되겠지
네 어릴적 고향냄새라는 걸
원형의 기억속에 새겨진 엄마냄새라는 걸
그러니 나비야, 그 섬으로 가자
새벽 여명속에서 오전 6시 출발인 청산도행 배에 올랐다
완도 선착장과 가까운 쾌적한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부시시 눈을 비비며 일어나
벼락같이 이곳 완도 연안여객선터미널로 달려온 것이다
새벽잠을 좀 설치면 어떠랴
얼마나 기다려온 여정이던가
아마도 십년은 됐음직한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우리동네(부산)에서 이 봄날에 청산도에 가기란 쉬운일이 아니었다
이제 꿈의 섬 청산도로 간다
유채꽃과 청보리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에 아른거렸다
마음은 한없는 희열로 벅차오르며 들뜨고 있었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피빛 붉은 해는 부풀어진 몸으로 또다른 날의 얼굴을 보여준다
청산도행 배에서 맞는 일출은 색다른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어젯밤부터 난 배위에서 일출을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일념으로..."
옆에 서있던 일행 중 한사람인 혜숙씨가 나즈막히 말하였다
나에겐 여정중에 만나는 덤이며 행운이라고만 생각한 이 일출이
어떤 이에게는 그토록 간절한 염원이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옛부터 선산(仙山),선원(仙源) 등 신선의 섬이라 불리웠던 청산도는
완도에서 동남쪽으로 50여리(19.2km) 뱃길로 50분 걸리는 곳 다도해 최남단 해역에 있는 섬으로
하늘, 바다 ,산 모두가 푸르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
찬물살을 가르며 샤랑아일랜드호는 어느새 청산도에 도착했다
작은 어항 도청항이 와락 내눈속으로 달려들어왔다
'청산도'라 적힌 표지석도 너무 반갑다
갑자기 등뒤에서 왁자한 소리가 들렸다
배의 정중앙 갑판위로 줄지어선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러대었다
청산도에 온게 너무 좋아서인가...?
아마도 사진을 찍기 위해서인 것 같기도 하지만 마치 내마음을 대변한 것도 같았다
도청항 청산식당에서 아침을 먹은 뒤 제대로 청산도를 걷기 시작했다
청산도 슬로길에서 처음 만난 '꿈꾸는 달팽이'가 이방인들을 환영했다
"버리는 펫트병으로 꿈꾸는 달팽이를 완성해 주세요"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꿈꾸는 달팽이'앞에 있는 '느림의 종'을 타종하며 본격적인 청산여수길을 걸어본다
2007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신안 증도,담양 창평 등) 중의 하나인 청산도는
2011년 '느림은 행복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4월 8일부터 슬로길 걷기축제를 벌였다
국제 슬로시티연맹 공식인증 세계 슬로길 1호 선포식도 4월 16일에 있었다
청산도 슬로길은
청산도 주민들이 평소 마을간 이동로로 이용하던 길로
풍광이 아름다워 저절로 걸음이 느려진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느리게 깊게 걸을수록 아름다운 이길은 11코스 17길로 거리는 마라톤과 같은 거리인 42.195km이다
슬로길은 청산여수길이라고도 하고 남도갯길이라고도 하며 청산완보라고도 한다
청산완보에는 3가지 완보가 있다고 하는데
느리게 걷는 청산완보(緩步),웃으며 걷는 청산완보(莞步),어느덧 청산완보(完步)가 그것이다
서서히 청산도의 풍광이 드러나고 있다
갈대숲을 지나니 계단식으로 된 유채밭이 나타났다
우리는 지금
미항길~동구정길로 이어지는 도락리 마을을 거쳐 서편제 황톳길이 있는 당리마을로 가게 될 것이다
도락리 마을 옆에는 방풍림이 줄지어선 해변이 나타나고
마을을 지켜주는 것 같은 보적산(330m)이 아스라하지만 우람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청산도에는 매봉산(385m) 대봉산(379m) 보적산 등의 산이 있고 구릉과 언덕이 많아
척박한 지형을 가진 섬이라 하겠다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을 걸어가는데 '청산도 휘리체험'이라는 플랑카드가 펄력였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물고기를 잡았을까'
돌담을 쌓고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해 고기를 잡는 원시적 어업방식인 독살을 하는 공간이 있었다
이런 곳은 우리나라에 몇군데 밖에 남아있지 않은데
지난 겨울 다녀온 보령 무창포 해변에도 이런 곳이 있었다
아......
도락리마을을 벗어나자 환상적인 비경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빼앗아버렸다
청보리와 청밀과 마늘밭과 유채밭이 언덕을 층층이 한자락씩 차지하며 자신의 영역을 과시하고 있었다
봄이 화려하게 성장을 하고 대지속에서 향연을 펼치고 있다
그 향연속으로 우리들은 꿈꾸듯 빨려들어갔다
물큰하게 흐르는 가슴의 물기 탓인지 아님 홍근한 봄기운 탓인지 차라리 길위에서 길을 잃고 싶었다
근데 어디선가 바람결을 타고 약간 고약한 냄새가 얼핏 풍겨왔다
처음에는 그것이 거름냄새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사스레피라고 하는 나무에서 나는 냄새라는 것이었다
약간 거슬렸으나 싫지는 않았던 그 냄새는 공기정화작용이 탁월하다고 하는데
그 사스레피나무가 청산도에는 지천으로 있다고 한다
빨리 걸으면 반칙이라는 슬로길을 걷다보면 이렇게 담벼락에 패널이 걸린
야외갤러리를 만날 수 있다
계절별로 다른 섬의 풍광과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 운동회 등의 사진이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드디어 당리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해마다 제사를 지내는 당집이 있는 곳이라 당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부터 서편제 황톳길이 전개된다
표지석 옆에는 마을주민인 할머니들이 쑥과 달래같은 나물을 팔고 있었는데
청산도의 상큼한 정기를 맛보고싶어 난 쑥과 달래를 한웅큼 샀다
하루에 두번 청산도를 관통하는 순환버스는 당리에서 한무리의 사람들을 쏟아내렸다
봄속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옆으로 봄꽃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것도 같다
청산도 순환버스는 도청항에서 출발하여 당리~읍리(고인돌공원)~청계리~상서돌담마을~신흥리해수욕장
~진산리 해수욕장~지리청송해변~도청항으로 운행된다
서편제 촬영지 옆으로 소나무 숲 돌담속에 한채의 집이 묻혀 있는데 당집이다
당리의 유래를 설명하는 이 당집은 마을 주민들이 풍어나 풍년 등 마을의 평안을 위해 모신 수호신에게
일년에 한번 음력으로 정월 초사흘에 당제를 지내는 곳인데
최근에 새로 복원한 흔적이 엿보인다
아까 올라오는 입구에서부터 구성진 우리의 국악이 울려퍼지던 진원지가 돌탑위에 있다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세워져있고 애절한 진도아리랑이 이 큰북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영화 서편제는 이청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한국영화사상 처음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이다
1993년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판소리라는 가장 한국적인 소재로 한국인의 한과 정서를 유려한 자연의 풍광속에서
출중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년아,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恨)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뱁이여..."
되다만 소리꾼인 유봉의 인생에서 완성하고 싶은 소리의 세계인 득음의 경지를 위해
딸자식에게 한을 심어줄 눈을 멀게 하기 위해 한약을 먹이기까지 하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었다
소리품을 팔며 정처없이 길따라 바람따라 떠다니는 소리꾼 유봉과 그의 딸 송화,아들 동호 세사람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진도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며 황토돌담길을 내려오는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서편제 황톳길이 끝나는 곳에는 청보리가 무성하게 팬 곳에 드라마 '봄의왈츠'세트장이 있다
드라마 '봄의왈츠'는 윤석호 PD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계절시리즈(겨울연가,가을동화,여름향기)의
마지막 작품으로 2006년 방영되었던 드라마이다
서도영,한효주,다니엘헤니 등이 출연한 이 드라마는 운명에 의해 섬이 되어버린 남자와
그 섬을 감싸안은 바다같은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편제 촬영지 옆에는 파전,막걸리 같은 토속먹거리를 파는
초가집으로 만든 슬로장터가 있었다
슬로장터에서 조금전에 우리가 걸어왔던 도락리 마을과 알맞게 휘어진 길과
파도가 칠때면 마치 꽃을 보는 듯 아름답다하여 생긴 지명인 화랑포와 새땅끝을 바라본다
대모도,소모도,여서도,장도 등 5개의 유인도와 지초도,모도,불근도 등 9개의 무인도를 거느린
청산도는 1960년대 까지만해도 삼치와 고등어 파시로 유명한 어항이었다고 하는데
수자원의 고갈로 일만명이 넘던 주민들은 대부분 뭍으로 떠나고
현재 거주하는 주민은 3000명 정도로 농업과 일부 양식업에 의존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새로 복원한 당리마을을 감싸고 있는 청산진성이다
조선 숙종때 수군만호진이 설치되었던 청산도는 1866년 당리진이 설치되어
강진,해남 일대를 관장하였다고 하는데 당시 이곳에는 관망대와 봉화대가 있었고
외곽에 성을 쌓아 각각 동문,남문,서문을 두었다고 한다
당리에서 순환버스를 타고 상서돌담마을로 간다
유채꽃속에 쌓인 당리마을은 그림처럼 아름답다
남방지석묘인 고인돌과 고인돌공원은 차창밖으로만 관람을 하고 읍리를 지나치고
범바위로 가는 청계리도 통과한다
순환버스 안에서는 해설사님의 명쾌한 해설이 있었다
"청산도는 곡선의 섬입니다
구부러진 길이 그렇고,다랑이논이 그렇고 산과 들,마을이 모두 곡선입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모두 곡선의 마음을 지녔습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온통 곡선인 섬에 공감이 갔다
나중에 내릴때 그 해설사님은 청산도에 하나밖에 없는 중학교 미술선생님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역시....
청산도 부흥리에는 '구들장논'이 있다
계단식 땅에다 넓고 평평한 구들장같은 돌을 깔고 수로인 구멍을 낸 뒤 그위에 흙을 덮고
물을 대어 모를 심었던 다랭이 논이다
해설사님의 말에 의하면 옛날 청산도 처녀들은 시집가기 전 쌀 3말 먹는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 말은 청산도가 얼마나 척박하고 살기 힘든 곳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아침햇살 아래 걸음을 재촉하며 걷다가도
가끔씩 왜 이렇게 빨리 허겁지겁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곤 합니다
걸음도 느리게
마음도 느긋하게
하늘이 나에게 주는 햇살을 느끼며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도 바라보고
빗방울이 땅에 떨어져 작은 원을 그리는 것도
차근차근 마음에 담아두며
살고 싶습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상서리 돌담마을과
입구에 있는 몇백년은 됐음직한 느티나무가 마을의 역사를 말하여주는 동촌마을을 여유있게 걸으며
아트갤러리에서 보았던 가은님의 시를 읊어보았다
청산도 명산인 매들의 서식처라는 매봉산 동쪽에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동촌마을도 다닥다닥 붙은 돌담이
바람많은 마을의 애환과 정취를 자아내었다
마을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는 아낙네를 만났다
이방인들의 시선따윈 아랑곳없이 방망이로 두들기며 빨래하기에 여념이 없다
옛날 마을 소문의 진원지이며 여인네들의 웃음꽃이 피던 수다방 노릇을 하던 공동우물터를 오랜만에 보니
가슴이 따뜻해져 왔다
서쪽 도청항에서 출발한 슬로길은 청산도 중앙을 관통하여 동쪽인 신흥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그러니까 슬로길 11개 코스 중 1코스와 7코스를 걸은 셈인데 나중에 10코스를 걸을 계획인 것을 생각하면
3개 코스는 걷게 되는 셈이고, 나머지 8코스 중 일부는 버스로 이동하고,나머지는 미지의 길로
다음을 기약하게 되는 것이다
1박2일 촬영지이기도 한 신흥해수욕장은 썰물때인지 넓은 모래밭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 가운데 삼각주같은 모래톱은 풀등이라고 하는데
어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말인 '~등'은 소의 잔등처럼 넓고 평평하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동쪽에 있는 신흥리는 약간 위쪽에 있는 진산리 갯돌 해수욕장과 더불어 해맞이길이다
청산도에는 이렇게 각 코스마다 안내판과 물고기 모양의 방향표시와 길에 그려진 화살표 등이 있어
처음 온 나그네들이 수월하게 슬로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준다
청산도의 동쪽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북쪽 국화길을 거쳐 서쪽이라 노을길이라 불리는
지리청송 해수욕장에 하차했다
낮인데도 컴컴한 느낌이 드는 소나무 숲길을 사색을 하며 걷는다
백사장에는 한무리의 사람들이 공놀이를 하며 한때를 즐기고 있었다
지리해변은 방풍림 소나무숲으로 유명하다
200년 묵은 노송 500그루가 해변을 따라 이어지면서 울울창창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소나무 숲속에서는 여인네들의 웃음소리가 낭자하다
그 웃음소리의 울림 속에는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예감이 배어있다
이제 청산도를 떠나는 완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은 아쉬움으로 줄서서 청산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허기지고 고단한 삶을 거부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기고
척박한 땅을 일구어온 순박한 섬사람들 덕분에
오염에 물들지않은 맑고 아름다운 풍광이 만들어졌다
갑자기 허리부근에서 쑥냄새와 달래냄새가 진하게 맡아졌다
당리 입구에서 산 쑥과 달래를 허리춤에 매달고 다녔기 때문이리라
건강하고 향기로운 청산도 냄새다
4월의 어느 봄날,
섬사람들의 눈물속에서 피어난 청산도가 일년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
화려한 봄길을 나는 나비가 되어 걸었다
내 생애 잊을 길없는 소중한 시간들 속에서 춤추며 날아다녔다
때로 직선적이며 투박하고
조금은 거칠고 모난 우리들의 심성이 둥글게 둥글게 되어 살았으면 좋겠다
곡선의 섬 청산도의 마음처럼.....
아 참,갈때 데불고 간 내마음의 나비는 청산도에 남겨두고 왔다.
첫댓글 아아어마무시한 작품에의 감동,..그만큼 댓글기는 어렵고..
너무나 올만에 나타나신 해정님,그동안의 결석을 원성을 잠재울만큼 멋진 글 옮겨주셔서...용서해드려야겠따
하이고^^^ 제가 하는일이 쫌 많아서 자주 오지 못하고 글을 남길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죄송함니다--->가장 큰이유는 바깥으로 돌아 다니느라....ㅎㅎㅎ 용서에 감사드립니다.
나비야,청산도가자 해정님 청산도 가시느라 그리 오래 잠수
건강하고 향기로운 청산도냄새에 푸욱 빠졌다 갑니다.감솨
서편제의 고장... 청보이... 유채꽃, 느림,, 여유... 바쁜속에 여유를 ..
여러분해란 글이 안보이십니까그것도 봄바람 났던 거예요
넘가지 맙시다 뭐하다 왔죠
위의 글쓴이:
해정님은 바람
해정님
나의 봄바람을 우야겠노???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같아서 리플답니다. 헤헤헤헤헤~~~
저도 여기다 답니다,..움과 고마움과 그리움을...(너무 찐하나욤)
해정님에 대한
근데요 혹시 봄바람뿐만 아니라 사시사철바람난거 아닐까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