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정부관료제
강 성 남 (행정학과 교수)
1. 개관
일본의 정치와 행정시스템은 메이지 시대에 영국식 의원내각제가 도입되고, 그 후 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으로 인해 미국의 영향으로 새로운 틀이 만들어졌다. 겉옷은 서구의 구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운용방법은 일본 특유의 분권구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일본의 정부관료제에 관한 이미지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종의 신화(myth)와 같은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그 신화 속에서 일본 정부관료제는 서구 관료제가 갖는 가장 좋은 특징들, 예컨대 프랑스관료들의 특징으로 알려진 정책결정에서의 활기와 권력, 독일관료제의 능률성, 영국관료제의 장점인 세계관 공유 및 시민사회와의 비공식적 네트웍 보유, 스웨덴 관료의 정치로부터 자율성과 시민 지향적 태도와 같은 것들을 보유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모든 것이 전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루어 낸 아시아인들의 신비스런 능력으로 포장되어 왔다.
그러나 모든 신화가 그런 것처럼 일본관료제에 대한 이러한 이미지는 부분적으로 사실인 측면도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 보면 왜곡되고 과장된 측면도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묘사가 일본관료제가 갖는 여러 측면의 실제 모습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관료제는 이탈리아의 관료제처럼 정치인들에게 쉽게 조종되고, 미국의 관료제처럼 이익집단에 의한 침투(포획)가 용이하며, 대다수 나라의 관료제처럼 기관간의 경쟁과 갈등으로 인한 불협화음이 큰 것으로 묘사될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다.
어느 것이 일본관료제의 참 모습인지에 관해서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관료제의 감탄할 만한 측면들은 실재하는 약점들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각되어 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장에서는 일본관료제 내부에서 살펴볼 수 있는 정책결정과정에서 관료들의 역할과 정치와 관료제의 관계구조 등을 중심으로 논의하면서 일본관료제의 특징적 측면에 접근하고자 한다. 아울러 근자에 일본의 정부조직개편이 있었는데, 이것이 함축하고 있는 것과 관련하여 그 특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관료들의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역할
전후 일본헌법에서 의회는 국가의 최고권력기관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어떠한 정책도 중의원과 참의원의 승인 없이는 법이 될 수 없는 구조적 틀 속에서 의회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자민당이 1993년까지 해도 중의원의 과반수 이상 다수 의석을 차지하여 의회와 내각을 장악해 왔다. 이는 각종 정책 제안이 정책이나 법이 되기 위해서는 자민당 정치인들의 승인이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행정관료들이 의회가 주권을 보유하고 내각이 책임지는 법적인 틀과 일당지배의 정치적인 틀 속에서 움직여야 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정치-행정 관계는 훨씬 복잡했고 이는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정치학자들의 주된 관심은 정책결정에서 관료의 영향력과 역할에 모아졌다. 수년동안 일본 정치체제에 관한 논의 속에서 관료제는 정책결정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유일한 정치세력으로 간주되거나 자민당 및 대기업과 함께 통치연합을 구성하는 3대 핵심세력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다.
관료들이 정책결정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보는 사람들은 정책결정과정에서 관료들이 수행하는 여러 차원의 역할과 활동들을 지적한다. 그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아직 정착되지 않았고 정치엘리트들이 통치하는 데에 익숙하지 못했으며 민간 기업엘리트들은 경제재건을 위한 자원을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전쟁 직후에도 전쟁 전에 행정엘리트에게 주어졌던 역할, 지위 및 권위가 그대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행정 인력과 구조의 지속성으로 인해 관료들은 경제·사회 재건을 위한 정책결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상대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실제로 그에 걸맞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자민당이 집권한 이후 거의 60%에 이를 만큼의 대다수 법안들이 관료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만들어졌다. 관료들이 입안한 법안들은 자민당 내에 있는 정책조사회에서 검토된다. 정책조사회 산하의 각 분과위원회는 해당 행정부처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관료들은 종종 정책조사회의 회의에 불려나와 법안들에 대해 증언하기도 하였다. 집권당에서 승인하거나 수정한 법안들은 의회 상임위원회에 회부되기 전에 내각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다음으로 미국이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일본 의회는 훨씬 적은 수의 법인들을 통과시켰고, 그나마 대부분 법안들이 그 해석과 적용을 행정부 재량에 맡기는 일반적 성격의 것들이었다. 미국 의회가 한 회기에 1,000 개의 법안을 통과시키고 이탈리아 의회가 400 개 정도의 법안을 통과시킬 때, 일본 의회는 겨우 100여 개 정도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더군다나 그 법들은 매우 일반적으로 규정되어 있어서 일반 지침을 제외하고 자세한 내용은 관료들이 정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일본 관료들은 법안들이 소수이고 모호하게 규정됨으로써 상당한 정도의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관료들의 영향력은 눈에 드러나는 역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행정엘리트들이 자민당에 침투하여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리하여 전후 자민당 소속 의원들 중 4분의 1 이상이 행정부에서 은퇴하거나 사임 후 자민당 공천으로 당선된 전직관료들이었다. 내각 대신들의 경우 그 비율은 더 높다. 이러한 관행은 관료들로 하여금 정책을 집행하기 이전에도 정책결정의 모든 단계에 깊숙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핵심정치인들이 행정기관과 연계를 맺고 행정기관 지향적 태도를 보유한 전직관료들인 관계로 당과 내각의 역할조차 간접적으로 관료제의 영향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정당의 정치적 간섭 없이 산업계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는 산업정책들을 입안·통과시키고 집행하는 과거의 통산산업성(지금은 '경제산업성'으로 이름이 바뀜)의 능력도 관료들이 정치인으로부터 자율성을 갖고 있다는 증거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일본에서 관료들의 역할에 관하여 종전의 시각에 비하면 보다 더 복잡한 견해가 미국과 일본의 정치학자들 사이에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어떠한 법안도 집권당의 동의 없이 의회에 제출된 적이 없다. 둘째, 자민당과 그 리더들은 승진 비토권을 포함하여 고위관료들을 통제할 수 있는 다양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셋째, 전직관료들의 자민당 유입은 종전 주장과는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이러한 유입이 자민당 내에서 관료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제로 작용하였다고 보기보다는 오히려 자민당의 정책결정 기술과 전문성을 향상시켜 자민당으로 하여금 정책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가능케 하고 관료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종할 수 있게 하였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모른다.
사례연구와 설문조사 자료를 보더라도 정책결정에 있어서 정치인들의 역할이 결코 미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무라마쯔(Michio Muramatsu) 교수는 1976년과 1986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정치인들은 물론 관료들도 정책결정에서 의회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서구와 미국의 고위관료들과 정치인들의 역할을 유형화하기 위해 행한 무라마쯔의 연구에 의하면, 다른 서구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정치인과 관료들의 역할이 통합되어 왔으나 정책결정과정에서 그들의 역할강조와 실제적 공헌내용에 있어서 아직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관료들은 자신들의 역할을 일차적으로 정치인에게 정보와 전문지식을 제공하고 이차적으로는 사회의 다양한 이해를 중재하고 관리하는 것으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고, 정치인들도 관료들의 역할을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관료들을 정치인이 만든 정책을 단순히 집행하는 사람들로 간주하거나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 리더로 간주하는 시각들은 별로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본의 고위관료들도 다른 서구 관료들과 마찬가지로 정책결정과정에서 몇몇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고, 일본 정치인들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다수 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1970년대 이래로 자민당 고위정치인들은 정책결정과정에서 그들의 역할과 영향력을 증대시켜 왔다. 자민당의 장기 통치가 이러한 영향력 증대를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자민당 정책조사회 소속의 각 분과위원회 의 활동을 통해 특정 정책영역의 전문가가 된 '족(族)의원'들의 등장이다. 이러한 자민당 중진급 족(族)의원들은 정책결정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에서 고위 관료들과 필적하게 되었고, 또한 해당 부처와 이익집단들과도 원활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분야별 정책영역에서 자민당 분과위원회, 행정기관 및 이익집단으로 구성된 '철의 삼각관계'(iron-triangle)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이들간 정책갈등을 조정하기도 한다. 단일 관료조직의 관할을 넘는 정책이슈들의 증가로 갈등이 증가하고 있으나 관료들에 의한 조정이 어려워 이들 족(族)의원들의 조정역할이 갈수록 중시되고 있다.
좀더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정치인과 관료들의 역할은 좀더 복잡하다. 정책영역에 따라 다를 뿐만 아니라 동일한 정책영역에서도 이슈에 따라 다르며 시점에 따라 다르기도 한다. 교육정책 영역에서 족(族)의원들에 관한 구체적 연구에 의하면 족(族)의원들의 이슈유형에 따라 관료주도 정책결정을 격려하기도 하고 정책결정의 브로커로서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게 될 정치와 관료제의 관계구조를 살피면서 족(族)의원의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영향력과 정·관·재(경)의 공생구조를 통해 보기로 한다.
관료와 정치인 역할의 상대적 비중은 또한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무라마쓰의 1986년 연구에 의하면, 민간이익집단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자 자신들의 역할을 사회집단들의 다양한 이익의 조정으로 인식하는 관료들의 수가 늘었고, 특히 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자신들의 역할로 인지하는 고위관료들의 비율이 늘어났다. 관료와 정치인들의 역할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는 증거는 중소기업, 농업, 지역개발 등에 관한 정책결정연구에서도 나타난다. 이들 연구들은 다수당으로서 자민당의 지위가 외부 사건에 의해 위협받는 위기 시에는 당이 정책을 주도하여 사회단체들에 편익을 제고하여 약화된 지지기반을 확대시켰다.
관료 자율성도 마찬가지로 복잡한 이슈이다. 관료들은 특히 산업정책의 결정에 합리적이고 기술적인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자율적이고 효율적인 것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러나 산업정책과 경제전반에 관한 정책은 예외일지 모른다. 대부분의 다른 정책영역에서 그리 자율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인들의 간섭을 많이 받는다. 1986년 관료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도 통산성, 대장성(근자의 조직개편에서 재무성으로 탈바꿈됨, 이 글의 후반부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되고 있음), 경제기획청으로 대표되는 경제관련 성·청과 여타 다른 성·청은 정치적 해결과 전문기술적 해결에 대한 관료들의 태도에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여타 다른 성·청은 훨씬 정치화되어 있고 덜 전문기술적이다. 같은 연구에 의하면 경제관련 성·청들은 정부의 고위층, 특히 수상과 빈번한 접촉을 갖고, 정치화된 성·청들은 관련 족(族)의원들과 보다 많은 접촉을 갖고 있는 것을 나타났다.
농업, 건설, 교육, 교통 등 집권자민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큰 정책영역에서는 정책결정무대가 미국과 상당히 유사하여, 정치인과 이익집단의 영향력이 관료들의 영향력보다 크고 관료들은 이들의 포로가 되어 있다. 자민당 정치인들끼리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중선거구제 하에서 의원들은 선거구에 보다 많은 편익을 안겨 주어야 하는 압력에 시달린다. 산업정책이 예외일 수 있는 이유도 산업정책을 통해 선거구민에게 제공할 수 있는 직접적인 편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에게 보다 많은 편익을 제공할 수 있는 정책에 보다 깊이 간여한다.
요컨대 정책결정과정에서 관료들의 실제 역할과 정치인들과의 관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관료들은 단순한 정책집행자에 머물지 않고 정책결정의 주요 참여자로서의 역할을 한다. 정치인과 의회도 또한 정책결정의 주요 참여자이다. 관료들의 상대적 영향력은 정책영역 및 시대에 따라 다르고 동일한 정책영역 내에서도 이슈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간섭 정도는 성·청의 유형에 따라 크게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고위 정치지도자들의 상대적 영향력과 정치-행정간 통합은 자민당이 장기 집권당으로서 제도화됨에 따라 증대되어 온 것 같다. 1993년에 새로운 연립정권의 등장과 자민당의 세력 약화로 인해 관료와 정치인들의 상대적 영향력에 일부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 같지만, 관료들에 대한 당의 영향력이 제도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하루아침에 불식시키기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한편 일본관료제 내부의 정책결정방식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관료제 내부에서 이뤄지는 정책결정에 있어서는 결정권이 아래로 분권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향식(bottom-up)의사결정방식이 지배하고 있음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대개 일상적인 행정업무는 과장보좌급에서 기안하여 그것이 점차 위로 전달되어 결재를 받는 순서를 거친다. 이 점에서 보면 아래로부터의 정책관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적인 면에 더하여 실질적인 결정메커니즘에서도 상향식 방식의 결정구도가 드러나고 있다. 아래에서 올린 내용이 위에서 번복되는 일이 거의 드물며, 위에서 결정한 것을 아래에서 실무적으로 짜 맞추는 일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를 반증하고 있다고 하겠다. 기본적으로 상층부에서는 가능한 한 아래로부터의 의견과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정책지원력을 동원하려고 한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과거의 통산성의 법령심사위원회는 국장이 서명한 사항도 되돌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정책결정과정은 하나의 지휘계통에서 완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데에서도 그 특징을 엿보게 된다. 정책관련당사자 집단이나 기관의 의견청취와 그들 조직의 힘에 의존하여야 하는 것이 일본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왕왕 찾아볼 수 있는 현상 가운데 하나다. 계급의 차이가 분명하고 같은 직급이라도 선후배가 분명히 구분되는 동양적 사고방식을 가진 관료제이지만, 일에 관한 한 각각의 분야의 전문성과 독자성이 인정된다. 이러한 까닭에 과 단위의 조직이 가지는 권한이 상대적으로 매우 큰 점이 일본의 관료제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조직의 허리에 해당하는 부분이 매우 튼튼한 것이 일본의 관료제이고, 또한 일본 관료제의 정책결정 메커니즘에서 이들의 역할이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해서도 보다 더 확연히 드러나도록 한다는 점이 특징으로 꼽힌다.
3. 관료제와 정치의 관계구조
1) 족(族)의원과 정책결정과정에서의 그들의 영향력
일본의 정치와 관료제와의 관계를 살피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정경유착의 고리로 불리우는 '족'의원(조쿠기인 : 族議員)'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족의원은 관료의 정책입안 노하우를 몸에 익히고, 특정 이익집단과 성·청의 이익추구를 위해 발언하고, 정치력을 발휘하는 국회의원을 말한다. 그러므로 아무나 족의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야당은 정책이나 중앙부처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제외되게 마련이다. 족의원은 자민당의 장기집권 구조에서 탄생하였고, 당 기구인 '정책조사회'(政策調査會)가 그 활동영역이다. 자민당 의원 가운데에도 그럴만한 실력을 갖추기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관료출신이 아니면 최소한 관련부처의 장관이나 사무차관을 거쳐야 하고 자민당의 여러 부회의 회장이나 국회 상임위원장을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자민당은 미군정 시대에 만들어진 의회가 '상임위원회'를 각 성·청별로 편성한 것을 역이용하여 그 계열과 일치하는 조직을 정당 내에 설치하였다. 예컨대 의회의 문교위원회는 문부성을 상대하는데, 이에 맞춰 자민당 정책조사회는 '문교부회'를 설치하여 문교위원회와 관련된 정책을 토의했다. 또 사안에 따라서는 '문교제도조사회'처럼 연구조사 외에 자문에 응하는 별도의 기구를 만들기도 했다. 원래 이들 정당 내에 만들어진 부회 또는 정책조사회는 특정분야의 정책전문가를 양성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조직이 당초의 의도와는 동떨어진 채 국가정책결정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많은 문제를 낳게 되었다. 모든 법률안은 국회에 제출되어 상임위원회의 토의를 거쳐 본회의의 가결로 성립된다. 그런데 의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해온 자민당은 모든 법률과 정책을 정책조사회의 사전심의를 거치도록 하였기 때문에, 실제로 법은 이곳을 통하지 않으면 어떤 법률안도 햇빛을 볼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래서 정책조사회를 가리켜 '제2의 정부'로 불렀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각 성·청은 법률안 및 예산안을 제출할 때 우선 소관 족(族)위원을 중심으로 사전교섭 및 업무협조를 구하게 된다. 이 때문에 각 성·청은 평소부터 이들 족(族)위원들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그런 틀 속에서 이들은 오랜 기간 특정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의 노하우를 축적해 왔다. 그래서 각 성·청의 노련한 관료들도 소속부회의 족(族)의원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가가 당선을 거듭하여 2-3선 의원이 되면, 정무차관이 되고, 5-6선 의원이 되면 대신이 된다. 그 과정에서 정치가는 당의 정책조사회 각 부의 회장을 거쳐 국회 상임위원회와 연결 지어 나가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대신이 되기까지 생명을 유지하는 사람은 약 반수, 또한 2회 이상 대신이 되어 상임위원장이 되거나 당 4역을 경험하게 되는 사람은 10%에 불과하다. 게다가 선거를 통해 자연 도태되는 수를 감안한다면 실제 관료들이 주목해야 할 유력한 족(族)의원의 수는 상당히 압축된다. 자민당 시절, 각 계파별로 10명 내외, 5개 계파로 치면 50명 정도였다. 정관유착의 관계를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족(族)의원정치가 없어져야 한다고 믿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족의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업계의 이익을 우선하다 보니, 국가 전체적인 체질 및 구조개혁이 지연되었다는 점이다. 모리파 회장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지금의 일본총리)가 의원으로 있으면서 후생장관을 맡고 있을 때인 1993년에 우정사업 민영화를 주장하고 나설 당시에 우정족이 반대하여 그를 궁지로 몬 적이 있다. 우정사업의 민영화가 그렇게 지연되었다. 통신사업의 신규참여가 늦어진 결과로 원천기술이 우수하지만, 일본의 정보기술(IT)산업이 상대적으로 낙후한 것도 NTT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우정족이 규제완화에 반대한 결과였다는 지적이 있는 것을 보면 족의원들의 영향력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족의원은 외교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적인 사례로 1998년 한.일어업협정 개정을 위한 교섭 당시에 수산족들은 수시로 외무성의 발목을 잡았다. 일본의 족의원은 연고를 중시하는 동양 전통의 정치문화가 현대 일본 정치에 묘한 형태로 뿌리를 내린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2) 공생관계의 구조
족(族)의원들은 관료제의 종적 기능을 파고들어 특정분야에서 그들의 영향력이 특히 강해졌다. 그로 인해 그 분야의 예산, 입법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에까지 상당한 발언권을 가지고 속속들이 관여해 온 것이다.
견고한 관료조직이 흔들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회에 속한 의원은 관청으로부터 귀중한 정보를 얻으며, 부회의 회장이 되면 관료인맥과 업계와의 관계도 탄탄해지고, 실력 있는 정치가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어떤 의원이 부회의 회장에 취임하면, 관청은 그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의원선거구의 이익이 되는 사업을 몰아주지 않을 수 없다.
정책조사회 가운데 특히 인기가 있던 부회는 소위 '어삼가(御三家)'라고 부르던 농림, 건설, 상공의 3부회였다. 정치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금과 표를 모으기 쉬운 자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관료의 입장에서도 오히려 이것을 잘 이용하고 있다. 족(族)의원의 위신을 세워주
면서, 그 힘을 역이용하여 예산의 획득에 족(族)의원을 응원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예산권을 갖고 있어 각 성·청에 대해 고압적인 대장성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을 입안시키기 위해서는 의회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서 대장성도 정치가의 힘의 논리에 약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각 성·청은 잘 활용한다. 즉 정치가의 얼굴을 내세워 실익을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공생의 관계는 더욱 가속도가 붙어 업계로까지 이어진다. 의원들은 관료들의 예산획득을 도와주는 대가로 이권에 대한 압력을 넣는 반면에, 인·허가권을 쥐고 있어 재계에 큰 영향이 있는 관청은 재계에 대한 응원단 의원들의 애로사항들을 해결해 줌으로써 득표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그리하여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관·재(경)의 공생구조인 이른바 '철의 삼각형(iron-triangle)'이 완성된다.
정·관·재(경)의 공생구조
정계
예산권, 정치자금,
벌률안 확정 표 모으기
지역사업지원
관계 재계
공공지출, 인·허가권
한편 정치와 행정의 관계와 관련하여 일본에서는 '관고정저(官高政低)' 또는 '정고관저(政高官低)'라는 말이 있다. 이는 정치가와 관료 중 누가 실권을 더 가지고 있나, 어느 쪽이 국가운영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치느냐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 말 속에는 두 그룹간에 일종의 경쟁의 관계가 함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노구치 다카시(猪口孝) 교수는 일본의 정치적 역학관계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시기별로 그 특징을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는 1945-54년까지의 경제부흥기의 관료제의 상대적 득세이다. 관료(제)는 정치가, 벌, 군대라는 정치경제주체가 미 점령군에 의해 약체화된 가운데도 살아남은 유일한 세력이었다. 그 위에 경제부흥과 고도성장을 준비하기 위해 관주도형 국가체제가 만들어졌다. 이런 체제하에서는 관료제의 힘이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관료제는 국민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민간부문에 대한 관료의 힘을 계속 강화시켜 나갔다.
둘째는 1955-64년 동안의 고도성장기의 관료제의 영향력신장이다. 일본은 1955년 이후 고도성장이 본궤도에 접어들게 되었다. 정치는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자민당의 깃발 아래 하나로 결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관료제는 점령군의 비호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관주도의 경제최우선정책의 강력한 추진과 집권당과 이익단체들을 관료제의 틀 안에 끌어들이는 등의 요인으로 인해 더욱 그 영향력을 신장시킬 수 있었다. 관료제의 이익단체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다.
셋째는 1965-73년까지의 고도성장기 후기의 정·관 공생관계의 구축이다. 1965-66년의 일시적인 불황기에 통산성은 정부의 의도대로 산업구조조정을 이끌어 나가기 위해 '특정산업 임시조치법'을 도입하려고 하는 등의 국가개입력을 더욱 강화하려는 노력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는 관료제 주도의 정치경제체제에 있어서 한계를 드러낸 하나의 징조였다. 사토(佐藤榮作), 다나카(田中角榮)정권을 거치면서, 집권당은 '관료제와의 기생관계'를 '관료제와의 공생관계'로 발전시켜 나갔다. 사기업은 더욱 발전하면서 이익단체의 조직팽창으로 이어졌다.
넷째는 1974년 이후의 저성장시대에서 이른바 '정고관저'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일본의 경제성장이 정체하면서 관주도형 경제우선 국가운영방식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 이전에 비해 민간에 대한 관료제의 영향력이 줄어든 반면에, 민간과 정치와의 관계는 강화되어 결국 정치가가 관료에게 행사하는 힘이 눈에 띄게 커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시기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내각이 등장하게 되면서 '정고관저'(政高官低)란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흐름도 1993년 8월 자민당 일당독주체제가 무너지고 소수당의 연립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다시금 관료는 정치적 힘의 공백기를 이용하여 그 영향력을 회복하게 되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연유로 인해 국가의 최고권한이 의회에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 체제하에서는 실제논리가 어떻게 되었더라도 형식논리상 관료제의 권력적 위상은 정치의 아래일 수밖에 없다.
3. 관료조직간의 갈등과 최근의 조직개편의 특징
일본 관료제에 있어서 내부정책결정과정에서는 합의제가 강조되고 있다. 일본 특유의 정책결정과정으로 볼 수 있는 이른바 품의제(稟議制) 하에서는 결정에 관련되는 자라면 누구나 의제에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서명을 해야 하고 서명하는 과정에서 비공식적인 합의도출이 이루어진다. 자원을 둘러싸고 성·청들간에 벌어지는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공식적인 메커니즘이 사용된다. 예산의 증감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대장상이 사용하는 기준은 '공평한 공유(fair share)', 즉 서로 다른 성·청 관할이라도 유사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동일하게 증액하거나 삭감하여 예산배정을 둘러싼 성·청들간의 갈등을 줄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성·청 내부에서의 집단의식과 합의존중, 예산배정에 있어서의 갈등회피 관행 등은 업무관할을 둘러싼 갈등과 경쟁이라는 부정적 여파를 가져온다. 일본에서 정부관료제의 운영과정에서 제기되는 가장 주요 문제는 성·간의 횡적인 조정이다. 관료들이 소속 기관의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업무관할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대장성과 통산산업성간의 경쟁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다. 한 예로 통신사업의 관할권을 놓고 통산성과 우정성이 벌인 갈등은 바로 이 두 기관간의 경쟁의 결과이다. 통신사업 관할을 둘러싼 갈등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별로 인기가 없는 우정성이 일부 산업정책(통신산업)에 뛰어들어 통산산업성에 도전함으로써 지위향상을 도모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정책이슈가 명확하게 하나의 성·청 관할로 인정되어야만 그 해결이 시도되고 관리된다. 반면 여러 성에 걸쳐 있는 정책이슈들은 쉽게 관할논쟁에 휘말리고, 이러한 갈등은 통신사업의 예에서 보듯이 종종 자민당 리더들의 개입을 통해 해결된다. 미군정이 끝난 이후에 관료조직내부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자민당 필요와 국제적 압력에 대한 대응으로서 나타났다. 그 결과 1960년대에 제1차 행정개혁이 있었다. 이 때의 개혁에서는 중앙정부의 행정인력이 더 이상 팽창되지 않도록 하고 정부의 크기를 줄이되 행정이 사회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행정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 실현을 위해 주요 성·청들로 하여금 각각 1개의 국을 줄이도록 하였고, 3 년간 자연감소를 통해 인력의 5 %를 감축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감축을 통해 발생한 여유 인력은 하나의 '풀(pool)'로 만들어 필요한 부서가 경쟁을 통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모든 행정조직들을 동일하게 취급하고 강제로 실직시키지 않음으로써 행정개혁에 대한 관료들의 저항을 완화시켰다. 각 성·청에 재량권을 주어 어느 국을 없앨 것인지 스스로 결정토록 하였다. 또한 국가적 필요에 대응하여 관료들이 신축적일 수 있었던 것은 인력의 추가를 위해서는 그 타당성을 둘러싼 경쟁을 거쳐 중앙의 '풀(pool)'에서 확보토록 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1차 행정개혁은 과거 25여년 동안 중앙정부의 팽창을 성공적으로 제지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2차 행정개혁은 정부를 작고 효율적으로 만들려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략의 일부였다. 나카소네는 수상이 지명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를 활용하여 변화에 대한 관료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안하고 집행하려고 하였다. 제2차 행정개혁의 첫째 목표는 1970년대에 심한 재정적자를 초래한 중앙정부 지출을 감축하는 것이었다. 또한 연금제도도 재편되었다. 제2차 행정개혁의 두 번째 목표는 행정조직을 간소화하고 특히 수상실의 관리능력을 제고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표달성을 위해 행정관리청(Administrative Management Agency)과 수상실(Prime Minister's Office)을 합쳐 수상청(Prime Minister's Office)으로 통합하였다. 세 번째 목표는 거대한 공기업들을 민영화하고 일본경제에 있어서 민간부문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인데, 이는 부분적으로 통상위기 해소를 위한 국제적 압력에 대한 대응이기도 하였다.
이상의 목표달성은 나카소네가 관료들의 저항을 예상하고 치밀하게 대응함으로써 가능하였다. 나카소네는 공공심의기구들을 창설하여 학계와 기업에서 온 조언자들을 임명하였고, 이 기구에서 개혁안을 만들고 그 집행을 조정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공공심의기구들을 통해 행정개혁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기도 하였다. 개혁의 초기단계에서는 개혁안에 대한 관료들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이들의 제안과 반응을 적극 수용하였다. 다수 사무차관들은 집행과정에 참여하였다. 마지막으로 개혁의 여파로 주요 지지집단의 변화가 수반될 수도 있는 자민당 족의원들과 타 행정기관들의 저항을 극복하고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나카소네 자신이 산업계의 강력한 리더들 및 대장성과 같은 경제관련 성들과 연합세력을 구축하였다. 이러한 행정개혁들은 수년에 걸쳐 집행되어 왔고, 특별자문위원회에 의해 그 집행여부가 감시되어 왔다.
1996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내각이 추진하려 했던 일본의 행정개혁은 지난 2001년 1월에 들어와서야 그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번의 행정개혁이 기초하고 있었던 당시의 개혁구상 속에는 21세기 일본의 생존전략이라는 행정개혁의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국가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맡았던 관료제가 활력을 잃은 제도가 만들어내는 부작용으로 인해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여 제3의 개국을 이룬다는 여망을 가지고 행정개혁을 설계하였다. 관료제가 더 이상의 '제도의 피로현상'을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행정의 재편이 필수요건이 된다는 인식에서다. 중앙부처조직을 '정책결정과 집행'으로 분리하고 기능적으로 7개 분야로 통합.축소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정부기능과 병행하여 공무원제도의 개혁도 추진할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공무원제도의 개혁내용은 무엇보다도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제의 타파가 핵심이다. 아울러 중앙정부의 경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중앙의 권한을 지방정부로의 이양을 추진하겠다는 계획도 행정개혁의 내용 속에 포함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내용들은 사실상 일본관료들의 저항의 벽에 부딪히면서 많은 수정을 거치고 있지만, 관료제의 개혁을 통한 국가도약을 이룬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인식에 따라 지난 2001년 1월 6일, 일본의 중앙정부조직이 기존 1부 22성.청에서, 1부 12성.청으로 재편되어 21세기를 시작하였다. 개정 내각법은 각료 수를 원칙적으로 14명 이내로 하고 최대 17명을 넘을 수 없도록 줄였다.
다음은 개정된 성 . 청 조직의 내용이다.
◇ 개편 성청 조직(괄호 안은 종래 성 . 청)
▶내각부(총리부, 금융청, 경제기획청, 오키나와개발청)
▶총무성(우정성, 자치성, 총무청)
▶문부과학성(문부성, 과학기술청)
▶후생노동성(후생성, 노동성)
▶국토교통성(운수성, 건설성, 홋카이도개발청, 국토청)
▶환경성(환경청+후생성과 통상산업성의 일부 부서)
◇ 개명
▶재무성(대장성)
▶경제산업성(통상산업성)
◇ 현행 유지
▶법무성.외무성.농림수산성.방위청.국가공안위원회
이번 개편으로 눈에 띠는 변화를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정부조직 개편의 폭으로 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정에 의해 강요된 조직개편 이후 처음으로 큰 규모의 개편이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조직개편의 1차의 목적은 정부의 몸집을 줄여서 행정의 생산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우정성.자치성.총무청을 통합하여 총무성이, 운수성.건설성.국토청.홋카이도(北海道)개발청을 통합하여 국토교통성이 탄생했다. 후생성과 노동성은 후생노동성으로, 문부성과 과학기술청은 문부과학성으로 각각 통합이 이루어졌고, 환경청은 후생성과 통상산업성의 기능 일부를 넘겨받아 환경성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장관의 자리가 줄어든 것은 물론 중앙성.청의 국을 128개에서 96개, 과는 1,166개에서 997개로 크게 줄였다. 특히 정부출연연구소와 국립병원, 조폐국 등 90개 기관 및 업무를 독립행정법인으로 이행시켜 2005년까지 현재 84만 691명인 국가공무원의 정원 중 4만 3130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둘째, 132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관료지배의 상징이자 관청 중의 관청으로 일컬어져 왔던 대장성이 금융. 예산편성기능을 내각부에 빼앗겨 위상이 크게 격하된 채 재무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큰 곳간'의 뜻을 지닌 대장성이 일본을 관료지배사회로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하면서 급기야 일본을 세계최대의 빚더미 국가로 만들었다는 공격을 받으면서 개혁의 대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대장성이 가지고 있던 금융감독업무는 금융청에, 금융정책기능은 일본은행으로 이관되었다. 재정부문에서도 예산편성기본방침이 내각부 산하의 경제재정자문회의에 넘어가게 되는 등 종래의 기능에서 크게 약화된 채 이름마저 포기하게 된 것은 이번의 조직개편에서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이다. 관료주도의 일본 경제를 상징했던 대장성과 통산성의 개편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깊다. 일본의 근대화와 전후 경제발전을 주도한 최고의 엘리트 관료집단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대장성은 1990년대 들어와 뇌물과 향응을 둘러싼 오직(汚職)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거품경제의 거품이 빠지면서 고질적인 관민, 정경유착 구조가 일본 경제위기의 진원이고 그 중심에 대장성이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조직개편의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셋째, 관료주도의 정책결정 과정을 정치주도로 전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의 조직개편에서 겨냥하고 있는 중요한 점은 내각부에 권력을 집중시켜 각의 사회자에 머물러 왔던 총리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관료가 주도하여 온 정책결정을 정치가 장악하려는 것이다. 정무차관을 모두 부대신(副大臣)으로 승격하고, 정무차관이 맡았던 국회대책, 당.정조정 등의 기능은 별도로 정계에서 발탁된 정무관이 맡고 있다. 정책결정에 대한 정치의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지금까지 주로 의전적 역할만 담당해 온 정무차관을 폐지하고 명실상부한 성.청의 제2인자로 부대신을 임명토록 함으로써 정책결정과정에서의 중심축이 관료에서 정치로 이동하게 하였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관료사회의 꽃으로 사실상 성.청의 정책결정을 좌우해 온 사무차관은 부장관 아래 제3인자로 격하되고 말았다.
넷째, 총리권한의 강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총리부는 권한과 기능이 대폭 강화된 내각부로 개편되었다. 내각 기능의 강화는 총리의 발언권을 내각법에 명기함으로써 사무차관회의의 추인기구나 다름없는 현행 각료회의를 총리의 지도력으로 활성화하려는 의도의 표출로 해석되고 있다. 내각부에는 예산과 재정운영의 방향을 결정하는 경제재정자문회의를 비롯하여 종합과학기술회의 . 중앙방재회의 . 남녀공동참여회의 등 4회의를 설치해 행정의 종합조정기능을 강화했다. 이와 함께 총리보좌기구로 기존에 있던 관방장관 외에 3인의 관방부장관과 3인의 관방부장관보, 보좌관, 비서관 각 5인씩을 둘 수 있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내각부가 종래의 관청 중의 관청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전망이 있는 것을 보면 총리권한의 강화로 정치주도론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다섯째, 정책평가제도의 도입이다. 각 부처의 정책을 계획, 실행, 종료 후 등 각 단계에서 비용과 성과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정책평가제도가 도입된다. 행정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도입되는 이 제도는 각 부처의 자기평가와 지식인들로 구성되는 총무성 내 평가기관에 의해 운영된다.
4. 맺음말
일본관료제에 관한 신화는 몇몇 사실적인 측면을 반영하고 있다. 일본 관료들은 존경받고 헌신적이며 정책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엘리트집단이고, 공식 비공식 네트웍을 통해 민간엘리트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정치인, 특히 집권 자민당도 정책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관료들에게 조직을 개혁하도록 강요해 왔다. 민간 이익단체들은 관료들과 밀접한 유대를 지속해 왔고, 몇몇 영역에서는 자민당내 그들의 동조세력과 연합하여 정책결정에서 관료조직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일본 관료제에 대한 좀더 정교한 논점에 입각하여 국가적 스타일, 정책영역의 특징, 이슈의 특징 등의 영향력을 비교론적인 시각에서 고려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이 일반적인 지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일본 관료제에는 일본식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는 특수한 측면들이 있다는 것이다. 정치와 행정간의 관계를 보면 일본 관료들은 정책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자민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역사적 발전, 단일 보수정당의 장기집권, 정치기능과 행정기능의 융합 등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관료와 사회단체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일본식 스타일은 나타난다. 일본은 관료와 민간부문간에 공식·비공식 연계와 의견교환 채널이 고도로 제도화되어 있다. 관료들의 충원 및 사회화 과정, 그로 인한 성·청에 대한 충성과 성·청들간 파편화(fragmentation), 지나친 갈등을 차단하는 데 사용되는 메커니즘 등도 또한 일본식 스타일의 일부이다.
둘째, 정책영역은 정치와 행정과의 관계 및 국가와 시민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변이(variation)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많은 자민당의원들이 동일 선거구에서 서로 경쟁하게 되어 있어서 선거구민에 대한 서비스가 강조되는 일본의 선거제도로 말미암아 일본관료제는 두 가지 유형으로 이분된다. 농업, 건설, 교통, 우편 기타 선거구민을 위한 재화와 서비스를 취급하는 정치적 성·청들은 자민당 정치인들과 고객이익집단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반면에, 재정, 무역 및 경제성장을 다루는 경제관련 성·청들은 정책결정과정에서 보다 많은 명예, 자율성 및 영향력이 주어지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이들 성·청들이 선거구민들의 직접적인 편익과 관련된 업무를 취급하지 않고, 오히려 정치인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적은 재정안정, 경제와 무역에 있어서 장기목표 등을 취급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본의 특수한 선거제도와 보수정당의 장기집권으로 말미암아 정치-행정 관계와 국가-시민 관계에서 정책영역의 특징이 생각보다 훨씬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관료제의 장점은 또한 그 약점과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엘리트 충원과 집단적 내부결속은 당파성을 야기 시키고, 경제정책결정과정에서 정치인들로부터의 자율성은 비경제영역에서 당에 의해 상당한 정도의 정치화를 수반하며, 관료들이 추구하는 국익목표 달성이 민간단체와의 밀접한 유대에 의해 제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촉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본은 여러 측면에서 프랑스, 스웨덴 및 독일을 닮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은 또한 미국, 이탈리아 및 제 3 세계의 특성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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