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중후반을 고교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관객들에게 또 하나의 조폭 코메디 <두사부일체>는 정서적인 감흥,혹은 몰입의 진폭이 극단적일 만큼 예민하게 처리된 대단히 논란이 될만한 영화다.
올해의 조폭 시리즈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영화는 조폭 영화들 특유의 잔재미와 서로 다른 세계의 충돌지점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들을 꽤 짜임새있는 웃음의 리듬으로 엮어내고 있다. 작품성면에서는 일갈을 당했지만 재미의 완결에 있어선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던 선배 조폭 영화들처럼 <두사부일체>역시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달려나간다.
조폭영화 특유의 관습적이기까지 한 장르적 관성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학교로 간 조폭이야기 답게 학원물이 주는 색다른 재미까지 첨가해서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여기다. 무식한 조폭의 중간보스가 고졸이라는 명분을 얻기 위해 학교로 간다는 이야기부터 알고보니 그 신성한 학교라는 공간이 사실은 조폭세계 보다 더 피칠과 똥칠이 난무하는 더러운 세계였다는 현실비판적인 자세,그리고 결국 그 학교로 간 조폭이 더러운 현실을 비정한 폭력으로 맞선다는 쾌감의 요소 분명한 결말.
몇해 전 분명히 존재했던 학교비리를 정면으로 예시하고 비판하는 듯한 태도는 초반부 광풍같은 코메디의 물결과 후반부 자극적인 신파의 폭격 사이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뒤뚱거린다.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과장된 품새를 취하고 있기는 하지만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재능과 다양한 영화를 끌어 들여 자기만의 모양새로 만드는 재치,그리고 사회적인 문제에 눈 돌릴 수 있는 의젓한 자세까지 갖춘 이 영화는 똑똑하고 전도양양하지만 재수없는 모범생 친구처럼 뽐내기와 겉멋에 들려 진심을 잃어버렸다.
<조폭 마누라>가 웃음의 둥지만을 안전히 틀고 그 안에서 만족한 것,<달마야 놀자>가 숲속으로 사라져 은둔의 유머를 구사한 것에 비하면 <두사부일체>의 전면전은 그래서 아쉽고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그럴싸한 포장에 둘러싸인 영화는 내가 정작 하고 싶던 이야기는 지금,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이라는 듯 능수능란한 기술로 관객을 쥐었다 노았다 하지만 촘촘히 쌓아올린 그 층계의 명암이 분명하지 않아 억지스런 테크닉을 구사하기 시작한다.
가슴 아픈 건 죽도록 맞고,피 흘리고,절망하는 교실의 풍경이 낯선 것이 아닌 이들에게
슬픔과 아픔을 전달하는 이 영화의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이 영화는 상황을 재현하는데서 그친다. 러프 필름처럼 거칠게 찍어낸 사실감 안에는 어떤 진정성이 미덕이 읽히질 않는다. 중간 중간 천연덕스럽게 유머로 몰고 가는 장면들은 아찔한 절망감을 준다. 그 시도에 박수를 보내고 싶던 마음은 휘발성 짙은 유머에 묻힌다.
<여고괴담>시리즈가 공포물의 틀을 빌려 학교라는 공간을 탐색하고 그 안의 모순과 아이들의 진심어린 기도를 담아냈다면 <두사부일체>는 조폭 코메디라는 어정쩡한 장르안에서 학교라는 공간을 슬며시 불러들일 뿐이다. 그냥 조폭 코메디가 아니라고 젠 체하지만 반성하는 척,아닌 척 하는 자기애에 갇힌 평범할 영화일뿐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그림자도 밟지 못할 신성한 영역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과정을 지배하는 곳임은 틀림없다. 그 과정에 발을 들인 이 영화는 산발적인 발자국으로 기억을 할퀸다.
닫힌 교문을 열고,닫힌 마음을 열고 관객의 진심에 다가서기에 <두사부일체>는 너무 많이 나아갔고 어느 순간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갔다.
신나게 웃고,찰나의 찌릿한 무언가를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를 권하겠다.
단지 웃음뿐만 있는 영화가 아니라고 자랑한다면 틀린 말이라고는 못하겠다.
그러나,솔직해지길. 결국은 학력과 폭력위주의 이 사회를 뜯어 고치긴 힘들다는 당신들의 빠르고 손쉬운 결말에,그 담백한 포기에 어떤 이들이 느낄 분노가 두려웠다고.
그 분노에 맞설 용기가 없어 그저 웃자고 말하고 끝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