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신화를 낳았던 한국 경제가 침체되어 가는 것을 사람들이 걱정하며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월드컵 4강의 업적을 이룬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약체 팀에게도 지는 침체를 보고사람들은 걱정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회복되어 다시 힘찬 응원의 소리를 지르기를 모든 국민은 원합니다. 나라의 경기나 운동만이 아니라 개인의 삶 속에서도 때로는 침체기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건강을 자랑하던 분이 건강을 잃고 시름시름하는 것을 보기도 하며 세상적으로 잘 풀리며 원하는 대로 뻗어 나가던 사람이 한 번 넘어지고 난 뒤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믿음이 좋은 분 들 가운데서도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침체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한 때는 신앙 안에서 힘차게 살던 사람이었는데 삶의 의욕마저 잃고 낙심하여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한 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바라보는 자로서도 힘이 듭니다.
저는 그러한 분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기도 합니다. 왜 믿음이 좋던 분들 가운데 낙심하는 분들이 있을까? 그러면 이전에 그들의 믿음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누구나 다 그러한 상황이 되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한 번 낙심한 사람을 다시 회복될 수 없는 것일까? 회복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문제가 세상에 있다면 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해답을 줍니다.
저는 신앙의 침체와 회복에 대한 해답을 엘리야에게서 찾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엘리야의 영적인 침체와 회복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멜산에서 기도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를 물리친 기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차라리 죽기를 원할 정도로 침체되었습니다. 그는 홀로 앉아서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탄식을 하였습니다. 이제 지쳤으니 자신을 죽여 달라는 것입니다.
(왕상 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열왕기상 18장과 19장을 읽다보면 너무나 다른 분위기를 느끼게 됩니다. 화창하던 날씨가 갑자기 먹구름으로 가득 찬 분위기입니다. 높은 산으로 신나게 걷다가 갑자기 낭떠러지에 떨어진 것과 같은 분위기입니다. 엘리야의 모습에서는 밝고 힘찬 모습은 사라지고 어둡고 무거운 모습만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무엇보다도 먼저 깨닫고 인정하여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람도 침체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항상 생기가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침체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라고 항상 신나게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침체기에 빠질 수도 잇습니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도 낙심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쓰임을 받던 삼손이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침체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였던 다윗마저도 영적으로 타락하고 침체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시 51: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하나님의 사람 바울도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가 생각하는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들도 대부분 신앙의 침체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침체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나 마지막에 승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삼손이나 다윗은 승리함으로 인생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본문도 결국 엘리야의 회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엘리야와 같이 마음이 지쳐있고 낙심한 상태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신앙이 침체된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영적인 침체를 극복하고 다시 승리의 신앙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엘리야의 체험은 우리에게 귀한 영적인 교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성령님께서 우리 부광 교회성도들 특히 영적으로 조금 침체된 분들과 우리 주변의 낙심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하면 침체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침체를 극복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굴에서 나와서 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굴에서 산으로) 침체된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처음으로 명하신 것은 굴에 머물러 있는 엘리야에게 굴에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굴 안에서 주저앉아 있던 엘리야에게 밖으로 나가서 산에 서라고 하였습니다. 앉지 말고 서라고 하셨습니다.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굴의 의미) 사람은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중요합니다. 굴은 죽은 시체를 넣는 곳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어두운 곳에 있으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점점 더 힘들어 집니다. 밝은 색으로 칠한 집에 사는 사람들과 어두운 색으로 칠한 집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다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어두운 환경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은 사람을 보게 됩니다. 어두움 속에 있으면 마음이 점점 침체되고 결국 죽고 싶어지게 마련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합니까?
(산의 의미) 하나님은 밖으로 나가서 산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산에 가서 서라고 하셨습니다. 산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산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었으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곳이었습니다. 산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며 힘들고 어려울 때 일수록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힘을 다하여야 합니다. 산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며 영적인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습니다. 지치고 힘이 들수록 도리어 영적인 휴식을 가져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갔으며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힘들고 지칠 때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셨습니다. 영적인 회복은 산에서 얻으신 것입니다.
(산에서 무엇을 합니까?)
1.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산에 올라가서 기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침체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침체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기도를 하지 못해서 병드는 경우는 많습니다.
2. 산에 올라가서 말씀을 듣습니다. 성산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는 곳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곳에 올라가서 말씀을 받았고 들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산에서 말씀을 주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사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 들 것이라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그러면 우리가 올라가야 할 산은 어느 산입니까? 계룡산도 아니고 철마산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집 안에 있지 말고 성전으로 와야 합니다. 집에서 쉰다고 심령이 회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전을 찾아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할 때에 회복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문제로 가득 차고 걱정으로 가득 찬 굴속에 머물면서 점점 더 낙심해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제 우리가 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여야 합니다.
“굴속에 있지 말고 산에 서 있으라”고 전하여야 합니다.
거룩한 성산 부광 교회로 와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기돟여야 합니다. 문제가 많은 세상에서 문제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의 도움이 되시며 피난처가 되시며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시 121:1 (성전으로 올라가는 노래)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이 시편은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성전에 도움을 구하러 가면서 산으로 간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성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수록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또한 믿음의 주여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먼저 우리가 어두움의 굴에서 벗어나서 빛으로 충만한 성전으로 나아야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어야 합니다. 부광산으로 사람들이 몰려야 합니다.
둘째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산을 오르는 목적) 무조건 산에 올라간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영적인 침체를 극복하려면 교회를 다니는 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엘리야의 문제가 해결되고 마지막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등산을 하다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한 사람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정상을 밟는 것이 목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한 사람은 산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올라가면서 꽃을 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산을 마음껏 누리고 돌아옵니다. 거룩한 성산인 교회에 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것입니다.
(어떠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를 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으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남으로 힘을 얻었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의 약함과 부족을 책망하거나 비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다메섹에서 바울을 만나신 주님은 비난하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를 만나주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책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책망하시지 않으시고 격려하시고 다시 일을 하라고 권면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다시 불러서 세우시고 사용하십니다.
조금만 돈이 있어도 물건을 쓰다가 낡아지면 버리는 것이 사람인데 하나님은 다시 주어서 구치고 새롭게 만들어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주님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을지라도 용서하시고 다시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더러우면 씻어서 사용하시고 안되면 녹여서 다시 만들어 사용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주변에 어떠한 낙심자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스스로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다시 부르십니다. 타락한 여인 고멜을 끊임없이 사랑한 아모스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놀라운 것입니다.
이러한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다시 신앙이 회복됩니다. 주저앉고 낙심했던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나를 다시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요?) 엘리야는 이러한 좋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어떻게 만났을까요? 어떻게 하면 좋으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명확한 해답을 주십니다. 산에 서 있던 엘리야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지진도 있었습니다. 불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분명하지만 하나님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만난 것은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세미한 소리의 의미)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세미한 소리가 아니라 내용입니다. 애매한 환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체적인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늘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려면 교회 안에서 이상한 현상을 추구할 것이 아닙니다.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떠한 교회는 이상한 현상을 보여 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상한 현상을 보고 놀라는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하여 주시는 위로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전을 찾아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힘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회복에 필요한 것은 말씀의 능력입니다. 떡을 먹어야 힘이 납니다. 목회자로서 항상 거룩한 부담감을 가지고 삽니다. 어떻게 하면 저희 교회를 찾는 성도들에게 위로와 회복의 말씀을 줄 수 있을까를 기도합니다. 삶 속에서 지친 성도들에게 힘이 되는 말씀을 주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곳에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 속에서 살아계신 좋으신 하나님을 만나야 힘을 얻고 세상에서 이기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로, 나 혼자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방법 가운데 하나는 바로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힘이 들고 지친 이유 중 하나가 “나만 홀로 남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함께 함의 중요성) 사람이 길을 걸어도 혼자 걸으면 쉽게 지칩니다. 함께 걸으면 힘이 납니다. 러닝머신을 집에 사 놓고 오래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혼자 뛰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헬스 센터에 가서 뛰면 여러 사람이 함께 뛰기 때문에 오래 달릴 수 있습니다. 혼자는 쉽게 침체됩니다. 함께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칠천 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나와 같은 자가 7천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치루어도 7천명이 함께 치루면 걱정이 없습니다. 벌도 함께 받으면 재미납니다. 창문 밖에서 의자를 들고 서 있는 기억이 있습니까? 자신이 벌을 받으면서도 상대방을 바라보면 웃음이 납니다.
많은 사람의 침체의 이유를 살펴보면 그 근본에는 “자기 혼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나와 같은 이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승리로 함께 하는 사람들)
그런데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깊게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나와 같은 7천명이 사람들이 어떠한 사람들인가라는 사실입니다. 같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바알 앞에 무릎을 꿇지 않고 입을 맞추지 않은 칠천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은 역경을 이기며 극복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보다 더욱 큰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굳건히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패배하여 도망하는 무리일지라도 함께 후퇴하면 힘이 되는데 오늘 본문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살아있는 물고기가 떼를 이루고 있음을 보라는 것입니다. 자신과 같은 환경에서도 이기는 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개척을 하면서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려웠지만 저보다 더 어려우면서도 더 수수하고 밝은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목사님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을 볼 때 마다 힘이 솟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나 만이 아님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그 길을 승리하며 걸었고 이제 우리가 승리하며 걸어야 하며 우리의 후배들에게 길을 닦아 놓아야 합니다. 조금만 눈을 들어 옆을 바라보면 나보다 더욱 힘이 들지만 낙심하지 않으면서 소망 가운데 찬송을 하면서 살아가는 분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단이 짓누르려고 왔다가 찬송을 듣고 도망하는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환한 빛이 납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당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아니라 이기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아직도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능력의 사람 엘리야가 낙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명감이었습니다. 아직도 주님 안에서 자신이 할 일이 남아 있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사명이 힘이 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바로 사명감입니다. 자신에게 아직도 할 일이 있으면 죽지 못합니다. 어린 손자 때문에 죽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몸이 아프면서도 아이들의 밥을 짓기 위하여 일어나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사명감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사명감을 주셨습니다.
(사명을 받으라) 침체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휴가를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주저앉은 엘리야에게 사명의 말씀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사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쉼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더 많은 일을 맡기시는 분이십니다. 침체를 극복하려면 사명을 깨닫고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일을 하면 지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힘이 생깁니다. 우유를 배달받아 먹는 사람과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건강하겠습니까?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유를 먹으며 배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전하는 사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힘이 들어도 사명을 감당하며 다른 힘이 생깁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성전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그러면 도리어 힘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명을 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을 세워 아람왕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를 이어갈 엘리사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를 대신할 선지자를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의무를 다하고 다음 세대를 잇고 끝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에게 맡기어진 일은 모두 마쳐야 합니다. 왕을 세워야 합니다. 후대를 세워야 합니다.
(나의 사명을 발견하였는가?)
그러면 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지금 나의 상황을 볼 것이 아니라 나의 추구할 목적과 사명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어느 누가 가졌던 사명보다 귀한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한 나라의 왕을 세우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를 세우는 일입니다. 이 땅에 아람의 국가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입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게 하는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모세는 100세가 넘어서도 지친 몸을 이끌고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특히 다음 세대에게 물려 줄 귀한 교회를 세울 때가지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합니다.
침체된 엘리야를 세우시고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지금은 낙심하여 있거나 침체되어 있는 성도들을 일으켜 놀라운 일을 이루심으로 영광을 받으실 줄 믿습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침체된 엘리야를 찾아가서 세미한 하나님의 소리를 전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