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건국 왕들의 선계(先系)
김성문
가야 건국 왕들은 김해 구지봉 하늘에서 내려온 알에서 태어났다. 이는 『삼국유사』 가야 건국 신화 속의 내용이다. 신화는 주인공을 신성시하기 위해 꾸며진 이야기이다. 사람은 알에서 태어 날 수 없다. 가야 건국 왕들의 선계가 궁금하다.
가야 건국 왕들은 대륙에서 온 유이민(流移民)인지, 가야 지역 9간들과 같이 생활한 토착민인지에 대한 견해는 유이민으로 보는 설이 지배적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건국 시조들은 유이민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가야 건국 왕들이 유이민임을 가정해 볼 수 있는 근거는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나온 유물들로 유추해 볼 수 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경성대학교 박물관에서 서기 1990년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발굴하였다. 이 고분군에서는 3~6세기에 해당하는 유구와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이는 이 지역에서 꽃을 피운 가야(加耶)의 옛터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 때문에 가야의 국가적인 성장 과정이나 그 특성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면, 동북아시아 기마민족이 사용하던 호랑이 모양 허리띠 고리와 청동으로 만든 솥인 동복(銅鍑), 중국제 거울, 마구, 청동 그릇, 여러 가지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허리띠 고리는 유라시아 대륙 초원에서 말을 달리던 고대 기마민족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동복은 김해 대성동 제29호, 제47호 무덤 등에서 출토되었다. 일반적으로 동복은 유라시아 북방 초원지대에서 제작하여 사용된 금속제 그릇의 일종이다. 동복은 스키타이계 유목민 문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중국 북부에서는 서주(西周)시대 말에서 춘추(春秋)시대 초에 걸쳐 출현하며 육조(六朝)시대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대성동 고분에서 출토된 동복은 스키타이형에서 분파된 오르도스(Ordos)형이다. 이는 내몽골의 오르도스 지방과 외 몽골의 노인울라(Noin-Ula)에 있는 흉노의 왕후 묘, 중국 동북 등지에서 발견되는 동복과 같은 것이었다.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발견된 순장 제도는 유라시아 초원의 스키타이와 흉노를 비롯하여 트라키아, 거란, 몽고 등에서의 장례 문화이다. 이처럼 동북아시아 기마 유목 민족이 사용하던 유물과 순장 제도 등으로 보아 북방계 주민이 직접 김해 지역으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한다. 알에서 나온 가야 건국 왕들은 동북아시아 기마 유목 민족이거나 왕족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야를 건국한 왕들은 해당 지역 토착민을 정복했을 것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가야의 지배 세력은 일본까지 진출하여 대화(大和, 야마토) 왕국을 건설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건국 왕들은 철기 문화의 꽃을 피운 것으로 보아 야금술에 능한 강력한 기마군단일 것이라는 가정을 해 볼 수가 있다.
가야의 후예는 김씨 성을 사용하고 있다. 『삼국사기』 제41권 김유신 상편에 보면, 가야의 자손들은 서로 이어져 9세손 김구해(金仇亥)가 가야 제10대 양왕에 이르렀다. 김유신에게 증조할아버지가 된다.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의 후예이므로 성을 금(金)으로 한다고 하였다. 김유신비(金庾信碑)에도 헌원(軒轅)의 후예요, 소호(少昊)의 자손이라 했다. 곧 남가야의 시조 수로는 신라와 더불어 같은 성이라고 했다.
김해김씨 안경공파 족보에는 김수로왕 선계를 기원전 4257년경 중국 유소씨(有巢氏)를 1세로 하고 있다. 6세인 소호금천씨(少昊金天氏)를 이은 56세 휴저왕(休屠王)은 두 아들이 있었다. 장남은 일제(日磾)이고, 차남은 윤(倫)이다. 차남 윤의 뒤를 이은 61세 융(融)의 아들이 김수로왕이다.
휴저왕은 흉노 제국의 번왕이었다. 흉노에는 제후 겸 장군인 다섯 번왕이 있었다. 흉노는 황제를 선우라 했다. 이치사 선우(伊稚斜 單于)는 번왕인 휴저왕과 혼야왕이 한(漢)나라와 전쟁에서 계속 패하자 사형으로 그 죄를 물으려 하였다. 혼야왕은 휴저왕을 설득하여 한나라에 투항하려 하였다. 휴저왕이 결정을 못 하자, 살해하고 한나라 장수 곽거병에게 투항하였다. 휴저왕은 혼야왕에게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한나라 군사와 맞서 싸우다가 전사했다고도 한다.
휴저왕의 왕비인 알지(閼氏)와 두 아들은 한나라에 포로로 잡혀갔다. 나중에 두 아들은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 큰 벼슬에 올랐다. 태자 일제는 투후(秺侯)에, 차남 윤이 일찍 죽자 아들 안상이 도성후(都成侯)에 봉해졌다. 한나라 제7대 무제(武帝)는 흉노가 금으로 만든 사람으로 하늘에 제사 지낸 것을 알았다. 무제는 곽거병이 빼앗은 금으로 만든 사람 모형인 금인(金人)을 일제에게 돌려주고 금(金)씨 성을 하사했다. 일제는 기원전 134년에 출생하여 기원전 86년까지 살았다.
가야 건국의 왕들은 가야 고분에서 출토한 유물로 보아 동북아시아 기마 유목 민족의 후예로 추측한다. 그들의 선계는 중국의 황제 훤원과 소호금천씨의 후예이다. 성(姓)은 일제가 최초로 금(金)씨로 하사받았으나, 김(金)씨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김씨는 가야 건국의 왕들과 신라의 김알지 후예들로 대성(大姓)을 이루고 있다.
첫댓글 건국 왕들의선계가 아주 흥미롭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조 선생님! 사람은 알에서 태어날 수 없는데.
믿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니, ㅎ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