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한 기도
2024년 3월 3주
다날
키 작은 위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나폴레옹은 실제로는 보통 프랑스사람보다 컸다고 하는데, 체격 좋은 근위병에 둘러싸여 있어서 작게 보였을 뿐이라고 합니다. 절대적 빈곤의 시대를 지나 지금 상대적 빈곤의 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옛사람들이 위를 보지 말고, 아래를 보고 살아라 했다.”라는 말씀을 가끔 하셨지만, 위도 아래도 옆도 아닌 ‘나, 자신’을 직시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배낭도 두 벌 옷도 신이나 지팡이를 갖지 않아도 마땅하게’(마 10:10)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을 직시하며 그에 걸맞은 당당한 삶을 살게 해주십시오.
부날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라는 말씀을 다시 새깁니다. 감사하는 마음, 믿는 마음, 너그러운 마음, 여유로운 마음, 공감하는 마음, 좋게 보아주는 마음, 처음과 끝이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에 슬며시 자리잡는 의심, 원망하는 마음, 소심, 교만한 마음, 흔들리는 마음의 꼬투리가 조금씩 파고들어 주객이 뒤바뀌는 경험을 많이 합니다. 하긴 ‘열 사람이 지켜도 한 도둑을 못 막는다.’라는 말도 있으니, 그래서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더욱 우리 마음을 굳게 지키고 다지며 살게 해주십시오.
무날
“나란히 걷는 것은/ 아주 섬세한 행위랍니다/ 너무 앞서지도 너무 뒤서지도 않게/ 거리와 보폭을 조절해야 하지요”(나희덕, ‘산책은 길어지고’ 중에서). 앞뒤로 걸으며 앞사람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뒷사람은 열등하게 보는 세상에서 ‘더디어도 함께 가자’라는 말이 주는 울림이 큽니다. 손에 손잡고 나란히 걷기 위해선 섬세한 배려, 정밀한 조절, 절제와 분발의 조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주님, 나란히 걷는 가족, 특히 나란히 걷는 부부가 되게, 그렇게 되기 위해 섬세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남날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들어가지는 못하리라’”(신 32:49~52)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난 후, 모세의 마음은 ‘내가 이끌었지만, 영광은 너희가 누려라’였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세상으로 꿈을 펼쳐가는 아들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그럴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너희가 사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든 것, 우리가 살았음으로써 너희가 조금 더 행복하다면 나는 성공한 삶이다’(랠프 월도 에머슨의 ‘무엇이 성공인가’를 변형함)라는 마음으로 아들들의 영광을 더하는 기도를 하게 해주십시오.
쇠날
‘내가 우매 무지함으로 주 앞에 짐승이어서’(시 73:22), 저의 앞에 ‘두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신 30:15) 중에서 사망과 화를 움켜쥐었으나,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시 73:24)하시고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신 29:4)를 주셔서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신 33:19)하게,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신 28:1, 6) 하셨습니다. 이제로부터 남은 날까지 감사하고 보답하며 살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