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구경하러 나온 아들과 아버지. 휠체어에 타고 있는 아들 뒤에 서 있는 아버지는 많이 헬쓱해 보인다.
많은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제 2의 도시 부산. 그 발전에 비례해 더 이상 반짝이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 별이 없네?"
"....모두 소풍을 갔나보구나.."
누가 들으면 '별이 어떻게 소풍을 가?'라며 코방귀 뀌겠지만 아직 어린 아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별들이 소풍을 떠나고 외톨이가 된 달만이 떠있는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 아빠! 저기 별이 떨어진다!!!"
곱고 가느다란 손. 힘없어 보이는 손을 하늘 위로 쭉 뻗으며 외치는 아들.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따라 별이 떨어진다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저건 유성이란다. 지구를 구경하고픈 별들이 참지 못하고 놀러 오는 거란다."
아버지는 아픈 아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쇠한 몸에서 나오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동화 들려주듯 말했다.
"아빠!"
"응?"
"유성이란 별이 이 병원으로 놀러 오려나봐."
"응?"
가냘퍼 보이는 아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던 아버지는 아들의 말에 다시 한번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슨....!!!"
떨어지는 유성이라고만 생각했던 별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떨어졌다. 폭죽 터지듯...
그리고....
그 중 하나의 별이 이 쪽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아버지는 무의식 중에 본능적으로 휠체어에 탄 아들을 감싸안았다.
번쩍!!!!
새하얀 빛이 병원을 감싸며 하늘을 밝히려 애썼지만 역부족이었는지 곧 가라앉았다.
오랜 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아버지는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아빠...콜록...숨..콜록...막혀.."
"응?"
아버지는 아들을 꼭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아들을 너무 꽉 감싸고 있었다.
아버지는 얼른 아들과 떨어지며 아들에게 숨돌릴 틈을 주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잖아? 환각인가?'
자신들을 향해 아니, 정확히 말해 병원을 향해 달려오던 환한 빛을 내던 물체는 어느새 사라지고 하늘을 보아도 아까 전 보았던 빛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없었다.
처음과 같이 검은 바다에 혼자 남은 외톨이, 달 외에는....
2003년 4월 4일. am. 7:00
따르르르르르르르르릉!!!!
"아음~"
소녀의 방치고는 꽤 심플한 방.
가을의 드높은 하늘을 연상케 하는 벽지로 사방을 꾸며 시원시원한 분위기를 연상케 해주고.
한 쪽에 자리한 책상과 그 위에 널려있는 교과서들은 이 방을 쓰는 학생이 모범적이란 걸 말해준다.
오른쪽에 있는 침대. 아주 평범하고 심플한 침대였지만 가운데가 볼록 솟아올라있다.
"현성아! 학교가야지!!!!!!"
"으으음..........."
"벌써 8시야!"
벌떡!
8시라는 소리에 침대의 볼록 솟아있던 산이 부스러지며 부스스한 소녀 한 명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침대 옆 탁상 위에 있는 알람시계를 쳐다보았다. 눈꼽과 하품으로 인한 눈물로 시야가 가려 안 보이는지 눈을 한 번 비비고는 다시 한번 알람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7시........10분?"
'윽! 또 속았다.'
내 이름은 이현성. 남자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위의 상황을 보았다시피 난 어엿한 숙녀이다. 이현성(李晛星). '환한 별'이란 뜻이다. 병원에 의문의 빛이 떨어지는 순간 내가 세상을 보게되었다나? 그래서 현성(晛星)이라 지었다고 한다. 이름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냐고? 당연히 있다. 하지만 한 날 나의 이름에 대해 부모님께 불만을 토로하자 처음에는 '빛나는 별'이라는 뜻으로 이광성(李光星)이라 지으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 이름에 대해 거론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고입을 앞둔 중3.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하지만 세상에 발맞추어 가려고 노력하는 나는 학교에서 알아주는 '모범생'이다.
엄마는 나를 깨우기 위해 쓰는 법이 위에서 보았듯 저런 방법이다. 속으면서 또 속는 날 바보라고 할지도 모르나 잠결에 듣는 것이라 무심코 벌떡 일어나 버린다. 저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모범생'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일찍 등교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 '모범생' 노릇하기도 참 힘든 세상이다.
드르르르륵~
3학년 3반의 문이 열렸다. 그 곳으로 아주 단정한 옷차림과 용모를 가지고 '나 모범생이요!'하고 티내는 한 소녀가 교실로 들어섰다. 그녀는.... 이현성.
교실 내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들을 활짝 열고 현성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영어책을 꺼내어 펼쳤다.
"하아~"
현성의 한탄이 뒤섞인 한숨소리가 교실을 울리고는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
언제나 나는 교실에 첫 발을 내딛는다. 그 이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으련다.
과학의 발전으로 문명은 점차 세련되어졌으나 자연은 쓰레기통에 처박힌 이 세상.
주입식 교육으로 교육열을 불태우는 대한민국. 이 곳에서 살아가려면 공부밖에 없다.
하지만 난 실제 '모범생'이 아니다. '척'하는 거지...
부산 해운대구에서 알아준다는 사립중학교, 청운중학교. 검은색 일색의 교복. 하루하루 닮은 생활을 하면서 삶에 무료함을 느낀다. 하지만 죽을 생각은 없다. 한번 주어진 인생, 헛되이 죽는다는 것은 손해니까.
가방을 뒤적였다. 모범생인 척이라도 하려면 조금이라도 공부란 것을 해야된다. 공부를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책과 필기도구. 현재 나는 필기도구를 찾는 중이다.
"응?"
뒤적뒤적.
아무리 뒤적여도 필통이 보이지 않는다. 무수히 많은 펜, 샤프 외 학용품들이 들어있는 나의 필통.... 집에 놔두고 왔나 보다.
'아침부터 재수가 없군.'
모두는 나를 우아한 백조에 비유하지만-내 생각엔- 속으론 모든 청소년의 입에 착 달라붙어 있는 험한 말을 주저없이 쓰는 21세기 여느 청소년과 같다. 그 예로써 나는 '지랄'이란 단어를 너무 좋아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거의 쓰지 않지만 친근히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
"멍!"
"허어어억!"
어디서 개짖는 소리가?
나는 놀랜 가슴을 진정시키고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곧 나는 그 개소리를 낸 인물을 알 수 있었다.
"박성아!"
"쿡쿡! 표정 가관이다. 남학생이 네 이런 모습을 봤으면 뭐라고 할까?"
나의 'best friend'인 박성아. 나보다 키는 조금 작지만 주근깨가 살짝 낀 귀여운 소녀이다. 그래서 남학생들에게도 인기가 꽤 있다-청운중학교는 남녀공학이다-.
"청운의 청순가련하시고 언제나 모범만을 보이시어 모든 남학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듬뿍 받는 청.운.백.조. 현.성.양.께서 공부하시다말고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시나?"
말을 해도 저렇게 재수없게...
"......."
묵묵부답. 입을 열면 청소년의 일상어가 튀어나올 것 같아 침묵을 일관했다.
'내 속을 아는 유일한 년. 아침부터 심장마비에 걸려 염라를 뵈러 갈 뻔했군. 오늘은 '머피의 법칙'이란 것이 나를 괴롭힐 것 같은... 불길해'
왁자지껄-
무료한 자습시간. 전형적인 모범생인 나는 자습시간에도 열심히 공부하는 '척'하고 있다. 하... 왜 자습시간이란 걸 만들어서는... 차라리 일찍 수업하고 일찍 마치지...
생각은 여느 학생과 비견해도 못지 않을 건전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쿠당당당당! 드르르륵~
삼삼오오 모여 떠들어대는 아이들로 인해 시끄러운 교실로 누군가 급히 뛰어와 문을 세차게 열었다.
"야! 전학생이래! 그 것도 두 명씩이나! 쌍둥이라던데?"
이쯤되면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그 말을 한 이에게로 쏠리게 되고 사고가 그 쪽으로 돌아가며 무수히 많은 질문을 토하기 시작한다.
"남자야? 여자야?"
"둘 다 남자!"
이렇게 되면 환호하는 이들은 여학생들 뿐. 언제나 전학생은 화재거리가 되기 마련이다. '잘생겼니?', '공부는 잘하니?', '키는 크니?' 등 무수히 많은 질문들. 이 모든 것은 반에 꼭 한 명씩은 있는 정보통에게 쏟아진다.
'전학생이 무슨 대수라고.' 라는 사고를 이성적으로는 실행하고 있지만 내심 관심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단 그녀도 어엿한 사춘기 소녀이니까.
"선생님 오신다!"
...꼭 이런 일을 도맡아 하는 아이가 있다. 천성인 것처럼...
삽시간에 조용해지는 교실. 찰나의 시간, 눈 깜짝할 새 모두 조용히 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들어올 앞문을 주시했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 이 순간, 모든 이는 입안에는 고인 침조차 삼키지 않고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들어오는 선생님을 주시했다.
턱 턱 턱
교탁 앞으로 걸어가는 선생님. 교탁 앞에 서서 출석을 부르는 대신 교실을 쭉 둘러본다.
"오늘, 우리 반에 새로 전학을 온 두 명을 소개하겠다."
꿀꺽!
이제야 입안 가득 고여있던 침을 꿀꺽 삼키고 감지 않아 충혈 되어 버린 눈을 여러 번 깜박였다.
"들어오도록!"
모두의 시선은 문 쪽으로 향했다. 고요. 또 한번 선생님이 들어올 때와 같이 아니 더한 침묵이 교실을 엄습했다.
사락. 사락. 사락.
들어오는 두 사내. 그들의 걸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바람 스치는 소리가 났고, 그들의 걸음에 따라 교실 내 학생들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앞머리로 얼굴의 반은 가린 묘한 미(美)를 가진 사내. 전신이 붉은 듯한 착각을 심어주는 귀여운 사내.
검은색 교복과 묘하게 어울리는 두 사내가 선생님 옆에 나란히 섰다.
"류연, 뢰연 친구들에게 자기 소개를 하도록 해라."
"네."
선생님께 살짝 목례를 취한 류연이라 불린 사내는 시선을 다시 앞으로 향하고 교실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곤 몸을 45。 숙이면서 무엇이든 살살 녹일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청운중학교 3학년 2반에서 수업을 같이 하게 될 '비류연'이라고 합니다."
말을 끝냄과 동시에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여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따라 여기저기 눈에서 하트가 빙글빙글 도는 여학생이 여럿 생겼다.
"꺄아~"
급기야 소리 지르는 여학생까지...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청운중학교 3학년 2반에서 수업을 같이 하게 될 '비뢰연'이라고 합니다."
전 인사와 다를 바 없는 적색의 소년. 류연처럼 상큼한 미소를 짓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귀여움이 무표정과 묘하게 어울려 소녀들의 마음을 자극시켰다.
웅성웅성.
전학생의 인사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젠 내 스타일이야.', '너무 귀여워.', '완전 킹카야!', '저엔 내가 침 발랐어!' 등 많은 말이 여학생들 사이에서 오고갔다.
'흐음... 생각보다 아름다운 녀석들이군. 그런데 쌍둥이 맞아?'
현성이 느낀 첫 인상이었다.
예쁘다고 하지 않았다. 멋있다고 하지 않았다. 아름답다고 했다.
생긋-
'응? 저 애가 날 보고 웃은 것 같은데?'
저 상태로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앞머리가 얼굴 반까지 내려와 눈을 가리는 아름답고 준수한 사내가 나를 향해 웃음을 지은 듯 보였다.
'착각일까? 그런데... 왜 이렇게 얼굴이 달아오르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라 등에는 식은땀이 얼굴주위에는 열기가 일어났다.
'꼭...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친근히, 포근히 느껴지는...!'
현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또 한번 그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본 것이 분명할 진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황당했기 때문에...
'류연이라...'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와는 달리 류연이란 이름이 머리 속을 종횡무진하며 뇌를 뒤흔들었다.
"흐음... 2분단 맨 뒤 빈 두 자리에 앉도록."
미리 마련해놓은 듯한 자리.
"네"
동시에 대답한 류연과 뢰연은 선생님이 가리킨 자리로 향했다.
사뿐, 사뿐, 사뿐.
발에 날개라도 단 듯, 바닥에 솜이라도 깔린 듯... 두 사람의 걸음걸이는 처음과 같이 아무소리 없었다.
'류연....류연?.....흐음...왠지 모르게 처음이 아닌 듯한 이 이름은..... 절대 이런 이상한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으음........그런데 2분단 맨 뒷자리?......!!! 여자분단인데. 그 것도......내 뒷자리?'
류연이란 이름이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아 혹시나 만났던 적이 있었는가 기억 꾸러미를 하나하나 펼쳐보던 현성은 2분단 맨 뒷자리라는 말에 황급히 고개를 세차게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언제 앉았는지 생글거리고 있는 앞머리소년-이름을 부를만도 하건만-이 앉아있었다.
생긋-
류연의 미소. 가까이서 대하니 미소가 저 모습에 생각보다 어울려 묘한 미(美)를 뽐낸다고 생각했다.
"반가워. 난 비류연이라고 해."
처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수줍음이라곤 전혀 없는-보기에는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데-당당한 인사에 현성은 얼떨떨해져 잠시간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어.......나..난, 이현성이라고 해."
얼떨결에 자신을 소개한 현성. 그가 자신에게 악수를 청하자 얼떨결에 악수에 응해 주위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의 따끔한 시선이 그 한 자리로 모였다. 곧 폭발할 듯한 시선들...
생긋-
또 웃는다. 실없는 바보인지, 모종의 작업인지. 현성은 이 물음의 답을 찾을 새도 없이 반 친구들의 시선에 못 이겨 고개를 앞으로 돌려 푹 숙였다.
'시도 때도 없이 웃는군. 그런데... 정말 만난 적이 있던가?'
아까 다 하지 못한 기억꾸러미를 열며 이유 없는 포근함 같은 느낌의 근본을 찾으려 애쓰는 현성이었다.
첫댓글 재밌어요>ㅅ<!!! 담편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