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6월 26밤, 제6사단장은 춘천지역에서 선전하고 있는 제7연대(사단 좌 일선)와는 달리, 홍천 동북방에서 고전중인 제2연대(사단 우 일선)의 전황을 크게 우려한 나머지, 동 연대를 말고개 일대로 철수시켜 급편 방어진지를 구축하게 하는 한편, 춘천 지역에 위치한 사단예비인 제19연대를 홍천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
홍천으로 이동한 제19연대장은 대전차 특공대를 편성하여 말고개 일대에서 이를 운용하기로 결심했다.
연대장은 11명을 엄선하여 특공대를 편성하고는 이들에게 81밀리 박격포탄 1발, 화염병 1개, 수류탄 2발(연막탄 포함)씩을 휴대시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전차 공격요령을 교육시켰다.
헤치가 열려 있을 경우 : 수류탄과 화염병을 그 속에 투입
헤치가 닫혀 있을 경우 : 81밀리 박격포탄을 궤도 밑에 밀어 넣어 파괴
박격포탄이 불발일 경우 : 연막으로 시계를 차장하여 헤치의 개방을 강요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 : 화염병을 엔진실 상판 덮개 위에 투척
특공대는 27일 22:00, 폭우를 무릅쓰고 3/4톤 트럭에 탑승하여 연대 수색대장 인솔 하에 말고개에 도착했다. 수색대장은 그곳에 잔류하고 특공대는 적진지로 진입해 들어갔다. 약 1km 전진했을 무렵, 선두에 섰던 조달진 일병이 적의 전화선을 발견하고는 이를 돌로써 절단하는 순간에 기도가 폭로되어 적의 기습사격을 받고 특공대는 분산되고 말았다. 조일병 이하 5명이 얼마 후 합류하여 적 전차 집결지를 찾아 적진 속을 헤매다가, 끝내 발견하지 못하고 날이 샐 무렵 말고개로 복귀하여, 이곳에서 다행히도 잔여 대원 6명과 합류했다.
조일병은 말고개에 특공대를 배치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371고지 하단부의 S자 급경사 커브에 각 2명으로 구성된 6개 특공조를 30m간격으로 배치했다. 10:00경, 한계리 벌판 쪽에서 접근해오고 있는 10대의 적 전차를 발견하고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대기했다. 얼마 후 적 전차가 나타나는 순간, 먼저 제2연대 57 밀리 대전차포(사전에 협조)가 1번 전차를 사격하여 명중시키자, 모든 적 전차는 발악적인 사격을 가하면서 속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1번 전차가 마지막 매복조 앞을 통과하는 순간 조일병이 81밀리 박격포탄을 궤도 밑에 밀어 넣었으나 불발이었다. 바로 이때 제2연대 대전차포의 2, 3탄이 1번 전차에 다시 명중했다. 전차가 허둥지둥하자 당황한 승무원이 헤치를 열고 고개를 내미는 순간 조일병이 신속히 전차에 뛰어올라 수류탄과 화염병을 헤치 안으로 집어넣었다. 요란한 폭음과 함께 전차는 파괴되었다. 한편 중간 특공조는 연막 수류탄을 터트려 전차의 시계를 차장했다. 시계의 차장으로 더 이상의 기동을 포기한 승문원이 모두 하차하여 371고지 쪽으로 도주를 시도했으나 이들은 모두 아 제2연대의 방어진지에서 사살되었다.
이 전투에서 적 전차 파괴 4대, 노획 6대, 적 사살 24명이란 큰 전과를 올린 특공대원 모두 2계급 내지 1계급씩의 특진과 함께 훈장을 받았다.(참고 : 초기 적 전차 파괴 사례)
4. 교훈
특공대장의 임명과 책임이 불명확하다. 수색대장의 책임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일등병을 특공대장으로 임명한 것도 부적절하다.
조 일병의 용기와 과단성있는 지휘는 훌륭했다. 전차 공격에 알맞은 지형을 이용했고, 특히 전차 공격방법이 적절했다.
적진 속에서 돌로써 유선을 절단한 행동과, 박격포탄의 폭발원리를 모르고 사용한 것은 잘못이었다.
※ 이는 제19연대가 평소 대전차육탄공격훈련을 해 온 결과로 분석됨. 이후에도 제19연대는 대전차공격에서 많은 전과를 올리게 됨.지연작전간 제6사단이 문경부근에서 적 전차 매복습격작전
보충:말고개의 육탄 11용사(기본정훈교재 제6과 참군인의 길)
북한의 남침 공격 4일째인 1950년 6월28일, 춘천으로 침략한 북한군 제7사단의 주력은 전차를 앞세우고 홍천을 공격해 왔다. 이때 국군 제6사단 19연대는 적 전차를 저지·격멸하기 위해 특공대를 편성했다. 30여 명이 자원했으나 육탄공격할 특공대로 선발된 인원은 조달진 일등병을 비롯, 원근호·양학모·지용철·조문종 등 11명이었다. 특공대원들은 적 전차의 장단점, 파괴 요령 등을 교육받고 각자 81㎜ 박격포탄 1발과 수류탄 2발씩을 지급받았다.
조달진 일등병은 선두 전차를 막기 위해 굽은 도로의 배수로에 누워 적 전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대원들도 20m 간격으로 배수로 근처에 눕거나 도로변 숲 속에 은폐해 있었다. 얼마 후 적의 선두 전차가 다가왔다. 이때 아군이 쏜 57㎜ 대전차 포탄이 적 전차를 명중시켰지만 잠시 멈칫했을 뿐 포와 기관총을 난사하며 질주해 왔다.
이를 본 조일등병은 공포를 느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육탄공격 태세를 갖췄다. 드디어 눈앞에 커브길을 돌면서 서행하는 전차가 나타났다. 순간 조일등병은 81㎜ 박격포탄을 적 전차의 궤도 밑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나 불발이었다. 이에 조일등병은 적 전차의 후미로 올라가 수류탄 2발을 전차 속으로 집어넣은 다음 벼랑으로 굴렀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선두 전차는 화염에 휩싸였고 동료들이 파괴한 마지막 전차 사이에 낀 7대의 전차는 진퇴양난에 빠져 전차병들은 전차에서 내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때 특공대원들은 일제히 도망가는 적을 모두 사살하고 남은 전차 7대를 포획하는 대전과를 올렸다.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진충보국(盡忠報國)의 육탄전을 수행한 조일등병 등 11용사의 장거는 국군의 전사(戰史)와 함께 찬란히 빛나고 있으며 지금까지 우리 장병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