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장마는 조도가 낮은 푸르뎅뎅한 실내의 조명처럼 어둡고 칙칙하다.
한 반도의 기후가 아열대로 바뀌고 어쩌고 하던 기상학자들의 TV인터뷰 내용을 상기 할 때 이제 이 땅에서 장마는 국어사전속에서나 존재하는 단어의 의미로만 기억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생각을 비웃기나 하듯 연이틀 하늘은 장대비를 쏟아 부었다.
일요일 아침 동신교 천변 주차장은 휴일이 갖는 느긋함에 언제나 여유롭다.
도심에서 전쟁이라고 까지 일컫는 주차난을 겪어본 사람들은 이토록 한적한 무료 주차장이 이런 곳에 마련돼 있다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안다. 전날 내린 호우로 신천은 뿌연 탁류가 흘렀다.
불어난 물에 유속이 빨라져 고여 썩어가던 오물들을 다 씻어낸 듯 그 고질적이던 악취도 말끔히 사라져 옷깃을 헤집는 여름날 아침 미풍이 더없이 시원하고 상쾌하다.
7시15분. 집결지를 출발한 우리는 북대구 IC를 통해 경부고속도로에 차를 올렸다. 콘크리트 도로가 내뱉는 타이어의 마찰음이 아프다고 내지르는 비명처럼 들린다. 구미를 지날 즈음 핸들을 쥐고 있는 내 시선은 온통 왼쪽으로 쏠렸다. 주변의 산세에 비해 도드라진 금오산의 검고 육중한 허리를 명주 천 같은 흰 운해가 감싸고 있었다. 대구를 출발할 때 머리를 찍어 누르듯 내려앉았던 두터운 회색구름이 어느 틈에 갈라져 순식간에 흩어지고 한동한 상실했던 파란 하늘이 허공을 장악했다. 지난 금요일 포항의 모 선배로 부터 받은 전화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날씨다. 그 선배는 산행지를 내연산
이 아닌 대야산으로 선택한 것에 대한 불만으로 대야산에 가면 세숫대야로 퍼부듯이 비가 올 거라며 악담?을 했었다. 금오산쪽으로 계속 곁눈질을 하면서 사진을 찍고 갈까 말까 하고 망설이는 중에 길용이로부터 전화가 옸다. "저 길용인데요 늦잠을 잤어..." 흐려지는 말꼬리에서 출세한 인생들을 벤치마킹 하려는 원대한 구상으로 밤잠을 설치고 새벽녘에야 잠들었다가 약속시간을 놓친 백수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이 땅의 수 많은 청년 실업자들이 치열한 세상의 벼랑 끝으로 내 몰려 어떻게든 바늘구멍같은 문을통해 취업 이라는 배에 승선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절박함으로 받는 중압감에 의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어쩌면 그들이 경쟁력으로 선택한 고학력이란 이력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선배들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어긴 무례함을 나무라려다 저도 견뎌야 할 그 무엇으로 힘들 것이며 또 산 선배이기에 앞서 인생 선배로써 아무런 도움도 되어 주지 못하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애당초 세상이란 대책 없는 빈 몸뚱이로 비벼대거나 맨손으로 조물닥 거릴 만큼 녹녹치가 않다. 거친 인생막장에서 무언가를 채굴해야하는 강박에 초조해 하며 수많은 시행착오와 후회로 얼룩진 삶의 모서리에 부딪쳐 멍들고 피 흘리면서 마치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걸음마를 배워 한 걸음 한 걸음 떼어가며 성장하듯이 조금씩 인생을 완성시켜 나가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돌이켜보면 방종했던 젊은 날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탕진한 대가로 오랜 세월을 빈곤이란 징벌에 시달려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 징벌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으며 아마 내 생의 마지막까지 동반해야할 가능성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고통에 찬 육신과 어처구니없는 근심으로 가득한 삶의 궤적, 그러나 이제 와서 어쩌랴 '인생은 돌아오지 않는 강'인 것을.
중부내륙의 선산 휴계소에 잠시 들려 커피한잔의 여유를 즐기기로 했다. 인산인해를 이룬 등산객들로 북적대는 자판기에서 겨우 커피를 뽑았다. 오전8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라 구석진 곳 마다 모여 아침을 먹거나 배식 순서를 기다리는 줄이 늘어섰다. 마치 전쟁 통의 피난 행렬이 연상 된다.
문경세제IC를 나와 가은 방향으로 길을 잡아 차를 몰고 나갔다.
실개천을 끼고 굽이도는 도로에는 지나는 차 한 대 보이지 않았다. 한적함이 지나쳐 고요하기까지 하다. 반짝이는 은빛 햇살은 잘게 부서져 물결 속으로 녹아들고 성하의 짙푸른 녹음은 바람결에 어깨춤을 춘다.
9시30분, 벌바위 마을 식당가에 겨우 주차를 했다. 대야산 주차장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만 야산을 하나 넘어가야 하는 거리에 있다. 등산이라는 인내 해야하는 고행을 자처하고서도 주차장거리가 조금만 멀어도 회피 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간사한 마음인가 보다.
언제나 이런 이중인격적인 비겁함에서 탈피해 선 굵은 인생의 길을 걷게 될지, 과연 그런 날이 오기는 할지 스스로도 한심스럽다.
주말에 내린 호우는 산의 골짜기 그 주름 사이마다 물길을 터놓은 듯하다. 대야산은 속리산의 명성에 가려 오랜 시간 그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해 오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인터넷으로 위치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관광버스 부대가 수송을 담당하고 난 뒤부터 순식간에 포화상태의 산이 되고 말았다. 나는 6년 전에 와이프와 딸을 데리고 한번 왔었는데 그때 딸내미 에게 너무 힘든 코스를 선택하는 바람에 죽도록 고생한 후유증으로 지금도 딸내미는 산이란 이야기만 나와도 기겁을 하며 손사래 질이다.
산행 들머리인 용추계곡은 물보라를 날리며 급류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잠시 구경을 하며 사진 몇 컷 찍고는 곧바로 줄지어 오르는 등산객들 속에 함께 섞였다. 키를 넘는 조릿대 사이로 난 등산로는 세찬 물살이 흐르는 계곡을 몇 번이나 이리저리 건너가며 이어졌다. 방수용 고어텍스 등산화를 신고 왔어야 했었다. 망사로 된 여름 등산화를 신은 탓에 발은 출발부터 물에 젖은 채였다. 30여분을 올라 도착한 월영대 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소맥으로 간단한 해장을 했다. 영동이는 간밤에 늦게까지 이어진 음주가무로 아침에도 술이 들깨 상태로 나왔었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귀청을 때리는 물소리에 머리가 얼얼할 때쯤 우리는 계곡길을 벗어나 밀재 방향으로 산길을 잡았다. 월영대 에서 밀재 까지의 오름길은 경사가 완만하여 힘들지 않고 쉽게 오를 수 있었다. 이정표에는 밀재 까지 100분 소요라고 적혀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걸리진 않았다. 밀재에서 간식으로 과일을 나누어 먹고 정상을 향해 출발하여 가팔라진 사면을 20여분 오르니 기암괴석의 전시장 같은 암릉에 올라설 수 있었다. 암릉에서의 조망은 아름다웠다. 속리산에서부터 희양산과 조령산, 그리고 주흘산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저만치 능선을 따라 정상을 향해 개미때처럼 줄지어 오르는 등산객들이 보였다. 저 기나긴 폭염의 능선을 오르며 그들이 얻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하고 갑자기 궁금증이 인다. 끝없이 되풀이 되는 우울하고 답답한 일상의 권태에서 허우적대다가 어디라도 뛰쳐나가지 않으면 머리가 온전히 남아 있을 것같지 않은 사
람들이 마땅하게 갈 곳을 못 찾고 방황하다가 모두 산으로 몰려드는 건 아닌지.
그리고 보면 지난 6월은 잠시나마 행복했다. 유일한 볼거리였던 월드컵 축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국민의 열화 같은 응원 속에서도 끝내 이루지 못한8강의 꿈으로 막을 내리니 7월에 접한 소식들은 다시 정치가의 비리나 어린이 성폭행 같은 우울모드로 돌아가고 말았다. 뭔가 숭배하기를 좋아하는 인습에 젖은 대중에게 오랜 시간 비워놓은 영웅의 부재는 혹세무민을 양산하고 불투명한 시야에 목적지를 잃은 대중들의 항해를 격랑 속에 떠돌게 했다. 그러하기에 잠시나마 희망을 향한 목표에 몰두할 수 있게 해주었던 축구는 난세의 대중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염원하던 그 '위대한 조타수'의 강림이었고 가슴 벅찬 열광의 대양으로 인도해준 거룩한 안내자 였다. 그러나 지금은 밀폐된 컨테이너 속 같이 숨 막히는 더위에 다 숭배하고 몰두할 대상마저 사라져 허탈해진 사람들은 데쳐진 시금치처럼 다시 생기를 잃어 버렸고 그 생기를 되찾으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산으로 몰려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숭배도, 경외할 그 무엇도 남지 않은 7월의 뙤약볕아래 거친 살갖 올올이 삼투하는 가학적이고도 성가신 더위를 벗하고 능선을 오른다. 산이 존재의 목적이던 시절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에 끊임없이 연루되고 싶어 하던 세상에서의 자기 증명은 생의 또 다른 조각을 이어가야하는 퍼즐게임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제야 나는 안다. 선택의 여지없는 거대한 일상의 손아귀에 사로잡혀 내면의 가파름에 늘 숨이 차던 삶. 진부한 그 삶에 찌던 가슴이 밭이랑 처럼 파 헤쳐 지는 날
졸린 눈으로 넘기던 지루한 책갈피를 덮듯 그 악착같은 생의 집착을 고스란히 접어둔 채 찾아온 산, 암릉의 능선은 폭염아래 침잠해 가고 이마를 스치는 젖은 바람에 더위는 더욱 명료하게 와 닿는다.
거대한 화강암 바위 위에 올라서서 나는 두 팔을 벌려본다.
시리도록 푸른 초록의 능선과
겹겹이 스러지는 젖은 골짜기의 연무,
울트라 마린의 하늘빛과
눈을 찌르는 황금햇살.
그 묵시적인 아름다운 자연의 품에서 실타래처럼 얼 켜 황폐해진 삶을 잠시나마 잊고
근원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끝없는 불안으로부터 나는 자유롭고 싶었다.
코끼리 바위를 지나 조망 좋은 어느 소나무 아래 앉아 점심을 먹었다. 건너편에 바라보이는 정상에
는 인기 연예인의 공연장처럼 사람이 들끓었다. 도저히 그곳 어디에도 엉덩이를 부칠만한 공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늘이라고 앉은 곳이 밥을 먹는 중에 땡볕이 되었다. 남은 소주 반병에 캔 맥주 한 통을 섞어 나눠 마셨는데 두주불사인 영동이가 술을 마다했다. 어제 밤에 너무 열심히 달렸었나 보다. 그래도 그는 땀에 젖어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을 하고서도 산행을 곧잘 했다.
외모와 달리 상당한 체력에 내심 혀를 내 둘렀다. 정상에는 두 팀이나 아이스크림을 팔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생활력이 놀랍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빈 몸으로도 못 올라와 중도포기자들이 속출하는 이 삼복더위에 저토록 크로 무거운 아이스크림 통을 지고 어떻게 올라왔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 이었다. 아래에서 오백원 짜리가 이천원 이라는 가격에도 비싸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폭염아래 세 시간 가까이 올라와 정상에서 만난 아이스크림 장수는 이제 여름산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또다른 풍경되어 내게 다가왔다.
인간에 의해 변화된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낮설지 않다. 캠핑장에서의 잠옷 패션은 유행의 첨단이 되고 산행 중 다리쉼은 휴대용 의자에 앉아야 한다. 자연 그대로인 나무 그루터기나 바윗돌에라도 퍼질러 앉으면 유행도 모르는 촌놈이 되어 주변의 뜨악한 시선을 감수해야 된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물건일 지라도 다른 사람이 가져 있으면 어떻게든 가져야만 마음이 편해 지는것도 물질신봉의 병폐적인 맹신에서 비롯된 부자작용의 일종 이기에 깨어진 거울 속에 비친 굴절된 모습처럼 자연과의 조화에 이질적이고 모순 적이다. 사람들은 물질문명의 공해에 찌든 심신을 달래려 자연을 찾지만 그 자연을 즐기기 위해 또다시 각종 문명의 도구를 동원해야 하는 웃지 못할 헤프닝을 자처한다. 그 뿐이랴, 각박한 세상살이에 상처 입은 마음의 공허는 매우지 못해도 식도락가의 소풍을 방불케 하는 풍족한 음식들로 위장만큼은 든든히 채우고 돌아온다. 알고 보면 우리 대부분은 고혈압이나 과체중의 환자들이다.
배타적 소유에 길들여진 타성에 스스로 자멸하여 결국 자연이 가진 보편적 친화력의 범주를 초월한 나머지 고단한 삶의 고행에서 돌아와 모태에 안기는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자연에서 얻기는 이제 영영 글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산 길은 요행을 기대하며 피아골을 선택 했지만 '약삭빠른 고양이 밤눈 어두운 '격이 되고 말았다.
밀재 방향의 완만한 등산로와는 달리 피아골은 바위로 이루어진 험한 길이다. 거의 매어놓은 밧줄에 의해 조심스레 발을 디뎌야 하는 상황인데도 전날의 호우 탓에 바위는 온통 물에 젖어 미끄러웠다.
밀재 방향의 군중을 피한다는 것이 줄을 서서 내내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하산길이 되고 말았다.
6년 전 딸내미를 데리고 올랐던 길인데 그때는 이렇게 험하고 먼 줄 몰랐다. 딸내미가 산에 넌더리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닌듯 싶었다.
기나긴 하산을 마치고 용추골에 다 달으니 계곡은 피서객들의 물놀이장으로 변해 있었다. 그제야 속이 풀린듯 영동이가 막걸리 한 병만 마시고 가자고 졸랐지만 돌아갈 길을 염려해서 애써 묵살하고 차를 돌렸다. 대신 우리는 아이스 바를 하나씩 입에 물고 졸~라 빨면서 돌아왔다. 입술이 얼얼했다.
~~~~~~~~~~~가은의 어느 마을을 지나며 바라본 희양산 ~~~~~~~~~~~~~~~~~~~~
급하게 리사이징 하느라 사진의 화벨이 엉망이구만. 조용한 날 사진 다시 정리 해서 올리도록 하고
오늘은 늦은 관계로 이만 총총...
첫댓글 멋진산을 다녀 오셨군요 부럽습니다 ^^다음번 꼭 저도 델고 가주세요~
선배님. 깊이 배려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여전히 배울게 많다는 것을 그날 아침에 다시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2000원짜리 하드가 참 맛나보이네요..수고하셨습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합니다! 같이 못하여 아쉽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