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차
부지런한 농부와 게으른 농부
옛날 조선 시대 성종 임금 때의 일이에요. 어느 마을에 부지런한 농부와 게으른 농부가 살았어요.
어느 해인가 가뭄이 오래도록 이어졌어요. 1월부터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지요. 논밭을[논바틀] 새로 갈아야 하는데 봄이 되어도 비는 소식이 없었어요.
“허허, 도대체 비가 언제 오려나. 비가 와야 논밭을 갈 텐데.”
게으른 농부는 자기 집 마루에 누워 하늘만 바라보며 투덜거렸어요. 이제나저제나 비가 내리기만을 기다렸지요. 하지만 이웃에 사는 부지런한 농부는 논밭에 나가 마른 땅을 갈았어요. 바싹 마른 땅을 갈자니, 힘이 몇 배나 더 들고 시간도 오래 걸렸어요.
부지런한 농부를 보고 게으른 농부가 물었어요.
① “어허, 뭐 하러 그리 힘들게 마른 땅을 가나?”
② “힘들어도 이렇게 땅을 갈아야 씨를 뿌리지 않겠나?”
① “비가 오면, 그때 갈아도 되잖나.”
② “언제 올지 모르는 비만 기다리다가는 땅을 갈 시기를 놓칠 걸세. 자네도 어서 땅을 갈게나.”
“난 자네처럼 사서 고생을 하기는 싫다네. 비가 오면 그때 갈겠네.”
게으른 농부는 코웃음을 쳤어요.
그 뒤로도 부지런한 농부는 몇 날 며칠을 땅만 갈았어요. 그러고는 땅에 씨앗을 뿌렸지요.
게으른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를 보고 끌끌 혀를 찼어요.
“쯧쯧, 미련한 사람 같으니. 비도 오지 않는데 씨를 뿌리면 어떡하나? 보나 마나 말라 죽을 텐데.”
“여보게 지금 씨를 뿌리지 않으면 나중에 비가 오더라도 거둘 곡식이 없을 걸세. 그러니 자네도 어서 씨를 뿌리게.”
이번에도 부지런한 농부는 게으른 농부에게 농사일을 하라고 말했어요.
“흥, 난 비가 오면 하겠네. 어차피 비가 오지 않으면 다 소용없는 일이라니까.”
게으른 농부는 이번에도 부지런한 농부의 말을 듣지 않았어요.
가뭄은 계속 되었어요. 부지런한 농부는 먼 계곡에 가서 물을 길어 와, 논과 밭에 뿌렸어요. 그리고 날마다 논밭에 나가 잡초를 뽑았어요. 비가 오지 않으니 잡초를 뽑는 일도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도 부지런한 농부는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했어요.
“허허, 참. 정말 바보 같은 사람이네. 그렇게 김을 매 봐야 비가 오지 않으면 곡식들이 다 말라 죽는다고. 이렇게 어리석은 친구를 보았나!”
게으른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를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③ “자네 말대로 비가 오지 않는다면, 김을 매고 가꾸어도 곡식이 죽고, 가꾸지 않아도 곡식이 죽을 걸세.”
부지런한 농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그러니 미련한 짓 그만두게!”
게으른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가 그제야 자기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아 기뻤어요.
④ “하지만 농부가 곡식이 죽어가는 걸 어찌 보고만 있겠나? 이렇게 하면 나중에 비가 왔을 때 곡식들이 조금이라도 살지 않겠나?”
부지런한 농부는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일을 했어요.
부지런한 농부의 아내도 남편을 따라 날마다 일을 하러 논밭에 나왔어요. 점심에는 남편과 먹을 밥을 지어 머리에 이고 날랐지요.
“정말 답답한 사람들이로구먼. 비도 오지 않는데 일을 해서 뭐 한다고, 차라리 나처럼 쉬면 몸이라도 편할 텐데.”
게으른 농부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마루에 누워 빈둥거리기만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기다리던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비가 내리자, 부지런한 농부가 정성껏 심은 곡식이 탐스럽게 자랐어요. 그러나 게으른 농부의 논과 밭에는 곡식은커녕 잡초만 무성했지요.
가을이 되자, 부지런한 농부는 곡식을 거두었어요. 그러나 게으른 농부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했어요.
추운 겨울이 왔어요. 게으른 농부는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며 지내야 했어요. 그 소식을 들은 부지런한 농부가 양식 자루를 들고 게으른 농부네 집을 찾아갔어요.
“내가 어찌 이것을 받을 수가 있겠나......”
게으른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가 준 곡식을 보고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먹을 것이 없어 식구들이 굶고 있지 않나. 어서 받게. 내년에 부지런히 일해서 갚으면 되지.”
부지런한 농부는 게으른 농부에게 양식을 건네주었어요.
“고맙네. 나도 내년에는 자네처럼 부지런히 일하겠네.”
게으른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의 손을 꼭 잡으며 다짐했어요.
다음 해, 게으른 농부도 부지런한 농부가 되어 열심히 일해서 농사를 아주 잘 지었답니다.
2주차
땅속에서 물을 찾는 지혜
옛날 고려의 뒤를 이어 새로운 나라 조선이 들어설 무렵에 있었던 일이에요. 고려의 왕을 따르던 신하 이첨은 임금님의 미움을 받아 먼 곳으로 귀양을 갔어요. 귀양이란 죄인을 먼 시골이나 섬으로 보내 그곳에서만 살게 하는 큰 벌을 말해요.
이첨은 힘든 귀양살이 중에도 선비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어요. 늘 첫닭이[첟딸기] 울기 전에 일어나 몸을 깨끗이[깨끄시] 씻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지요. 그런데 귀양살이 하는 이첨에게 아주 큰 문제가 생겼어요.
“이런! 또 물이 떨어졌구나.”
이첨이 지내던 작은 마을에는 물이 무척 귀했어요. 물을 구하려면 우물이 있는 이웃 마을까지 한참을 걸어가야만 했지요. 하지만 귀양살이 중에는 함부로 마을을 벗어날 수 없어서 이첨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지요.
“안 되겠군. 물을 찾아봐야지.”
이첨은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물이 나올 만한 곳을 찾았어요. 그런 이첨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 젊은이가 물었어요.
“선비님, 뭘 그리 열심히 찾고 계십니까? 잃어버리신 게 무엇입니까?”
“아, 땅속에 묻힌 보물을 찾고 있네.”
이첨의 말에 젊은이는 코웃음[코우슴]을 쳤어요.
① “에이, 이런 곳에 귀한 보물이 묻혀 있을 리 있겠습니까요?”
② “없으니 더 찾아야지! 난 보물보다 더 귀한 물을 찾고 있는 걸세.”
이첨이 마을에서 물을 찾으러 다닌다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은 이첨을 비웃었어요.
③ “우리가 여기서 수십 년을 살면서도 못 찾은 물을, 곱게 책만 끼고 사시던 양반이 무슨 수로 찾겠어?”
④ “두고 봐. 며칠만 지나면 스스로 그만두실 거야.”
얼마 뒤였어요. 이첨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기쁜 소리로 말했어요.
“여러분, 드디어 물을 찾았소!”
“진짜 물을 찾았다고요?”
“그렇소! 모두 나를 따라오시오.”
이첨의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사람들은 이첨을 따라 마을 뒤편에 있는 수풀로 갔어요. 이첨은 풀 틈에 있는 흙을[흘글] 한 움큼 움켜쥐고 말했어요.
② “흙이[흘기] 축축하게 젖은 걸 보니 이 아래 분명 물이 있소. 이곳을 파면 물이 나올 것이오!”
그러자 사람들은 좋아하기는커녕 오히려 화를 냈어요.
③ “우리더러 더러운 흙에서 나오는 물을 먹으란 말입니까?”
④ “그냥 옆 동네에서 물을 길어다 먹으면 될 것을 왜 고생을 사서 하신담.”
사람들은 실망해서 집으로 돌아갔어요.
“허허, 사람들도 참!”
하지만 이첨은 아랑곳하지 않고 팔을 걷어붙였어요.
그날부터 이첨은 샘을 파기 시작했어요. 지저분한 잡풀과 덩굴을 걷어내고 땅을 팠어요. 팔다리는 덩굴에 긁혀 피가 났고,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혔어요,
“이런, 그동안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았나 보군!”
상처가 나도 이첨은 샘을 파는 것을 멈추지 않았어요.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즐거웠거든요. 그렇게 한참을 파 내려가자 드디어 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물이다. 물!”
이첨은 땅을 더 깊숙이[깁쑤기] 파고 바닥에 돌을 깔아 샘을 만들었어요. 처음엔 흙탕물이 고였지만 차츰차츰 맑아졌어요. 시간이 지나자 샘에는 맑은 물이 가득 고였어요. 물은 넘치지도 줄지도 않았어요. 물맛도 아주 좋았지요.
샘물이 생겼다는 소문에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어요. 사람들은 너도나도 물맛을 보며 한마디씩 했지요.
“하, 물맛 한번 좋다!”
“정말 깨끗하고 시원하네요.”
마을에 샘물이 생기자 사람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어요. 한편으로는 이첨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어요.
“우리가 선비님을 그렇게 비웃었는데 샘물을 나눠 주시겠어?”
그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어요.
“선비님을 비웃은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더러운 흙 속에 이렇게 깨끗한 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이첨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어요.
② “물은 땅속에 숨어 있는데 사람들은 땅 위만 보려 하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오.”
마을 사람들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그런 마을 사람들을 보며 이첨이 껄껄 웃으며 말했어요.
“이 샘물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앞으로 누구든 마음껏 쓰십시오!”
이첨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어요.
샘물은 가뭄에도 줄지 않고, 비가 많이 와도 넘치지 않았어요. 여름에는 찬물,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항상 찰랑거렸어요. 사람들은 물을 쓸 때마다 이첨의 지혜를 칭찬하며 고마워했답니다.
3주차
방귀 시합
옛날 어느 마을에 방귀를 잘 뀌는 남자가 있었어요. 이 남자가 뀌는 방귀는 보통 방귀가 아니었어요. 집에서 방귀를 ‘뽕뽕’ 살짝만 뀌어도 온 마을이 덜컹덜컹 흔들렸어요. 냄새도 정말 고약했어요.
하루는 방귀쟁이 남자가 방귀를 뀌려는데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방귀쟁이 남자 때문에 아랫마을로 이사 가려고 했더니 거기엔 더 대단한 방귀쟁이 여자가 산다네그려.”
“정말? 아랫마을 사람들보다 우리가 나은 건가? 허허허.”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진 방귀쟁이 남자는 나오려던 방귀가 쏙 들어가고 말았어요.
‘흥, 감히 누구 방귀와 비교를 해?’
방귀쟁이 남자는 아랫마을에 가서 제대로 된 방귀 맛을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말 좀 물읍시다. 방귀 잘 뀌는 여자가 사는 곳이 어디요?”
방귀쟁이 남자는 물어물어 방귀쟁이 여자가 사는 집을 찾아갔어요. 하지만 방귀쟁이 여자는 집에 없었어요.
“괜히 헛걸음만 했네! 할 수 없지, 방귀 맛이나 좀 남기고 갈까? 뿌웅!”
방귀쟁이 남자가 방귀를 뿌웅 뀌는 순간 집에 들어오던 방귀쟁이 여자 아들이 방귀를 맞고 굴뚝으로 날아가 굴뚝에 몸이 박혀버렸지 뭐예요. 그런 줄도 모르고 방귀쟁이 남자는 성큼성큼 걸어갔어요.
집에 돌아온 방귀쟁이 여자는 아들이 굴뚝에 박혀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 저기 윗마을로 가는 아저씨가 갑자기 나타나 방귀를 뀌었어요.”
그 말을 들은 방귀쟁이 여자는 화가 났어요.
“아니 남의 귀한 자식에게 방귀를 뀌어? 어디 너도 한번 당해 봐라!”
① 방귀쟁이 여자는 마당에 있던 절구통을 향해 방귀를 뽀웅 뀌었어요. 그러자 절구통이 하늘을 향해 슝 솟더니 방귀쟁이 남자에게로 향했어요. 마침 위를 올려다보던 방귀쟁이 남자가 깜짝 놀랐어요.
남자는 얼른 절구통을 향해 방귀를 뀌었어요.
“뿌웅!”
그러자 절구통이 방귀쟁이 여자 집으로 향했어요.
“흥, 보통이 아니구나.”
방귀쟁이 여자는 날아오는 절구통을 보며 다시 힘을 줘 방귀를 뀌었어요.
“뽀우웅!”
그러자 절구통은 다시 방귀쟁이 남자 쪽으로 향했어요.
방귀쟁이 남자도 재빨리 몸을 피하며 방귀로 절구통을 날려 보냈지요.
“뿡!”
절구통은 뽕뽕 뿡뿡 방귀 소리와 함께 이쪽저쪽 하늘 높이 날아다녔어요. 저녁이 되어도 방귀 시합은 멈추지 않았지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오늘따라 방귀 냄새가 왜 이렇게 지독해?”
“우리 집 기둥 무너지네. 제발 방귀 좀 그만 뀌시오!”
깜짝 놀란 윗마을, 아랫마을 사람들이 모두 집 밖으로 나왔어요.
② “저 방귀쟁이 남자가 우리 아들을 굴뚝으로 날려 버렸단 말이오. 뽀웅!”
방귀쟁이 여자가 방귀를 뀌면서 소리쳤어요.
“빈집인 줄 알고 그랬소. 뿌옹!”
날아오는 절구통 때문에 방귀를 멈출 수 없었던 남자가 대답했어요.
“일부러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제발 그만들 하시오.”
“그래요, 계속 그렇게 둘이 방귀를 뀌면 마을 전체가 폭삭 무너지겠소.”
방귀 때문에 흔들흔들, 덜컹덜컹 정신없는 마을 사람들이 애원했어요.
방귀쟁이 남자와 여자도 오해가 풀리자, 방귀를 그만 뀌고 싶었어요. 하지만 날아오는 절구통을 피하려니 멈출 수가 없었지요.
“이보시오. 절구통을 향해 힘껏 방귀를 뀌시오. 하늘로 날려 버립시다.”
두 방귀쟁이는 모든 힘을 모아 방귀를 뀌었어요.
③ “하나 둘 셋!”
“뿡!” “뽀웅!”
그러자 절구통은 구름 위를 지나 하늘 높이 달나라까지 날아갔어요.
“어, 이게 뭘까?”
절구통을 발견한 달나라 토끼가 말했어요.
“신기하게 생겼네. 우리 여기다 떡방아를 찧어볼까?”
달나라 토끼들은 그날부터 절구에 쿵덕 쿵덕 신나게 떡방아를 찧는다고 해요.
한편, 방귀쟁이 남자와 여자는 온종일 방귀를 뀌었더니 그날 이후 방귀 소리가 작아졌대요.
④ “뽀옹!”
“뿌웅!”
4주차
느릅나무 소년
옛날 조선 시대 때의 이야기예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신분이 정해져 있었어요. 부모가 양반이면 자식도 양반이고, 부모가 노비이면 자식도 노비가 되었지요. 노비로 태어나면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어요. 공부도 할 수 없었지요. 노비는 양반의 집에서 날마다 일만 하면서 살아야 했어요.
어느 마을에 나이가 일곱 살쯤 되는 노비 아이가 살았어요. 그 아이에게는 소원이 하나 있었어요.
① ‘누군가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아이는 꼭 이름을 갖고 싶었지만 아무도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어요. 이름이 없으니 사람들은 그 아이를 찾을 때면 그저 ‘아무개야!’ 하거나 ‘얘야!’ 하고 부를 수밖에 없었지요.
어느 날, 그 아이는 산마루 바위 굴 안에서 어린나무 한 그루가 자라는 것을 보았어요. 그런데 나무 위가 바윗돌로 막혀 있어 더 자라지도 못하고, 햇빛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었어요. 자세히 보니 그 나무는 키가 크게 자라는 느릅나무였어요.
② “좋은 곳에 태어났다면 쭉쭉 뻗어서 하늘 높이 자랄 나무인데…….”
아이는 나무에게 말했어요.
“나무야, 내가 너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줄게!”
그러고는 나무를 너른 땅에 옮겨 심었어요. 그리고 나무에게 말했어요.
“너는 이제 좋은 땅에서 자라게 되었구나. 무럭무럭 자라서 아주 큰 나무가 되어야 해. 모든 사람이 널 높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러면 난 이름을 지어 네 몸에 새길 거야. 너와 함께 내 이름도 오래오래 남을 수 있도록 말이지.”
아이는 산마루에서 봉수대를 지키는 병사를 찾아가 말했어요.
“아저씨, 부탁이 있어요. 제발 저기 저 느릅나무는 베지 말아 주세요. 앞으로 크게 자랄, 아주 좋은 나무예요.”
봉수대는 적군이 쳐들어오거나 나라에 큰일이 생기면 불과 연기를 피워 전국에 알리는 곳이었어요. 그래서 봉수대 병사들은 산에 있는 나무는 어느 것이든 베어 쓸 수 있었지요. 아이는 그 나무를 꼭 지키고 싶은 마음에 봉수대를 지키는 병사를 찾아가 부탁했던 거예요.
“그래, 저 느릅나무는 절대 베지 않을게.”
아이의 간절한 눈빛을 본 병사가 약속했어요.
그날부터 아이는 매일 일을 마치면 산으로 달려와 나무를 살폈어요.
“안녕, 느릅나무야. 흙이 딱딱해져서 숨쉬기 힘들지 않았어? 내가 좋은 흙으로 다시 갈아 줄게.”
아이는 고운 흙을[흘글] 골라서 나무뿌리를 덮어 주었어요.
“이런, 나쁜 벌레가 널 괴롭히고 있었구나!”
나무를 갉아 먹는 벌레를 발견하면 얼른 손으로 잡았어요. 나무뿌리를 파고드는 잡초는 모두 뽑았고요.
아이의 정성에 놀란 봉수대 병사가 아이에게 물었어요.
“얘야, 양반댁 일도 힘들 텐데 어찌 그리 매일 와서 나무를 보살피는 것이냐?”
“나무는 몇 백년 동안 살잖아요. 이 나무가 자라면 제 이름을 새겨 넣고 싶어요. 아무도 모르는 저를 이 나무에 새겨 기억하게 하고 싶어요.”
말하는 아이의 눈빛은 초롱초롱하게 빛났어요.
③ “허허, 고 녀석 참. 그 말도 맞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어. 그것은 사람이 살았을 때 모두가 기억할 수 있는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지.”
“저는 나무를 잘 키워서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줄래요. 그러면 사람들도 절 기억해 주겠죠?”
“아무렴, 네 덕분에 쉬어 갈 수 있으니 기억할 거다.”
병사는 아이의 마음이 참 기특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병사도 느릅나무를 보살펴 주었어요.
시간이 흘러, 어느덧 느릅나무는 높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잎이 무성하고 키가 큰 나무가 되었어요. 그 느릅나무가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멀리서도 눈에 확 띄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느릅나무가 만들어 낸 넓은 그늘에 모여 쉬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지요.
그런데 느릅나무가 크게 자라도 아이는 나무에 이름을 새기지 않았어요. 나무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 느릅나무를 볼 때마다 그 아이가 떠올랐어요. 세월이 한참 흘러 백년이 지났을 때도 사람들은 말했어요.
“이 나무는 한 아이가 심은 나무라네. 아이의 정성이 나무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웠어.”
그 아이의 이름은 없었지만, 아이의 소원대로 사람들은 느릅나무와 함께 오래오래 그 아이를 기억해 주었답니다.
5주차
두더지의 신붓감
옛날 옛적, 어느 땅속에 두더지 부부가 살았어요.
어느 날, 두더지 부부는 귀여운 아기 두더지를 낳았어요. 아빠와 엄마 두더지는 아기 두더지를 튼튼하고 땅을 잘 파는 두더지로 키우기 위해 온 정성을 다했지요.
아기 두더지는 무럭무럭 잘 자랐어요.
“아빠, 제가 오늘 이렇게 땅을 많이 팠어요.”
아들 두더지가 자랑스레 말했어요.
“오, 정말이네! 세상에 너처럼 땅을 잘 파는 두더지는 없을 거야.”
아빠 두더지가 칭찬하자, 아들 두더지는 기분이 좋아졌어요. 작은 두 발로 더 힘차게 땅을 파기 시작했지요.
세월이 지나, 아들 두더지는 어느덧 늠름한 청년이 되었어요.
“여보, 이제 우리 아들도 결혼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엄마 두더지가 말했어요.
“더없이 귀한 아들이니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부를 만나야 하지 않겠소?”
아빠 두더지가 말했어요.
“그런 훌륭한 신부가 어디 있을까요?”
엄마 두더지가 걱정스레 물었지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지금부터 집을 나서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붓감을 찾아올게요.”
아빠 두더지는 제일 먼저 하늘의 해님을 찾아갔어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계신 훌륭한 해님! 우리 아들과 결혼해 주세요.
그러자 해님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어요.
“나는 온 세상을 환히 비추고 모든 생물을 자라게 하니, 나보다 나은 것이 없지요. 하지만 구름이 나를 가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① 그러니 나는 구름보다 못하답니다.”
듣고 보니 해님의 말이 맞는 것 같았어요.
해님의 말을 들은 아빠 두더지는 구름을 찾아갔어요.
“해보다 위대한 구름님! 우리 아들과 결혼해 주세요.”
그러자 구름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어요.
“나는 해와 달, 하늘을 가려 세상을 어둡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바람이 나를 흩어 버릴 수 있으니 ① 나는 바람보다 못하지요.”
듣고 보니 구름의 말이 맞는 것 같았어요.
구름의 말을 들은 아빠 두더지는 바람을 찾아갔어요.
“해보다 구름보다 힘센 바람님! 우리 아들과 결혼해 주세요.”
바람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어요.
“나는 큰 나무를 꺾고 산과 바다를 흔들 수도 있어요. 그뿐 아니라 해를 가리는 구름을 언제든지 흩어지게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저기 서 있는 돌미륵만은 절대 쓰러뜨릴 수가 없어요. ① 그러니 나는 돌미륵보다는 못하지요.”
듣고 보니 바람의 말이 맞는 것 같았어요.
바람의 말을 들은 아빠 두더지는 돌미륵이야말로 자신의 귀한 아들한테 딱 맞는 신붓감이라고 생각했어요. 아빠 두더지는 한달음에 달려가 돌미륵에게 말했어요.
② “해보다, 구름보다, 바람보다 강한 돌미륵님! 부디 우리 귀한 아들과 결혼해 주세요.”
그러자 돌미륵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어요.
“나는 들판 한가운데서 천 년이 지나도 꿋꿋이[꾿꾸시] 서 있을 수 있어요.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지요. 하지만 두더지가 발밑에서 흙을 파내면 난 꼼짝없이 쓰러지고 말 테지요. ① 그러니 나는 두더지보다는 못하지요.”
“발밑의 두더지라고요? 아니, 그럼 우리 두더지가 해와 구름과 바람과 돌미륵보다 더 훌륭하단 말이요?”
“그렇고말고요.”
돌미륵의 말을 들은 아빠 두더지는 무척 놀랐어요.
③ ‘우리 두더지들이 해와 구름과 바람과 돌미륵보다도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이제껏 알지 못했구나!’
아빠 두더지는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와 이웃에 사는 두더지 처녀를 찾아갔어요.
“해보다, 구름보다, 바람보다, 돌미륵보다 더 뛰어난 두더지 아가씨! 우리 아들과 결혼해 주세요.”
두더지 부부는 돌고 돌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두더지 며느리를 얻어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6주차
별을 좋아한 소년 장영실
시계가 없던 옛날에는 어떻게 시간을 알았을까요?
밤에는 하늘의 달을 보고, 낮에는 그림자의 길이를 보면서 ‘아, 몇 시쯤이겠구나!’ 하고 대강 짐작만 했대요. 그런데 대충 짐작하다 보니 사람마다 생각하는 시간이 조금씩 달라 참 불편했어요. 이런 불편함을 덜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시계를 만든 사람이 있지요. 바로 장영실이에요.
장영실은 신분도 낮았고, 집안도 가난했어요. 하지만 장영실은 전혀 기죽지 않고 밝은 아이였지요. 호기심도 많고 손재주도 좋아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 내곤 했지요.
장영실은 밤하늘에 뜬 별을 지켜보는 것을 특히나 좋아했어요.
장영실은 친구 쇠돌이를 불렀어요.
“쇠돌아, 오늘 밤 나랑 뒷산에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별은 봐서 뭐하게? 별을 보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쇠돌이는 투덜거리면서도 장영실을 따라 산으로 갔어요.
① “저기 별 좀 봐. 내가 쭉 지켜봤는데 조금씩 움직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별이 움직이기 시작해서 제자리로 오면 딱 일 년이 되는 거야. 어때, 신기하지?”
장영실은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여 줬어요. 달빛이 비춘 종이에는 별들의 위치가 그려져 있었어요.
“별이 움직인다고? 거참 신기하네. 난 매일 그 자리에 있는 줄 알았지. 그런데 그게 왜 중요해?”
쇠돌이는 장영실에게 물었어요.
“별들의 움직임을 보면 계절과 날씨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거든. 그럼 농사지을 준비도 미리 할 수 있어.”
장영실은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고 쇠돌이에게 말했어요.
“그럼 내년 농사지을 때 언제 씨를 뿌리면 좋은지도 알 수 있겠구나!”
쇠돌이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어요.
세월이 흘러 청년이 된 장영실은 별자리를 살피며 사람들에게 날씨와 시간을 알려 주는 일을 했어요. 동네 사람들은 장영실 덕분에 농사를 잘 짓게 되었어요. 농사가 잘되니 다른 마을보다 더 잘사는 마을이 되었지요. 그 소식은 임금님의 귀에도 들어가 장영실은 궁궐에 가서 일하게 되었지요.
장영실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도 궁궐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세종대왕이 장영실을 불러 말했어요.
“중국으로 가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오도록 하라.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와 조선에 꼭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어 보아라.”
세종대왕은 장영실을 중국으로 보냈어요. 그때 중국에는 다른 나라들의 발달된 기술이 많이 들어와 있었어요. 장영실은 이런 앞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어요.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장영실은 시계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밤이나 낮이나 시계 생각에 푹 빠져 있었지요. 비가 많이 내린 어느 날이었어요. 한참 동안 비 오는 모습을 바라보던 장영실에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지요.
‘옳지, 바로 저거야!’
장영실은 무릎을 탁 치고는 곧장 시계를 만들러 갔어요. 그렇게 만들어 낸 새로운 시계가 바로 물시계였지요. 이름은 ‘자격루’라고 지었어요. 장영실은 자격루를 세종대왕에게 보여 드렸어요.
“이것이 물시계라고? 이걸로 시간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이냐?”
세종대왕은 신기해하며 물었어요.
② “물을 담은 큰 항아리에 구멍을 내어 두 번째 항아리로 물이 일정하게 떨어지게 했사옵니다. 두 번째 항아리에 물이 차면 쇠구슬을 움직이게 하여 그 힘으로 인형이 종과 북, 징을 울려 시간을 알려 주게 했사옵니다.”
장영실은 자신이 만든 물시계를 가리키며 하나하나 설명했어요.
“오호라, 그것 참 멋지구나! 시간이 되면 저절로 종을 울려서 알려 준다니, 참으로 대단하구나!”
세종대왕은 크게 감탄했어요.
“시간이 되면 스스로 종을 친다 하여 이름을 자격루라고 했사옵니다.”
장영실이 대답했어요.
“이 자격루가 정확한 시간을 알려 준다면 백성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봐라, 장영실에게 큰 벼슬을 내려라!”
세종대왕이 기뻐하며 말했어요. 처음에 신하들은 못마땅해 하며 반대했어요. 장영실의 신분이 낮다고 말이에요. 하지만 자격루를 만든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기 때문에 계속 반대할 수는 없었지요.
장영실은 신분이 낮아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 시대에 살았어요.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공부하고 노력한 장영실은 조선 최고의 발명가가 될 수 있었답니다.
7주차
토끼의 재판
옛날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가 산속을 걸어가는데, 어디선가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선비는 무서워서 서둘러 걸었어요.
① “어흥, 어흐흐…….”
호랑이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는데 어쩐지 슬프게 들렸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한 선비가 살금살금 울음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커다란 호랑이가 구덩이에 빠져있었어요.
“어흥, 어흥! 선비님 제발 저를 살려 주세요.”
선비를 본 호랑이가 말했어요.
“너를 살려 주면 나를 잡아먹지 않겠느냐? 미안하지만 알아서 잘 빠져 나오너라.”
선비가 호랑이를 두고 그냥 떠나려 하자 호랑이가 다급하게 말했어요.
“선비님! 저를 꺼내 주시면 평생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좀 꺼내 주세요.”
호랑이가 울면서 애원했어요. 선비는 울고 있는 호랑이가 불쌍했어요. 그래서 구해 주려고 근처에 쓰러져 있는 큰 나무를 끌고 왔어요.
“자, 나무를 밟고 올라오너라.”
선비가 큰 나무를 구덩이에 넣으며 말했어요. 호랑이는 선비가 넣어준 나무를 밟고 구덩이에서 빠져 나왔어요.
“자, 그럼 나는 내 갈 길을 갈 터이니 너도 앞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려무나.”
선비가 말하며 길을 떠나려고 할 때였어요.
“어흥, 사흘이나 구덩이에 갇혀서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배가 고프구나. 그러니 지금 너를 잡아먹어야겠다.”
호랑이는 자기 목숨을 구해 준 은혜도 모르고 선비를 잡아먹으려고 했어요.
“아니, 호랑아! 은혜는 갚지 못할지언정 나를 잡아먹겠다는 거냐?”
“어흥! 사람이 파 놓은 구덩이 때문에 굶어 죽을 뻔했는데 내가 왜 너한테 은혜를 갚아야 하지?”
호랑이가 억지를 부리자 선비는 호랑이를 구해 준 것을 후회했어요.
“나를 잡아먹지 않겠다고 해서 살려 주었는데……. 그러지 말고 누구에게 물어나 보자. 내가 옳은지, 네가 옳은지.”
선비의 말에 호랑이도 그러자고 했어요.
선비와 호랑이는 소나무에게 물어보기로 했답니다.
“소나무야! 소나무야! 누구 말이 옳으냐?”
“그야 호랑이님 말이 옳지요. 사람들은 나무를 함부로 베잖아요.”
소나무의 말에 신이 난 호랑이는 바위에게 누가 옳으냐고 물었어요.
“그야 호랑이님 말이 옳지요. 사람들은 해주는 것 없이 필요하면 가져다 절구를 만드네, 맷돌을 만드네 하잖아요.”
바위의 말을 들은 선비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지나가는 토끼에게 물었어요.
“토끼야, 토끼야. 영리한 토끼야. 제발 내 말 좀 들어보렴.”
선비는 토끼에게 호랑이를 구해 준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그러니까 지금 저보고 누구 말이 옳은지 재판을 해 달라는 건가요?”
선비의 이야기를 들은 토끼가 물었어요.
② “그래. 호랑이가 불쌍해서 구해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구나.”
선비가 대답했어요.
“흥, 사람이 판 구덩이에 빠져 굶어 죽을 뻔했는데 은혜는 무슨 은혜야. 어흥!”
“호랑이님, 그 구덩이가 진짜 사람이 판 게 맞나요? 제가 그 구덩이를 한번 봐도 될까요?”
토끼가 말했어요.
호랑이는 구덩이가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켰어요.
“그러니까 호랑이님이 이 구덩이에 빠져 있었다고요?”
“그래. 내가 정말 이 구덩이에 빠져있었다니까.”
호랑이가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어요.
“그럼 선비님은 나무를 원래 있었던 곳에 가져다 놓고, 호랑이님도 원래대로 구덩이에 빠져보시겠습니까? 그래야 제가 알 수 있을 거 같아서요.”
토끼의 말을 듣고 선비가 나무를 치웠어요. 성질 급한 호랑이도 구덩이에 들어가며 말했어요.
“그래, 내가 이렇게 빠져 있었다고.”
“아하, 그런 거였군요. 이제 됐습니다. 그러니 선비님은 원래 가던 길을 가시면 될 것 같은데요?”
“아니, 뭐라고? 어서 나를 꺼내지 못해! 어흥!”
그제야 토끼의 속셈을 눈치 챈 호랑이가 큰 소리로 말했어요.
③ “은혜도 모르는 호랑이야! 구덩이에서 네 잘못이나 뉘우치렴.”
선비는 토끼에게 고마워하며 길을 떠났고, 토끼도 숲으로 돌아갔답니다.
8주차
고구려를 세운 주몽
옛날, 부여라는 나라를 금와왕이 다스리던 시대의 이야기예요.
어느 날, 금와왕이 사냥을 하고 궁궐로 돌아오는데 아름다운 여자가 강가에 앉아 울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금와왕은 여인에게 다가가 왜 울고 있는지 물어보았어요.
“저는 원래 물의 신, 하백의 딸 유화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아들 해모수님과 혼인하였는데 해모수님이 말도 없이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마저 저를 내쫓아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딱한 마음이 든 금와왕은 유화를 궁궐로 데려왔어요.
“보통 여인이 아니니 잘 보살피도록 해라.” 금와왕이 시녀들에게 명령했어요.
그날 이후, 신기한 일이 벌어졌어요. 하루 종일 햇빛이[핻비치] 유화를 따라다니는 거예요.
① 유화가 방 이쪽으로 자리를 옮기면 햇빛도 따라와 유화를 비추고, 방 저쪽으로 옮겨도 햇빛이 따라와 유화를 비추었어요. 그렇게 햇빛을[핻비츨] 받던 유화는 배가 점점 불러 오더니 어느 날 커다란 알을 낳았어요.
“사람이 알을 낳는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그 알을 빨리 없애야 합니다.”
신하들이 금와왕에게 말했어요.
“그럼 그 알을 돼지우리에 버려라. 돼지들이 밟아 죽이겠지.”
신하들이 알을 돼지우리에 버리자, 돼지들은 알을 밟기[밥:끼]는 커녕 슬금슬금 피했어요.
“안 되겠다. 들판에 내다 버려라. 산짐승이 먹지 않겠느냐.”
신하들이 알을 들판에 버리자, 산짐승들은 밤낮으로 알을 품고 보살폈어요.
이상하다고 생각한 금와왕은 알을 유화에게 돌려주었어요. 유화는 정성껏 알을 돌보았어요.
며칠 후였어요. 알에 금이 쩍쩍 가더니 건강한 사내아이가 알을 깨고 나왔어요.
“아, 이 아기는 해모수님의 귀한 아들이야.”
유화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키웠어요.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어요. 친구들보다 힘도 세고 몸집도 컸어요. 특히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활을 잘 쐈어요. 사람들은 그 아이를 ‘주몽’이라고 불렀어요. ‘주몽’은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한편, 금와왕에게는 일곱 왕자가 있었어요. 일곱 왕자는 자신들보다 뛰어난 주몽이 미웠어요.
“알에서 태어나다니 너무 이상하지 않아?”
“맞아, 그냥 두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몰라.”
일곱 왕자들은 나쁜 마음을 먹고 왕에게 가서 말했어요.
“저 아이는 우리나라를 빼앗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더 자라기 전에 없애야 합니다, 아바마마.”
왕자들의 말을 듣고 금와왕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왕자들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았지요.
“그렇지만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말 돌보는 일을 시키며 좀 더 지켜보자꾸나.”
마음 약한 금와왕은 차마 주몽을 죽이지 못했어요. 말들을 돌보게 된 주몽은 이상하게 가장 좋은 말에게만 먹이를 잘 주지 않았어요.
하루는 말들을 둘러보던 금와왕이 비쩍 마른 말을 보게 되었지요.
“다른 말들은 다 튼튼한데, 저 말은 곧 병이라도 날 거 같구나. 저 말을 네가 가지거라.”
이렇게 해서 주몽은 부여에서 가장 좋은 말을 가지게 되었어요.
“아바마마는 너무 마음이 약하셔.”
“주몽을 계속 저렇게 둘 수는 없어.”
이를 지켜본 일곱 왕자는 주몽을 없애기로 했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 유화가 주몽을 불러 말했어요.
“아무래도 왕자들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구나. 어서 이 부여를 떠나도록 해라.”
주몽은 눈물을 흘리며 친한 친구 세 명과 말을 타고 부여를 떠났어요.
일곱 왕자는 병사들을 이끌고 주몽을 쫓아갔어요. 한참을 달리던 주몽 앞에 커다란 강이 나타났어요. 바로 뒤에선 일곱 왕자와 병사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지요.
② “나는 해모수의 아들이자 물의 신 하백의 손자다. 어찌하여 내 앞을 막는 것이냐? 어서 길을 내라.”
주몽이 강을 향해 소리치자, 놀랍게도 수많은 물고기와 자라가 물 위로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어요. 주몽과 친구들은 그 다리를 밟고[밥:꼬]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주몽과 친구들은 강줄기가 굽이굽이 흐르는 땅에 도착했어요.
“이곳에 나라를 세우도록 하세.”
주몽은 그곳에 나라를 세우고 이름을 ‘고구려’라고 지었어요. 주몽은 고구려를 크고 힘센 나라로 키워 오랫동안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답니다.
9주차
닭고기와 효자
옛날 조선 시대 때,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 아내와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아들이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부지런히 일해도 아들 가족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어요. 매일매일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지요. 아들 부부는 먹을 게 없어 굶는 날이 더 많았지만 어머니에게는 항상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밥을 지어 드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심한 감기에 걸린 어머니가 아들을 보며 말했어요.
“애야, 닭 한 마리를 먹으면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들 부부는 한숨을 내쉬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닭고기가 아니라 소고기를 푹 삶아 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살림이 넉넉지 않은 아들 부부는 어머니의 소원을 이뤄 드릴 수 없었지요.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밖으로 나왔어요. 그러자 아내가 얼른 따라 나와 위로했지요.
“매일매일 열심히 일하는데도 어머니께 닭 한 마리조차 드리지 못하다니…….”
아들의 말에 안타까워하던 아내가 조심스레 말했어요.
“서방님, 건넛마을에 있는 친정집에서 닭을[달글] 몇 마리 기르고 있잖아요. 부모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한 마리 받아 오는 건 어떨까요?”
“하지만 내가 장모님을 뵐 염치가 없어요.”
“그럼 제 오라버니들에게라도 부탁해 봐요. 어머님께서 저렇게 잡숫고 싶어 하는데…….”
아들은 큰 용기를 내어 건넛마을 처갓집으로 향했어요. 하지만 깊은 산골에 사는 아들이 건넛마을로 가려면 하루 밤낮을 꼬박 걸어야 했어요. 큰 고개도 하나 넘어야 했지요. 아들은 쉬지 않고 달려 해 질 녘에 처가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아들은 자신의 사정을 아내의 오라버니들에게 말했지요. 오라버니들은 아들의 딱한 사정을 안타깝게 여겼어요. 그렇다고 기르던 닭을 부모님의 허락도 없이 선뜻 잡아 줄 수는 없었지요.
“정말 미안하네. 얼마 전에 산짐승이 내려와 닭을[달글] 물어 가는 바람에 우리 집에도 닭이[달기] 몇 마리 남지 않았다네.”
할 수 없이 아들은 빈손으로 처갓집을 나섰어요.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지요. 아들은 터덜터덜 힘없는 걸음으로 다시 고개를 넘었어요. 이미 해가 져서 사방이 어두컴컴했어요. 이따금 멀리서 산짐승의 소리만 들려왔지요. 아들은 오싹한 기분이 들었어요.
몇 시간을 앞만 보고 부지런히 걸으니 그제야 희미하게나마 마을의 불빛이 보였지요. 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었어요. 몇 발자국 앞에 호랑이 한 마리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요! 아들은 머리끝이 쭈뼛 서는 것 같았어요.
① ‘옛 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어. 그래, 정신 바짝 차리고 도망칠 궁리를 해 보는 거야!’
아들은 정신을 집중하고 호랑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조금씩 길옆으로 걸음을 옮겼어요. 아들은 호랑이 옆을 빙 돌아서 집으로 갈 생각이었지요. 그런 아들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랑이 역시 눈동자를 번뜩이며 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어요.
아들은 그렇게 몇 시간이나 호랑이와 눈싸움을 하며 한 번에 한 뼘씩 움직였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요, 아들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어요.
바로 그때, 호랑이의 모습이 달빛에 온전히 보였어요.
② “앗, 저건!”
아들은 호랑이를 마주하고 있다는 것도 잊고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어요. 호랑이 앞에는 호랑이가 물고 온 닭 한 마리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그 순간 아들은 두려움도 잊고 호랑이 앞으로 걸어가 넙죽 엎드리고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며 말했지요.
“호랑이님, 병든 제 어머니께서 닭고기를 드시고 싶어 합니다. 닭고기 대신 저를 잡아먹으시고, 제발 그 닭을 제게 주십시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요. 호랑이가 닭을 두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겠어요. 아들은 호랑이에게 받은 닭을 품에 안고 재빨리 집으로 향했어요.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상에 올라온 닭고기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어요.
“이게 웬 닭고기냐? 우리 형편에 이 귀한 걸 어떻게…….”
아들은 밤사이 겪은 일들을 어머니와 아내에게 이야기해 주었어요. 아들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그건 호랑이가 아니라 산신령님이 분명해요. 당신의 효심에 산신령님이 감동하신 거예요.”
닭고기를 실컷 먹은 어머니는 깨끗이 병이 나았어요. 아들 부부는 그 뒤로도 열심히 어머니를 모시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10주차
꽃 선비의 사람 보는 법
옛날 조선 시대에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선비 박준원이 살았어요.
박준원은 틈 날 때마다 마당에 꽃을 심고 가꾸기로 유명했어요. 사람들은 박준원을 ‘꽃과 이야기하는 선비’라고 불렀어요.
어느 날, 박준원이 꽃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밖이 시끌시끌했어요. 무슨 일인지 나가 보니 돈이 많기로 유명한 김 부자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한 거지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김 부자는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목소리를 높였어요.
“이 거지 녀석이 감히 누구를 속여?”
“아야, 그만 때리고 돈이나 주세요!”
“돈? 그래 돈을 줄 테니 훔친 금가락지부터 내놔!”
“아유, 전 금가락지 안 훔쳤다니까요!”
김 부자와 아이는 서로 지지 않고 목소리를 높였어요. 박준원은 구경꾼들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지요.
평소 의심이 많은 김 부자는 하인들은 물론 가족도 믿지 못했어요. 그래서 늘 패물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다녔는데, 며칠 전에 패물 주머니를 잃어버린 거예요. 밤늦도록 온 동네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주머니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주머니를 찾아 주는 사람에게 상금으로 백 냥을 주겠노라 했지요.
“그럼 저 아이가 주머니를 찾아온 거요?”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김 부자 말로는 주머니에 있던 금가락지 두 개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아, 그래서 저렇게 언성을 높이고 있군.”
김 부자는 여전히 눈을 부라리며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네 녀석이 아니면 누가 금가락지에 손을 댔단 말이냐?”
“처음부터 다섯 개밖에 없었어요, 진짜예요! 그러니 어서 약속한 백 냥이나 주세요.”
“안 되겠군. 관아로 가자!”
“시, 싫어요! 관아는 무서워요.”
관아라는 말에 아이가 움찔하자 김 부자는 더욱 의기양양해서 사람들에게 소리쳤어요.
“다들 봤지? 이 녀석이 잘못이 없다면 왜 관아를 무서워하겠나?”
버럭버럭 소리치는 김 부자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지요.
“맞아, 어린 녀석이 눈에 불을 켜고 어른에게 덤비는 것 좀 봐.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지!”
사람들이 김 부자의 편을 들자 아이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이런 녀석은 아주 혼이 나 봐야 해. 자 어서 관아로 가자!”
김 부자가 멱살을 움켜쥐자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어요.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박준원이 사람들 앞에 나섰어요. 사람들은 지혜로운 박준원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궁금했어요.
“두 사람 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입니다!”
“네, 전 정말 금가락지를 훔치지 않았어요. 흑흑.”
박준원은 구경꾼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큰 목소리로 말했어요.
“내가 보기에도 두 사람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소. 다만 김 부자가 잃어버린 주머니에는 금가락지가 일곱 개 있었고, 아이가 주운 것에는 다섯 개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이가 주운 주머니는 김 부자의 것이 아닌 게지요.”
박준원은 아이에게 말했어요.
① “이 주머니는 임자가 없는 것 같으니 가지고 있다가 임자가 나타나면 돌려주고 임자가 없으면 네가 가지렴.”
박준원의 말을 들은 김 부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어요.
“저, 저……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아이에게 돈을 주겠습니다.”
“아니, 주머니를 찾지도 못했는데 왜 아이에게 돈을 준단 말이오?”
박준원이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하자 그제야 김 부자는 사실을 털어놓았어요.
“처음부터 백 냥을 내어 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금가락지가 없어졌다고 떼를 써서 패물 주머니만 찾을 셈이었지요.”
주머니를 되찾은 김 부자는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어요.
“어르신, 김 부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찌하여 아이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걸 꿰뚫어 보셨는지요?”
사람들이 박준원에게 다가가 물었어요.
② “꽃은 그 모양이나 빛깔만 보는 것이 아니라오. 은은한 꽃향기까지 느껴야 그 꽃을 제대로 봤다고 할 수 있지.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고.”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나 말투보다는 드러나지 않는 속마음을 봐야 한다는 뜻이에요. 거지 소년의 겉모습만 보고 김 부자 편을 들었던 사람들도 박준원의 말에 얼굴이 빨개졌답니다.
11주차
소가 된 게으름뱅이
옛날 어느 마을에 손 하나 까딱 움직이기 싫어하는 게으름뱅이가 살았어요.
게으름뱅이는 집안일과 농사일을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빈둥빈둥 놀기만 했어요.
“여보, 여보, 이리 좀 와 보시게! 어서!”
하루는 게으름뱅이가 밥을 먹다 말고 아내를 급히 불렀어요.
“왜 그러세요?”
아내는 무슨 일이 생겼나 해서 방으로 들어가 봤어요.
“내 턱 좀 보시오.”
“턱이 왜요?”
“밥알이 턱에 붙었어요. 좀 떼어 주구려.”
“뭐라고요?”
아내는 기가 막혔어요.
“여보. 밭도 갈고 씨앗도 심어야 하는데 당신은 고작 턱에 붙은 밥풀 떼어 달라고 저를 부른 거예요? 남들은 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새벽부터 나가 일한다고요!”
화가 난 아내가 게으름뱅이에게 말했어요.
“알았소, 알았소! 지금 당장 나가서 밭을[바틀] 갈면 되지 않소!”
게으름뱅이는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밖으로 나갔어요. 하지만 밭을 갈기에는 날씨가 좀 더웠어요. 게으름뱅이는 그늘에 앉아 잠시 쉬기로 했지요. 그때 소가 한가하게 풀 뜯는 모습이 보였어요.
‘소 팔자가 내 팔자보다 낫네그려.’
게으름뱅이는 소가 그저 부러웠어요.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기울었어요. 게으름뱅이는 여전히 나무 밑에 드러누워 있었지요.
‘아이고 배고파. 아 참, 턱에 밥알이 붙어 있었지!’
게으름뱅이는 그제야 턱에 붙은 밥알을 떼어 먹었어요.
배고픈 게으름뱅이는 어슬렁어슬렁 집을 향해 걸어갔지요. 길모퉁이를 도는데 유난히 불빛이 밝은 집이 보였어요.
‘어? 한 번도 못 보던 집인데?’
호기심이 생긴 게으름뱅이는 집 안을 가만히 들여다봤어요. 그랬더니 웬 할아버지가 소머리 모양의 탈을 만들고 있었어요.
“허허, 뭘 그리 보시오? 안 사도 되니 한번 써 보시겠소?”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했어요. 게으름뱅이는 신이 나서 집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럼 한번 써 보겠습니다.”
게으름뱅이는 소머리 탈을 재빨리 썼어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깔고 앉았던 쇠가죽을 게으름뱅이의 등에 덮었지요.
① ‘응? 왜 이렇게 답답하지? 소머리 탈이 벗겨지지 않네?’
게으름뱅이는 깜짝 놀라 탈을 벗으려 했지만 벗겨지지 않았어요.
“음매, 음매!”
게으름뱅이가 소리치자 입에서는 소 울음소리가 났어요. 게으름뱅이가 소가 된 거예요.
“매일 놀고먹기만 하더니 아주 통통한 소가 되었네.”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어요.
다음 날, 할아버지는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장에 데려갔어요.
할아버지는 농부에게 소가 된 게으름뱅이를 팔며 말했어요.
“이 소는 무를 먹이면 큰일 나니 조심하시오.”
“허, 별 신기한 소 다 보겠네.”
게으름뱅이를 산 농부는 이튿날 새벽부터 매일 소를 데리고 밭으로 나갔어요. 소가 된 게으름뱅이는 저녁 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했어요.
“음매! 음매!”
게으름뱅이는 자기가 사람이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사람들에게는 소 울음소리로만 들렸어요.
“이 소는 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 어서 일하지 못해!”
농부는 그럴 때마다 게으름뱅이 등을 찰싹찰싹 때렸지요.
② ‘내가 너무 게을리 살아서 벌 받은 게 틀림없어.’
게으름뱅이는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쳤어요.
어느덧 시간이 흘러 가을이 되었어요.
“이랴! 오늘도 할 일이 많다, 어서 밭으로 가자!”
이른 새벽부터 농부는 게으름뱅이를 밭으로 데려갔어요. 농부는 커다란 무를 뽑아 실어 나르게 했어요.
게으름뱅이는 무를 보자 할아버지가 농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무를 먹으면 큰일 난다고? 사람이 소가 되는 것보다 더 큰 일이 뭐가 있겠어.’
온종일 일을 해서 배가 고팠던 게으름뱅이는 바닥에 떨어진 무를 덥석 물어 우적우적 씹었어요.
그러자 아무리 해도 벗겨지지 않았던 소머리가 저절로 벗겨졌어요. 게으름뱅이가 다시 사람이 된 거예요. 농부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게으름뱅이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갔어요.
“아이고, 여보! 그동안 어디 갔었어요?”
아내는 반갑게 게으름뱅이 남편을 맞이했어요.
“여보, 그동안 내가 너무 잘못했소. 앞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살겠소.”
집으로 돌아온 게으름뱅이는 그날부터 열심히 일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바뀌었답니다.
12주차
고구려는 내가 지킨다! 을지문덕
옛날 고구려시대 때, 을지문덕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을지문덕은 어려서부터 이 산 저 산을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놀기를 좋아했어요. 몸놀림이 재빠르고 날쌔며 생각도 깊은 아이였지요.
하루는 을지문덕과 아버지가 함께 산에 올랐어요. 산꼭대기에 도착한 아버지는 아래를 굽어보며 을지문덕에게 말했어요.
“우리 고구려 사람들은 용감하고 씩씩해서 오랜 세월에 걸쳐 나라를 크게 만들었단다. 하지만 저 북쪽의 적들이 자주 쳐들어와 우리를 괴롭히니 걱정이구나.”
아버지는 을지문덕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 주고 싶었어요.
“우리 고구려 사람들을 괴롭힌다고요?”
“그렇단다. 얼마 전에도 쳐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을 잡아갔다는구나.”
① “제가 크면 장군이 되어서 고구려를 세상에서 가장 센 나라로 만들 거예요. ② 어떤 나라도 고구려에 쳐들어오지 못하게 말이에요.”
을지문덕이 씩씩하게 말했어요. 아버지는 아들의 의젓한 모습에 마음이 든든해졌어요.
을지문덕은 그 이후로 더 열심히 무술을 익혔어요.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무예가 뛰어난 스승을 찾아 주었지요. 좋은 스승에게 무술을 익히니 을지문덕은 실력이 쑥쑥 늘어 갔어요.
몸놀림도 훨씬 날쌔졌고 단박에 커다란 나무를 자를 정도로 힘도 세졌어요. 또 달리는 말에 앉아서 활을 쏘아도 무엇이든 척척 맞혔지요.
을지문덕은 나라에서 힘센 장사를 뽑는 대회가 나가 당당히 일등을 했지요. 임금님은 을지문덕에게 벼슬을 내려 고구려를 지키는 군인이 되도록 했어요. 그리고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장군이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고구려 가까이 있는 수나라가 고구려를 차지하려고 쳐들어왔어요. 수나라 장군은 삼십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군대를 이끌고 왔어요.
을지문덕 장군은 수나라 군에 맞서기 위해 군사들과 전쟁터로 나갔어요. 하지만 고구려 군은 수나라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수였지요. 을지문덕은 곰곰이 생각했어요.
‘어떻게 하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적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까?’
적을 알고 싸우면 분명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을지문덕은 일단 수나라에 항복하는 척했어요. 수나라 군사들의 상태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꾀를 낸 것이지요.
수나라를 살피고 돌아온 을지문덕이 말했어요.
“수나라 군대는 고구려까지 멀고 험한 길을 오느라 지쳐 있다. 그들을 더욱 지치게 해야 한다. 그러면 수가 적은 우리도 이길 수 있다!”
을지문덕은 부하들에게 알쏭달쏭한 명령을 내렸어요.
③ “오늘은 일곱 번을 싸우되 모두 지는 싸움을 해야 한다!”
을지문덕은 하루에 일곱 번씩 수나라 군대에 작은 싸움을 걸었어요. 하지만 싸움을 걸었다가도 이내 도망치기를 반복했어요. 하루에 일곱 번씩 싸우는 동안 수나라 군사는 점점 더 지쳐 갔어요. 아픈 사람도 많이 생기고, 힘들어 주저앉는 사람도 많아졌어요.
하루는 수나라 장군이 고구려 군에 먼저 싸움을 걸려고 군사들을 이끌고 살수 강을 건넜어요. 살수 강은 평안북도에 있는 청천강의 옛날 이름이에요.
“어서 살수 강을 건너라. 고구려 땅 깊숙이 들어가 크게 싸울 것이다. 승리 는 우리의 것이다!”
수나라 장군은 자신만만하게 강을 건넜어요. 하지만 고구려 군은 이미 수나라 군대가 쳐들어올 것을 예상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드디어 수나라 군사들이 고구려 성을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수나라 군사들은 성벽에 오르다가 쇠못에 찔리고,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쓰러졌어요. 수나라 군사들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갔어요.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한 수나라 장군은 그만 돌아가기로 했어요.
“어서 강을 건너 후퇴하라!”
바로 그때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을지문덕이 이끄는 고구려 군사들이 온 힘을 다해 공격하기 시작했어요.
④ “지금이다! 모두 공격하라!”
⑤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수나라 군사들은 허둥지둥 도망치기 바빴어요.
⑥ 그러다 결국 수나라 군사들은 거의 모두 살수 강에 빠져 죽고 말았어요.
이렇게 을지문덕이 이끄는 고구려 군은 피해를 거의 입지 않고 수나라의 삼십만 대군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
이 전쟁은 살수 강에서 크게 이긴 싸움이라는 뜻으로 ‘살수 대첩’이라고 불러요. 을지문덕 장군의 승리는 그동안 수나라에 괴롭힘을 당하던 고구려 사람들에게 통쾌한 일이었지요. 그 이후로 수나라 군사들은 ‘을지문덕’의 이름만 들어도 겁에 질렸다고 해요.
오늘날 서울에 있는 ‘을지로’라는 길은 바로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을지문덕 장군의 용맹함과 나라를 지키려는 마음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랍니다.
13주차
개구리로 아버지를 구한 홍섬
옛날 조선 시대에 홍언필이라는 벼슬 높은 양반이 있었어요.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어요. 홍언필은 마루에서 시원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① ‘으응? 이게 뭐지?’
잠결에 홍언필은 가슴이 답답했어요.
누군가 배를 누르고 있는 듯 묵직해서 홍언필은 살짝 눈을 떠 봤어요.
‘세, 세상에 이, 이럴수가!’
② 홍언필은 깜짝 놀랐어요.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가 배 위에 올라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구렁이는 둥글게 똬리를 틀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어요.
홍언필은 온몸에 소름이 돋고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요.
‘조금만 움직여도 구렁이가 놀라서 나를 물텐데…….’
홍언필은 꼼짝도 할 수 없었어요. 구렁이와 눈이 마주칠까 봐 눈도 뜰 수 없었지요.
‘이 노릇을 어쩐다?’
그렇다고 소리를 내어 사람을 부를 수도 없었어요. 구렁이를 놀라게 하면 안 되니까요.
‘좋은 수가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어요.
‘가만히 기다리면 구렁이가 가 버리지 않을까?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 가는 게야!’
마음이 다급해진 홍언필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어요. 오늘따라 집에 찾아오는 손님도 한 명 없었지요. 홍언필은 누구라도 와 주기 바랐지만 한참이 지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아, 정말 큰일이로구나. 이러다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그때였어요. 마당에서 발소리가 들렸어요. 홍언필의 귀가 번쩍 뜨였지요.
‘휴, 이제 살았다!’
홍언필은 구렁이와 눈이 마주치지 않게 실눈을 뜨고 살짝 곁눈질을 했어요.
‘아, 안 돼!’
홍언필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어요. 이제 막 여섯 살이 된 아들 ‘섬’이가 걸어왔거든요.
‘하, 하필이면 왜 섬이 왔을까?’
홍언필은 애가 바싹 탔어요. 이제는 어린 아들까지 위험해졌기 때문이에요.
‘얘야. 제발 가까이 오지 마라!’
홍언필은 소리도 못 내고 속으로 중얼거렸어요. 이런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섬이는 한 발, 한 발 다가왔지요. 마침내 섬이가 아버지 배 위에 있는 구렁이를 보았어요. 섬이는 구렁이를 빤히 바라보다가 조심조심 뒷걸음으로 나갔어요.
홍언필은 섬이가 사람을 불러올 것이라 생각했어요.
잠시 후에 발소리가 나서 보니 아들이 혼자 되돌아 왔어요.
‘아니, 저 아이가 왜 혼자 왔을까?’
홍언필은 섬이가 혼자 온 걸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어요.
‘아이고, 이제 나는 꼼짝없이 죽었구나! 으응? 그런데 저게 뭐지?’
자세히 보니 섬이가 손에 개구리 한 마리를 들고 있었어요.
‘아니, 개구리는 왜……?’
③ 섬이는 아버지 곁으로 살금살금 다가와 개구리를 마루에 툭 던졌어요. 그러자 개구리가 마루에서 폴짝폴짝 뛰었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스르륵! 스르륵!”
큰 구렁이가 홍언필의 배에서 슬금슬금 내려왔어요. 그러고는 개구리 쪽으로 스르륵스르륵 다가갔지요.
구렁이가 따라오는 것도 모르고, 개구리는 마루 아래로 폴짝폴짝 뛰어내렸어요. 그러자 구렁이도 마루 아래로 따라 내려갔어요. 그제야 구렁이를 발견한 개구리가 도망치듯 달아났어요. 구렁이도 개구리를 잡으려고 속도를 내어 스르륵 쫓아갔지요.
“후유, 살았다!”
홍언필은 숨을 길게 내쉬었어요.
“아버지, 괜찮으십니까?”
섬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어요.
“그래! 네 덕분에 내가 살았구나.”
홍언필이 아들 섬이를 꼭 껴안았어요.
“개구리로 구렁이를 꾀어내다니. 정말 영리하구나.”
“아버지가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홍언필은 섬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도 섬이의 지혜로움과 용기에 모두 깜짝 놀랐어요.
어린 나이에 개구리로 구렁이를 꾀어 아버지를 구해 낸 섬이는 글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과거에 합격하여 나라의 관리가 되었어요. 관리가 된 뒤에도 홍섬은 나랏일을 지혜롭게 펼쳤어요. 조선에서 제일 높은 벼슬도 여러 번 하면서, 백성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14주차
떡시루 잡기
옛날 깊은 산속에 호랑이가 한 마리 살았어요. 어느 날 호랑이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갔다가 우연히 떡을 맛보게 되었어요. 호랑이는 그 후로 떡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요.
“어흥,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말랑말랑하고 맛있는 떡을 먹을 방법이 없을까? 어흥”
나무 밑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꺼비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어요.
“호랑이님! 지금 떡을 먹고 싶다고 하셨나요?”
“그렇단다. 난 떡이 너무너무 먹고 싶단다.”
한참 생각하던 두꺼비가 말했어요.
“호랑이님! 우리 집에 떡시루가 있긴 한데…….”
“뭐, 떡시루? 떡시루가 뭔데?”
“떡시루는 떡을 해 먹는 그릇이지요.”
그 말을 들은 호랑이가 기뻐하며 말했어요.
“두껍아, 그럼 우리 그 시루로 떡을 해 먹자. 나는 집에 가서 쌀가루를 가져오고, 너는 시루를 가져오고.”
그러자 두꺼비가 대답했어요.
“그거 좋지요.”
이렇게 해서 호랑이와 두꺼비는 사이좋게 떡을 만들었지요.
① 시루에 쌀가루를 넣고 팥도 솔솔 뿌려주고, 쌀가루를 넣고 팥도 솔솔 뿌려가며 떡을 안쳤어요. 그리고 나무에 불을 지피자 떡시루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떡 찌는 냄새가 솔솔 나자 호랑이는 떡을 혼자만 먹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내가 쌀가루도 가져오고 오고 불도 지폈는데 두꺼비하고 맛있는 떡을 나눠 먹어야 하다니!’
드디어 맛있는 떡이 다 익자 호랑이가 말했어요.
“두껍아, 우리 이 맛있는 떡을 그냥 먹으면 너무 시시하지 않겠니? 그래서 말인데 나랑 내기 한번 해 볼까?”
“내기? 무슨 내기요?”
막 떡을 꺼내 먹으려던 두꺼비가 물었어요.
“저기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떡시루를 아래로 굴리는 거야. 그리고 굴러가는 떡시루를 먼저 잡는 쪽이 떡을 다 먹는 거지. 어때, 재밌겠지?”
이렇게 해서 호랑이와 두꺼비는 끙끙거리며 떡시루를 산꼭대기까지 들고 갔어요. 둘 다 무거운 떡시루를 들고 오느라 배가 고파졌지요.
‘아이 배고파. 얼른 떡시루를 굴려야지. 떡시루만 데굴데굴 굴리면 이 떡은 몽땅 내 거다!’ 호랑이는 신이 났어요.
호랑이와 두꺼비는 “하나, 둘, 셋!” 하는 소리와 함께 떡시루를 힘껏 밀었어요.
떡시루는 덜컹덜컹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산 아래로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자, 두껍아, 그럼 나 먼저 출발한다! 어흥!”
호랑이는 떡시루를 잡으러 바람처럼 달려갔어요.
② ‘굴러라, 굴러라. 느림보 두꺼비가 쫓아오지 못하게 빨리빨리 굴러라.’
호랑이는 굴러가는 떡시루를 신나게 쫓아갔어요. 얼마나 빨리 달려갔는지 떡시루보다도 더 빨리 내려가 밑에서 떡시루가 굴러 내려오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요? 구르던 떡시루에서 떡이 하나둘씩 밖으로 튕겨 나오는 게 아니겠어요? 호랑이는 그것도 모르고 침을 흘리며 떡시루가 내려오기를 기다렸지요.
한편, 두꺼비는 뭉그적뭉그적 산에서 내려오다 이곳저곳에 떨어진 떡을 보았어요.
“아니, 이게 웬 떡이야.”
신이 난 두꺼비는 떡을 한 점 두 점 맛있게 주워 먹었어요.
“역시 떡은 쪄서 바로 먹는 게 맛나다니까! 쫄깃쫄깃 고것 참 맛나네. 냠냠!”
두꺼비는 땅에 떨어진 떡을 주워 먹으며 천천히 내려갔어요.
잠시 후 호랑이는 드디어 떡시루를 ‘탁’ 붙잡았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이에
요. 떡시루 안에는 떡이 하나도 없지 뭐예요. 그제야 호랑이는 깜짝 놀랐어요.
“어라? 내 떡! 내 떡이 다 어디로 갔지? 어흥”
호랑이가 산 위쪽을 쳐다보니 두꺼비가 떨어진 떡을 주워 먹는 게 보였지요. 괜한 욕심 때문에 호랑이는 떡 한 점 못 먹게 되었답니다.
15주차
김성일의 용기는 어디서 났을까
조선 시대에 김성일이라는 아이가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김성일은 생각이 깊고 차분했어요.
하루는 김성일과 친구들이 울퉁불퉁 바위가 많은 언덕에서 전쟁놀이를 하며 놀고 있었어요. 편을 나누어 나무 막대기를 들고 서로 쫓고 쫓기며 가파른 언덕과 바위 사이를 겁도 없이 뛰어다녔어요.
“적군이 나타났다! 어서 도망가자!”
“적군이 도망간다. 뒤를 쫓아라!”
아이들이 전쟁놀이에 푹 빠져 있던 그때였어요.
“으악!”
친구에게 잡힐까 봐 정신없이 도망치던 한 아이가 발을 헛디뎌 그만 언덕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아이들이 언덕 밑을 내려다보니 떨어진 친구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어요.
“많이 다쳤니? 괜찮아?”
떨어진 친구는 대답도 없었고, 움직이지도 않았어요.
“어, 어떡하지? 대답도 안 하고 움직이지도 않아!”
“주, 죽은 거 아니야?”
“무서워, 난 집에 갈래!”
겁이 난 아이들은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단 한 친구 김성일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어요. 아이들이 모두 사라지자 김성일은 용기를 내어 친구가 떨어진 곳을 조심스레 내려다보았어요.
“으으…….”
마침 친구가 끙끙 신음 소리를 냈어요.
① ‘다행이야! 친구는 살아 있어!’
마음이 놓인 김성일은 갑자기 온몸에 힘이 쭉 빠졌어요.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도 후들거렸지요.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어요.
① ‘저대로 계속 있다가는 상처가 더 심해질지도 몰라. 빨리 마을에 가서 어른들에게 도와 달라고 해야겠어!’
② “내가 어른들을 모시고 올게. 아파도 조금만 참고 있어!”
김성일은 친구에게 큰 소리로 말하고는 있는 힘을 다해 마을로 뛰어갔어요. 김성일의 말을 들은 어른들은 서둘러 친구를 구해 의원에게 데리고 갔어요. 친구는 크게 다쳤지만 빨리 치료한 덕분에 금방 나을 수 있었어요.
이 일은 온 마을에 금세 퍼졌어요. 어린 김성일이 큰일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용기 있게 행동한 것에 대해 다들 감탄했지요.
“어린아이가 많이 놀랐을 텐데 어쩜 그리 차분하게 행동했을까?”
“그러게. 다른 아이들은 무서워서 다들 도망쳤다는데 말이야......”
그 후 김성일은 더욱더 책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책을 읽고 있으면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았지요.
① ‘책 속의 이야기는 하나도 틀린 것이 없어. 책이 가르쳐 준 대로 행동하면 앞으로 무슨 일을 겪어도 무섭지 않을 거야. 그래,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죽을 때까지 배움을 멈추지 말자!’
그런 김성일의 영특함과 인품을 한눈에 알아본 퇴계 이황은 김성일을 제자로 삼았어요. 퇴계 이황은 그 당시 이름을 떨치던 유명한 학자였어요.
훗날 김성일이 과거 시험에 당당히 합격해 벼슬에 오르자 이황이 임금님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③ “전하, 김성일의 학문과 됨됨이는 스승인 저보다 뛰어납니다. 나랏일을 올바로 보살피는 데 있어 어긋남이 없을 신하가 될 것입니다.”
모두에게 존경받던 이황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임금은 김성일을 매우 아꼈어요.
벼슬에 오른 김성일은 여전히 책의 가르침과 용기를 따랐어요. 임금님이 싫어하는 기색을 보여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거리낌 없이 바른말을 했어요. 옳지 않은 일을 보고 그냥 넘어가는 법도 절대 없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김성일을 ‘조정의 호랑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임금님은 이런 김성일의 대쪽 같은 성격을 칭찬하며 중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나 김성일의 생각을 묻곤 했대요.
김성일은 어려서부터 책 읽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흔들림 없는 지혜와 용기가 생긴 거랍니다.
16주차
정직한 선비 이산두
옛날 조선 시대에 욕심 없이 살아가는 선비가 있었어요.
그 선비의 이름은 이산두였어요.
이산두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정말 좋아했어요.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꼿꼿하게 앉아서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책 읽기에 빠져들었지요. 마치 흙으로 빚은 인형이 된 것 같았어요.
‘책을 읽으면 심심하지 않으니 책은 진짜 좋은 친구야.’
이산두가 벼슬길에 오르기 전에 있었던 일이에요. 나라에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책 읽기 대회를 열었어요. 어려운 책을 외워서 말하는 대회였지요.
책 읽기 대회는 나랏일을 할 사람을 뽑는 자리였어요. 그래서 임금님이 지켜볼 때도 있었어요.
이산두도 열심히 책을 읽고 외워서 대회에 나갔어요.
“아, 너무 떨려. 아무 말도 못하겠어.”
① 어떤 사람은 외운 내용을 잊어버려 우물쭈물했어요. 그러면 시험 감독관이 큰 소리로 “불통!” 이라고 말했어요. ‘불통’이란 시험에 통과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책 읽기 대회에서 떨어졌다는 거예요.
잘한 사람에게는 시험 감독관이 “순통!” 이라고 말했어요. ‘순통’이란 시험에 통과했다는 뜻으로, 책 읽기 대회에 붙었다는 걸 의미해요.
드디어 이산두의 차례가 되었어요. 이산두는 침을 꿀꺽 삼키고 침착하게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다른 사람들은 책에서 쉬운 부분만 골라 외웠어요. 하지만 이산두가 외운 것은 어려운 한자가 가득 쓰인 부분이었어요.
이산두는 크게 숨을 내쉬고 나서 첫 단어를 뱉었어요. 그리고 침착하게 외우기를 끝내자 감독관이 외쳤어요.
“순통!”
사람들도 기뻐하며 짝짝 박수를 쳤지요.
“와! 대단한 사람이다.”
대회를 무사히 마친 사람들 중에서 일등을 뽑는 시간이 되었어요. 감독관들은 모두 이산두에게 일등을 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어요.
바로 그때였어요. 이산두가 앞으로 나오더니 무릎을 꿇고 머리를 푹 숙이는 게 아니겠어요.
② “저에게 순통이 아니라 불통을 내려 주십시오!”
이산두의 말에 대회장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해졌어요.
“그게 무슨 말이냐? 순통을 받은 사람이 불통을 내려 달라니?”
③ “한 글자가 틀렸습니다. 확인해 보니 비슷한 다른 글자로 외워 말했습니다.”
이산두의 말에 모두 깜짝 놀랐어요. 감독관들도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거든요.
“그래, 어느 글자냐?”
④ “가운데에 있는 마지막 글자입니다.”
감독관들이 확인해 보았어요. 이산두가 한 글자를 잘못 말한 것은 사실이었어요.
“우리도 알아채지 못한 부분이구나. 불통을 받으면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고 벼슬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도 괜찮겠느냐?”
감독관 중 한 명이 이산두에게 물었어요.
⑤ “제가 순통을 받는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어찌 감히 임금님을 속이고 다른 사람들을 속이며 대회를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 벼슬을 하려는 사람은 그렇게 해서는 안되지요!”
이산두는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그러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어요.
“저 선비가 잘못 읽은 것을 아무도 몰랐는데, 용기 있는 사람일세!”
“허허, 저렇게 당당하게 밝히다니 정말 정직한 사람이군!”
감독관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리쳤어요.
“이산두, 불통!”
결국 이산두는 불통을 받고 대회에서 떨어졌어요.
이 모든 일을 묵묵히 지켜보던 임금님은 이산두의 행동에 크게 감탄했어요.
⑥ “우리 조선에는 작은 실수라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더구나 나랏일을 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자세는 정직함이 아니겠는가. 이산두야말로 가장 큰 정직함을 가졌구나!”
임금님은 이산두에게 큰 상을 내려 그의 정직함을 칭찬했어요.
이산두는 그다음 해에 당당히 책 읽기 대회를 통과해 벼슬길에 올랐어요. 임금님은 이산두를 믿고 나랏일을 맡겼지요. 이산두는 높은 자리에 올라서도 정직하고 바른 행동을 보여 주었어요.
시간이 흘렀어요. 이산두는 나이가 많이 들어 더 이상 임금님 곁에서 나랏일을 할 수 없게 되었어요.
‘이산두의 모습을 보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깝구나.’
임금님은 가까이에서 이산두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의 얼굴을 그려 오게 했어요.
⑦ “여봐라! 모든 신하들은 이산두의 정직함을 배우도록 하라!”
임금님은 이산두의 그림을 걸어 두고 신하들이 본받기를 바랐답니다.
17주차
견우와 직녀
멀고 먼 옛날, 하늘나라 임금님에게 마음씨도 곱고 얼굴도 고운 딸이 하나 있었어요. 그 딸의 이름은 직녀였어요.
직녀는 옷감을 참 잘 만들었어요.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옷감을 만들었지요. 하늘나라 사람들은 직녀가 만든 옷감으로만 옷을 지어 입었어요.
하늘나라에 꽃향내 가득한 봄이 왔을 때였어요. 직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요.
“향긋한 꽃향내를 옷감에 수놓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직녀는 예쁜 꽃들을 따다가 옷감에 수놓기로 했어요. 은은한 꽃향내가 옷감에 스며들게 말이죠. 직녀는 대궐 밖 들판으로 나갔어요. 그때 멀리서 소 떼를 몰고 가는 한 사내가 보였어요. 사내는 소를 몰며 풀잎피리를 불었어요. 직녀는 풀잎피리 소리에 푹 빠졌지요.
① ‘아, 풀잎피리 소리가 내 마음을 울리는구나.’
풀잎피리를 불던 사내도 직녀를 보자마자 그 예쁜 얼굴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지요.
“저는 소 모는 목동, 견우라고 합니다.”
사내는 직녀에게 자기 이름을 말하며 다가왔어요.
견우와 직녀는 서로 보자마자 한눈에 좋아하게 되었어요. 마침 직녀의 신랑감을 찾던 임금님도 소를 열심히 돌보는 견우가 마음에 쏙 들었어요.
둘은 하늘나라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어요. 부부가 된 견우와 직녀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요.
② “날씨도 좋은데 꽃구경이나 갈까요?”
견우가 직녀에게 말했어요.
“정말요? 소를 돌보아야 하지 않아요?”
직녀가 걱정하며 물었지요.
“소는 들판에 풀어 놓으면 알아서 잘들 지내요.”
견우와 직녀는 하던 일도 잊고 매일 놀러 나갔어요.
③ “옷감은 언제 만들고, 소는 누가 돌보라고 저렇게 매일 놀러 다니실까?”
④ “허허, 한참 좋을 때잖아요. 곧 다시 일하실 거예요.”
하늘나라 사람들도 처음엔 두 사람이 빈둥빈둥 노는 모습을 예쁘게 지켜봤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두 사람은 놀기만 하고 일을 하지 않았지요.
⑤ “옷감이 다 떨어져서 옷을 지을 수가 없어요.”
⑥ “소들이 풀을 못 먹으니 바짝바짝 마르고 있어요.”
하늘나라 사람들은 더는 참지 못하고 임금님에게 말했어요. 이 말을 들은 임금님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어요. 임금님은 견우와 직녀를 불러 두 사람에게 큰 벌을 내렸어요.
⑦ “너희 둘은 당장 궁궐 밖으로 나가 따로따로 살아라! 직녀는 은하수 서쪽에서, 견우는 은하수 동쪽에서 지내며 하루도 쉬지 말고 일해야 한다!”
두 사람은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되었지요.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견우와 직녀는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어요. 마음이 약해진 임금님은 일 년에 딱 한 번 음력 7월 7일에만 은하수 강을 사이에 두고 만나도록 허락해 주었어요.
시간이 흘러 드디어 7월 7일이 되었어요. 견우와 직녀는 한달음에 은하수 강으로 달려갔어요. 하지만 은빛 강물은 넓고 깊어 건널 수가 없었지요. 견우와 직녀는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엉엉 울기만 했어요. 두 사람이 흘린 눈물은 땅 위 숲과 마을을 온통 물바다로 만들었어요.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세상이 온통 물바다잖아.”
“아유, 견우님과 직녀님이 서로 만나지 못해 흘리는 눈물이라네그려.”
땅 위에 살던 사람들과 동물들은 칠석만 되면 물난리를 겪어야 했어요.
또다시 시간이 흘러 칠석이 되었어요.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 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울기 시작했지요.
그때였어요. 까치와 까마귀들이 날아와 머리를 맞대어 길고 튼튼한 다리를 만들었어요.
⑧ “견우님, 직녀님! 어서 은하수 강을 건너세요. 앞으로는 저희가 다리를 만들어 드릴게요.”
까치와 까마귀가 만든 다리 덕분에 두 사람은 드디어 만나게 되었답니다.
“견우님! 흑흑!”
“직녀, 그동안 잘 지냈소?”
오랜만에 만난 둘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어요. 물론 슬픔의 눈물보다 그 양은 적었지요. 다행히 땅 위 사람들은 물난리를 걱정하지 않게 되었어요. 사람들은 까치와 까마귀가 만든 다리를 오작교라고 부르며 고마워했어요.
그 후 매년 칠석날이 되면 견우와 직녀는 오작교 덕분에 만날 수 있게 되었지요. 두 사람이 만나 흘리는 기쁨의 눈물은 방울방울 비가 되어 땅을 촉촉하게 적셨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