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조끼를 단단히 메고 호수 깊숙이 카누를 젓는다
며칠 전부터 망설이며 벼렸던 일로 호수를 가로지를 셈이다
이제는 수영에도 자신이 없을뿐더러 이전 같지 않은 체력이니 조심조심한다
바닥이 깊은지 물빛이 거무죽죽해서 깊이를 가늠할 수 없고 생각했던 것보다 물비린내가 많이 난다
물비린내가 맞는 말인지 물때가 끼인 냄새인지는 모르겠다
맑아 보였던 계곡물에서도 아마 이런 비슷한 물 내가 났었다
호숫가에서 볼 때는 맑은 푸른색이더니 깊은 곳은 딴판이다
시커멓고 거뭇해서 그렇겠지만 별것도 아닌데 더럭 겁을 준다
검푸른 물살이 훅 달려들 것 같으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이럴 때는 몇 사람 일행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호숫가로 노를 저었다
깊은 호수에서 혼자 카누를 타는 건 매우 위험하다
홀가분하고 자유롭다는 예찬은 간뎅이 부은 소리이며 육지에서나 해당되는 말이지 호수 깊은 곳은 예외다
진땀이 날 만큼 등짝이 서늘했으니 혼자서 삐질 거리며 나다닐 일은 아니다
어쨌든 세상에서 거뭇거뭇한 것 치고 보석 같은 건 없는 법이니까
심보가 거무튀튀한 녀석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물 맑고 인적 끊긴 곳이니 별다른 솜씨 없이도 커다란 물고기가 심심찮게 낚인다
민물고기 낚시는 오래전 홍천강에서 처음 했던 것이 전부다
잔챙이 물고기를 친구들과 술김에 매운탕으로 끓인 적이 있지만, 이곳 물고기는 크기와 생김새가 딴판이다
떡밥이나 미끼 없이도 이름 모를 팔뚝만 한 물고기를 첫 낚시에서 세 마리를 잡았다
낚시대 벗 댕기는 푸덕거리는 손맛에 끌려 며칠간은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막상 잡은 물고기 처리가 고민이다
바다 생선과는 완연히 구분되는 민물고기의 미끈거리는 감촉과 심한 비린내가 취향과는 거리가 멀고
뭔지 모르게 민숭한 듯 칼칼해 보이지 않아 찜찜하다
잭은 기름에 튀긴다고 했지만, 워낙 커서 손질할 엄두가 나질 않고 밋밋해서 미끈거리는 게 내키지 않으니
그냥 버리는 게 나을 듯하다
양손을 한참 씻어도 오랫동안 미끈거리는 감촉과 비린내가 가시질 않는다
어디 탈탈 털어서 씻어내야 할 게 비린내뿐일까
죽음의 가벼움이다
하나의 생명이 한나절 가벼운 유희가 되어서야 하늘이 노할 것이니
낚시는 그만두어야 하겠다
-정해진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책 읽으며 지내기로 작정하고 상당한 양의 책을 준비했는데 아주 답답하다
생각보다 책 읽기 진도가 나가지 않기 때문이다
한두 시간 앉았으면 어깨가 결리며 엉덩이가 아프고 답답해져서
몇 페이지 읽지 못한 체 제쳐두고 다른 책 몇 페이지 건성으로 넘기다가 다시 던져버린다
어째서 이다지 책 읽기가 고된가?
유독 몇 권의 내용이 취향에 맞지 않아 그럴까
또 다른 책을 들추어 보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비유나 은유가 사뭇 현실과 유리되어 모래를 씹는듯한 이질감
조선백자에 화려한 색깔을 입힌 듯한 생뚱한 구성
난데없는 축약과 과장된 비약
이해하기 힘든 난해한 문장
부조리에 대한 비판이라는 도식적인 설정
내면 의식의 묘사가 취중에 흘려 쓴 글처럼 보이고
아동용 동화 같은 구성과 데생 수준의 묘사는 눈에 그대로 드러난다
많은 양의 책을 준비했는데 전부 몇 페이지만 넘기다 말았으니 내게는 작가의 고명이 허명이 돼버린 셈이다
작가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한 권의 책도 완독을 못 하겠다
문학은 삶이 투영되는 거울이라는데
설마 저런 글을 뻔뻔하게 세상에 내밀지는 않았을 것이고 나름대로 고뇌의 산물일 테니
독서가 힘이 드는 까닭은 책과 담쌓고 지냈던 기간이 너무 길었고 독서량이 부족한 나의 무지함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책 읽는 흥미가 떨어지고 고되기만 하니 긴 시간을 뭘 하고 지내야 할지 예삿일이 아니다
-원색의 세상에서 멀어져 보면 영롱한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사람 손때 타는 것이 안타까울 만큼 순수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물기 머금은 연두색의 가녀린 생명을 보듬을 수 있고
날개 없는 몸이 가없는 허공으로 솟구치기도 하고
푸른 호수는 비늘이 없고 아가미가 없는 몸일지라도 들숨 날숨 숨쉬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원색의 세상에서 떨어져 보면 작은 것이 소중하고 귀함을 헤아리게 된다
세제 가득 풀어 종일 세탁기 돌리고
얼굴에 분칠하는 것이 그 얼마나 어리석은 짓임을 깨닫게 된다
게 중에는 질겁하며 어째 그리 곰팡내 나는 케케묵은 소리냐 하겠지만
멋스럽고 귀중한 것은 외면이든 내면이든 담백할 만큼 꾸밈없는 것들의 어우러짐이라는 것을
당연히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밥을 일일이 지어야 하는 게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고 반찬 할만한 게 없으니 고생이다
통조림 햄을 잘게 잘라 기름 들러 볶아 고추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성가셔 통조림 고등어찌게는 엄두가 나지 않으니 젓갈 하나로 마른 밥을 먹는다
밥에 김을 뿌리고 참기름과 고추장에 비비기도 하고
쥐포 오징어포를 고추장 찍어 먹는 것도 한두 번이라 싱싱한 야채 생각에 속이 더부룩하다
라면도 하루 이틀이지
먹을 때는 그냥저냥 먹지만 며칠 계속하니 속이 볶여서 고되다
화장지를 넉넉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도 큰일이다
이전에는 신문지 조각으로 뒷간 출입을 했으니 그 불편이 오죽했을까
아무튼 뒤 처리법을 세세히 적기는 그렇고 자연 친화적인 방법도 익숙해지면 그런대로 위생적이기는 하지만
원치 않게 삼사 천년쯤의 상고시대 삶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적응이 쉽지 않다
머릿속의 생각을 몸이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깊게 베인 습관이다
보는 사람 없어 우세스럽지는 않지만, 아무리 그래도 환골 한답시고 신선이나 원시인이 될 수 없으니
오늘은 화장지 구입하러 나가보아야겠다
손톱깎이도 있어야 하겠고 부족하고 필요한 것이 여럿 된다
적당한 식당이 보이면 든든하게 뭘 좀 먹어야겠고 가끔 허기가 지고 수염도 안 깎았으니
못 얻어먹은 빈한 티가 졸졸 흐른다
아무래도 왕복에 두어 시간쯤 걸릴 것 같다
하찮게 여겼던 작은 것의 결핍이 가장 불편하고 고역스럽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거세게 바람 일고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
숲속의 비는 들판의 비와는 다르다
들판의 비는 소리 없이 내리지만 숲 속의 비는 한기를 머금었다
싸아 싸악 거리는 바람 소리가 그래서 더욱 차가운 냉기를 뿌린다
바닥에서부터 울려오는 듯한 바람 소리가 허공으로 번져나가며 큰 소리를 내고 있다
호수가 뒤집어지고 온 숲이 깊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무섭다
창문과 출입문을 확인할 만큼 소름이 끼친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포개진 듯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바람 소리는 차가워서 더욱 무겁고 깊어 진하다
숲은 고요할 때도 무섭고 이렇게 소리쳐 울 때도 무섭다
애초에 자연은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 무섭다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나의 욕심만은 아닐 것이다
홀로 떨어져 마주할 이 없는 이곳에서도 떨쳐내지 못하는 욕심을 돌아본다
밤새 바람 냄새가 진했고 호수는 쉴 새 없이 부풀었다
-곰이다
먼 곳에 언뜻 보이는 곰을 발견했다
잭은 곰과 마주칠 때는 자극하지 말고 가만히 지켜보면 문제없다고 했지만
막상 막다 뜨리니 긴장이 된다
먼발치에 보이던 곰이 어슬렁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아마 세 마리쯤 되어 보였다
집 바깥에 관심 끌 만한 먹이가 될만한 것이 있을까 싶어 서둘러 주변을 정리하고 출입문의 걸쇠도 재차 확인했다
설마 저놈들이 잠든 야밤에 문을 부수고 집안으로 들어오지는 않겠지
안전하게 자동차에서 잘까?
처음으로 겁이 조금 났다
잭은 야생동물 때문에 초음파 발생 장치를 트럭에 달고 다닌다고 했다
달빛이 밝아 창문이 훤하다
유난히 밝아 이마에도 내려앉았다
아무렴 외진 곳에서는 달이 뜨는 게 낫지
문득 아홉시간의 거리만큼 떨어진 집이 가까운 곁이 아니라 아주 먼 곳이라 생각했다
달이 떴으니 내일은 맑겠다
첫댓글
많은 양의 책을 준비했어도
완독한 책이 없다란 말씀에
수긍의 느낌도 가지게 됩니다.
아무도 없고
바쁘지 않고
어떤 것에 사로 잡히지 않는다면
글쓰기가 참 좋다는 생각입니다.
단풍들것네님은
차라리 작가가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소설을 엮어 가듯이
분위기의 묘사를 잘 하시는 것
같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책을 멀리했던 시간을 새삼 느꼈습니다
특히 70년생 이후의 다소 젊은 작가들의 글은 읽기가 아주 힘이 들었어요
깨끗한 마음은 턱도 없고
저는
내가 물든 만큼
남의 오염에도 관대합니다.
내게 엄격한 만큼
타인도 그러라 하는 게 심리이더군요.
자신을 너무 닥달하면 병이 납니다.
내게 너그럽고
타인에게도 너그럽자.제 생각입니다.
작가들이
책으로 엮는 글은 책임감이 있어야지 싶어요.
돈을 주고 사 봤는데 실망을 많이 했습니다.
타인에게 너그럽기는 고수들이 할수 있구요
제 경우에는 자신의 잘못은 못보고 아직은 남 탓만 하지요
책, 읽는것이 아주 힘들었어요
특히 요즈음 젊은축 작가들의 글은 이해불가였습니다
사람은 적당히 어우러져야 살 수 있는것 같습니다
이런말 있죠
일에 치이면 힘들어서 죽겠단 사람에게
놀고 먹으라고하면 심심해서 죽겠다고 합니다
적당한 어울림이
우리가 살아온 환경입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니
여러가지 힘듬이 나타나는것 같습니다
마지막 글로 넘어 가겠습니다
네 맞는 말씀입니다
어울려 사는 게 인생이지요
무신 독불장군이라고
티브 출연하는 자연인들 행복하다던데 치장한 말이겠지요
인터넷이 없는 곳에 일주일 이상 있으려면 독서에
익숙치가 않아 힘들 것 같습니다.
떨어져 원시적인 일상을 보내려니 필요한 것이
세삼 두르려 질 터, 이래저래 좋은 경험이지요.
낭만도 하루이틀 힐링도 하루이틀이지
장기간 하려면 모든것이 지겹지요.
골프도 맨날 치면 노동이 되듯이 ㅎ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책좀 읽어야지 했는데요
막상 시간내어 책 읽으려고 하니 아주 힘들었어요
특히 신진 작가들의 글, 도대체 이게 글인가 할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너무 오래 책과 떨어져 지내서 그렇겠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ㅋ
싱싱생선 무공해 야채 정 많은 사람들 ~~~
전혀 아닙니다
못 얻어 먹어 식겁했습니다
두번 다시 만용 부리면 안되지요, 이제 더 이상은 땡입니다
잡은 고기의 사진을 보니 무지개 송어를 닮은듯도 한데
생선살이 붉은색은 아니던가요?
오지에서의 자연인 체험 한달간 부럽습니다.
낚기만 했지
요리는 엄두가 안나서 그냥 버렸습니다
민물고기는 아주 비리더군요
오지체험 권장할만한 일은 아니던데요
"독서는 일이다 ~ "
새삼 최재천 선생의 말이 실감이 납니다.
일이다 보니 체력, 정신력이 엄청 소모된다는
얘기고 아주 똑바른 자세가 아니고는 오래 버티기
힘든것이라는걸 , ㅎㅎ
허긴 요즘 책 보기가 넘 지루하고 끝까지 돌파하는
경우는 아주 희귀 하더만요!!
비린내 나는 물고기, 습기많은 호수, 다양한 요리법 습득
아무래두 사전 몇가지 훈련이 필수라는 생각이 드누만요.
한 6개월 별도 훈련하고 재 도전하시믄 헨리 쏘로우를 능가하는
수상록이 탄생되지 않을까? 뭐 그런 예감이!!
ㅋ
수상록~
제 아내가 웃습니다 , 카페에 올리는 그기 무신 글이가
독서도 습관이 안되니 노동이던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