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내 생일이 열린 것이다. 아직 어둠이 물러나지 않아 어둑어둑하다. 시계를 보니 시침과 분침은 3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다. 한 숨 더 잘까 하다가 그냥 여느 때처럼 아침운동을 하기로 했다.
윗몸을 일으켰다 누웠다하며 허리운동을 30회 하고, 양쪽 발바닥 용천혈을 양손 엄지손가락으로 100번쯤 마사지를 했다. 이어서 두 손으로 종아리 마사지를 200번 하고, 드러누워서 발끝 부딪히기를 천 번 했다. 이 발끝 부딪히기를 몇 년 동안 해서 그런지 지금 나는 돋보기 신세를 짓지 않고도 신문이나 책을 읽는다.
운동을 한 뒤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알칼리이온 수 한 컵을 받아서 벌컥벌컥 마시고, 거실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을 검색한다. 문자와 영상화면을 살펴보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소식을 띄운다.
오늘은 2017년 10월 5일! 일흔다섯 번째 맞는 내 진짜생일이다. 시방 우리 집에는 아내와 나 둘밖에 없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의 출발이지만, 오늘따라 조금은 쓸쓸하다. 아들딸과 손자손녀들이 없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열어보니 추석연휴라 그런지 첨삭해달라는 수필이 한 편도 없다. 다행이구나 싶다. 시간이 넉넉하여 해방감에 젖는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하나하나 읽어보며 댓글을 달아도 시간이 남아돈다. 여러 곳에서 생일을 축하한다는 축하 글들이 답지했다. 그래도 고맙다. 나를 생각하여 축하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행복이 아닌가?
검색창에 ‘윤항기’를 입력하고 클릭하니 그의 히트곡 ‘나는 행복합니다’란 노래가 뜬다. 소리를 크게 키우고 감상하다가 샤워를 시작했다. 기분이 상쾌하다. 거울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시작한다. 2남1녀 내외와 손자손녀 그리고 동생내외와 우리 내외를 일일이 거명하며 기도를 한다. 이것은 날마다 되풀이되는 나의 일과다.
아내와 마주보며 식탁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아내가 끓인 미역국과 갈비가 내 눈을 끈다. 고맙다는 생각을 하며 아침식사를 마쳤다. 카카오스토리에 생일에 관한 푸념을 끼적여 올려놓았다.
사실 올해의 내 가짜생일 잔치는 이미 지난 9월 23일 일요일 낮 12시에 가졌다, 서울 양재동 오미가(五味家)란 한정식집에서 큰아들과 딸네 식구들이 모두 모여서 식사를 했다. 여느 때처럼 손자손녀들은 생일축하 편지글을 낭독했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일일이 원고료를 건네주었다. 이번 편지글의 장원은 큰 외손자가 차지했다. 내용이 충실하고 내가 들어도 감동할 만한 수준의 편지글이었다. 미국에 사는 작은아들의 동윤이와 윤서 남매는 바이올린으로 생일축하노래를 연주하고, 할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카톡영상으로 보내주었다. 고마웠다. 나는 그 손자손녀들에게도 출연료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화려한 생일잔치를 치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짜 생일잔치였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진짜생일이 되니 쓸쓸하다. 욕심이란 한이 없는 것 같다.
나는 가끔 우리 옆집 조 선생을 부러워한다. 나보다 연상이신 조 선생은 일찍이 내 고향 삼계지서장을 지낸 퇴직경찰관인데 참 겸손하고 부지런한 분이다. 조 선생의 아들과 딸들은 전주에 사는 것 같다. 주말마다 조 선생 댁으로 모여들어 즐기며 대가족제도의 장점을 잘 살려간다. 또 명절이면 가까이 사는 자녀들이 바리바리 선물을 사들고 찾아와 함께 음식을 마련한다. 그럴 때마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놓고 일을 하니, 고소한 음식냄새는 초대하지 않은데도 우리 아파트까지 들어온다. 문을 닫아놓아도 틈새로 찾아든다. 우리 부부는 공짜로 값 비싼 음식냄새를 맡는다. 그런 날이면 우리 부부의 입은 코를 부러워한다. 조 선생 댁은 우리의 식욕을 자극하고자 일부터 현관문을 열어놓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몹시 부럽다. 괜히 아이들을 서울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던 게 후회스럽기도 하다.
조 선생은 틈만 나면 부부가 탁구장에 가서 운동을 하기도 하고, 아파트 뒤쪽에 화단을 만들어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가하면, 스트로폴에 흑을 담아 상추와 가지, 고추 등을 재배하기도 한다. 날마다 쓰레기 비우기는 조 선생의 몫이다. 본받을 게 많은 분이다. 또 우리 내외가 해외여행을 떠나면 신문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건네주기도 한다. 나는 조 선생 같은 이웃과 함께 사는 게 행복하다.
오늘은 내 진짜생일이라서 그런지 날씨마저 화창하다. 오후엔 아내랑 함께 메가박스에 가서 올 추석 때 개봉한 ‘남한산성’이란 영화를 감상했다. 만석을 이룬 것으로 보아 이 영화도 관객 천만 명을 돌파하려니 싶다. 그런대로 아내가 곁에 있어서 즐겁게 보낸 나의 진짜생일이다.
(2017. 10.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