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란(君子蘭)의 삶
군자란 (Clivia miniata)
학명을 찾아보니 수선화과 (水仙花科 Amaryllidaceae)에 속하는 상록다년생 화초라 써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초
어느 집이나 한 그루씩 있는 군자란
일명 수소군자란(垂笑君子蘭)이라고 하는 란(蘭) 이 내 집에 온 것은 한 30여년쯤 되었다.
그러고 보니 꽤나 긴 세월을 나와 함께 한 집안 식구로 살아 온 샘이다
30년 전 3월 마당이 있는 조그마한 집으로 이사 할 때
연구소 동료들이 꽃이 활짝 핀 같은 종류의 군자란 화분 두개를 집들이 선물로 사온 것이다.
꽃에 대한 문외한(門外漢)인 내가 이렇게 오랜 세월 군자란을 내 곁에 두고 보는 것은
특별하게 그 꽃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키우기가 쉬울 뿐더러
많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잘 자라는 화초이기 때문이다.
굳이 좋아하는 이유 하나를 든다면 장미나 벚꽃처럼
벌이나 나비를 유혹하는 향기를 내지 않아도
꽃망울마다 토실토실 열매를 맺기 때문이어서 일까?
게으른 사람이 란(蘭) 을 잘 키운다는 말이 있듯이 이 군자란도 명색이 란이라
약간의 신경은 써야한다 이를테면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되는 비결
그래서 나 같은 문외한도 란을 잘 키울 수 가 있다
새봄이 시작되는 2∼4월에 잎 사이에서 곧고 굵은 꽃대가 길게 나와
그 끝에 수선화처럼 생긴 주황색 꽃이 10∼20개 핀다.
이렇게 예쁜 꽃을 보려면 열대식물이지만 영하 1~3도 되는 추운겨울
얼지 않을 정도 밖에 잠간 내 놓았다
실내로 들여오면 그 해 아주 탐스럽고 예쁜 꽃을 볼 수 가 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내 집에 있는 이 두개의 군자란 중 하나는 번식은 하지 못 하면서
한 그루에서 2~3개의 꽃대가 나와 화분가득 예쁜 꽃을 피우고
다른 군자란은 꽃은 비록 왜소하고 초라하지만 매년 2~4개의 새끼를 친다
그러니 하나는 번식 대신 탐스럽고 아름다운 꽃을 많이 피우고
또 다른 하나는 꽃보다는 자손을 많이 번식하여 대를 잊는 데 온갖 힘을 다 쏟는다
같은 종류의 군자란이지만 이렇게 서로 다른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식물이나 동물이나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룰 같은 것이 있나보다 생각하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새끼를 치지 않던 군자란이 조그마한 예쁜 새끼를 친 것 아닌가
늦기는 했지만 때가 되니 자손을 갖는구나 싶어 짜릿한 감동마저 느끼게 한다.
30년 동안 식구 없이 홀로 쓸쓸히 살던 이 군자란 집에 큰 경사가 난 것이다
전 보다 잎도 더 싱싱하고 생기가 돋아 보였으며 이 어미군자란을 보는
나도 내 집 식구 하나 더 느는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다
새로 태어난 새끼군자란은 그동안 무럭무럭 자라
잎이 떡 버러지고 제법군자란다운 자태를 뽑 낸다
여름이 마지막 가는 얼마 전 나는 새끼를 친 어미군자란에서 좀 이상한 것을 발견 한다
그렇게 싱싱하던 군자란이 잎이 축 늘어지고 빛깔도 우중충하며 생기도 없어 보였다,
그 어미군자란을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봐도 별다른 이상은 찾지 못 했다
이 어미가 늙어 새끼를 치느라 몹시 지쳤나보다 싶어 동네 꽃집에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했더니
꽃집 주인 빙그레 웃으며 영양분이 부족하여 그럴 거라며 봉투에든 거름 한 봉지를 준다.
난생처음으로 영양제를 맞는 어미 군자란이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수건으로 잎도 닦아 주고 특별히 보살펴 주었지만
몇 일이 지나도 어미군자란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병세가 더욱 악화되는 듯 전혀 생기가 없다.
그 후 한 달쯤 지나 병색이 가득한 어미군자란 을 살며시 잡고 흔들어 봤더니
군자란 전체가 힘없이 뽑히고 말지 안는가 그리고 뿌리는 다 썩고
이미 죽었으면서도 살아있는 것처럼 서있는 것이다
쓰러지면 갓 태어난 새끼군자란이 칠가 봐 서서죽은 것일까?
어미 죽은 줄 알면 어린 새끼 의지 할 엄마 없다 서러워할까 그랬을까?
여름이 오면 따가운 햇 빛을 가려줄 그늘이 없어질 가 봐 이렇게 서서죽었을까?
어미군자란의 죽음에 대하여 여러 가지 상상을 다 동원하였으나
군자란의 죽음과 죽어서도 오랫동안 살아있는 것 처 럼 서있는 것을 알 수가 없다.
아무리 식물이지만 이 어미군자란의 자식사랑의 본능 같은 것을 보면서
생명체의 오묘한 진리 하나를 깨달은 것 같다.
그러나 불변의 진리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식물 그 어느 생명체나 매한가지
생과 사의 법칙 윤회의 질서를 거역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를 이을 자식이 태어났으니 자기가 살고 있는 터를 기꺼이 내어 주는
어미군자란의 삶에서 비록 식물이지만 우주의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죽음
이 미미한 존재의 식물도 탄생과 소멸의 질서를 지키는 법칙을 가르쳐준
어미군자란의 삶에서 내 사는 삶 을 되돌아보게 된다.
죽은 어미군자란의 잎을 잘게 썰어 새끼군자란 옆에 뿌려주고
어미가 살았던 큰 화분에서 엄마 없이 홀로 외롭게 사는 새끼군자란의 삶을 보면서
내 비록 유불여무(有不如無)같은 사람이지만 잡가기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보고 싶어
그들이 사는 집으로 간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봄기운이드는 2월 첫 날.
봄이 창문 밖에 서 있습니다.
미리 읽어 보는 당나라의 여류시인 설도(薛濤)의 봄에 서시 한 편 올립니다.
春望詞(춘망사)
薛濤(설도)
花開不同賞(화개부동상)
花落不同悲(화락부동비)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 봄을 바라보며 -
꽃이 피어도 당신과 함께 감상할 수 없고
꽃이 져도 당신과 함께 슬퍼할 수 없네요.
그리운 당신께 물어 봅니다.
꽃 피고 꽃 질 때 무슨 생각하시나요?
2008.2.1.
학소당에서
연지평 합장
올해도 군자란이 예쁘게 꽃을 피워 올렸군요.군자란을 키우다 보면 일년에 한번 꽃대를 세우고 어렵게 올라와 탐스러운 꽃송이를 만들때까지 기다림이 있어 그 꽃이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새끼를 치고 죽어가는 어미 군자란의 시들어감을 보면서 느끼시는 소감을 담담히 적어 놓으셨습니다.무릇 세상의 어미들은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지요.꽃나무 하나 죽는게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어미의 죽음이 새끼를 살리기 위한 사랑이라 여기는 연지평님의 따뜻한 감성에 그져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한송이 꽃에 대한 글 잔잔한 감동으로 머물다 갑니다.
첫댓글 ~~~위해서 무슨 생각이라도 해 보렵니다,,, 비박의 후감을 기대 하면서 ~~~
올해도 군자란이 예쁘게 꽃을 피워 올렸군요.군자란을 키우다 보면 일년에 한번 꽃대를 세우고 어렵게 올라와 탐스러운 꽃송이를 만들때까지 기다림이 있어 그 꽃이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새끼를 치고 죽어가는 어미 군자란의 시들어감을 보면서 느끼시는 소감을 담담히 적어 놓으셨습니다.무릇 세상의 어미들은 자식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지요.꽃나무 하나 죽는게 뭐 그리 대수냐 싶겠지만 어미의 죽음이 새끼를 살리기 위한 사랑이라 여기는 연지평님의 따뜻한 감성에 그져 고개가 숙여질 뿐입니다.한송이 꽃에 대한 글 잔잔한 감동으로 머물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