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10일 금요일
인천공항 가는 길
2020년 1월 10일 오후 3시에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열흘 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데 그동안 신문 배달을 중지하도록 연락을 하였고, 비상 시 연락을 위하여 앞집의 휴대폰 번호도 저장하였다.
포항 연화(蓮華)재 주차장에서 포항에서 출발하는 백종부·김순연, 김성순·정을순, 계림 정찬두· 서연(瑞蓮) 김연숙, 노휘석·유연희 선생님 4분 부부, 최제일 선생님과 만나서 한참 기다렸다. 경주서 출발한 버스가 예정시간보다 좀 늦은 4시경에 왔다. 버스에 올라 김상유 회장님, 손윤락, 김연호, 서병수·오애란 세 분 교장 선생님, 남시진 소장님, 이영숙·이영희 자매님, 임창미, 김옥자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대구 팔공산 톨게이트에서 이상호·김재인, 박미영·김후림 선생님 부부, 김은경 님이 합승하였다. 26명의 여행단 중에 반은 재작년 여름에 하였던 산서성 여행을 함께한 분들이라 더욱더 반가웠다. 서연샘이 먹을 것을 많이 챙겨 주었다. 찐빵, 꼬마 김밥, 귤, 요구르트, 생수를 받아서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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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나서 각자 본인 소개와 인사를 하였다. 이영숙 교수님이 본인 소개를 하면서 예상치 못하게 내 이름을 호명하여 당황스럽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였다. 휴게소에서는 반가워서 악수도 나누었다. 카톡 사랑방에 내가 올린 수필, ‘회화나무 아래에서’, ‘서예입문기’, ‘소원의 종’을 재미있게 읽고 매료되었다며 함께 여행하게 되어 반갑다며 환영해 주어서 고마웠다.
내 영혼의 분신인 내 글이 누군가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인가보다. 앞의 두 글은 북위의 수도가 있는 산서성 여행의 견문을 소재로 썼고, ‘소원의 종’은 성덕대왕신종과 얽힌 나의 인연 이야기이다. 여행 오기 전엔 한 번도 뵙지 못해도 내 글을 읽고 관유 회장님과 함께 댓글을 달아주어서 여행 오기 전부터 어떤 분인가 궁금하였다. 재작년 여름에 있었던 산서성 여행 때 부군께서 편찮아서 참여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이 교수님은 스리랑카 여행기를 책으로 펴내기도 한 문학지망생이기도 하였다.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차는 칠곡 휴게소에 들렀다. 동녘 밤하늘에 섣달 열엿새 달이 떠올라 기대감에 부푼 우리의 가슴을 한층 더 들뜨게 하였다. 낯선 사람과 시공을 달리하는 자연 환경과 다른 문화와 역사가 기다리는 해외여행은 오감을 만족시키고 지성과 감성을 깨어나게 한다. 여행은 가슴 떨리는 젊은 날에 인생을 배우기 위해서 해야지 다리 떨리는 노년에는 힘들어서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행은 잠들어 있는 감성과 타성에 젖어서 무미건조해진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우울이나 근심걱정에서 벗어나게 하는 특효약이다. 여행은 언제나 우리 가슴을 떨리게 하고 우리 몸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여행은 감수성이 잠들어 있고 다리 떨리는 노년일수록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을 하는 동안 우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죽암휴게소에 다시 들렀다가 둥근 달이 밝혀주는 밤길을 달려 버스는 서해 갯벌 위로 길게 놓인 인천대교를 지나서 마침내 인천국제공항 2번 게이트 앞에 섰다. 겨울옷을 벗어서 박스에 담아 버스에 다시 실어 보내고 실내로 들어갔다. 디(D) 화물 접수처로 가면서 누군가 동남아 여행에서 석회질 물 때문에 힘들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다. 편의점에 들러 내가 평소에 먹는 제주도 현무암에서 샘솟는 생수 10병을 사서 아내와 내 캐리어에 나누어 넣었다. 산서성 여행하며 석회질 물을 먹고 예민한 장이 아프고 화장실이 급하여 까닭도 모르고 몇 차례 곤욕을 치렀기 때문이다. 석회질은 세균이 아니라서 끓여서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화강암이나 현무암이 많은 우리나라의 석회질 없는 물이 얼마나 고마운지 해외여행을 하며 나는 체험하는 것이다.
캐리어를 부치며 산서성을 함께 여행한 박미영샘이 포켓 와이파이를 가져간다고 하였다. 해외여행 중에 인터넷 이용이나 통신 사용법에 대해 무지한 나는 포켓 와이파이라는 것을 처음 들어보았다. 유심칩이나 데이터로밍 같은 것도 쓸 줄을 모르는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많이 뒤떨어진다. 나는 확실히 아나로그형 인간이다.
보딩 티켓을 받아서 출국 심사를 하고 오후 11시 40분에 탑승하는 26번 게이트로 이동하면서 딸아이가 사준 관광용 선글라스를 면세점에서 줄서서 한참이나 기다렸다가 보딩 30분 전에야 겨우 찾았다. 케이스를 열어보니 브랜드가 아내 것은 구찌(GUCC)이고 내 것은 이탈리아 제품 라이 방(Ray-Ban)이었다. 어릴 적 엄마가 형님이 쓴 선글라스를 라이방이라고 한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됐다. 작년에 생일 선물로 아들아이가 사 준 스포츠형 선글라스를 여행 가방에 넣어 가져갔지만 딸아이가 관광지에 어울리는 선글라스가 필요하다며 다시 사 준 것이다. 하나은행에서 한화 10만원을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로 바꾸었다. 26번 게이트에서 탑승을 기다리면서 면세점에서 찾은 선글라스를 끼고 셀카로 찍은 사진을 가족 카톡방에 올리니 아이들이 좋다고 댓글을 올렸다. 가족이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니 여행의 기쁨은 두 배가 됐다.
산서성 여행을 같이 했던 손윤락 교장샘 옆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재직 하실 때 세계사를 가르쳤던 경험을 말씀하셨다. 요즈음은 고등학교에서 학습 부담을 줄여주기 위하여 세계사 교육은 선택 과목의 하나로 거의 수업이 없지만, 글로벌 시대에 전 세계를 무대로 일하고 여행하는 오늘의 한국인에게 세계 지리나 세계 역사에 대한 지식은 꼭 필요하고 교장샘께서는 한국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셨다.
카톡 사랑방에 내가 올린 한시나 서예 작품을 보셨는지 나에게 한학 실력이 있다고 하셨다. 역사 연구에 필요하여 학창시절에 한문 사료 강독 수업을 하였고 30여 년 교직 생활하며 역사 교사로서 틈틈이 한문을 혼자서 공부하였다. 또 최근 두 해 동안 한문 서예를 배우니 이제 조금 한문에 문리가 난다고 말씀 드렸다.
한글 전용 어문 교육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현대 교육에서 동아시아 전통 문화의 뿌리가 되는 한문이라는 고전 언어를 가르치는데 지나치게 소홀히 했다. 한문 교육을 방치한 것은 우리 겨레가 완벽하게 뿌리를 상실하고, 지혜와 지식과 감성과 경험의 보배 창고를 열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는 근본 까닭이다. 영어 교육에 밀려 요즈음의 아이들은 자기 이름도 한자로 쓰지 못한다. 서예학원에 다니던 그 많던 어린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 교육의 슬픈 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