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 인사를 나눌 때 밥 먹었느냐고 묻습니다. 또 친한 사이끼리 그 친분을 돋우기 위해 혹은 중대한 일을 앞두고서 꼭 할 말이 있을 때에는 조만간에 밥 한 번 먹자고 약속을 합니다. 또 가끔씩 부모님을 찾아뵈면 부모님들은 ‘밥은 제 때에 거르지 않 고 먹고 다니니?’고, ‘저녁 밥 먹고 가라’고 당부하십니다. ‘밥!’ 매일 먹는 것이고, 밥이고 입 맛이 없어서 대충 때우기도 하는 것이 밥이지만, 우리들이 서로 만나 ‘밥’을 이야기할 때에는 평범한 식사 그 이상으로 ‘삶과 친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족을 식구(食口)라고 말하 기도 하고, 가족같이 늘 함께 동고동락을 하며 사는 사람에게도 ‘우리 식구’라는 표현을 씁니 다. 그러므로 밥, 가족, 식구는 서로의 삶과 친교를 이루는 운명 공동체의 표현입니다.
복음에서 잠시 후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십니다. 그런 영문 도 모르는 제자들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파스카 음식을 준비하고 있지만, 오늘 스승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과 나누게 될 식사는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먹고 마시게 되는 식사입니다. 곧 그분의 영원한 생명과 그분의 거룩한 삶과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식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계약’이라고 말합니다.
독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듣고 응답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탈출 24,7)” 그리고 이어서 자신 들의 생명을 상징하는 짐승의 피가 제단과 그들 위에 뿌려지면서 이스라엘은 주님께 계약으로 묶이고 하느님께서도 말씀대로 이스라엘과의 계약에 묶이시게 됩니다. 곧 이스라엘도 하느님도 이제 서로에게 하나의 생명, 뗄 수 없는 운명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 표현대로 식구요 가족으로서 운명 공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이 계약이 담고 있는 내용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집트에서 400년 넘게 하느님 없이 살아야 했던 이들에게 다시 믿음 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정체성이 회복된 것이고, 40년 동안 거친 광야에서 온갖 두려움과 불안함, 굶주림과 목마름을 겪다가 영원한 보호자와 인도자, 그리고 불멸의 희망으로서 하느님을 비천한 자신들의 운명 안에 모시게 된 것입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르 14,22.24)” 이 계약은 제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합당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예수님께서 일방적으로 맺으신 계약이지만 이 계약을 통해서 베풀어지는 그분의 완전한 사랑은 제 자들의 모든 것을 온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그대로 오늘 이 성찬례에서 예수님은 당신을 우리에게 내주십니다. 부모님의 표현대로 주님이 ‘밥은 굶지 않고 제 때에 먹고 다니니? 좀 쉬었다가 밥 먹고 가라’하시며, 지극한 사랑을 담아 우리에게 영원하신 당신의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특별 히 쉬는 교우였던 사람에게는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회복시켜주시고, 한 주간 고된 삶을 살다 온 사람에게는 허기진 그를 영적 양식으로 배불리시며, 죄악과 악습에 시달 리다가 이 자리에 온 사람에게는 다시 그의 삶의 보호자요 인도자, 위로와 희망으로 그 사람 안에 들어가 머물러 계시게 됩니다.
우리는 그 은총과 사랑을 복음 전에 바친 를 통해서 청했습니다. “참된 음식 착한 목자, 주 예수님 저희에게 크신 자비 베푸소서. 저희 먹여 기르시고, 생명의 땅 이끄시어, 영생행복 보이소서. 전지전능 주 예수님, 이 세상에 죽을 인생, 저 세상에 들이시어 하늘시민 되게 하고, 주님 밥상 함께 앉는 상속자로 만드소서.”
그러니 고된 삶을 살다가 부모님 집에 온 아들딸처럼, 그분의 말씀을 기쁘고 사랑 가득한 마 음으로 따릅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서 씻고 와서 밥 좀 많이 먹고 편히 쉬다가 가 거라.” 주님의 넘치는 자비의 성사로 몸과 마음을 씻고, 이 거룩한 식탁 앞에 앉아 천사의 양 식, 하느님 자녀의 음식,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빵을 먹읍시다. 부끄러움과 죄책감에 망 설이지도 말고, 스스로 단죄하지도 말며, 그분의 자비와 진리와 사랑을 확신하며 그 양식을 기쁘게 받아먹읍시다. 그러면 우리는 나을 것이고 다시 일어나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식 탁에서 구원의 말씀을 듣고 영혼의 청춘을 가져오는 양식을 먹고 나서 이 성전을 나가기 전 에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하느님께 다짐하며 약속드립시다.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 씀을 오늘부터 다시 실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