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잇빨여단을 알게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입니다. 근데 이런 글을 여기에 올리는 것이 맞나 싶기는 한데.
옛날에 '디펜스 코리아' 라고 있었는데,(지금은 없지만) 그곳에서 몇 시간씩 죽치고 않아서 이것저것 읽어대는
걸 좋아했더랬죠. 그러다가 여기에도 여단장님과 여단원분들이 만든 읽어볼만한 글들이 많다는 것을 발견!
활동(?)은 자기소개 판때기에 한줄 쓰는걸로 끝내고 지금껏 눈팅만 해왔답니다.
그러다가 여기 올라온 글 중 해외 출처의 글들을 읽고 싶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흥미가 가는 게 있으면
보곤 했는데,.....(특히 여기 사이트의 일일퀴즈가 아주 '꿀잼' 이더군요.)
그러다가 흥미있는 걸 한 번 번역해봤습니다. 외국어 실력 연마 겸 해, 우리들에게 흥미로운 주제기도
하구요.
글 자체는 2006년(!)에 올라온 글입니다. 글 제목대로 '잊혀진' 전쟁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연구하는 사람이 있군요.
하긴, 저 복무했을때는 대대장님이 [존 톨랜드의 6.25] 읽으라고 권유하시던 적도 있는데, 그건 상대적으로(또는 대중
적인)관심이 적다는 의미이지 그것이 정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의미없는 일이었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글의 출처 : http://www.historynet.com/interview-melinda-pash-why-is-korea-the-forgotten-war.htm
인터뷰
멜린다 파쉬(Melinda Pash) 와의 인터뷰 : 왜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 이 되었는가??
by 리처드 에른스베르거(Richard Ernsberger)
- 멜린다 파쉬는 파예트빌 Technical Community College 의 역사 강사이며 [In the Shadow of the Greatest Generation:
The Americans Who Fought the Korean War, (New York University Press, 2012)] 라는 책을 썼다.
한국전쟁이 끝난지도 60년이 넘어간다. 하지만 당시 2차 세계대전을 수행했던 미국인들도 이 전쟁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전쟁터에 200만 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UN군의 일부로서 참전해서
3년이 넘는 기간동안 북한과 중공에 대항해서 싸웠다는 사실과, 그들 중 37.000 명이 전사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전쟁은 잘 알려지지 못했고 불만스러운 교착상태로 끝나고 말았다.
Q : 어떻게 해서 한국전쟁이 '잊혀진 전쟁' 이 되었나요??
A : 최소한 1951년 10월부터 '잊혀진 전쟁' 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 U.S News&World Report ] 라는 곳에서
신문에서 이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 말처럼 미국인들이 한국전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전이 처음 발발했을 때 이 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다가
2차 대전때처럼 미국이 완전한 전시체제가 되는 것인가 걱정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았고, 전쟁이 더 크게
번지지도 않았습니다.
언론에서는 계속 한국전 소식을 전했지만 중공군이 개입하고 1951년 전선이 교착되면서 한국전쟁은 서서히 미국인들의 관심 바깥
으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Q : 한국전 참전 세대를 특정지을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A :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것은 대체로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전 참전자들의 1/4 가량은 이미
2차세계대전에서도 복무한 사람들이었고 또 이 한국전 참전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나중에 베트남 전쟁에도
참가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전 참전자들은 특이한 성향이 있는데 바로 그것은 그들은 침묵을 지킨다는 점입니다. 2차대전과
베트남전 참전자들은 그들이 했던 일에 대해서 말하기도 하고 미국에는 지금도 많은 2차대전, 베트남전 참전자
모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 참전자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가족이나 자녀들에게도 참전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Q : 한국전에 대해서 미국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당시의 미국인들은 이 전쟁에 참가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A : 한국전에 참전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2차 대전 참전자의 자녀들이었고, 이들은 아버지가 전시에 일터에, 군에
가 있는 동안 승리를 일구어내고, 강한 애국심을 내면화한 사람들입니다. 그리하여 한국전이 발발했을 때 이들은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응했습니다. 당시의 한국전 참가자들 중 1/3 만이 징집자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베트남전 때와
같은 징병 기피도 없었습니다.
Q : 대중의 한국전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미군 포로들에 대한 세뇌가 자주 다루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A : 사실 1950년대는 경제 번영의 시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냉전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문에 미확인 비행 물제(UFO) 에 대한 기사가 실리고 집집마다 마당에 방공호를 파던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런
공포들 중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바로 공산 세력의 위협이었습니다. 이런 공포는 1953년 한국전 포로 교환이 이루어
지면서 더 강해졌습니다.이런 공포에 불을 당긴 계기는 1953년 에 육군 소속 심리과 의사였던 Willam Mayer 가
대부분의 전쟁 포로는 적과 협력했던 경험이 있다고 말한 것이었고, 본격적으로 번지게 된 것은
몇 달 후 21명의 미군 포로들이 본국송환을 거절했다는 것이 알려지게 된 것이었죠. 당시 미국의 여론은 이런 일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였고 - '세뇌' 가 이에 딱 맞는 소재가 되었습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에 대한
온갖 상상이 당시 미국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스포크와 베티의 논쟁도 이 때 있었습니다. 가정의 잘못이다, 무너진
학교 교육의 잘못이다 같은 논의들입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그들 21명중 대부분은 이미 한국에
가기 전에도 문제를 갖고 있던 사람들었습니다. (편부모 가정이라든지, 인종이나 성(性)에 관련된 문제 같은 것들)
그렇지만 이후 이 사건은 한국전 참전 세대 전체에 나쁜 이미지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Q : 어떤 포로들은 억류기간동안 충분히 용기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까??
A : 수치를 봅시다. 확인된 것만 최소 7,000명 이상의 미군 포로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4,400명 만이
살아서 돌아올 수 있었죠. 국제법규를 위반한 포로 학대 행위도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들이 오직 생존을 위해서
적에게 어느 정도의 협력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들이 억류된 북한 땅의 환경과 지형, 민간인들의
미군에 대한 적개심 덕분에 탈출하기도 쉽지 않았죠. 군사법정은 13명을 적과의 협력 행위로 기소했지만, 곧 그들의
극한 상황에서의 행동이 용기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지요.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그들은 영웅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Q : 1951년 최고사령관이 된 매튜.B 릿지웨이는 왜 군의 퉁합(인종적 통합)시작했을까요??
A : 군사적 효율과 사기 문제 때문입니다. 전쟁 초기에 미군 지휘관들은 격심한 병력 부족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피부색에 관계 없이 부대의 빈자리를 채웠습니다. 이런 행동은 처음에는 공식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1951년 3월부터는 총사령관인 릿지웨이가 정식으로 극동군 내의 인종 분리를 금지했습니다.
Q : 책에서는 1953년 이후의 군 복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 들의 평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썼지요?
A : 그렇습니다. 해리.S 트루먼 대통령은 1948년 처음으로 군대에서의 대우와 기회의 평등을 주어야
한다고 명시했습니다.
1950년대 미국 흑인 사회는 여전히 인종 차별로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 내의 흑인들은 그보다
상황이 나았죠. 군대에서는 그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간부의 위치에 갈 수도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이런 군대에서 처음 일어난 평등의 물결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런 인종 간의 통합은 한국전이 남긴 유산중 가장 지속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Q : 인기 TV 프로였던 야전병원 M.A.S.H 에서의 한국전 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 '......병사들은 집에 돌아가고 싶어했다. 냉장고 같은 한국의 여름, 뜨거운 여름의 작렬하는
태양,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은 한국에서의 복무를 힘들게 만들었다......'
한국전의 야전 병원들은 최전방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으며 군의관과 인원들은 종종 무척 힘들게 일하고 때로는
죽음의 위협과 직면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의 야전 병원은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한국전에서 총 37,000명이 죽었는데 한국전 3년보다 훨씬 길었던 10년간의 베트남전에서
죽은 사람은 58,000명이었죠. 정말 심각했습니다. 그리고 M.A.S.H 의 분위기는 베트남전의 그것과 비슷한데, 한국전은
그보다는 더 애국적인 분위기였습니다.
Q : 왜 미 의회에서는 1950년대 말까지 한국전을 '전쟁' 이라고 지칭하지 않았었나요??
A : 미 의회에서는 전쟁을 이슈화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트루먼 대통령도 한국전을 전쟁이라고 하지 않고
'한국에서의 경찰 행동' 이라고 지칭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한국전, 베트남전을 지금의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 같이 똑같은 '전쟁' 으로 인식하지만,
1950년대에는 한국전을 정식 선전포고를 거친 정식 전쟁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참전용사들에 대해서는 다른 전쟁 참전자들과 같은 대우를 해줄 필요가
있었기에, 그런 조치가 있기는 했습니다.
Q : 왜 한국전 참전자들은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을까요???
A : 앞서 말했다시피 한국전 참전자들의 특징은 '침묵' 입니다. 이것은 마치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참전자
들과 비슷합니다. 180만명이 싸우고 돌아왔고 새로운전쟁 경험 세대가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휴전으로
끝났고, 당시의 참전자들 스스로가 '한국전은 우리가 이긴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뭔가 대단한 것은 아니다'
라고 여겼습니다. 이들 이전에는 2차 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위대한 세대' 가 이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나중에 대중의 관심은 베트남 전쟁 참전자에게 쏠려갑니다. 이런 움직임은 그들 스스로가 아니더라도
그들을 잊혀지게 했습니다.
첫댓글 누구가에게 한번 경험한 것은 그 사람이 인지하고 있던, 그렇지 못하던 기억 한 켠에 켜켜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심리적 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자신의 상태를 아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방법이 서로 말하는 것(debriefing)이라고 합니다. 수많은 목숨이 희생된 거국적 사건이었음에도 '잊혀진 전쟁'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에서 당사자들의 심리적 허탈감은 더 심할 것 같습니다. 여기 선배님들 중 미 참전용사들에게 사의를 표했을 때의 미국 베테랑들의 반응을 올려주셨었죠. 그런 행동이 필요하네요.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잊지 않고 있는 것'이란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라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러고보니 이 글에서는 그런 참전자들의 개인적인 생각들은 어떤지는 안나와있군요.
아마 그렇지 않을까요??이 글의 글쓴이도 '어쨰서 그게 잊혀졌나' 를 주제로 얘기한 것이고. 그리고 말씀하신
미 참전용사분의 반응은 저도 언젠가 눈팅하다가 본 적이 있습니다.
좋은글 자주 올려 주세요... 감사합니다...추천
흥미롭고 좋은 글입니다, 추천.
오 여단장님이다......
외국인의 시각에선 한국전쟁이라 표현이 당연한데........, 요즘 다문화 정책의 영향인지 우리나라 언론에서도 한국전쟁이란 표현을 하는 경우도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얘기 하면서도 "우리말"이나 "한글"이란 표현보다 "한국 말". "한국에선...." 이런 표현들이 많아져서 (제 사고가 이상한건진 모르겠지만)남의 나라 얘길하는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에서 그러는 것은 외부의 시각에서 본 우리쪽을 이야기하거나, 객관성을 위해서 그렇게 지칭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의 교육을 배운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저도 '한국어', '한국인' 이라는 표현이 익
숙해지더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그게 더 합리적이더군요. 이 넓은 세상에 수많은 언어가 있고, 각자 자기의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서 우리 한국어만 특별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지요.
@healpos 외국인과 대화에는 그래야 하는게 더 합리적이라도 봅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간 대화에서 그런 표현이 남의 나라 얘기하는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언급해봤습니다. 전에 미수다란 프로에서 외국인들은 자기네 나라 얘기할 때 "우리나라"(물론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배웠겠지만....)란 표현을 자주 쓰는데 거기 출연한 우리 한국 사람들이 오히려 한국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게 전 좀 이상하게 느껴지던데요....
저도 미국은 한국전쟁을 왜 잊혀진 전쟁이라고 할까? 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미군은 한국전쟁을 치르는 동안 혹독한 끔찍한 경험을 합니다.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었으니까요...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안은 전쟁이겠지요...^^
지금 다시 자세히 보니 같은 글을 두 번 올렸었군요......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하다니;;
좋은글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