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13장부터는 다락방 강화입니다. 요13장의 말씀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만 하시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무리들에게 외쳐 이르시되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무리에게 증거하시던 주님이 요13장에서부터는 오직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요18장에서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진리를 증거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요18:37) 이 말씀은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그리스도의 증거를 우리로 믿게 하려함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증거는 인자가 들린 이후에 우리에게 그분의 속성을 가지고 임하실 그리스도의 영, 바로 그 이름으로 오실 보혜사 성령’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는 뜻이죠. 요13장은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영접과 사고팔고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느냐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를 사고팔고 하느냐는 겁니다. 잠23:23에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말씀하십니다. 자칫하면 신학교 교수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주고, 그 대가로 자기 생활하려고 하는 기독교 안에 자본주의 논리로 사고팔고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계시록의 멸망하는 바벨론의 문제가 바로 이 사고 팔고의 장사꾼들입니다. 지금도 목사가 성도들에게 구수한 이야기, 달콤한 이야기, 웅변적인 이야기, 그리고 기를 살려줄 만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팔고 성도들에게 뭔가를 사들이려는 사고팔고가 있기도 합니다. 인기를 얻어 쓰임을 받기만 하면 떡고물은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절대로 진리는 사고 나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러합니다. 지금 목회를 잘하시는 분들의 특징은 이 사고 팔고를 잘하시는 분들일지도 모릅니다.
근데 제대로 거지 노릇 잘하는 조건이 뭐냐면 돈을 가진 사람들의 자존심을 높여서 행복하게 해줘야 거지 짓을 잘 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처럼 돈 있는 사람 앞에 가서 거지가 큰소리를 쳐버리면 돈을 못 얻습니다. 그게 제 딜레마입니다. 자기의 비참함을 팔고 그래서 있는 자들에게 행복을 사주는 이것이 사고팔고입니다. 자본주의의 특징이 바로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사고팔고입니다. 목사는 은혜를 끼치고 성도들은 목사에게 뭔가로 보답하고, 이런 걸 최대한으로 잘해야 요즘의 목회를 잘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식하고 사고팔고 하는가? 부모는 자식의 기분 맞춰 줄려고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자식이 잘못되면 너 죽고 나 죽자 하고 맞서는 것이 바로 부모입니다. 절대로 사고팔고가 아닙니다. 자식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앵벌이를 만들어 너 알바해서 돈 벌어오너라 하는 것이 부모가 할 도리가 아닙니다. 부모는 그러지 않습니다. 왜요?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 안에는 사고팔고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고팔고를 잘해야 목회를 잘 한다고 합니다. 돈 가진 사람들의 기분을 한껏 북돋아줘서 헌금하도록 하는 그 일을 잘해야 목회를 잘한다고 말을 합니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나도 목회를 잘 해 보려고 교회 성장학이나 세미나를 쫓아다니고 별 짓 다 해 봤어도 이 사고팔고는 정말 체질에 안 맞아 더 이상 그 짓을 못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수동형적인 성격이 많아서 특히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는 할 수 있다는 구호를 외치며 열심히 기도하면 심리적으로 약간은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헌금을 내도록 하고 열심히 일하는데 까지 끌고 갑니다. 진짜 성령의 역사로 사람의 심령을 고무시킬 수 있는 그런 훌륭한 목사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주의 이름을 빌려 그렇게 하는 사람도 많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은 부끄러운 말로 최면술까지 배운다고 하지 않든가요?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깊이 알아 가야 합니다. 우리들의 가족들은 솔직히 설교 잘하기를 원할 겁니다. 목회 성공을 위해서 그러길 원합니다. 그래서 원수는 집안에 있습니다. 목사님의 목회 상대는 뭐니 뭐니 해도 사모님이 먼저입니다. 왜 그렇죠? 왜냐하면 사모님은 실제로 살림을 담당하기 때문에 원수노릇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을 당장 보니까요.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요구이며 당연한 말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참 뜻은 아니므로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인 죤 스타트처럼, 바울처럼 끝까지 밀고 못 나갑니다. 그래서 적당한 선에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교회도 그런대로 좋고 나도 좋고 집안 살림도 그런대로 되도록 하자 거기에 주저앉고 맙니다. 주변을 돌아보세요. 우리의 생활에는 실물경제가 당연히 다가오지만 그 일이 목사님의 연구를 가로막아 앞에 선 사람들이 세워 놓은 깃발을 뒤 따라 가서 붙잡도록 하고 맙니다. 전심으로 진리를 따라 밀고 나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소가 세상에 쫙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목사님과 사귈 때는 그 사모님을 자세히 봅니다. 과거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하면 목사님을 태연한데 사모님의 안색이 변하더라고요. 사모님의 가치관이 영적 가치관이면 저분이 뒤에서 고생스럽고 힘들더라도 끝까지 기도하시고 후원하시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반드시 동역에 성공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황희 정승이 그렇게 오래 동안 정승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아내로 부터 바가지를 긁혔답니다. 비가 오는 날에 비가 새니까 삿갓을 뒤집어쓰고서 쭈그리고 앉아서 삿갓 없는 집에는 어떻게 지낼꼬? 하고 걱정하니까 그 아내가 퉁명스럽게 아, 그 사람들이야 집 잘 지어서 사는데 삿갓이 왜 필요해요 했답니다. 잘못하면 우리가 사역을 사고팔고 하는 삯군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요13장에서 사고팔고 하는 사람은 바로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 부지런히 따라 다니면서 그 공으로 예수를 사긴 했는데 결국 은 삼십에 팔아먹어버리고 맙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사서 팔아먹는 자가 많습니다. 주의 이름을 팔아먹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제발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길로는 다니지 마세요. 예수 그리스도가 낸 길 외에는 걷지 마세요. 지금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실용주의 교회 성장학이라든가 세미나라든가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길이 너무 많습니다. 신사도운동 또한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건 선한 사업을 위해서 주의 이름을 표방하는 그 무엇을 위해서 팔아먹으려고 작정한 곳이 많습니다. 이런 교회가 우리들 중에는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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