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전문)
1.분석의 동기목적(動機目的)
윤동주(尹東柱) 시인의 ‘서시’가 일반인들에게 많이 애송되고 있고 학자들에 의하여 많이 분석되고 높이 평가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시인의 전체 시세계가 대체로 독실한 신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인정받고 있는 ‘서시(序詩)’는 그의 종말론적 순교신앙이 기독교적 낱말 사용도 없이 깊이 농축되어 베어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대한 가치평가에 무지하고 사랑이 부족하며 이 시에 대한 연구가 미흡하다는 사실은 한 크리스천시인의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비 크리스천들에 의한 분석과 평가도 매우유익점이 많았지만 솔직히 크리스천의 입장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아니하였다. 필자가 자료수집 과정에서 간혹 크리스천에 의하여 그 깊이가 분석된 자료도 있기는 하였으나 만족한 수준이 못된다고 보았기에 나름대로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계속 더 많은 연구에 노력하고 싶은 심정이다.
특히 서시에 나타난 윤동주의 신앙은 그 흔한 기독교적 낱말은 직접적으로 사용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면 하나님, 예수님, 믿음, 박해, 순교. 할렐루야. 아멘 등이 언급 되지 않았으나 그의 거짓 없는 신앙양심과 종말론적 순교신앙은 일제식민지(日帝植民地) 아래 있는 민족사회 앞에 빛과 소금으로 살고자 고민하였던 기독청년의 고뇌가 서시의 구절마다 베어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러면 여기서 윤동주 시인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간략하게나마 먼저 살펴보고 본론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윤동주(尹東柱.1917.12.30∼1945.2.16). 시인의 본관은 파평(坡平). 아명은 해환(海煥).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출생이다. 그는 아버지는 영석(永錫)이며, 어머니는 김룡(金龍)으로 기독교 장로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였다. 아우 일주(一柱)와 당숙 영춘(永春)도 시인이다. 14세(1931)에 명동소학교를 졸업하고, 대랍자(大拉子) 중국인 관립학교를 거쳐 이듬해 가족이 용정(龍井)으로 이사하자 용정 은진중학교(恩眞中學校)에 입학하였다.
1935년 평양 숭실중학교로 학교를 옮겼으나, 이듬해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문을 닫자 다시 용정으로 돌아가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에 편입하고 졸업하였다.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같은해 가을에 도지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에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귀향 직전에 항일운동의 혐의를 받고 일경에 검거되어 독립운동에 가담하였다는 사상범죄목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에 너무나 애석하게도 광복을 앞둔 1945년 2월 16일 28세의 젊은 나이로 일본의 후쿠오카형무소(福岡刑務所)에서 천재시인(天才詩人)은 생을 마쳤으니 가히 그의 서시와 같이 순교순국을 당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우관계는 연희전문학교 재학 때 함께 하숙생활을 하였고, 그의 자필시집을 보관하고 출간한 정병욱(鄭炳昱), 그리고 초간시집에 추모시를 쓴 유령(柳玲), 연희전문학교 후배 장덕순(張德順), 고향후배 문익환(文益煥) 등이 있다.
그는 천재적인 시인의 영성을 가지고 처녀작(處女作)으로 쓴 것은 15세 때 쓴 시 〈삶과 죽음〉.〈초한대〉이며, 이 두 편의 수준이 상당한 것으로 미루어 습작은 이미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발표된 작품을 살펴보면 광명중학교 4학년 당시 간도 연길(延吉)에서 나온 《가톨릭 소년(少年)》에 동시 〈병아리〉(1936.11.)·〈빗자루〉(1936.12.)·〈오줌싸개지도〉(1937.1.)·〈무얼 먹구사나〉(1937.3.)·〈거짓부리〉(1937.10.) 등이 있다.
또 연희전문시절에 《조선일보》 학생란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연희전문학교 교지 《문우 文友》에 게재된 〈자화상〉·〈새로운 길〉, 그의 사후인 1946년 《경향신문》에 발표된 시 〈쉽게 쓰여 진 시〉 등이 있다. 그리고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41년에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이 광복 후에 정병욱과 윤일주에 의하여 다른 유고와 함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정음사, 1948)라는 제목으로 간행되었다.
그가 20세를 전후하여 10여 년간 전개된 그의 시력여정(詩歷旅程)은 청년기의 고독감과 정신적 방황, 조국을 잃음으로써 삶의 현장을 박탈당한 동일성의 상실이 그 원천을 이룬다. 초기 시에서는 암울한 분위기와 더불어 동시(童詩)에 깃들인 유년 적 평화를 지향하고자 하는 현실파악 태도를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는 〈겨울〉·〈조개껍질〉·〈버선본〉·〈햇빛·바람〉 등이 있다. 후기 시로 볼 수 있는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에 쓰여 진 시들은 일제 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역사 감각을 지닌 독특한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준다. 〈서시〉·〈자화상〉·〈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쉽게 쓰여진 시〉 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 작품들이다.
윤동주의 시는 한마디로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도 거짓 없는 신앙인의 양심과 종말론적인 순교신앙의 명령하는 바에 따라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를 노래하였다. 또한 시인은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역사적 국면의 경험으로 확장함으로써 한 시대의 삶과 의식을 노래하는 동시에 특정한 사회·문화적 상황 속에서의 체험을 인간의 항구적 문제들에 관련지음으로써 보편적인 공감대에 도달하였다.(인터넷 검색에서 수집한 자료와 백과사전 자료를 다시 편집함)
2.시의 구조분석(構造分析)
제1문장 1행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2행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제2문장 3행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4행 나는 괴로워했었다.
제3문장 5행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6행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제4문장 7행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8행 걸어가야겠다.
제5문장 9행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대한 내용분석은 연구하는 비평가들에 따라 다양하지만 필자는 보시는 바와 같이 편의상 제5문장 9행으로 구분하였다. 다시 아래에 일목요연하게 내용분석표를 제공할 것이다.
3.시의 내용분석(內容分析)
1)제1문장 각행구절해석
1행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종말의 종류에는 시대적 종말과 개인적인 종말이 있다. 윤동주의 ‘서시’ 제1연의 1행에 나타난 ‘죽는 날까지’는 개인적인 종말에 해당한다. 비록 신자라 할지라도 항상 개인적인 종말을 의식하고 살아갔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신자들은 불신자와 달리 삶에 급급하여 평상시에는 죽음에 대해서 자기와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망각하고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동주 시인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경건한 영성(靈性)을 가지고 있는 시인의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하늘 우러러’보는 신앙은 기독교적 깨끗한 양심의 소유자임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하늘과 별’은 서정적인 하늘과 별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넘어 이면에 있는 하늘에 계신 주재와 의롭게 살다가 앞서간 의로운 별 같은 성도들로 환치(換置시키고 있는 것이다. 별에 대해서는 다음에 순서에 따라 다시 설명하도록 할 것이다.
죽음의 종류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옳은 일을 위하여 헌신하다가 의젓하게 죽음 맞는 의인에 장렬한 죽음이 있는가하면, 생명에 연민하여 구걸하다가 부끄럽게 죽는 죽음도 있고, 너무나 간악(奸惡)하여 추하게 살다가 죄 값으로 죽는 그야말로 ‘개죽음’도 있을 것이며, 이것도 저것도 아니나 오로지 자기만을 알고 자기만을 위하여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소위 ‘자연사'도 있을 것이나,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병으로 신음하다가 죽든지 아니면 사고로 죽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윤동주시인은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북간도(北間島) 출신으로 1919년에 태어나 용정의 미션스쿨이었던 은진(恩眞)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연희전문학교를 1941년에 졸업하고 유학으로 도일(渡日)하여 1942년에 릿쿄대학(立敎大學)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같은 해에 가을에 도시샤사대학(同志社大學) 영문가에 전학했다가 1943년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하다가 사상범으로 일본경찰에 채포되어 2년형을 받고 규슈(九州) 후쿠오카형무소에 복역 중에 죽었다.
이처럼 시인은 한민족의 젊은이로서 일제하에서 민족자주권을 잃고 살아가는 고통을 직시하면서 당시에 그 흔한 어느 친일파와는 달리 독실한 신앙인의 양심을 가지고 민족독립을 위한 의지를 불태우면서 저항하면서 옥중에서도 변절(變節)하지 않고 구차한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던 그의 삶의 결연한 의지를 이미 그의 시에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부연하면 그의 종말론적인 신앙은 순교자적인 신앙이며, 동시에 민족이 처한 현실을 결코 외면할 없는 순국열사적인 내면의 영성이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행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시인은 너무나 고결하고 결연한 그의 성품을 노출시키고 있다. 세상에 일반인들은 부끄러움 속에 살아간다. 오히려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환치시키는 자도 없지 아니하다. 소위 친일파들은 민족의 양심으로는 부끄러우면서도 특혜와 특권의 영광으로 환치시킨 인물들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결코 시인은 그런 부끄러운 삶을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았던 자기의 희망(소망)이자 확실한 기독교적 가치관을 정립하고 있었다고 보아진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소금이라.”고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제자(신자)에게 말씀하셨듯이 소금은 자기 몸을 녹일지라도 소금이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여야한다. 소금의 맛은 녹지 않으면 나타나지 아니한다. 소금이 맛을 잃는다는 것은 소금이 썩는다는 것도 아니고 소금의 맛이 쉰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녹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녹는다.’는 것은 곧 ‘씨알’로 말하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과 같다. 예수께서는 몸소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이다.
오늘날 신자들 중에는 아니 제자(교역자) 중에는 마치 친일파와 같이 세상의 물량주의에 부끄럽게 편승하여 그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는 이들도 상당수 없지 아니하다고 보여 진다. 윤동주시인은 ‘한점’의 구름처럼 ‘부끄러움’도 ‘없기를’ 간절히 소원(기도)하였다. 아니 애절하게 부르짖고 절규하고 있음을 그에 序詩에서 나타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간사함과 간악을 함을 그리고 연약함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제2문장 각행구절해석
3행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여기서 ‘잎새에 이는 바람’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해석이 다양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식민지 하에서 치욕으로 느낄 수 있는 상황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지만 그저 시인이 소심하거나 심약해서 무심이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것에서조차 느끼는 예민한 반응쯤으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무리 시인의 심성이 예민하다하여도 적어도 심약할 정도의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이상의 의미 곧 현실적으로 직면한 심각성이나 절박성에 맞닥쳐 있다는 의식적인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당시는 일본제국주의 말기로서 식민지시대의 상황이 그렇게 평안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자기 자신도 음으로든 양으로든 일제에 저항하며 독립정신을 불태우는 일에 예외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듯 혹은 바람에 떨어져버리는 낙엽처럼 식민지청년의 모습과 환치시키고 있는 상황이었다. 즉 윤동주 시인은 시련의 바람 그리고 박해의 바람이라는 현실적 상황에 어느 모로든지 직면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은 결국 그가 이 시를 1941년 11월 20일에 완성하고 연희전문 졸업기념 시집을 출판하려 했다가 좌절 된 일이 있었고 그로부터 불과 만 3년 3개월도 되지 않아서 일본감옥에서 옥사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야말로 마지막 잎새처럼 바람에 떨어져버렸다.
4행 “나는 괴로워했다.”
시인의 이 괴로움은 그냥 수식적인 괴로움이 아니다. 하기 좋은 말로 삶에 고달파서 느끼는 괴로움도 아니다. 영혼의 고뇌이며 번민의 수준으로 이해한다. 나약한 자신(누구나 그러하듯이)을 직시하나 앞서 에서도 이미 언급했듯이 심약한 모습 정도의 것이 아니다. 한층 더 깊은 고난과 비참한 현실 감각에 대한 솔직한 고백적인 절규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의 담력을 타인에게 과시하다가도 막상 자기 신변에 위험한 일이 닥치면 금박 꼬리를 낮추고 살 궁리를 위해서 비굴해 지는 사람을 본다.
그러나 시인은 친일파가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미리 아파해 하고 신앙양심과 민족정신의 기치를 한민족의 젊은이답게 높이 들지 못한 자격지심에 떨면서 괴로워했던 것이다. 들어 보았는가 오늘날 과거의 친일파의 행적에 대하여 그럴듯한 언변술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며 정당화 합리화 시키려는 의도적인 이야기 말이다. 이제 와서 친일파청산이라는 말을 하지만 역사를 기만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물론 그 분들은 괴롭지만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그러나 윤동주시인은 그런 아픔들을 지조로서 이미 미리 경험한 것이었다.
3)제3문장 각행구절해석
5행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시인에게 있어서 별은 무엇을 상징하고 의미 하는가. 일반적으로 ‘이상의 세계’ ‘순수한 양심’ 등으로 이해된다. 필자도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별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쓴 경험으로 미루어 여기에 대하여 굳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 정도의 감상적인 생각은 누구든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일상적인 평범한 정서가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동주시인의 시의 세계에서 별의 존재는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닌 성 싶다. 그래서 시인의 별에 대한 또 다른 시<별을 헤는 밤>을 잠시 살펴보고 자연스러운 이해를 찾고자 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헬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 마디씩 불러 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가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잼',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 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어머니,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별을 헤는 밤’ 전문)
이 시는 시인이 타향에서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면서 고향에서 아름다웠던 유년 시절을 동경회상하고, 갖가지 상념에 사로잡히는 것을 형상화한 작품이지만, 전반부는 현상을 감상적 혹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였으나, 후반부는 확고한 신념과 믿음으로 고뇌 속에서도 소생과 부활의 소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서정시 자유시이다.
특히 '별'은 회상의 매체이며, 동경하는 세계를 상징하고 있다. 가을, 밤하늘을 배경으로 작중 화자는 별을 헤아린다. '가을'은 쓸쓸함과 덧없음의 이미지와 통하고 '하늘'은 맑고 아름다운 것을 상징하는데 하늘의 별을 보면서 가슴 속의 갖가지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본다. 한결 같이 그리운 존재들,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아울러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하고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도 함께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시인은 무엇보다도 잃어버린 추억에 대한 그리움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하고 있다. '이름을 써 보고'는 자의식과 더불어 민족의식의 자각을 하는데, 자기의 이름 석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 버렸습니다.” 는 조국을 잃은 백성으로서의 존재적 아픔과 부끄러움이 나타나 있다. 그래서 9연에서 화자는 자신의 무력한 생활에 대한 성찰과 존재에 대한 부끄러움을 '벌레'라는 상관물을 통해 객관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의 부끄러움은 단지 그것을 인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슬픔을 희망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현재의 생활은 겨울과 같이 고통스럽지만 봄이 오면 잃어버린 삶과 꿈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봄'은 시인이 그토록 신앙하는 ‘광복의 날’을 상징하고 있고, '풀'은 ‘부활의 이미지’로 표현되어 있다.
10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과거의 추억(1-7연), 현재의 고뇌(8-9연), 미래의 희망(10연)으로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좋다. 따라서 이 시의 주제는 별을 통하여 보는 고향에 대한 동경과 자아 성찰,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부활(재생)의 날에 대한 희망. 아름다운 이상에 대한 불멸의 정신으로 정리 할 수 있다. 특히 땅에서는 풀이 여지없이 쓸어 지고 베임으로 순교와 순국의 영들로 비유되지만 봄이 오면 새싹으로 부활하듯이 동시에 하늘의 별은 마치 불멸의 영혼들처럼 영광스럽게 빛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그러므로 윤동주 시인의 서시에 별은 단순한 의미의 동경과 이상의 대상이라기보다 더 크고 깊은 뜻이 숨어 있다는 것을 간파해야한다. 즉 별이 어둠과 바람 속에서도 결코 꺼지지 않는 불멸의 상징과 함께 죽은 자의 부활과 그 영광까지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아야함이다. 실은 봄은 준비하지 않아도 기다리지 않는 자에게도 찾아와 죽었던 풀들이 다시 소생하는 부활의 계절인 것이다. 진리와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희생한 의인들도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서 희생한 의인들에게도 완전한 광복(회복)과 자유를 얻는 부활의 봄이 돌아와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러한 봄이 우리에게 돌아 온 것인가.
시인이 별을 노래하듯이 의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음을 노래하고 그 별빛이 소멸하지 않기를 염원하면서 앞서간 그들처럼 동일한 영생의 삶을 사는 동시에 그 자유와 부활의 봄이 아직 미래적 사실로 오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기에 별에 대한 오늘의 그리움이 여전한 것이다.
6행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별이 불멸의 영혼들과 부활의 상징이라면 “모든 죽어가는 것”은 무엇이기에 “사랑해야”하는가. 시인이 노래한 별이 불멸의 영혼을 포함했다면 그 불멸의 영혼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진리와 자유와 정의를 위해서, 그리고 민족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서 희생당한 의인의 영혼들이다. 그들에 대한 비참한 죽음이 욕되지 않아야하기에 시인은 죽음의 희생을 외면하지 않고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의 원인은 다만 두 가지 이다. 한 가지는 의를 행한 자가 약자였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인을 죽인 자는 강자였다는 사실이다.
시인은 지금 의인들처럼 약자이지만 그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친일파들은 강자들처럼 그들 편에서 가진 횡포를 휘둘러 동포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불쌍한가. 신앙양심으로 입장을 달리한 친일인사도 있지만 오히려 당시에 한국교회는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을 내었던가. 시인은 그러한 역사적 인식을 망각하지 않고 은밀히 양심선언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야 할 숙명적인 소명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비평가들은 이 구절에 대해서 너무 쉽게 다루고 넘어가는 것은 웬일인지 모르겠다. 즉 “미래의 삶에 대한 결의” 혹은 “사랑의 실천과 진실한 삶의 다짐” 정도로 취급하였다는 것은 본질의 깊이를 바르게 인식하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승훈 교수의 경우에 있어서는 ‘별“과 ”죽음“을 대립과 대응관계로 해석한 언어 구조적 해석은 그 중에 가장 절묘한 점이 있었으나 그 죽음(죽어가는 것)의 내용이 무엇이다. 라고 하는 설명은 필자가 발견할 수가 없었다.
필자가 이해하는 의식으로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은 죽어가는 것과 동일한 의식을 가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산자가 죽은 자를 사랑할 수 는 없을지 모르나 죽어가는 자는 사랑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우리가 죽음에 대하여 무관심하여도 죽음은 숙명적으로 오는 것이지만 화자가 말하는 죽어가는 것은 보통의 죽음이 아니라 의를 위한 의인의 죽음 혹은 의로운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자신에게도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제4문장 각행구절해석
7행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화자(話者)가 말하는 주어진 길은 운명(運命)의 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숙명(宿命)의 길이라고 이해한다, 운명이라는 것은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는 상태에서 운명이 이끄는 대로 그리고 되는 대로 가는 우연(偶然)의 길이지만 숙명이 길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을 우러러 하늘(天父,上帝)의 순리(順理)에 따라 정의로운 길을 가는 절대적인 길이며 소명(召命)의 길이다. 이 주어진 길은 시대와 역사 앞에 받은 소명이기도 하다. 바로 그 길을 가려는 의식과 의지를 일컬어 사명감이라고 한다.
이 길은 모든 사람이 가야할 길이나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나타나는 영성적(靈性的)인 내면성도 있기에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발견(發見)하지 못하는 자는 방황(彷徨)할 수도 있거니와 사명적(使命的)인 의지(意志)를 불태울 수가 없다. 그러나 화자는 그 길을 즉 “나한테 주어진 길을” 확신(確信)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 된다.
8행 “걸어야겠다.”
그러나 그 길은 구체적으로 어떠할 것인가. 다 알고 있지는 못하다. 비록 어려운 일이 있을지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되는 길로 인식한다. 그래서 결국 이 길은 결연한 의지와 함께 갈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길이며 동시에 종말론적인 헌신을 필요로 하는 희생의 길이기도 하지만 결코 혼자만 걷는 길이 아니라 상징적이지만 별과 함께 즉 앞서간 선배성도와 함께 그리고 의(義)의 태양이신 천부와 함께 또 그야말로 천자(天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임마누엘 하는 하늘가는 천성(天城)의 본향길이다.(히11:1-2,8)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에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그러므로 최선을 추구하되 인간적인 억지로 서두를 필요는 없다. 화자가 ‘달려가야겠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걸어야겠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의식에서 나온 표현이다. 그야말로 한 걸음씩 걷다가 보면 이 고난으로 점철된 이 세상의 인생길에서 마지막 끄트머리에 영원한 안식을 만나고 완전한 행복에 귀의할 수 있게 된다. 그곳은 궁극적으로 이 땅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다. 자 그러면 여기서 다시 화자의 다른 시<또 다른 고향>을 잠시 살펴봄으로 조명해 보자.
고향(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백골(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방은 우주(宇宙)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 곱게 풍화 작용(風化作用)하는 백골을 들여다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짓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백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에 가자. (‘또 다른 고향’ 전문)
이 시에서 땅의 '고향'은 그리움과 비애를 느끼게 하는 곳이다. 화자는 그리운 고향에 돌아왔지만, 고향은 이미 육신과 영혼이 함께 안식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1연에서의 '백골이 따라와 한방에 누웠다'에서 알 수 있듯이, 화자는 그리운 고향에 왔지만 더 이상 고향에서 안정감을 찾을 수가 없어서 자아의 갈등의 모습을 보인다. 2연에서 백골이 누워있는 '방'은 현실을 나타내고, 우주는 '이상'을 뜻하는 것으로 분열된 자아는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며 갈등을 일으키고 3연에서는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4연과 5연에서는 어떤 존재가 어둠을 꾸짖으며 존재감이 분열된 자아의 부끄러움을 일깨우고 있다. 6연에서 또 다른 고향에 가자고 한다. 여기서 또 다른 고향이란 현실에서의 백골처럼 무기력한 모습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자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시인은 당시의 식민지 시대에서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영혼의 뿌리 깊은 상실감 등으로 인한 비애의 감정을 여러 작품에서 표현하였다. 그러한 정서는 그리움으로 발전하여 때로는 비극적으로 때로는 서정적으로 윤동주의 여러 작품을 통해 형상화되고 있다.
일제 강점하의 여러 지식인들의 모습이 그러했지만, 그 중에서도 윤동주는 기독교신앙인으로서 특히 자학에 가까운 자기 부끄러움의 의식이 많았던 지식인이었다. 그는 여러 작품들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매우 꾸짖으며, 또 절대적 자아에 대한 성찰 의식으로서의 부끄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죄의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현실에 대한 저항 의식이라고 평가되기도 하고, 식민지 현실에서 스스로 적극적인 저항 의식을 펴지 못하는 데에 대한 자책이라는 평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 과정의 단면만을 보는 가혹한 평가이다. 그 시대 그는 불과 20대의 청년으로서 공부도 하지 말고 독립운동에 다서든지 유관순열사처럼 죽어야했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이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알고 있었든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각자에게는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 있다. 다만 자기의 역량(力量)대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결국 시인은 만 3년 후에 투옥되어 옥사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가 비굴하기만 하고 심약한 사람에게 불과하였다면 최소한 오늘날 유명한 친일인사들처럼 죽지 않고 광복 이후에 크게 출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5)제5문장 각행구절해석
9행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분석에 대하여 필자도 대체로 일치한 이해를 하고 있다. 즉 ‘현재상황적 갈등’ ‘시련과 고뇌의 현실 확인’ 혹은 ‘(과거처럼 다시) 화자와 세계와의 갈등’ ‘과거의 갈등과 미래의 화해가 한데 엉겨있는 심리적 복합성’ ‘현실(외면세계)의 미래 삶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미흡한 점이 있다면 그의 종말론적인 순교(순국)신앙의 소명에 대한 현실적인 갈등과 함께 거짓 없는 신앙양심에 대한 결연한 지조가 자기 안에 내재하는 별로 승화되어 있는 상태의 현실에서 스치는 바람(희생을 요구하는 박해의 바람)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의 종결의미는 종말론적인 의를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죽음(희생)의 길 곧 영원히 불멸하는 별의 길로서 그의 모든 시를 대표하고 대변하는 서시로서 의식적으로 썼다고 본다.
별의 승화과정을 연역법적으로 4단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밤하늘의 별(자연의 별)-이상의 별(추억의 별 곧 그리움의 별)-의인의 별(의의 별 곧 불멸의 별)-나의 별(현실의 별 곧 의인의 별)이 된다. 이런 승화된 별은 순간적인 감정에 동요되어 나오는 감상적인 별도 아니고 젊은이의 야심과 혈기에서 분출 되는 이상의 별도 아니고 어떤 영웅심리에서 나오는 출세의 별도 아니다. 그 모든 과정을 고뇌를 통하여 걸러내고 신앙을 통하여 정화되어진 별이며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의인의 별을 의미한다. 시인은 그 별을 보고 그별의 길을 바람으로 느끼는 것이다.
4.‘서시’ 분석사례(詩材分析事例)
1)홍희표-4단락 구분/주제: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한 결백한 양심선언 제 1단락(1.2행)-결백하고자 하는 진실의 선언 제 2단락(3.4행)-욕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적 고뇌 제 3단락(5.6.7.8행)-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찾아 떠나고 싶은 갈구 제 4단락(9행)-아픈 자기성찰
2)이동순-3단락 구분/주제: 근원적인 자아와 사회적인 자아가 갈등을 겪으면서도 현실에서의 조화로운 공간을 그리워하는 의식(意識) 제 1단락(1.2.2행)-삶의 도덕 완성을 염원하며 지조를 지켜 가려는 시인의 의지 제 2단락(4.5.6.7.8행)-시인이 성취하고자 하는 창조적 진화의 연속성 제 3단락(9행)-어둠의 역사에서 고난당하고 있지만 극복의 의지를 잃지 않고 있는 마음
3)마광수-4단락 구분(기승전결 법적용)/주제: 자연심상을 염두에 둘 때, 대자연의 운행질서를 겸손하게 바라보며, 그 가운데서 자기자신의 분수에 맞는 일을 찾아 천명(天命)에 따르려 애쓰는 청년의 모습 제 1단락(1.2행)-윤동주가 자신의 도덕적 윤리를 성취하려는 윤리의식 제 2단락(3.4행)-1단락의 의지가 현실상황에 부딪혀 시련을 겪는 것 제3단락(5.6.7.8행)-어려운 현실 상황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채찍질해가며 영원한 진리와 생명의 나라를 지상에 실현시켜 보려고 애쓰는 시인의 의지와 실천적 다짐 제4단락(9행)-2단락의 연장 곧 시인이 처한 시대적 상황의 제시
4)노대규-5문장 구분 제 1문장(1.2행)-불변적 지속적 준법정신에 대한 소망 제 2문잗(3.4행)-이러한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괴로움과 죽음에 대한 괴로움 제 3문장(.5.6행)-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는 책임감과 의무감의 확인과 다짐 제 4문장(7.8행)-이러한 책임과 의무의 수행의지 제 5문장(9행)-역사적 사회적 시대상황에 대한 인식과 희망불멸의 정신, 생명존중정신, 책임과 의미의 수행정신
5)이승훈-3단락 구분(문법적 시각에서 분석) 제 1단락(1.2.3.4행)-과거시제. 화자와 세계의 갈등. 부끄럼이 없는 삶에 대한 자기갈등 제 2단락(5.6.7.8행)-미래시제. 화자와 세계의 화해(사랑과 의지). 과거 1단락에 기인한 심리적(내면세계) 현실 곧 주관적인 현실의 서술 제 3단락(9행)-현재시제. 다시 화자와 세계의 갈등. 과거의 갈등(1 단락)과 2단락의 미래의 화해가 한데 엉겨있는 심리적 복합성. 즉 객관적인 현실(외면세계).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한 현재
6)김홍규-3단락 구분/주제: 부끄럼 없는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 제 1단락(1-4행)-삶에 부끄러움과 괴로움. 과거시제. 부끄럼 없는 삶에 대한 희구(1.2행). 현실 상황 속에서의 고뇌(3.4행) 제 2단락(5-8행)-미래의 삶에 대한 결의. 사랑과 실천과 진실한 삶의 다짐 제 3단락(9행)-현재상황적 갈등. 시련과 고뇌의 현실 확인
7)박성훈-3단락 5문장 구분/주제: 종말론적 순교(순국)신앙의 소명(召命)에 대한 현실적인 갈등과 거짓 없는 신앙양심에 대한 결연한 지조(志操)
윤동주‘서시’ 내용분석표
연(聯) 단락 문장 시행 시행구절(詩行句節) 의 미 시제 제1 1 1 1 죽을 때까지 하늘을 우러러 종말론적 순교신앙(순국) 과거/ 현재 형 2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경건한 신앙/ 순결한 양심 과거/ 현재 형 2 3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환난과 시련/ 식민지 세풍 과거/ 현재 형 4 부끄러워했다. 갈등/ 고백적 탄식 과거/ 현재 형 2 3 5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시인의 선지 사도신앙 현재/ 미래형 6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순교순국신앙 현재/ 미래형 4 7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숙명적 소명 자각신앙 현재/ 미래형 8 걸어야겠다. 일보정진/ 일사(一死)각오 현재/ 미래형 제2 3 5 9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신앙생활시련의 현실적 자각 현재 형
첫댓글 좋은글 잘읽었읍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
훌륭하신 분석입니다.한국비평문학의 새로운 장으로 역할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