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사진 특강 (6)
스마트폰 카메라로 가까운 것 찍기
스마트폰 카메라의 가장 큰 장점은 언제나 휴대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휴대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찍을까? 그림처럼 멋진 풍광과 결정적 순간의 장면이 언제나 내 눈 앞에 펼쳐지지는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자. 찍을 것은 무궁무진하다. 평소에는 너무나 당연하고 사소해서 지나쳤던 것들, 언제나 가까이 있어서 존재조차 알아채지 못했던 수많은 것들이 포즈를 취할 것이다. 이런 것도 사진이 될까 하는 의문이 들면 일단 찍어보라. 사진은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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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제목은 거창하지만 아주 단순한 사물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의 정체는 무엇일까? 답은 이 글의 맨 아래에 있다.
나만의 빛의 시간대를 찾아라
하루 중 언제 사진을 찍을 것인가는 어떤 빛을 선택할 것인가와 직결된다. 빛을 기준으로 하루의 시간대를 나눠보면 새벽, 아침, 오전, 한낮, 오후, 저녁과 밤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각의 시간대 앞에 ‘이른’ 혹은 ‘늦은’과 같은 말을 붙이면 더 세분화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같은 시각이라도 계절에 따라 일출과 일몰 시간이 바뀌기 때문에 빛은 달라진다. 한겨울의 오전 7시는 아직 캄캄하지만 한여름에는 이미 해가 떠서 밝다.
같은 피사체라도 각 시간대의 빛에 따라 색감과 질감,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에 사진 교과서에서는 시간대별 빛의 특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빛이 사진을 좌우하기에 사진가들이 빛에 민감한 것은 당연하다. 특정한 피사체를 찍을 때 특정한 시간대만을 고집하는 사진가들도 많고,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모든 사진을 특정 시간대의 빛이 만들어내는 조건에서만 찍는 경우도 있다. 빛에 기대어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빛은 절대적이다.
그런데 빛은 상대적이기도 하다. 같은 피사체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데, 그중에서 어떤 시간대에 촬영한 것을 선호하는가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시간대마다 달라지는 빛의 특성을 파악하고, 피사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빛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알기엔 왕도 혹은 비결은 없다. 시간대별로 다양한 빛의 조건 아래 촬영을 거듭해보는 것이 가장 느리면서도 가장 빠른 길일 것이다.
전업적인 사진작가가 아니라면 빛의 시간대를 따로 선택해서 촬영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시간대는 여유가 있을 때일 것이다. 그런데 여유는 생기기도 하지만, 만들어낼 수도 있다. 출근이나 퇴근길에, 혹은 점심시간에 주변을 살피고 주위를 두리번거려보라. 시간대와 상관없이 사물이 빛나는 때가 있다. 풍경을 찍는 것이 아니라면 자연광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실내조명이 사물을 돋보이게 만들 때도 많다. 평범한 사물을 멋진 피사체로 만들어주는 빛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원석이 빛으로 빛날 때 카메라에 담으면, 나만의 보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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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을 담은 잔
햇살이 뜨거웠던 봄날이었다. 점심 식사 후 식당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데 반짝이가 포착되었다. 야외석 탁자 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는 포도주 잔들이었다. 빈 잔이지만 어떤 값비싼 포도주보다도 귀한 보석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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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잔
여름이라 식당의 잔에 물방울이 맺혔다. 나는 이걸 내 맘대로 ‘물땀’이라고 부른다. 잔도 물도 탁자도 벽도 특별할 것은 없다. 잔에 요철 장식이 있다는 것이 약간 눈에 띌 뿐이다. 그런데 찍었다. 그냥 단순하고 평범한 아름다움에 끌렸다. 다른 이유는 없다.
들이대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카메라의 렌즈를 피사체에 가까이 대고 촬영하는 접사(接寫)도 사진의 즐거움 중 하나다. 고품질의 접사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DSLR 카메라에 별도의 접사 렌즈를 장착하고 때로는 링 플래시 등 고가 장비까지 동원해야 하지만, 스마트폰 카메라로도 어느 정도는 접사가 가능하다.
대개는 일상의 사물들을 적당한 거리에서만 바라보고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는데, 카메라로 최대한 가까이 찍어보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사물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현미경이 있으면 주변의 온갖 사물을 재물대 위에 올려놓고 살펴보듯이 접사에 재미를 들이면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것이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제공하는 접사 기능에 아쉬움을 느낀다면 별도의 접사 렌즈를 장착해서 즐기는 방법도 있다. 접사 렌즈는 꽃이나 곤충 등 작은 피사체와의 촬영 최단 거리를 줄여 가까운 초점거리에서 클로즈업해 찍을 수 있도록 해준다. 렌즈 몸통 전체를 교체하는 DSLR용의 복잡한 접사 렌즈와는 달리, 스마트폰 카메라 앞에 끼우는 접사 렌즈는 촬영용 돋보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DSLR용 접사 렌즈의 성능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그런 만큼 크기도 작고 간편하며 가격도 싸다는 장점이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접사를 하면 어느 정도는 아웃포커스 효과를 낼 수도 있다. 근접한 피사체에 초점이 맞으면서 주변 또는 배경은 흐릿해지는 것이다. 접사 촬영할 때는 흔들림을 가장 주의해야 한다. 스마트폰 카메라 렌즈가 최대한 허용하는 한계까지 가까이 다가가 용케 초점을 맞춰도 찍는 순간 흔들려버린다면 허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찍었는데도 피사체가 화면을 꽉 채우지 못해 접사 효과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는 촬영한 뒤에 주변이나 배경을 잘라내 피사체를 부각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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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속살을 엿보다
양귀비는 예전에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참 아름다운 꽃이구나 하고 말았지 이름까지는 몰랐다. 더군다나 활짝 핀 모습이 마치 물들인 습자지 같기도 한 줄은 미처 몰랐다. 과연 당나라 현종의 넋을 잃게 만들었다는 왕비의 이름을 따왔을 만큼 고혹적인 자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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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 위의 잠자리
비 온 뒤에 잠자리들이 높이 날더니 한 마리가 전깃줄 위로 날아들었다. 잠자리는 고생대에 처음 나타나서 공룡시대를 지나 지금도 살아남아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도 한다는데, 과연 여러 컷을 찍는 동안 꿈쩍도 안 하고 화석처럼 앉아 있었다.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
사진은 사각의 화면 안에 피사체를 담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은 화면 안에 피사체의 전체 모습을 다 담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어떤 피사체가 세상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라면 전체의 윤곽을 보여줄 필요가 있겠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처럼 대개는 익숙한 사물들일 것이다.
어떤 논의가 누구나 알고 있는 총론 또는 동의하고 있는 일반론에만 머물고 있으면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이럴 때는 시각을 좀 달리해 사물을 전면만이 아니라 후면, 측면, 또는 위, 아래 등 입체적인 각도에서 보여준다면 신선해질 것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 부분에 집중하는 것, 즉 각론으로 들어간다면 논의가 심화되고 발전된 것이다. 때로는 부분의 세밀한 묘사가 그 사물의 정체를 더 잘 드러나게 해주기도 한다. 때로는 전체의 모습을 감추고 부분만을 보여주는 것이 궁금함과 상상력의 발동을 불러일으키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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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레모네이드
서울 양천구 목동의 디자인 사무실 ‘하트비’에서 손수 만든 레모네이드를 병에 담아 내왔는데 보기에도 시원했다. 이런 멋진 작품은 먹기 전에 찍어 드리는 게 예의이리라. 30층 창가에 솟아오르는 탄산 방울들 너머로 안양천과 아파트들이 흐릿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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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바람이 분다. 갈대가 흔들린다. 씨들이 흩날린다. 씨? 언뜻 보면 눈에 띄지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른쪽 위와 왼쪽 아래에 씨들이 갈대를 떠나 세상으로 날아가고 있다.
음식 사진을 맛나게 찍으려면
음식 사진은 셀카와 더불어 스마트폰으로 가장 즐겨 찍는 사진 중 하나이다. 예전엔 가장 연장자가 수저를 들기 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식사 예절이었다면, 이제는 촬영 의식으로 음식에 경의를 표한 뒤에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예법이라는 우스개가 나올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이 찍는 음식 사진이지만 눈으로 보이는 만큼 맛있어 보이게 찍기는 쉽지 않다.
음식 사진은 왜 잘 찍기 어려울까? 가장 큰 문제는 빛이다. 음식 사진을 주로 찍게 되는 식당이나 가정집의 실내조명은 촬영에 그리 좋은 빛은 아니다. 식당이나 가정집에서 많이 사용하는 형광등 불빛은 음식을 맛없어 보이게 만드는 주범이며, 다른 조명을 사용하는 경우에도 충분히 밝지 않거나 여러 종류의 조명이 섞여 이른바 잡광 상태가 되어 피사체를 칙칙하게 만든다. 또한 전문 조명 장비가 아닌 스마트폰 카메라의 플래시는 음식을 끔찍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가장 좋은 빛은 자연광, 즉 햇빛이다. 창문이 있는 식당을 가게 된다면 창가로 자리를 잡아라. 마침 햇빛까지 좋다면 만족할 만한 음식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빛의 문제와 더불어 음식 위에 어리는 촬영자의 카메라 잡은 손 그림자도 음식 사진의 질을 떨어뜨린다. 가능한 상황이라면 조명의 위치를 감안해 그림자가 지지 않는 각도를 찾아야 한다.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피사체를 요모조모 살피고 최적의 구도를 찾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데, 음식 사진의 경우는 그렇게 여유를 부리기 어려워 대개 조급하게 촬영하게 된다는 것 또한 약점이다. 아주 친하고 스스럼없는 사이라고 하더라도 음식을 앞에 놓고 너무 오래 뜸을 들이는 것은 동행인에게 실례이기 때문이다.
음식이 담긴 그릇은 대개 동그랗기 때문에 바로 위에서 화면을 꽉 채워서 찍으면 좋다. 그런데 그러려면 일어서거나 허리를 식탁 쪽으로 굽혀야 하는데 남의 시선 때문에 과감하게 이 자세를 취하기 어렵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음식 사진을 잘 찍기는 무척 어려운 것이므로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이나 자신의 사진 실력을 탓하기보다는, 사진 욕심을 접고 음식과 동행인에게 집중하는 것이 정신 건강과 인간관계에 좋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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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복 많이 드세요
설 연휴에도 문을 여는 밥집에 갔는데, 고급 놋그릇인 방짜 유기가 상에 놓여 있었다. 식당에서 음식 사진만 찍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접시를 달덩이처럼 최대한 동그랗게 찍기 위해 수직 방향에서 카메라를 겨눴더니 그림자가 비치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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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좋다
때깔이 좋아 찍으면 잘 나오겠다는 감이 들었다. 감만 돋보일 수 있도록 빈 A4 용지를 깔아 배경을 단순하게 만들었다. 최대한 동그랗게 보이도록 정중앙에서 내려다보고 찍으려 했으나 손 그림자가 져서 살짝 아래로 비껴 찍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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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작란
음식에 대한 최대의 예의는 맛있게 잘, 다 먹는 것인데 조금 남기는 결례를 범했다. 게다가 먹을 걸로 장난치지 말라는 옛말이 있지만, 혼날 줄 알면서도 장난(作亂) 삼아 난을 쳐보았다(作蘭). 부추, 두부, 양파, 김, 묵은지, 오징어젓과 간장 등이 출연했다.
클로즈업으로 피사체 갖고 놀기
사물을 낯설게 혹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보여줄 수 있는 것 또한 사진의 매력 중 하나다. 이는 사물의 아주 일부만 떼내어 가까이 찍는 것으로 가능한데, 앞서 말했듯이 작은 피사체를 크게 보여주는 접사나 일부를 통해 전체를 유추하게 하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이다.
클로즈업 샷 놀이라고나 할까? 일종의 눈속임이고 장난이기도 한데,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이 평소와는 달리 보이고 낯설게 느껴지는 기묘한 체험을 할 수 있다. 아래는 필자가 그런 놀이를 했던 사례들이다. 사진만으로 무엇을 찍은 것인지 먼저 상상해보고 아래 설명을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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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 달
푸른 바다 속에서 거품이 용솟음친다. 고깃집에서 사이다를 잔에 따랐을 뿐인데,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앞으로는 살살 따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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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 Strangelove
편의점 앞의 플라스틱 탁자다. 원래 빨간색인데 흰색으로 덧칠을 했고, 그마저 세월과 수많은 사람에 의해 흠집이 나고 벗겨진 것 같다. 가운데는 파라솔을 꽂는 구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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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Grand Bleu
강렬함에 빠졌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횟집의 수조다. 물고기 한 마리 없는 텅 빈 수족관에 비친 강한 조명. 이 얕고 작은 바다가 뿜어내는 푸르름이 나를 홀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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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afleece mountains
주로 겨울에 등산용으로 많이 입는 폴라플리스라는 보풀이 많이 있는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책을 보고 있었다. 좀 두꺼운 책이라 팔꿈치로 책장을 누르고 있었는데 팔뚝 부분이 빛나는 종이에 비쳤고 찻집의 여러 조명 때문에 그림자가 층층이 생겼다. 우연이 겹치면서 산맥을 닮은 수묵화가 탄생했다.
※맨 위의 사진 ‘남과북’은 무엇을 찍은 것인가?
사진전에서 이 사진을 두고 관객과 필자 사이에 오고간 대화다. “이게 뭐죠?” “골프장의 잔디와 카펫입니다.” “잔디가 짧은 걸 보니 퍼팅 그린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카펫이 깔려 있죠?” “KLPGA 대회의 마지막 라운드 때 찍은 건데, 마지막 홀 옆 빈 그린에 시상식을 위해 붉은 카펫을 깔아 놓은 거죠.”
사진과 글 한창민 (스마트폰 사진가) 사진을 전공하지도 배우지도 않고 2012년 봄부터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1년 동안 만여 장 넘게 촬영했고, 찍은 사진들을 매일 SNS에 올려 주목을 받았다. 사진에 입문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한창민 사진전_지난 일년>을 열어 초보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지은 책으로 <나는 찍는다, 스마트폰으로>(오픈하우스)가 있다.
출처 : 네이버캐스트>주제 전체>문화예술>사진 2015.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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