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을 한번 끓여먹지 그래"
어제 일요일 남편은 뜻밖에 추어탕 타령을 하였다. 가을이 되니 입맛이 솟구치나 보다. 그래 모처럼 작업(?)에 돌입해보자 싶어 남편을 앞세워 어시장엘 갔더니 미꾸라지를 내다 파는 아주머니들이 여기저기서 '자연산'을 외친다.
모두가 '자연산' 이라 말하지만, 그것을 확실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반신반의하며 한 사발 사는 수 밖에...
요즘 농약 때문에 봇도랑에 미꾸라지 구경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온 터라 큰 기대를 남편도 하지 않는 눈치이긴 하나 속으론 '자연산'이길 기대해 보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사들고 오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올라 생각이 한참동안 그 시절에 머물렀다. 가을 추수 끝날 즈음 나직한 봇도랑에는 가을 햇살에 살찐 미꾸라지들이 제법 스며 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를 따라 남동생이랑 쭈그러진 양은 주전자 하나 들고 그런 봇도랑을 찾아 나서는 날이면 왜 그렇게 사내아이들처럼 신이 났는지.
엉성한 소쿠리를 받쳐놓고 도랑의 풀 섶을 저벅거려 몰아 부치면 진흙과 함께 굼틀거리는 미꾸라지들이 한꺼번에 몇 마리씩 올라오기도 하였다.
남동생은 미꾸라지를 몰아 잡는데 기지를 잘도 발휘하여서 칭찬도 참 많이 듣곤 하였는데 간간이 미꾸라지와 함께 물뱀이 잡혀드는 바람에 혼비백산하여 소쿠리 던져버리고 도망 쳤던 기억도 새삼 웃음을 자아내는 지난날의 추억이다.
온 들판을 쏘다니며 물기 있는 도랑을 다 돌아 진흙범벅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면 할머니는 주전자에 가득 담긴 미꾸라지 들여다보시면서 그 '옹골짐'에 몇 번씩 감탄하시다가 소쿠리에 쏟아 붓고는 울타리에 가서 센 호박잎 몇 장 따다 쓱쓱 문지르면 금새 미꾸라지들은 거품을 다 쏟아내고 소금에 절인 듯 얌전해진다.
텃밭에서 갓 솎아온 가을 배추 데쳐놓고 숙주나물이며 고사리 새끼호박이며 갖은 내용물 준비하는 사이 가마솥에서 한소끔 끓여진 미꾸라지는 채에 걸려져서 그것들과 함께 다시 가마솥에 들어가서는 얼마나 구미 당기는 추어탕이 되었는지. 그때마다 할머니는 자주 보신 타령을 하셨다. 그날 저녁 만큼은 모두 배를 안고 긴 트림을 하며 포만감에 젖게 되었었지.
아무래도 요새는 그 시절의 추어탕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가을이 되면 한 번씩 어김없이 추어탕을 끓이게 되는 것도 그 옛날 그런 향수 때문이기도 한 게 아닌가 싶다. 자꾸만 옆에 서서 이것저것 참견해 보는 남편의 심사에도 추어탕의 맛을 한층 돋우게 하는 그리운 유년의 추억이 함께 스며들어 있는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