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은 아직도 타고 있는데
김하임
일찍 일어난 3·1절 아침이다. 국경일인데 베란다 창문 앞에 태극기를 달까, 말까 생각 중이다. 이런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것이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2002년 월드컵 경기에서 우리나라 축구가 독일을 이기고 4강에 진출하게 된 때였다. 경기장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집에서 구경하던 옆집, 앞집, 우리집 저마다 환호 소리가 터졌다. 경기장에서는 대형태극기의 물결이 파도를 이루고 광화문과 동네 대형 TV 앞, 거리에서도 그러하였다. 외환위기를 거치며 아직 실의에 있을 때 우리나라 선수들이 힘들어하는 국민에게 준 큰 선물은 희망이 되어 사람의 의식까지 바꾸어 놓았다. 나, 역시 그러했다.
그날은 사춘기 내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나라에서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4강에 올라간 경기를 보며 응원하던 사람들의 그 벅찬 감동의 회오리가 우리집 거실까지 전해왔다. “미쳤어. 우리나라가 미쳤나 봐.” 눈물이 쭈르륵 흘렀다. 베란다로 나와서 깜깜한 밤에 아파트 창문을 열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민국”을 크게 외쳤다. 이 집 저 집 창문에서도 흥분에 싸인 목소리들이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으니 이 밤에 소리 지르는 나를 보아도 이상히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태극기를 달았다. 그것도 말없이 다는 것이 아니라 꼭 태극기를 몇 번 휘두르며 “대~~한민국”을 외쳤다. “대한민국 만세. 얘들아, 대한민국에서 온 국민이 응원하고 있다, 힘내라.” 공부하는 아이들을 두고 오던 내 근심이 방향을 틀었다. 동양에서 간 아이들 뒤에 대한민국의 내공과 핏줄에 흐르는 잠재된 불꽃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내 기도와 염원에 힘찬 대한민국 구호가 하나 더 첨가된 셈이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나는 학급 아이들과 함께 조회시간마다 태극기를 보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였다.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순수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성을, 파랑, 빨강의 태극 문양은 음, 양의 조화를 상징하며 한민족의 이상을 담고 있다. 지리부도를 보며 나라 이름과 그 나라 국기를 외울 때도 태극기가 제일 아름다운 국기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하교 후 운동장에서 놀던 아이들은 6시 태극기 하강식 음악이 나오면 놀이를 잠시 멈추고 기다렸다. 1학년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갈 때 운동장 높은 깃대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향해 교실에서 배운 ‘국기에 대한 경례’를 연습하고 선생님과 교문에서 헤어졌다. 이러한 것들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 갔으나 “바람직했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마음 깊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자라라는 표현이었다.
5대 국경일과 국기를 다는 날이 오면 알림장에 숙제와 함께 ‘태극기 달기’ 참여를 권장했다. 아파트에서는 베란다 밖 창문 옆에 국기를 다는 곳이 마련되어 있어 며칠 전부터 안내방송을 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나는, 태극기 다는 것이 정화수를 올리는 심정처럼 깨끗한 태극기를 달고 싶어 몇 번 새것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 내 정성이 오염되었나? 촛불시위와 태극기 시위가 생기고 그들의 처음 시작은 민주적이었으나 의견과 정치적 성향이 충돌되면서 패가 갈리듯 격렬해졌다. 때로는 이성을 잃은 듯한 광기를 볼 때 부끄러웠다. “나라 사랑 표현이 저런 모습은 아니야.” 아끼고 자랑스럽던 국민과 태극기의 이미지 이상과 너무 멀어졌다. 의미를 부여하며 든든한 뒷심으로 창밖에 달던 태극기를 내리는 날, 슬펐다. 난 어느 한쪽 편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불꽃은 아직도 정의와 자유와 진리와 이성이다. 이성을 잃은 모습이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라떼~’어른이 부끄러운 행동을 하는 동안 어려운 현실에서 살아야 할 젊은이들이 새롭게 일어섰다. 스러지는 끝자락에 다시 창조되는 태극 문양처럼 음양 조화를 천천히 들어 올리고 있다. 오히려 계기 삼아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활동을 통해 그 힘이 퍼져나가는 대견함이란. 한국을 나타내는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입고 노래하는 그룹이 생겼다. 풍물 악기를 사용하여 춤과 노래로, 문화로, 예술로, 작품으로, 영화로, 음식으로 발전시켜 세계 경쟁으로 뛰어드는 젊은 그들은 낡고 헐어빠진 흉물을 새로운 작품과 창조물로 재탄생 시키고 있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오르는 문양인 태극기는 왜곡되고 편협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다. 과거를 가슴에 새기며 3·1절을 뜨겁고 새롭게 맞이하는 의미는 이 시대 젊음이 어느 나라, 어느 곳에 가서 공부하고 활동하든 선조들이 후대를 위해 흘린 피의 가치가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 준 것이지 않겠는가.
다시, 눈치를 볼 것 없이 태극기를 창문에서 휘두르며 목숨 바쳐 이 땅을 지켜주신 분들과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젊은이, 우리 모두를 응원해도 보는 이가 자연스러울 날을 기다리고 있다. 요즈음 40일의 사순절 기간에 묵상으로 읽은 본훼퍼의 기도문의 한 부분이 되어 가슴에 손을 모은다.
아침기도
이른 아침 주님께 기도합니다.
전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으니
제가 기도할 수 있도록 도우시고 흩어진 생각을 모아 주소서.(생략)
저는 무력하나 주님께는 도움이 있습니다.
저는 불안하나 주님께는 평화가 있습니다.(생략)
저는 주님의 길을 알지 못하나 주님은 저의 길을 아십니다.
<디트리히 본회퍼가 형무소에서 쓴 ‘아침 기도’의 첫 부분>
첫댓글 태극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도 생각되는 현실이 그렇군요. 순수하게, 국경일에 나라사랑하는 마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있는데. 점점 배란다에서 펄럭이는 태극기가 줄어들고 있는것이 사실입니다.
먼저간 애국지시의 영혼을 위로해봅니다.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상징입니다.
자랑스런 우리나라가 이념의 갈등과 대립에 휩싸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애국 하시는 깊은 마음,저마음이 동화되어 대한민국을 외칩니다.
이 나라를 지켜주신 하 나님 감사합니다.
하임 선생님 덕분에 태극기를 그려보며 행복한시간을 . 전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