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께 귀의하옵니다. _()_ _()_ _()_
대승의 경전에 대하여는 이곳 초기불교 카페에서 다루는 논의 주제가 아니므로 다른 법우님들께서 답을 주시지 않는 것이므로
법우님께서는 오해마시고 이점 널리 양해 바랍니다. _()_
결론적으로 법우님께서 궁금해하시는 것에 대한 답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대한 대승의 금강경은,
유위법에 대해 영원불변한 고정된 실체로서 '아(我, 자아)'라는 인식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라 이해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이라고 한 예를 말하기 보다는 '자아'라고 함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래는 추가로 중요한 것이라 생각되어 각묵스님의 가르침을 올려봅니다.
이에 대하여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교학과 수행 동영상-제9강 상온 편』에 나오는 바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이는 매우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되어 댓글보다는 답글로 작성하여 보았으니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다 음 -
- 출처 : 각묵스님의 『초기불교 교학과 수행 동영상-제9강 상온 편』을 내용으로 정리한 것임.
대승의 금강경은 유위법에 대해 아(我)라는 인식을 버리라는 가르침이라 합니다.
금강경에서 구마라즙 스님이 표현한 상(相 고정관념)으로 옮긴 것은 인식(想산냐)의 산냐라는 단어를 옮긴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구마라즙 스님은 산냐를 인식(想상)으로 옮기지 아니하고 고정관념(相상)으로 옮기셨을까요 ?
먼저 수(느낌)와 행(심리현상들)에 대해서 구분해볼까요 ?
수(受느낌, 웨다나)는 정서(감정)적인 토대입니다. 하지만, 정서(감정)로 발전하면 더이상 느낌(수受)가 아닙니다.
단지 느낌이 발전하여 감정이나 정서가 된다는 것일 뿐입니다.
즉, 느낌(수)이 탐욕, 불탐, 성냄, 부진, 자애, 연민 등으로 발전하면 감정이 되는 것이며,
이 감정들은 행(行)인 심리현상으로 아비담마는 구분합니다.
☞ 그렇기에 아비담마를 공부하지 못하면, 불교의 교학은 기초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불교는 직관, 응용, 종합 만 있는 것 같습니다.
즉, 느낌은 대상을 느끼는 것이며, 이 느낌이 발전하여 정서적, 감정적인 반응을 하게 됩니다.
상(想인식, 산냐)은 지적 토대입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지적으로 발전하면 더이상 상(想,산냐,인식)이 아닙니다.
상(想)이 발전하여, 생각, 고찰, 지혜, 무명으로 발전하면, 이것들은 행(行)온에 속하게 됩니다.
즉, 인식은 대상을 아는 것입니다. 예) '아 책이구나' 하고 아는 것.
이렇게 느낌과 인식과 행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금강경에서 말씀하시는 네가지 고정관념(상相)은 아래와 같습니다.
① 아상(我相) : 자아가 있다는 인식, 고정관념
② 인상(人相) : 개아(人은 독자부, 진인, 참인간 등의 자아)가 있다는 인식
③ 중생상(衆生相) : 중생(중생의 자아)이 있다는 인식
④ 수자상(壽者相) : 지와(목숨 : 자이나교에서 말하는 목숨, 생명, 영원한 자아)인식
위 4상은 모두 자아에 대한 인식, 즉, 고정관념에 대해서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버려야할 인식을 강조합니다.
1) 희론하는 인식을 버려야 함.
숫따니빠따(최초로 성립된 불교의 경전)에서 희론하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희론이란 생각으로만 머리를 굴려서, 세간의 헛된 말장난이라 합니다.
2) 네가지 전도된 인식(상락아정常樂我淨)을 버려야 함.
① [상(常영원함)] → 모든 유위법은 무상으로 보아야 한다. 변한다, 영원하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② [락(樂즐거움)] → 모든 유위법은 괴로움으로 보아야 한다.
③ [아(我영원한 나, 아뜨만, 자아)] → 제법(모든 법=유위법+무위법)은 무아(無我)로 보아야 한다.
④ [정(淨깨끗함)] → 모든 유위법은 더럽다, 부정(不淨)으로 보아야 한다.
는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점들을 유추해 볼 때
금강경에서 구마라즙 스님은 인식이 굳어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강조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인식(想산냐)을 상(相 고정관념)으로
옮기셨다고 생각합니다.
즉, 구마라즙 스님이 필요에 의해 산냐(想)를 그렇게 고정관념(相)을 버리라고 강조하신 것으로 탁월한 번역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대승의 금강경은 유위법에 대해 아(我, 자아)라는 인식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의할 점은, 초기불교나 대승불교나 가르침의 입각처가 같다는 사실입니다.
즉, 초기불교에서는, 모든 유위법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이 아니라는 가르침인데, 소극적 표현으로 보면 될 것이고,
대승불교에서는 무위법인 열반은 상락아정이라고 강조하여 적극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므로,
마치 대승에서는 자아를 인정하고 있다고 오해해서는 아니됩니다.
☞ 참고로 [닦아야할 인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비담마(논장)에서는 인식은 반드시 마음과 함께 일어난다고 합니다. 즉 잠재의식인 바왕가에서도 인식은 일어납니다.
- 부처님도 아프다고 느끼지만, 그것 때문에 또 다른 전이된 고통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독화살의 비유경 참고)
-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닦아야할 7가지 인식
① 부정(不淨)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 상락아정의 반대
② 죽음에 대한 인식 - 죽음은 반드시 온다는 인식. 염쇄와 관계없이 현실이다.
오히려 마음가짐이 염쇄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편안해지고, 세상사에 담담해진다.
③ 음식을 혐오하는 인식
④ 온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 - 세상살이를 너무 즐기고, 아등바등하면
오히려 풍파가 닥치고 불경기가 오면, 괴로움에 더 빠진다.
⑤ 오온에 대해서 무상(無常)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기는 인식
⑥ 오온에 대해서 괴로움이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⑦ 오온에 대해서 무아(無我)라고 관찰하는 지혜에서 생긴 인식
- 이상, 각묵스님의 초기불교의 교학 및 수행의 동영상 에서 -
첫댓글 감사합니다. 의문이 확 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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