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YOUR ESSAYLIFE
언양에세이포럼
22기-17차시
일시: 2024년 6월 25일(화) 3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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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 제 목 | 작 가 | 편수 | 합평 담당 |
1 | 팔불출 | 김인옥 | 6 | 이경자 |
2 | 윗사람 | 박희자 | 5 | 이혜경 |
3 | 인생살이의 딜레마 | 배정순 | 9 | 김순향 |
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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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순서/권춘애 김순향 김선애 김연희 김인옥 민창현
박동조 박희자 배정순 예수백 이경자 이혜경
1. 팔불출/김인옥6
1. 젊었을 땐 색조화장을 하지 않았다. 립스틱을 하나 사서 발라보기도 했지만, 어색해서 결국 화장지로 빡빡 지우고 대문을 나서곤 했다. 생긴 대로 살 것이지 못난 것이 예쁜 척 꾸민다는 게 영 부끄러웠다.
2. 내가 존경하는 어떤 분은 언제나 화장을 곱게 하고 다녔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맨얼굴을 보인 적이 없다고 했다. 항상 남편보다 먼저 일어나 몸단장부터 한 후에 아침을 준비한다고 했다. 차려입고 나설 땐 악세사리 하나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여자라면 모름지기 이렇게 자신의 외모를 가꿀 줄 알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은 했지만 실천은 어려웠다.
3. 나이가 지긋하고부터는 색조화장을 안 할 도리가 없었다. 남편의 말처럼 호박 금 긋는다고 수박 되는 건 아니지만, 평생 따라다니는 빈혈이 노골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람에 안색이 노르끼리해졌기 때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대니 어쩔 수 없었다.
4. 그러나 약속시각이 임박해져서야 후다닥 튀어나가는 습관이 고질병처럼 몸에 붙어있어서 꼼꼼하게 화장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엘리베이트 안에서 머리를 손가락으로 쓱쓱 빗어 넘긴 다음, 콤팩트와 립스틱을 초스피드로 해치우기 일쑤였다. 그 바람에 가까운 지인들은 내 어깨에서 머리카락을 떼어주기도 하고 어긋난 단추를 다시 채워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바지 지퍼를 올려준 적도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외모에 무신경한 칠칠맞지 못한 빙충이었다.
5. 그러니 내 얼굴에 주름이 잡혀가도 크게 괘념치 않았다. 함빡 웃는 친구의 얼굴에서 주름치마 같이 굵게 잡히는 주름살을 볼 때도 저 얼굴이 내 얼굴이겠거니 짐작만 하고 ‘그럴 나이도 됐지 뭐’ 가볍게 여겼다. 내용물만 건실하면 됐지, 포장지 구겨졌다고 무슨 대순가 생각했다. 기분만 살아서 주름이 지는 이유가 내용물에 있음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6. 그런 내가 심각하게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혈압 진단을 받은 것이다. 내게 있어서 고혈압은 단순히 노인성 질환이 아니라 만성 신부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외모의 주름살에는 초연할 수 있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노쇠의 증거는 심한 충격이었다. 이제부터는 병원 출입이 잦아질 것이고 이런저런 약봉지를 달고 살겠구나 생각하니 몹시 우울했다. 거울 앞에 앉아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영락없는 늙은 여자였다.
7. 그렇게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며느리가 왔다. 손에는 지바고의 연인 라라가 썼던 모자를 연상시키는 짙은 갈색의 밍크 모자를 들고서. 모자는 귀티가 나면서도 귀여웠다.
“어머니 추운 날엔 외출하실 때 꼭 이 모자를 쓰고 나가셔요.”
눈가가 촉촉이 젖어왔다. 며느리도 덩달아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바라보다가 부둥켜안았다. 우울했던 마음이 구름이 걷히듯 말끔히 사라졌다. 내 기분에 공감하고 나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8. 털모자를 써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은 추운 어느 날, 라라의 모자를 쓰고 거울 앞에 섰다. 엷은 화장도 했다. 모자에 파묻힌 주름 자글자글한 얼굴이 웃고 있었다. “어머니 예뻐요!” 며느리의 말을 상상으로 들으며 용기를 내어 길을 나섰다. 며느리의 따뜻한 마음도 함께 따라 나섰다.
9.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완전한 기우였다. 그저 바삐 제갈 길을 갈 뿐이었다. 아는 얼굴을 만나도 별 말이 없었다. ‘너무 어색하진 않는 모양이구나.’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론 서운했다. 누가 물어봐준다면 ‘우리 며느리가 글쎄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너스레를 떨고 싶었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모자 하나 썼다고 이렇게 보온에 도움이 될 줄 몰랐다. 더워서 땀이 날 지경이었다.
10. 직장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한 선배의 말을 듣고 그 선배와 박장대소를 한 적이 있다.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아들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보래 김선생, 참 이상하제? 분명히 아들이 잘못했는데 며느리가 와 밉노.”
이것이 솔직한 시어미의 심보다. 아들의 사랑과 관심을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는 상실감이 시어미의 마음을 뒤틀리게 한다.
11. 내게도 왜 이런 고약한 시어미 심보가 없겠는가. 그런데 며느리가 밉지가 않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고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시어미의 눈으로 보면 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사하는 날 바닥에서 천장까지 그득한 각양각색의 구두를 보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12. 세상에 흠 없이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내 흉을 보자면 열손가락이 모자란다. 결코 싹싹한 사람은 아니지만 마음이 따뜻하니 자잘한 흉은 덮고도 남는다. 거기에다 좋은 음식 솜씨로 십 년이 넘도록 시부모 생일상 꼭 제 손으로 차리지, 손주들 잘 건사하지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자식 자랑이 팔불출 중의 하나라지만, 나는 기꺼이 팔불출이고 싶다.
2. 윗사람/박희자 5
1. 문학회 회장 이취임식이 있던 날이었다. 행사는 음식점 온돌방 앉은뱅이 식탁에 둘러앉아 진행되었다. 식순에 따라 전 년도 회장 인사말이 있었다. 회장은 다리가 불편해 의자에 앉아 말씀을 이어갔다.
2. 이건 이런 것이고, 저건 저런 것이다. 라는 격려와 배려 말씀이 감동으로 느껴왔다. 회장님의 평안한 모습에서 아우라가 느껴졌다. 연세가 있고, 평소 존경하는 분임을 차치하고도 여유로운 모습에서 윗사람의 품격이 베어 나왔다. 문득 긴 세월 동안 나는 윗사람으로 일해 오면서 몇 번이나 품위 있는 모습을 보였을까? 특히 나를 새삼 찾는 그들앞에서는 더욱 그랬다. 최근에는 내 이기심으로 어른답지 못했다는 반성과 무안함으로 울컥했다.
3. 하던 사업을 정리하기 무섭게 전 직장의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점장님! 이제 여유 있으시지요? 옛날 지점장님 사원들 안 보고 싶으세요? 우리는 지점장님 퇴직하시길 기다렸어요. 모임 만들어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며 살까요?” 하는 제안이었다.
4.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업 뒷정리로 시간 없다며 불쑥 튀어나온 내 말투가 냉정했다. 전 직장을 퇴직한 후에도 그녀와는 각별한 사이다. 평소와 다른 내가 민망한 듯, 알겠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5. 방문판매인 건강식품 사업이 시대의 변화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업을 접게 되었다. 오래 해 왔던 일이었고, 백세 시대에 걸맞게 늦은 은퇴를 생각했었다. 더구나 펜데믹을 지내면서 은행 대출 흔적을 채 지우지 못한 상태로 문을 닫으려니 아쉬움이 컸다.
6.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그동안 나무만 보았지 숲을 보지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년간 영업 조직을 아우르는 윗사람으로 느꼈던 매일매일에 요구되는 긴장감에서 벗어날 가벼움을 생각했다. 직분을 내려놓고 자유로운 나로 살고 싶다는 의지로 위안했었다.
7. 어느 시인은 “시간은 차를 타고 달린다.” 했다. 시간은 덧없고, 인생은 되풀이되지 않으니, 이제라도 조직의 굴레에서 벗어나면 나에게 집중하겠다는 다짐도 했다.
8. 평소 그녀의 성품이라면 한두 번 연락 왔을 텐데, 침묵하고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옛정을 잊지 않고 나를 찾아 준 후배들에게 예의가 아니어서 제안을 받아들일까 생각하다가 뒤로 물러섰다.
9. 그들은 나를 여전히 지점장으로 부르며 윗사람으로 대한다. 더구나,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해도 사람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안다. 개성이 독특한 그들 곁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 않아, 어정쩡하게 지냈는데 문학회에서 회장님께 감명받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10. 사십 대 초반, 전문성도 능력도 없던 내가 중량감 있는 지역 책임자가 되었다. 경험도 많지 않아 리더의 자질은 부족했으나, 사원들의 마음을 아는 것으로 출발하는 것이라, 공감력으로 여성 조직을 끌면 되리라 믿었다.
11. 젊어 꿈많은 사원들에게 인생의 프로그램을 그리게하고, 비전과 목표도 설정했다. 목표를 때라 가는 것이 모두의 성공이었기에 격려와 칭찬으로 공동체 의식을 갖도록 교육하고 설득했다.
12. 이 삼십 대 사원들은 자기 색깔이 강했다. 개성만큼 열정도 많았다. 열정만큼 성과는 좋았으나 하나 둘 조직이 숫자가커진 만큼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었다.
12. 출판 위주였던 회사가 학습지 시장을 열고 공부방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초기였다. 지침은 있었으나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다. 거점지역 곳곳에 공부방을 열어, 지도 교사를 배치해 놓으면 관리교사인 영업 사원들의 활동으로 회원을 모아 주는 제도였다.
13. 그에 대비한 규율이나 정서적 교육은 반복했지만, 현장에서 부딪히는 자신들의 권익과 손익을 두고는 절친 동료라해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발생 된 현상만으로 접근해서 사무실에 가지고 오면 규정에 의해 해결될 일을 여성 특유의 감정을 개입시켜 억울한 사원이 무단결근일 때 책임자인 내가 알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14. 그때는 이미 인신공격으로 감정을 덧발라 일이 커진 상태다. 여성들의 질투와 시기심이 얽히고설킨 미묘한 감정은 오늘날 AI도 풀어내 지 못 할 일이었다. 시간을 투입해 그들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는 자세로 일을 해결했지만, 기력이 소진되어 좌충우돌 편 할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15. 이제 세월도 많이 흘렀다. 그들도 나이 들어 감정도 순화되었을 것이다. 이제 일을 떠나 마주 앉으면 유난히도 추억이 많은 우리는 그때를 웃으며 말할 것이다. 그 시절 그 추억 속에 함께 울며불며 세상을 살아낸 동료가 있고 청춘이 녹아있을 것이다.
16. 나 역시 이해관계를 떠났으니 그들이 의견에 대립각을 세우다 자리를 뜬다 해도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 편치 못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들에게 회장님처럼 평안하여 감동 주는 윗사람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 그녀의 전화번호 찾는 손이 바빠졌다.
3. 인생살이의 딜레마 /배정순 9
1. 두 가수의 행보가 인터넷 창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어느 한 가수는 퍼내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이곳저곳에서 미담 사례가 솟아 나오고, 어느 한 가수는 덮고 덮으려 해도 눈살 찌푸리게 하는 일이 불거진다. 잘 나가는 가수는 기특하다 싶은데 비판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가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같은 나이인데 이리 다른 성향을 보이는 까닭이 무엇일까?
2. 어느 심리학자의 말을 빌리면 “한 인간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성격에서 찾아볼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한 사람은 아버지가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지만, 엄마가 아들을 위해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자식을 버리지 않고 사랑으로 품어 길렀고, 한 사람은 같은 나이에 양친이 이혼과 연이은 재혼으로 부모의 정을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 부모 사랑 없이 자란 아이는 아무래도 마음의 상처가 깊지 않을까.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은 이런 경우를 이름이 아닐까 싶다.
3. 후자의 가수가 그런대로 잘 나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음주 운전에 뺑소니 사고로 도마 위에 올랐다. ‘유명세’를 탓 던 만큼 군중의 반향이 뜨거웠다. 뺑소니 교통사고는 일반인도 종종 발생하는 일이지만, 이리 복잡한 사회적인 논점이 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가수는 일반인과 다른 공인으로서 인기를 먹고 사는 직업이다. 자칫 대중이 등 돌리면 가수로 살아남긴 힘든 현실다.
4. 공인은 무엇보다 우선하는 게 도의적 책임일 것이다. 사고 당시 인명피해가 없으니, 납작 엎드려 정직하게 신고만 했더라도 가벼운 처벌로 끝났을 텐데, 겁 없이 달아나는 바람에 사건이 커졌다. 결국 사고 후 뒤처리 미숙으로 자기 이력에 평생 뺑소니 가수라는 불명예스러운 흠결을 보탠 꼴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5. 내가 이 가수의 행위에 마음이 쓰이는 건 친구가 가수의 팬클럽 회원이기 때문이다. 무료해하던 친구는 팬클럽 회원이 되고부터 전에 없이 밝고 활기차게 살았다. 친구 덕에 나도 그 가수의 영화, 콘서트장을 섭렵했다. 가수에 열광하는 군중을 보면서 한 가수의 선한 영향력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금전적 기부가 아니라 노래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군중에게 기쁨을 주고 있지 않은가.
6. 콘서트장에서 본 그 가수의 빛나는 얼굴은 죄짓고 도망갈 인물이 아니었다. 인물도 노래 실력도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았다. 이 가수의 팬층이 두꺼운 건 피차 내재된 측은 지심 진심이 통했기 때문이 아닐까. 살아오면서 이 가수가 어디서 이런 육친 같은 정을 느껴보았겠는가. 콘서트 차 고향인 울산에 내려와 밤에 홀로 어린시절 유일한 의지처였던 할머니 산소에 찾아가 울었다는 말을 들을 때 절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7. 사고 이후, 친구의 상심이 클 것 같아 안부를 물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그 가수의 팬덤 활동이 그리 즐거울 수 없다고 했다. 그 사실을 콘서트장에서 확인했다. 조용한 친군데 콘서트장에서 팬덤과 어우러져 환호하는 모습은 이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의 어디에 이런 끼가 숨어있었을까 싶었다. 그녀가 이 사태를 어찌 견뎌낼지. 가벼운 처벌로 마무리될 묘안은 없을까?
8. 성경 한 구절이 떠오른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에게 팔매질하는 군중을 향해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그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셨다. 그러자 그들은 나이 많은 사람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떠나갔다. 라고 했다.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자리를 뜬 걸 보면 이 세상에서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없다는 말일 터, 이 사건을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계기로 삼으면 어떨지. 그러다 보면 이해의 폭이 조금 넓어지지 않을까.
9. 조물주는 애초에 인간을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 스스로 재미를 만들어 행복하게 살게 하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사실 반듯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치고 재미있는 사람은 드물다. 어딘가 모자란 듯 어리숙한 모습에 정감이 간다. 개개인의 부족한 부분을 관계에서 채워가며 평화로게 살기 원하셨을 테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대부분 인간은 호의적인 감정보다 좋지 않은 감정을 더 오래 기억한다. 용서가 말처럼 쉽지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게 인생의 딜레마다.
10. 어느 팬덤은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인정에 호소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덮어주고 감싸주는 게 능사일까. 가수의 성장에도, 사회정의 구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잘못이 있다면 시시비비는 가려야 하리라. 다만 일벌백계로 삼는 건 국가에서 할 일이지 군중이 마녀 사냥하듯 잘잘못을 잡아낸다면 누군들 살아남을 자가 있을까. 지금도 다른 가수의 선한 영향력을 들먹이며 신경을 건드리고 있지 않은가. 편 가르기 하다가 자칫 삶의 현장을 메마르게 할 것 같아 우려된다.
11. 어려운 시절 우연히 음반 가게에서 듣게 된 푸치니의 오페라<네순 도르마 빈 체로>의 힘차고 열정적인 선율에 매료되어 음악의 길에 들었다는 어린 소년! 그 소년이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이리 풀렸을까.
12. 사람은 체험에서 인생을 배운다고 한다. 이 가수에게 이번 사고가 바른길로 나아가는 가교가 되어 밝은 모습으로 무대에 설 날을 기대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