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1월 23일 에스파냐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85세로 죽었다. 살바도르는 “나는 벨트에서부터 어깨까지 가로지르는 히틀러의 가죽끈을 그리려 할 때마다 군복으로 포장된 그의 부드러운 살을 보며 바그너적 황홀경에 빠진다”라는 명언(?)을 남긴 유명한 친독재 성향 인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살바도르는 가톨릭에 귀의했다. 하지만 정치 행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아 독재자 프랑코와 지극히 밀착해서 지냈다. 그는 프랑코 손녀의 초상화를 그리는가 하면, 공화주의자들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정한 프랑코에게 찬사를 늘어놓기도 했다.
2001년 1월 23일에는 한국화가 김기창이 88세로 죽었다. 살바도르처럼 김기창 역시 천주교 신자였는데, 24세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받고 연속해서 4차례 특선에 뽑힘으로써 불과 27세에 선전 추천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김기창은 친일파 화가 김은호의 제자답게 스스로도 반민족 행위를 거듭했다.
김기창은 〈님의 부르심을 받고서〉, 〈완전 군장의 총후 병사〉, 〈적진 육박〉 등 제목만 보아도 어떤 그림을 그려 일제에 협력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당연히 대한민국정부 산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김기창을 반민족행위자 705인에 선정했다. 반대로, 대한민국정부 자체는 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주었다.
살바도르와 김기창 두 화가가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에 자연사 한 것과 달리 농촌운동가이자 독립유공자인 최용신은 1935년 불과 26세에 타계했다. 같은 것은 두 화가와 마찬가지로 1월 23일이 그의 기일이라는 점이다. 최용신은 심훈 소설 〈상록수〉의 실존 인물이다. 심훈은 최용신이 세상을 떠난 바로 그해에 〈상록수〉를 썼다.
1939년 김교신은 〈눈 속에서 잎 피는 나무〉라는 제목으로 최용신 전기를 펴냈다. 1961년과 1978년 신상옥 · 임권택 두 감독이 각각 〈영화 상록수〉를 만들었다. 1964년 이래 한국여성단체협의회는 ‘용신 봉사상’을 수여하고 있다.
1월 23일은 〈적과 흑〉을 남긴 스탕달의 생일이기도 하다. 〈적과 흑〉의 신학교 학생 줄리앙은 출세를 목적으로 상류층 여성들에게 파렴치하게 접근하다가 결국 단두대에서 참수된다. 살바도르 · 김기창 · 최용신 · 줄리앙과 연관이 있는 1월 23일은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을 염려하라”는 스탕달의 명언을 생각나게 하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