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7년 3월 5일
☞ 산행날씨:약간 흐린 날씨에 전형적인 봄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8.7km / 3시간 5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걸음
☞ 산행코스: 입암마을-내소사 일주문-내소사-안부-관음봉 삼거리-안부-관음봉-관음봉 삼거리
조망바위-재백이고개-재백이교-직소폭포-분옥담-선녀탕-직소보-직소보 다리
월명암 갈림길-미선나무 다리-봉래구곡-길상사지-내변산 탐방지원센터-사자동
☞ 소 재 지: 전북 부안군 진서면, 보안면
지난주 토.일 이틀에 걸쳐서 약 55km의 지맥길을 걸으며 무리를 했는지 이번주는 피로가 잘 풀리지 않는다
이제 범여도 슬슬 체력이 저하되는 모양이다... 토욜에 전문표교사 졸업식장에서 우연히 옛 도반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예전 이야기를 하던중에 나하고 친했던 도반스님 이야기가 나왔는데
스님께서 지금 부안 내소사에 계신다고 하기에 보고 싶은 마음에 즉시 통화를 하는데 한번 놀러 오라고 한다
떡본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번주에 웅석지맥 한 구간을 하려던 계획을 접고 일요일 아침 부안으로 향한다
오늘 내가 걸었던 코스 지도
전문포교사 졸업식장에서...
서울발→부안행 버스표
조금 여유롭게 집을 나왔더니만 터미널에 도착하니 30여분 정도의 여유가 있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느긋하게 버스를 기딘 끝에 06시 50분에 출발하는 부안행 버스에 오른다
부안 버스터미널
서울에서 출발한 지 2시간 45분만에 부안시외버스 터미널에 버스는 도착하고
이곳에서 내소사로 향하는 버스는 10시 15분에 있다고 하여 근처에 있는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떡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도 시간이 많이 남아 멍하니 터미널을 서성거린다
부안터미널 시간표
부안발→내소사행 버스표
김제에서 내소사로 가는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여 10분정도 정차하였다가
내소사로 출발하는데 승객이라곤 달랑 3명... 그것도 2명은 곰소항에서
내리고 나혼자만 내소사로 향한다
임암마을 버스 정류장
곰소를 지나 10분만에 버스는 입암마을 정류장에 도착하니 아직까지 사람들이 그리많지 않다
놀러온 사람들보다 장사꾼들이 훨씬 많은 느낌이다...버스에서 내려 일주문쪽으로 가니 매표소가
나오고 입장료가 3,000원이란다...난 이런곳에 오면 傳家의 寶刀처럼 신도증을 내밀면서 그냥 통과한다
이곳은 내소사 입장료를 받기에 등산객들은 대부분 반대방향인 내변산 탐방지원센터나 남여치 등 반대쪽에서
온다
내소사 일주문앞 호박엿집에서 2,000원짜리 호박엿 한팩을 사서 베낭에 넣고...
내소사 일주문
일주문 편액에는 “능가산내소사(楞伽山來蘇寺)” 라고 적혀 있는걸봐서 관음봉이 능가산인 모양이다
일중 김충현 선생이 쓴 내소사 일주문 편액... 용두 2개가 일주문을 외호하고 있다
일주문에서의 범여
오늘은 목적산행인 맥산행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인지 모든게 여유롭기만 하다
이곳에서 도반스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만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아...그러고보니 오늘이 부처님의 출가재일이구나...바쁜데 왔구나 싶다
내소사 일주문 앞에는 커다란 당산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할머니 당산나무라고 한다
높이는 약 20m이고, 둘레는 7.5m, 수령은 약 1,000년쯤 된다고 한다
할아버지 당산나무는 내소사 마당에 있는데 해마다 정월 보름에는 할머니 당산나무 앞에서 내소사
스님들이 제물을 준비하고 독경을 하며 입암마을 사람들과 함께 당산제를 지낸다. 해방 전까지는
줄다리기를 하고 그 줄로 당산나무에 옷을 입히기도 했으나 지금은 인줄만 쳐 놓고 제를 지낸다.
한국의 아름다운 100選중에 하나인 내소사 전나무 숲길
개인적으로 이번이 3번째 내소사 방문인데 이곳을 온 지가 12년전
순례법회를 온 이후에 이번에 왔지만 올때마다 가슴에 와닿는 곳이다
오늘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아닌가
전나무 숲길 옆쪽에는 봄을 알리는 새싹들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내소사의 전나무 수령은 평균 110년이라고 하며 광릉 수목원과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이라고 한다
호젓하게 전나무숲을 지나 내소사로 접어드니 우측에는 예전에
인기 드라마인 대장금을 촬영했던 장소라고 표시를 해놨다
내소사로 들어가는 우측에는 해안당대종사 공적비와 내소사 사적비가 서있다
해안(海眼) 대종사는 부안군 격포리에에 1901년에 태어나 내소사로 한학을 공부하러
왔다가 만허화상을 은사로 출가하여 한국 선불교의 큰 획을 그으신 분이다
그 분은 훗날 출가의 緣을 이렇게 고백하였다고 한다
난 새벽 종소리와 목탁소리에 꼬여서 머리를 깍았어.
마치 수백년이 되어 가지와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줄기만 남은 고목처럼 알맞게 마른
홍안(紅顔)의 노승이 법당에서 가부좌를 틀고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얼마나 좋았던지...
그것은 어느 선인도(仙人圖)에서나 볼 수 있는 한 폭의 그림이었지
마치 나는 부귀영화도 싫다. 천당.지옥 그런거 내 알 바 아니다.그런 광경이었으니까
내소사 뒷쪽으로 보이는 관음봉(능가산)의 모습
천왕문으로 이어지는 내소사 벚꽃길이 환상적이라는데 나는 벚꽃 필때는 와보지 못했다.
내소사 천왕문
사천왕(四天王)은 우주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을 형상화한 상(像)으로 즉, 동방 지국천(持國天),
서방 광목천(廣目天), 남방 증장천(增長天), 북방 다문천(多聞天) 등 사방의 천왕을 사천왕이라 하는데
이를 도상화한 것으로 인도에서는 사천왕상에 대한 규범이 일정하지 않아서 귀족의 형상으로 표현한
경우가 많았으나 서역(西域)을 거쳐 중국에 이르러 갑옷을 입은 무장의 모습으로 확립되었다
천왕문에 있는 주련은 이곳에서 출가하고, 평생을 이곳에서 설법한 근대의 선지식인 해안대종사의 오도송이다
비파를 들고 있는 동방지국천왕(좌측)은 동쪽의 세계를 관할하면서 인간의 기쁜 감정과 봄을 관할하는 천왕이다
칼을 든 증장천왕(우측)은 남쪽 세계를 관할하면서 인간의 사랑과 여름을 관장한다고 한다
용과 여의주를 든 광목천왕(좌측)은 서쪽세계를 관장하면서 인간의 노여움과 가을을 주관하는 천왕이고
탑과 깃대를 들고있는 다문천왕(우측)은 북방세계를 관장하면서 인간의 즐거움과 겨울을 주관하는 천왕이다
천왕문 옆에는 기와불사를 받고있다.
오늘이 부처님 출가재일이고 해서 이번 4월에 히말리야 로체 등정에 나서는
진권아우를 위해서 기와나 한장 보시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한 자 적는다
아그야!...부디 등정을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부처님의 가피가 가득하길 기원하마
내소사 천왕문을 지나 절 마당으로 들어서면 수령 700여년쯤 당산나무가 참배객을 반기는데
이름하여 할아버지 당산나무... 당산나무와 산신각 같은것은 민속신앙이 불교에 습화된 것이다
오늘은 목적산행이라 아니라 그런지 모든게 여유롭기만 하다
오늘이 부처님께서 출가했다는 출가재일이다
내소사는 벌써 1년동안 절집 살림살이를 좌우한다는 초파일 연등을 준비중이다
수많은 절집을 많이 다녀 보았지만 개인적으로 순천 송광사와 이곳 내소사를 가장 좋아한다
절집 살림이 어려워서인지 아님 소박한 옛 정취를 살리기 위해서인지...빛바랜 단청 난 그게 너무좋다
내소사 보종각(寶鐘閣)
보종각은 정면과 측면이 한칸밖에 안되는 팔작지붕으로 안에는 고려동종(보물 제277호) 이 있다
내소사 동종은 1222년(고려 고종9년)에 제작된 것으로 내소사의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원래는 변산 4대 명찰 가운데 하나였던 청림사에 있었던 종이었는데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동종은 높이가 103cm, 입지름이 67cm로 좀 작은 편이며, 항아리를 엎은듯한 고복형으로 종신(鐘身)에는
상대와 하대에 모란당초문(牧丹唐草紋)이 새겨져 있고, 어깨부분에는 이중여의두문(二重如意頭紋)의
입상화문대(立狀花紋帶)가 배치되어 있으며, 종의 정상부에는 주형(珠形)이 달린 종신에는 용통(勇筒)을 두고
큰 머리의 용뉴가 있는데, 모두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종신에는 당초문의 띠 밑에 중판연화문(重瓣蓮華紋)으로 된 유곽(乳郭) 4개를 두고 유곽안에 당초문을 새겼으며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표현하였고, 또 유곽 아래에는 12개의 연잎으로 장식된 당좌(撞座)가 원좌(圓座) 밖에
있으며 유곽과 유곽 사이인 종신 중앙부에는 꽃송이 위로 구름을 표현하고 구름위에 삼존상(三尊像)을 새겼다.
3존상 가운데 본존상은 연꽃 위에 앉아있고, 협시상(脇侍像)은 서 있으며, 모두 동그런 두광(頭
光)을 갖추었다. 그리고 구름 위에는 바람에 휘날리는 보개(寶蓋)가 있어 고려시대 범종 문양의
특징과 화려한 장엄미를 드러낸다. 또한 당좌와 당좌 사이에 종의 신상에 대한 3종류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어 1222년에 새겨지고 1853년 이곳으로 들어왔음을 알려준다.
내소사 동종은 고려 후기의 특징인 입상화문대를 갖추고 있고, 표면의 묘사 수법과 함께 정교하고 사실적인
주조기술로 우리나라 종의 양식을 잘 계승한 것으로 꼽힌다. 그래서 일찍이 보물로 지정된 것이다.
내소사 범종각(梵鍾閣)
1995년 주지 철산스님이 만든 것으로 범종과 법고(法鼓),목어(木魚), 운판(雲版) 등 사물(四物)의 보금자리이다.
보종각에 이미 고려시대 동종이 있지만 그의 건강을 우려해 별도로 새 범종을 만들어 봉안했다.
요사 앞마당에는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있다
내소사 설선당(說禪堂)과 요사(寮舍: 전북 유형문화재 제125호)
스님들의 생활공간인 설선당과 요사가 있는 두 건물은 서로 별개이지만 서로 이어져 있어
하나의 건물처럼 보인다.
이 건물은 1640년에 청민선사가 세운 것으로 전면 중앙에 설선당을 중심으로 4면을 건물로 연결하고, 내부에
안마당을 두어 '回'자형의 특이한 모습을 이룬다. 그리고 안마당에는 우물이 닦여져 있어 생활의 편리를 도모했다
설선당은 중앙에 우물천정을 배치한 구조로 동쪽 측면 1칸은 마루이고, 전면의 남쪽 2칸은 난방을 위한
부엌으로 거대한 아궁이가 있으며, 주초석은 커다란 자연석을 그대로 썼고, 그 위에 원형기둥을 설치했다.
요사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거의 2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층은 승방(僧房
)과 공양간, 부엌으로 쓰이며, 2층은 마루로 식량 등을 저장할 수 있도록 각 칸 벽면에 환기창
을 설치했다. 이들 건물은 서로 높낮이가 다르지만 인위적으로 땅을 평평하게 다지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초석만을 사용했고, 설선당 동쪽과 요사 서쪽 서까래의 일부를 잘라내고 건물의 용마
루를 끼워 지붕을 서로 맞추어 세운 점이 눈길을 끈다
설선당 중앙에 걸린 현판은 조선 후기 명필가(名筆家)로 크게 위엄을 떨친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것이라고 한다
君自故鄕來(군자고향래) : 그대 고향에서 왔다니
應知故鄕事(응지고향사) : 응당 고향의 일 알고 있으리라
來日綺窻前(래일기창전) : 비단 창가에 서 있는
寒梅着花未(항매착화미) : 매화나무가 꽃을 피웠더냐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이는 듯한 무설당(無說堂)이 대웅보전 좌측에 자리잡고 있다
내소사 삼층석탑(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24호)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나 신라시대의 탑 양식을 따르고 있는 이 탑은 2중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얹히고 다시 상륜(相輪)을 올린 형태로 고려 초/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탑의 높이는 3.46m, 폭 1.43m로 기단과 탑신부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경사가 급해 보이는 옥개석(屋蓋石)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탑 꼭대기에는
노반(露盤)을 비롯해 크고 작은 석재 2개로 상륜부를 이루고 있다
내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이다. 원래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으며
633년(선덕여왕 2) 신라의 혜구(惠丘)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석포리에 상륙해
이 절을 찾아와 군중재를 시주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내소사로 바꿨다는 설이 있으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이 절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과 최자의 〈보한집 補閑集〉 가운데 정지상이 지은
〈제변산소래사 題邊山蘇來寺라는 시가 있고, 이규보의 〈남행일기 南行日記〉가 있는데
모두 '소래사'로 기록되어 있어 언제 '내소사'로 바뀌었는지 분명치 않다.
1633년(인조 11) 청민(靑旻)에 의해 중건되었고 1902년 관해(觀海)에 의해 수축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이 절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고려동종(보물 제277호), 법화경절본사경(보물 제278호),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8호)가 있고 그밖에 설선당·보종각·연래루·
3층석탑 등이 있다.
대웅보전 앞에는 영산괘불탱화를 걸 수 있는 괘불대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내소사 영산회괘불탱(來蘇寺 靈山會掛佛幀:보물 제1268호)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로서 석가모니불을 중앙에 화면 가득 그리고
석가모니불 우측에 보현보살, 세지보살, 아미타여래를, 좌측에 문수보살, 관음보살, 다보여래를 배치하였다.
상들은 둥근 얼굴에 원만한 체구를 지녔으며 뺨과 눈두덩, 턱밑, 손발에 옅은 분홍색을 써서 화사한 느낌을 준다.
이 불화는 1700년(숙종 26)에 조성된 영산회괘불화(靈山會掛佛畵)이며 불화의 내용은
『법화경(法華經)』이 설해졌던 인도 영취산(靈鷲山)에서의 설법모임을 도설화(圖說化)하였다.
괘불화는 주로 법당 바깥에서 베풀어지는 큰 의식이나 법회에서 사용되었는데, 영산회괘불화의 경우는
특히 영산재(靈山齋)에서 사용되었고, 현재 전라북도 부안군내소사(來蘇寺)에 소장되어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조선중기의 단기팔작지붕 다포(多包)계통의 목조건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잡석으로 쌓은 비교적 높은 축대위에낮은 기단을 두고 자연석의 초석(礎石)으로 배치했으며
그 위에 기둥을 설치했는데, 모서리 기둥(隅柱)만 배흘림이고, 나머지는 곧은 원기둥(圓柱)이다
앞면의 기둥사이 중앙칸에는 사분합(四分閤)문, 좌.우칸에 분합문을 달았는데 문짝은
초화무늬(草花紋)가 정교하게 투각된 꽃살문이다
내소사 대웅전은 못을 쓰지않고, 나무토막을 깍아맞추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청민선사가 절을 중건할 당시 대웅전을 지은 목수는 3년 동안이나
목침덩이만하게 토막내어 다듬기만 했다고 한다
장난기가 발동한 사미승이 그 중에 한개를 감추어 버렸다.
나무깍기를 마치고 토막수를 헤아려 본 목수는 자신의 실력이 법당 짓기에 부족하다며
일을 포기하려 했다...사미승이 감추었던 나무토막을 내놨지만 목수는 부정탄 재목을 쓸 수없다
하여끝내 그 토막을 빼놓고, 법당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대웅보전 오른쪽 앞, 천장만 왼쪽에 비해 나무 한개가 부족하다고 한다
또 하나의 전설이 있다...법당 내부의 단청도 한군데 빠진데가 있다.
법당 건물이 완성된 후한 화공이 찾아와 단청을 하겠다고 자청하면서 백일동안 아무도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게 부탁하였다...99일째 되던날, 이번에도 궁금증을 참지못한
사미승이 몰래 안을 들여다 보고 말았다.
법당 안에서 금빛 새 한마리가 입에다 붓을물고 그림을 그리다가 사미승이 보는 것을 알고는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법당 좌.우에 쌍으로 그려졌어야 하는 용과 선녀의 그림이 오른쪽에는 그려지지 못했다고 한다
대웅보전 편액은 원교 이광사님의 글씨이다
내소사 대웅보전 삼존불
대웅보전(大雄寶殿)에는 대승불교의 부처 가운데 서방 극락정토의 주인이 되는
부처인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를 중심로, 우측에 아미타불의 오른쪽에 있는 보처(補處) 보살인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을, 좌측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협시불로 모셔져 있다
천정 중앙에 자리한 우물천정은 48개 사각형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안에 모두 연꽃과 극락조(極樂鳥) 등의 새가 새겨져 있다.
단청은 좀 퇴색하긴 했지만 그들의 아름다움에 전혀 재를 뿌리지 않는다.
천정 대들보 위에는 대웅전을 지키는 용의 머리 2개가 있는데, 하나는 물고기를 입에 물고 있고
다른 용머리는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다. 이들 외에도 10여 종의 악기가 천정과 대들보 사
이에 그려져 있는데, 천정을 장식하는 이들은 모두 부처의 설법(說法)을 듣고 기쁜 마음을 나타
내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바닷게 여러 마리를 두어 이곳이 해중사찰(海中寺刹)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천정 전체를 조그만 불국토(佛國土)로 꾸민 셈이다
조사당(祖師堂)
내소사를 빛낸 여러 고승(高僧)의 진영(眞影)이 봉안된 조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원래는 삼성각이었으나 2010년 이후 조사당으로 이름을 갈고 고승의
진영을 봉안했으며, 삼성각에 봉안된 존재들은 뒤에 따로 마련된 거처로 모두 옮겨졌다.
이 건물은 1941년에 능파스님이 건립한 것으로 1986년과 1993년에 우암혜산이 보수했다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을 참배하려니 광주불교산악회 회원들이 예불을 올리는 중이다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내소사 경내를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보고 대소사를
나서려는데 도반 스님께서 핸드폰을 보지 못했다고 하시면서 어디냐고 묻는다
도반스님을 만나고 스님의 요사에 들려 늦은 새배를 올리고 잠깐동안 茶談을 하고
나오는데 공양간은 식사시간이 늦었으니 밖에서 식사나 하자는데 내가 시간이 맞지않아
정중히 사양하고 요사를 나오는데 노잣돈이라면서 봉투에 5만원짜리 하나를 주신다
스님에게 고맙다는 예를 올리고 조만간 서울에서 함 뵙기로 하고 전나무 숲에서 우측으로 들어선다
재백이 고개 탐방로를 따라서 산길로 접어드는데 DSLR카메라를 둘러멘 찍사들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면서 야생화 찾기에 여념이 없는데 이 꽃은 꽃보기가 힘든 곳이다
등로는 생각보다 호젓하다
남쪽이라 그런지 바람이 따뜻하다... 더운 탓에 웃도리를 벗어 베낭에 넣고 걷는다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내소사가 한 눈에 보인다
10 몇년전에 걸었던 등로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정비가 잘되어 있다
등로에서 바라본 곰소항(熊淵)
곰소의 지명유래는 곰처럼 생긴 포구의 곰섬에서 따왔으며, 곰섬 앞바다의 깊은 소(沼)에서
유래되었으며, 곰소를 웅연(熊淵)이라 부르기도 하며 또다른 명칭은 줄포만이다
곰소항은 전라북도에서 군산항에 이어 두번째 큰 항구이기도 했다.
도로와 제방을 따라 길게 형성된 어시장은 각종 생선과 건어물, 곰소가 자랑하는 젓갈 등,
수많은 수산물이 거래되며 곰소항을 대표하는 젓갈 어시장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젓갈가게가 밀집되어 있다는 이곳은 다른 지역의
젓갈보다 깊은 맛이있고, 쓴 맛이 덜하다는 곰소염전의 천일염을 만들어진 것이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관음봉(능가산)의 모습
관음봉 삼거리에 도착하니 갑자기 등산객들이 많이 보이는데
내변산 등산로는 내소사 방향으로 올라오면 입장료가 3,000원이나
있기 때문에 산악회에서 오는 등산객들은 거의 대다수가 남여치나 내변산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관음봉을 거쳐 내소사로 내려서는 코스로 잡는다
이곳에서 관음봉으로 향하는데 음지에는 얼음이 녹아서 등로는 상당히 질척거린다
관음봉 아래는 낙석이 많이 떨어지는 지역인지 낙석방지용 철재 휀스가 처져있다
관음봉 이정표가 있는 곳에 오니 새봉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오고 관음봉 정상석
뒷쪽의 데크목 광장에는 발디딜틈도 없을 정도로 등산객들이 인산인해이다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남기는데도 줄을 서야 할 정도이다
관음봉(觀音峰:424m)
예전엔 능가산이었고, 내소사 일주문에도 능가산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왜 관음봉으로 지명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능가산(楞伽山)은 능가경(楞伽經)에서 따온 이름으로 능가산(楞伽山:Lanka)은 고타마붓타가
능가경을 설한 곳으로, ‘도달하기 어려움(不可到)’ , ‘오르기 힘듬(難入)’이란 등이 그 이름에
담긴 뜻으로, 능가산이 어디에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대체적으로 스리랑카로 추정한다.
능가경은 ‘링카에서 설법한 내용을 담은 경전’이란 뜻의 산스크리트로서 원제는 대승입능가경
(大乘入楞伽經:Saddharma-Lankavatara-Sutra)으로, 중생 속에 감추어져 있는 여래(如來)가
될 수 있는 씨앗인 여래장(如來藏)의 사상의 형성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불경으로 중국
선종의 선구자인 달마대사가 2조 혜가 (慧可) 스님에게 전수했다는 경으로서 선종에서 매우 존중되고 있다
관음봉 정상의 모습
관음봉 바로 아래에는 내소사가 내려다보이며 멀게는 곰소만이 한 눈에 비친다.
변산의 주봉이자 최고봉은 의상봉이나 군사시설로 인해 오를 수 없는 봉우리라서
관음봉이 변산의 주봉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저 산너머로 새만금 방조제가 있는 곳이다
곰소항 너머로 보이는 변산반도
동쪽은 김제시·정읍시, 북쪽은 부안만, 남쪽은 곰소만, 서쪽은 황해에 접하는데 범위는 대체로
부안군의 면적과 일치하며, 북동쪽의 동진강에서 남서쪽의 반도해안 끝까지의 길이는 약 90㎞이다.
반도의 동쪽은 광활한 호남평야의 일부가 되어 곡창지대를 이루며, 서쪽은 호남정맥에서 분리되어
생긴 산괴(山塊)인데, 숲이 우거진 산과 계곡이 모래해안·암석해안과 어울려 뛰어난 경승지를 이룬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지역을 외변산, 내륙부를 내변산이라 부른다.
중앙 내륙부는 1999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격포리(格浦里) 해안의 채석강(彩石江)·적벽강(赤壁江),
신라 때 창건된 내소사(來蘇寺) 직소폭포(直沼瀑布),고사포해수욕장(故沙浦海水浴場), 월명암(月明庵)
낙조대(落照臺) 등 관광자원이 많으며 이 곳에서 자라는 곧고 큰 소나무인 변재(邊材), 야생 난초인 변란(邊蘭),
이 곳에서 나는 자연산 꿀인 변청(邊淸)을 일컬어 삼변(三邊)이라고 한다
관음봉 이정표
오랫동안 독립군 활동(나홀로 산행)을 습성(濕性) 때문인지 산에서 번잡한 건 딱 질색이다
관음봉 정상에서 서둘러 내려오니 관음봉 이정표가 나오고 우측으로 새봉으로 이어지는
코스인데 내년 꽃피는 춘삼월쯤에 또 한번 걸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관음봉 삼거리로 되돌아 간다
변산 십승지 종주지도
예부터 변산을 일러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이 겹겹이 쌓여 높고 깎아지른
듯하며 바위와 골이 그윽하다"고 하였다.
'택리지'에도 "산 안에는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가 있는데 이것이 변산이다"라고 묘사하고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꼽았으며 그 중 직소폭포는 '실상용추'라 불리며 높이 30m로 절
벽 아래로 떨어지는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변산8경 중의 하나이다.
이와 함께 내변산 최고봉인 의상봉을 중심으로 엇비슷한 높이의 산과 계곡이 만들어내는, 천혜의
자연경관을 붉게 물들인 단풍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경을 자아낸다.
전북 부안은 예로부터 바다와 인접해 있어 먹거리와 볼거리가 풍성한 곳이다.
특히, 변산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관광지로써 명성이 높은 곳이다
산정호수인 직소보 너머 그 윗쪽으론 쌍선봉과 낙조대, 월명암이 자리를 잡고있다
잠시 후 구비구비 돌아서 저 직소보가 있는 곳을 지나야만 변산바람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관음봉에서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내변산에서 가장 높다는 의상봉(508m)이 보이나
정상은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어서 산꾼들은 오를수가 없기에 이곳 관음봉이 실질적인
내변산의 주봉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의상봉과 부안호 물길위엔 기산봉이 보인다
내변산은 예로부터 능가산, 영주산, 봉래산이라 불렸으며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로 꼽혀왔다.
서해와 인접해 있고 호남평야를 사이에 두고 호남정맥(湖南正脈) 줄기에서 떨어져 독립된
산군(山群)을 형성하고 있으며 변산반도 내부의 남서부 산악지를 내변산(內邊山), 그 바깥쪽
바다를 끼고 도는 지역을 외변산이라고 할 정도로 안과 밖이 매우 다른 산이다.
최고봉의 높이는 낮으나,쌍선봉· 옥녀봉· 관음봉· 선인봉 등 400m 높이의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지고 골도 깊으며 울창한 산과 계곡, 모래해안과 암석해안및 사찰 등이 어우러지면서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어 일찍이 한국 8경의 하나로 꼽혀왔으며, 산이면서 바다와
직접 닿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변산에는 높이 20m의 직소폭포(直沼瀑布), 높이 30m와 40m의 2개 바위로 된 울금바위,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우금산성(禹金山城) 외에 가마소,봉래구곡··분옥담·선녀당·
가마쏘[釜棲]·용소(龍沼)·옥수담(玉水潭) 등 명소가 있다.
또 내소사(來蘇寺)·개암사(開岩寺) 등 사찰이 있고 호랑가시나무 ·꽝꽝나무·후박나무 등
희귀식물의 군락이 서식하고 있으며,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월명낙조'로 이름난
낙조대(落照臺)의 월명암(月明庵)도 유명하다.
외변산에는 해식단애(海蝕斷崖)의 절경을 이루는 채석강(採石江:전북기념물 28)·적
벽강(赤壁江:전북기념물 29)이 있고 그 밑 해안에는 경사가 완만한 변산해수욕장을
비롯해 고사포해수욕장, 격포해수욕장 등 여름철 휴양지가 많다.
1971년 12월에 변산반도 서부의 변산산괴(邊山山塊)를 중심으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6월 11일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관음봉 정상에서 관음봉 삼거리로 되돌아가는 길에 급경사로 내려오니 출입금지 목책이 있는데
산꾼 범여가 가지 말라고 한다고 가고 싶은곳을 안 가본 적이 있었던가... 출입금지 목책을 넘어서니
양지 바른곳에 무명묘지 한 기가 있고 이곳은 전망이 정말 멋진 곳이다... 이곳에서 한참을 머문다
낙석방지용 등로를 지나니...
맞은편 봉우리 북사면에는 아직도 얼음이 주렁주렁...
다시 관음봉 사거리로 되돌아 와서 직소폭포 방향으로 향한다
국립공원 제도권 등로라 그런지 등로관리는 잘되어 있고 입장료를 내지 않기 위해서
꺼꾸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계속해서 등산객들이 올라오는데 경상도에서
온 산악회인지... 다들 왜 그리도 시끄러운지....
안부
지나온 관음봉의 모습
諸行無常
암릉 이정표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너럭바위가 나오고
이곳에도 많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고 맞은편엔
곰소항을 품고있는 변산반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너럭바위에서 바라본 변산 8경중 제1景인 웅연조대(雄淵釣臺)
줄포만에서 시작해서 곰소항 앞까지 이르는 호수같이 잔잔한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정경을 말하는 것으로 야등(夜燈)을 밝힌 어선과 돛단배가 한가롭게 앞바다를
지날 때, 휘황찬란한 야등 불빛이 투영(投影)돼 물에 어리는 광경이 장관을 이루며
어부들이 뱃노래를 부르는 광경이 웅연조대라 하면 변산8경중 제1경으로 친다
다정하게 앉아 점심상을 펼치고 있는 부부
날씨는 생각보다 덥다...오늘같은 날 대비해서 이젠 반팔 티셔츠 한장씩은 갖고 다녀야 할듯 싶다
재백이 고개(宰伯峴:160m)
내소사 초입에 위치한 입암마을에서 내소사를 거치지 않고, 관음봉이나
직소폭포 방향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원밭재 또는 원바위재라고도 부른다.
옛날 나라에 가뭄이 들면 원님들이 직소폭포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기 위해
넘나들었든 고개로 재백이는 재상과 관백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재백이 고개에 도착하니 아침으로 떡라면을 먹은지가 좀 오래됐는지 허기가 진다
가져온 앙꼬빵에다가 커피우유, 캔맥주 하나... 이정도면 산꾼의 점심상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쪽으론 가라고 해도 갈 일이 없소이다
편안한 길을 내려가니 재백이고개 나무다리가 나오고...
예전에 없었던 데크목 다리를 지나니 물의 흐름이 시작되고...
10년도 넘은 시절에 바람친구와 내소사, 관음봉을 거쳐 직소폭포까지 들렸다가 되돌아간 기억이 아련하다
호젓한 이 길... 시간상으로 조금 늦은 탓인지 사람들이 없어서 너무나도 좋다
이런길에서 시인이 안되면 이상하지... 혼자서 콧노랠 흥얼거리다 보니 직소폭포에 도착한다
직소폭포 이정표를 지나니 우측 아랫쪽에서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면서 직소폭포가 보인다
직소폭포의 높이는 30m이며, 예리한 칼날로 잘라낸듯 육중한 암벽단애에 흰포말을 일으키며
뇌성같은 소리를 내면서 쉴새없이 쏟아지는 물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울만큼 깊은 소(沼)를
만들면서 떨어지는 모습은 보는이로 하여금 대자연의 신비에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기에 충분한 모습이였다.
직소폭포 능선 윗쪽의 주상절리의 모습
직소폭포(直沼瀑布)
30여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시원한 물줄기가 곧바로 떨어진다고 유래된 직소폭포
변산8경중에 제2경으로 채석강과 함께 변산을 대표하는 절경으로 보는 이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데 육중한 암벽단애(巖壁斷崖) 사이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쉴새없이
쏟아지는 물이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고 둥근 소(沼)를 이룬다
봉래구곡중 제2곡으로 용이 승천한 소라고 하여 실상용추(實相龍湫)라고 불리운다
내변산 중심에 자리 잡은 직소폭포는 조선이 낳은 여류 시인 매창 이계생, 촌은 유희경과 함께
부안삼절로 꼽힌다.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을 보지 않고는 변산에 관해 얘기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경을 자랑한다
직소폭포에 들다
폭포소리가 산을 깨운다. 산꿩이 놀라 뛰어오르고
솔방울이 툭 떨어진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는데
오솔길이 몰래 환해진다.
와! 귀에 익은 명창의 판소리 완창이로구나
관음산 정상이 바로 눈 앞인데
이곳이 정상이란 생각이 든다
피안이 이렇게 가깝다
백색 정토 나는 늘 꿈꾸어 왔다
무소유로 날아간 무소새들
직소폭의 하얀 물방울들 환한수궁을
폭포소리가 계곡을 일으킨다.
천둥소리 같은
우레 같은 , 기립박수 소리 같은
바위들이 몰래 흔들한다.
하늘이 바로 문 앞인데
이곳이 무한 천공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 와서 보니
피안이 이렇게 좋다
나는 다시 배운다
절창의 한 대목 그의 완창을
천양희 님의 詩
직소폭포 아래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니 전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직소폭포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며 바로 아랫쪽으로 내려서니 분옥담이 나온다
분옥담(噴玉潭)
소(沼)의 모양이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처럼 보여서 붙혀진 지명으로 소에 고인 물은 옥빛을 띠고있다
직소폭포에서 떨어진 물줄기가 포말을 그리면서 둥근 소(沼)를 만들었다가 다시 둥근 소에서 떨어진
물이 다시 흘러 꺾이고 감돌아 반석위로 흐르는 물줄기는 다시 흘러 제2, 제3 의 폭포를 이루며 계류를
흘러가면서 아기자기한 명소를 만든다. 용소에서 흘러나와 또 다시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린 물이 잠시
쉬어가며 계곡에 형성된 2개의 맑은 연못 형상인데 첫번째가
분옥담인데 봉래구곡(蓬來九谷)중에 제3곡에 해당되는 곳이다
선녀탕
분옥담에 내려온 물이 다시 소(沼)를 이루는데 이곳이 선녀가 목욕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봉래구곡중 제4곡인 선녀탕이다... 필경 선녀가 아니더라도 나뭇가지가
살짝 가려져 있어 여름철에는 누구나 풍덩 빠지고 싶은 유혹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푸른빛을 띠고 있는 소(沼)옆 바위에 선녀들이 옷을 벗고 목욕을 했으리라...나뭇꾼이 그 옷을 가져갔고...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
분옥담과 선녀탕을 돌아보고는 다시 등로로 올라섰지만 내가 찿던 변산바람꽃은 보이질 않는다.
이정표에서 조금을 더 진행하니 산정호수인 직소보가 나온다
저 너머가 월명암과 낙조대 있는 곳이 되겠지
직소보 전망대에서 바라본 관음봉의 모습
육당 최남선은 변산을 둘러보고 쓴 '심춘순례'에서 나직한 산이 둥글둥글하게 뭉치고
깔려 앞의 봉우리는 주춤주춤 하고 뒷봉우리는 갸웃갸웃. 변산의 특유의 볼거리라 했다.
금강산을 옥으로 만든 선녀입상(仙女立像)이라 한다면, 변산은 흙으로 만든
나한좌상(羅漢坐像)의 모임이라 할 수가 있다라고 말했다
직소보 다리까지 오면서 변산바람꽃은 고사하고 복수초나 노루귀도 전혀
구경하지 못했는데 괜스레 조바심이 난다...이런다가 꽃구경을 못하고 가는건 아닌지?
월명암 갈림길
월명암 갈림길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야생화를 포기하고 월명암 방향으로 가서 쌍선봉, 남여치로 갈 것인가
아니면 내변산탐방지원센터를 가서 야생화를 찾아볼 것인가 고민을
했지만 어차피 목적은 정해진 거... 내변산 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간다
자연보호헌장이 있는 곳을 지나면서 완전히 둘레길로 등로는 이어진다
미선나무 다리
월명암 갈림길인 자연보호헌장탑을 지나니 미선나무 다리가 나온다
변산반도의 미선나무 군락지는 직소천과 백천냇가 일대의 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선나무의 수가 많고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미선나무 (천연기념물 제370호)는 세계에서 단 한 종류 밖에 없는 회귀식물로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며 부안의 미선나무 군락지는 미선나무가 잘 자랄 수 있는
남방한계선이 되므로 천연기념물로 보호하여 지정하고 있다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식물로 개나리와 같은 과에 속하는데, 개
나리와 마찬가지로 이른 봄에 꽃이 잎보다 먼저 나며, 높이는 1∼1.5m 정도로 키가 작고,
가지 끝은 개나리와 비슷하게 땅으로 처져 있다. 미선나무는 열매의 모양이 부채를 닮아
꼬리 미(尾), 부채 선(扇)자를 써서 미선나무라 하는데, 하트모양과 비슷하다.
봉래구곡(蓬萊九曲)중 제5곡 봉래곡
변산반도 국립공원의 신선대, 분초대, 망포대를 시작한 물줄기가 직소폭포를 지나
해창으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제1곡 대소, 제2곡 직소폭포, 제3곡 분옥담, 제4곡 선녀탕,
제5곡 봉래곡, 제6곡 영지, 제7곡 금강소, 제8곡 백천을 거쳐 제9곡 암지까지 아홉곡의
비경을 만들어 흐르는 걸 봉래구곡이라 하는데 이곳의 넓은 바위위에 “蓬萊九曲”이라
새겨져 있다는데 변산바람꽃에 대한 조바심에 그것을 놓치는 憂를 범한다
봉래곡을 지나는데 넓은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는 변산 이남의 남부해안가에
주로 자생하며 류마티스, 골다공증, 관절염에 좋다는 호랑이 가시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도로 주변에는 벚꽃나무들이 많이 보이며 꽃피는 4월에 오면 장관일듯 싶다
봉래구곡(蓬萊九曲)
제1곡 대소(大沼, 大蘇, 구시둠벙)
가장 큰 소란 뜻으로 내소사의 유래인 대소래사와 소소래사 중 대소래사를 가르키는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시대 때 大蘇로 불리던 것을 근래 들어 大沼로 바꾸어 부르는 것 같다.
제2곡 직소폭포(直沼瀑布)
변산8경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폭포로 내변산의 자랑거리이다. 폭포 하단부의 소를 실상용추
(實相龍湫)라 하는데 용이 상승한 곳이라는 뜻으로 불경에서 유래되었다.
제3곡 분옥담(噴玉潭)
소의 모양이 마치 화산이 폭발한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움푹 파인 소에 고인 물은 옥빛을 담고 있다.
제4곡 선녀탕(仙女湯)
선녀들이 놀다 갔을 법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계단상으로 여러 웅덩이가 모여 있다.
제5곡 봉래곡(蓬萊曲)
'봉래’란 무릉도원과 같은 상상의 산을 이르는 말이다. 그 정도로 봉래구곡 중 가장 아름다워서 붙여진 이름
이다. 물이 흐르는 암반 위에 각자(刻字)된 봉래구곡(蓬萊九曲)이라는 글씨는 정읍군 태인면에 살았던
동초(東樵) 김철곤(金晳坤)이 썼으며 그 글씨 때문에 일반인들은 봉래곡을 봉래구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제6곡 영지(影池)
고여 있는 물에 월명암의 그림자가 비춰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도 물이 고여 있을 때는 쌍선봉 능선에
위치한 월명암의 그림자가 비친다고 한다.
제7곡 금강소(金剛沼)
구전되어지는 말에 의하면 금으로 만든 비석을 빠트려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어쩌면 아직도 그 비석이
물속 깊은 곳에 묻혀있을 것 같다.
제8곡 백천(百川)
일대의 모든 계곡이 모이는 장소로 어림잡아 백여개의 천이 모인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부안댐이 생기기
전에는 마을 주민뿐만 아니라 전국의 사람들이 모여 한여름 피서를 즐기던 곳 이었다.
제9곡 암지(暗池)
봉래구곡의 마지막이며 현재는 부안댐 하루에 잠겨있다. 잠두마을 앞에 있던 소라는 내용 외에 전해지는 사항이 없다.
지금은 부안 댐의 축조로 제6곡 영지에서 제9곡 암지까지는 소실되어 터만 남아있다
부안 실상사지
실상사 미륵전 뒷쪽으로 내변산 선인봉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실상사는 통일신라 때 초의선사가 창건하고, 조선 양녕대군 때 중창했다고 전해지며,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절터에 미륵전과 삼성각만 복원되어 있고 넓은 공터가 많이 보인다
실상사를 지나면서 오랫만에 보리밭을 만난다... 잠시후에 원불교 제법성지가 보인다
원불교 교조 소태산박중빈은 이 골짝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한 편의 시를 썼다고 한다
변산구곡로(邊山九曲路)에
석립청수성(石立聽水聲)이라
무무역무무(無無亦無無)요
비비역비비(非非亦非非)라
이 뜻을 아는 사람은 도를 깨닫는 사람이라고 했다.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는 전남 영광에서 원불교를 개교하여 1919년 이곳 봉래산으로
들어와서 새 회상의 교법을 반포하고 1921년 석두암을 지었다고 하며, 봉래정사에서는
초기 교서를 초안하고 창립의 인연들을 만났으며 1924년 익산총부로 거처를 옮겼다.
6.15때 소실된 것을 1980년 이 터를 기념하여 일원대도비(一圓大道碑)를 건립하였다.
변산 제법성지는 대종사가 5년간 기거하며 교법을 반포한 곳이다
인장바위
원불교 제법성지를 지나면서 회귀 야생화 지역이 나오는데서 국공파를 만나는데
야생화를 찾아서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까... 자기들은 잘 모르니 탐방소에서 물어 보란다
탐방소 가는 길 우측 산에는 인장바위란 멋진 바위가 보인다
내변산 입구에서 보면 그생긴 모습이 코끼리 닮았다고 하여 코끼리 바위
실상사에서 바라본 바위의 모습은 인장을 닮았다고 하여 인장바위라 부른다.
이곳의 우측 다리 넘어서 야생화 군락지가 있다
내변산 탐방지원센터
이곳 야생화 군락지는 아무나 출입할 수가 없다.
탐방지원센터에서 인적사황과 전화번호를 전부 기록한 다음에 직원의
안내를 받아서 직원의 감시(?)의 속에 야생화를 촬영할 수가 있다
미치도록 보고싶은 변산바람꽃을 찾아서 不遠千里길도 마다하지 않았던가
봄의 전령사 변산 바람꽃
바람꽃은 바람이 잘 부는 곳에 자라는 들풀이라서 주로 산이나 숲에 많이 자란다.
변산바람꽃은 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인데, 변산 이외에도 지리산과 마이산, 한라산에도 자라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내륙 지방에서도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개체 수는 적다
꽃말은 '기다림', '덧없는 사랑'이며, 지금은 개체 수가 많이 줄어 환경부 보호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넘들은 뭐가 수줍은지 나무 뒤에 숨어있다
사진 한 컷을 찍을때마다 국공파 직원인듯한 여인의 눈초리가 매섭기만 하다
너의 꽃말이 '덧없는 사랑'이라 했던가?
이곳은 생각보다 꽃의 개채수가 적어서 그리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변산바람꽃은 여기보다는 이곳에서 자동차로 가면 10분정도 걸린다는 상서면
청림마을이 조금은 많다고 하는데 차량도 없고 조금 늦은 시간이라 망설여진다
국공파 직원에게 복수초를 물어보니 이곳은 복수초가 끝물이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 탐방지원센터 앞으로 오니 노루귀가 보인다
분홍색과 흰색 노루귀 남매
노루귀는 숲에서 앞만 보고 가는 사람은 볼 수 없는 꽃으로 키가 작고 바닥에 바짝 붙어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아래도 살피고 가야 곱디고운 색감의 작은 꽃들을 관찰할 수 있다.
하얀 털을 뒤집어쓰고 꽃대가 나오면 꽃잎과도 같은 꽃이 피어나고 그 꽃이
질 무렵 잎이 나오는데 말려있는 모양이 노루위 귀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꽃말이 위로 인내라고 한다
노루귀... 이곳에는 조금은 더 있어야 할듯 싶다...아직까진 어린애다
흰색 노루귀는 참으로 청순하게도 보인다
사자동 버스 정류장앞
탐방지원센터를 나와 청림마을로 갈까말까 엄청나게 갈등이 심하다
그런데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버스가 출발하려는 것이 아닌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처지에서 버스는 아주 중요하다
쫒아가 부안읍내를 가느냐고 하니까 부안은 가지않고 새만금쪽으로 간단다
부안가는 버스가 몇시에 있냐고 하니까 이곳에서 16시 20분이란다
지금이 15시... 1시간 20분동안 뭐하지 생각하다가 변산을 가면 부안가는
버스는 많겠지싶어 아무런 고민없이 무작정 버스에 올라 변산으로 향하는데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다
변산사거리에 있는 파출소앞에서 내린다
사자동에서 10분정도 버스를 타고 내린곳이 부안군 변산면 지서리이다
이곳 버스 정류장에서 15분정도 기다리니 격포항에서 부안가는 버스가 15시 30분에 도착한다
부안터미널
변산에서 30여분만에 부안터미널에 도착하니 10분후에 서울가는 버스가 있단다
버스표를 예매하고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은 다음에 캔맥주 하나를 마시고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
부안발 → 서울행 버스표
첫댓글 범여님 멋지시고
모자또한 잘 어울립니다
좋은곳 잘 다니시네요
왕부럽습니다
모자가 좀 꼰대처럼 보이지 않으셔?
@범여 아닙니다
멋지셩
ㅋㅋ
@산소지우 젊은 좋게봐줘서 고마우이
범여님 너무 멋지게 사십니다.
그 삶이 부럽습니다.
산에은 벌써 야생화가 피고있군요!
저희 고향인데 저보다 더 잘 아시네요.ㅎ
부안이 고향이라 참으로 좋은 동네이더군요
내년 2월에 복수초보러 다시 가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