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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주 보는 백운산 정상·신선대
- 연달아 오른 뒤 내려오는 코스
- 약 8㎞ 구간의 새봄맞이 산행
- 산 정상부·중턱엔 녹지 않은 눈
- 곳곳 결빙구간선 아이젠 갖춰야
- 진틀삼거리서 왔던 길로 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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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객들이 백운산 주 능선 아래 결빙 구간을 오르고 있다. 산비탈에는 아직 칼바람이 서성대고 있지만 산 아래 콸콸 쏟아지는 계곡물 소리에서는 봄 내음이 물씬 풍긴다. |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으신지? 절기가 가져다준 선물일까. 입춘(立春)이었던 지난 4일, 전남 광양시 백운산(白雲山·1216.6m)에 가서 '춘신(春信) 품은 귀인'을 만났다. 봄은 먼저 소리를 타고 온다는 것을 귀인은 계곡을 휘돌아 흐르는 몸으로 전했다. 산 정상부와 비탈에 몰아치는 칼바람은 아직 코끝이 끊어질 듯 맵고 거칠었지만, 산 아래 계곡물 소리는 해바라기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처럼 활기가 넘쳤다.
나무들도 그 물소리를 자명종 삼아 기나긴 겨울잠에서 차츰 깨어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3월이면 보기 좋게 노란 꽃을 활짝 피워 줄게. 진한 생강 향기를 풍겨 환절기의 불청객, 감기가 얼씬도 못하게 해 주지." 다른 나무에 비해 개화가 이른 생강나무는 벌써 겨울을 툴툴 털어내며 봄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풍수의 대가인 신라 말의 고승 도선국사 알지? 도선국사가 백운산에서 수행할 때 좌선을 오래 하다 보니 무릎이 안 펴졌던 거야. 일어서려고 내 팔을 잡고 힘을 줬더니 그만 팔이 뚝 부러졌어. 부러진 팔에서 흘러내리는 내 흰 피를 도선국사가 받아 마시고 건강을 되찾았지. 해서, 사람들이 내 피가 사람의 뼈에 이롭다며 '골리수'라 했고, 나중에 그 이름이 '고로쇠'로 변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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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정상. 신선대를 비롯한 능선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
고로쇠나무는 수액 채취에 나선 농민들에게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있었다. 직경 1~3㎝가량의 가는 고무관을 산 중턱부터 마을의 수액 집수장까지 연결해 놓고 수액을 받는 중이었다. 농민들은 그렇게 채취한 수액을 내달 초 열리는 '백운산 고로쇠 약수제' 때 내다 팔 예정이라고 했다. 몸통 여기저기 구멍 뚫린 고로쇠나무가 못내 애처롭다.
"내 별명이 왜 척촉(躑躅)인지 알아? 나를 한 번 보면 가던 길을 더 못 가고 머뭇거리게 된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야. 올해는 연분홍꽃을 정말 흐드러지게 피워 황홀경에 빠뜨려 줄테니 각오하라고." 철쭉도 한 판 걸쭉한 봄잔치를 벼르고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다른 나무들은 내 상대가 안 돼! 내 열매를 먹으면 바지에 구멍이 뚫릴 정도의 방귀대장이 될 걸." 산뽕나무도 이에 질세라 굳은 팔다리에 힘을 줘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백운산 나무들의 봄맞이가 요란(?)한 것은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식생이 다양하게 보존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백운란 백운쇠물푸레 백운기름나무 나도승마 털노박덩굴 히어리 등 희귀종을 포함한 9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들 식물과 계곡물이 합주하는 봄맞이 교향악에 무젖어 산에 오른다. '신춘 산행'이다. 산행은 마주 보고 우뚝 솟은 백운산 정상과 신선대를 연달아 오른 뒤 하산하는 역삼각형 코스다. 총거리 약 8㎞으로 4시간가량 걸린다. 입춘이 지났지만 산 정상부와 중턱의 음지에는 겨우내 내린 눈이 얼어붙어 있으니 아이젠을 빠뜨려선 안 된다.
산행은 옥룡면 동곡리 진틀마을을 100m가량 지나 시작한다. 병암계곡을 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600m가량 걸으면 병암산장이 나온다. 여기서 포장길을 버리고 크고 작은 바위가 빼곡한 자드락길로 들어선다. 길은 외길이다. 길 잃을 염려일랑은 접어두고 무심히 1.3㎞가량 오르면 진틀삼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간다. 결빙구간이 시작되니 아이젠을 착용해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800m가량 걸으면 466개의 계단이 있는 나무 덱을 만난다. 나무 계단이 끝나는 주 능선에 삼거리가 또 있다. 오른쪽으로 5.6㎞가량 떨어진 곳이 억불봉, 왼쪽으로 약 0.3㎞ 가면 정상이다. 정상에 서면 지리산이 손에 잡힐 듯 성큼 다가선다. 섬진강 하류를 사이에 두고 백운산과 지리산은 남북으로 얼굴을 맞대고 있다. 백운산은 전남에서 지리산 노고단 다음으로 높은 호남정맥의 고봉이다.
정상에서 신선대까지 지리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500m가량 능선길의 조망은 자못 장쾌하다. 사방팔방 뻗어 나간 산맥이 마치 백두대간 지도를 보는 듯하다. 신선대 아래 삼거리에서 진틀마을 쪽으로 하산한다. 1.2㎞가량 걸으면 진틀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왔던 길을 되밟아 내려가 출발지로 돌아온다. 산 아래 계곡물 소리가 산행팀을 반긴다.
# 떠나기 전에
- 거대한 고인돌군 '남정지석묘군' 구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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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지석묘군의 한 고인돌. |
진틀마을에서 차를 타고 광양시내 쪽으로 10분쯤 내려오다 보면 옥룡면 산남리 남정마을에서 거대한 고인돌군을 볼 수 있다. '남정지석묘군'이다. 광양시에는 현재 43개 군에 269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그 가운데 44기가 남정지석묘군에 산재한다.
남정지석묘군은 구릉의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게 열을 이루고 있는데, 구릉이 끝나는 논둑에 이르기까지 넓게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다. 그 면적이 9189㎡에 달하며, 크고 작은 다양한 덮개돌이 혼재돼 있다.
고인돌 중에 입구에 자리한 것이 가로 420㎝, 세로 250㎝, 높이 150㎝로 규모가 가장 크다. 덮개돌의 형태는 장방형인데 두 조각으로 깨져 남동 및 북서쪽으로 놓였으며, 세 개의 굄돌이 덮개돌을 받치고 있다. 이곳에는 고인돌뿐만 아니라 그 사이 사이에 중세와 근현대의 봉분형 무덤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묘지를 보는 눈은 다르지 않은 것일까. 남정지석묘군은 시대를 초월한 공동묘지이기도 하다.
# 교통편
- 서부터미널서 광양행 시외버스
- 진틀마을행 21-2번 버스 갈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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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광양행 시외버스를 탄다. 광양행 시외버스는 오전의 경우 6시30분, 7시, 7시20분, 8시20분, 9시20분, 9시40분, 10시5분, 10시10분, 11시, 11시10분 등 10차례 운행한다. 광양터미널에서 내린 뒤 인근 정류장으로 이동해 진틀마을행 21-2번, 21-3번 버스를 갈아타고 가다 진틀마을에서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