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14
14-1 (6-1, 27, 53, 104 참조)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금식하면 너희는 너의 스스로 죄를 가져올 것이고, 너희가 기도하면 너희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또한, 너희가 구제하면 너희는 너의 영(靈)에 해를 끼치는 것이다.
14-2 (14-3)
예수는 “너희가 어느 마을이든지 그곳을 지나갈 때 그곳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면 그들이 너희 앞에 차려주는 것을 먹고 그들 중 병든 자가 있으면 그들을 치료하라”라고 말씀하셨다.
14-3 (14-2)
예수는 “너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희를 더럽히지 않지만 너희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너희를 더럽히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14-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 마6:1.
大道廢, 有仁義。 慧智出, 有大僞。(대도폐, 유인의. 혜지출, 유대위) - 도덕경 제18장.
큰 도가 그치니, (사람들의) 인과 의가 나타난다. 총명한 기지가 생기니, 큰 속임이 나타난다.
天下神器, 不可爲也! 爲者敗之, 執者失之。(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 도덕경 제29장.
천하는 신령한 도구라서, (인위적으로) 할 일이 마땅히 없는 것이야! (인위적으로) 하려는 자는 그것이 깨어지고, 잡으려는 자는 그것을 잃는다.
영혼과 육체는 건강하게 상부상조해야 하는 관계다.
영혼을 위한답시고 육체를 훼손하는 금식은 자연의 섭리를 위반하는 일이 된다.
마6:9~13(주기도문)에 이르는 기도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이 있다.
큰 자가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스스로 다른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보다 낮은 곳에서 생명의 법칙을 위반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기도이며, 나의 생명이 다른 생명의 먹을거리가 되는 것이 진정한 구제다.
나의 생명이 다른 생명을 먹을거리로 하여 살았음을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 그러함(하나님-근원의식-사랑)의 영광을 위한 삶이다.
인의(仁義)를 내세우며 하는 금식, 기도, 구제는 모두 큰 속임(僞)이다(大道廢, 有仁義-도덕경 제18장). 인위적으로 하려는 자는 그것이 깨어지고, 잡으려는 자는 그것을 잃는다(爲者敗之, 執者失之-도덕경 제29장).
그러므로 상부상조하는 스스로 그러함의 법칙을 깨는 인위적 행위는 오히려 내 영을 해치는 일이다.
14-2
‘밭 가는 자는 소망으로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으로 떠는 것이라.’ - 고전9:10.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 신25:4.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10:10), (눅10:7), (딤전5:18)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고전9:11~12)
제사 후 풀 강아지처럼 폐기될 육체라도 (以萬物爲芻狗–도덕경 제5장) 먹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영혼의 차원 상승을 위한 경험을 쌓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일군이 저 먹을 것을 받는 일이 마땅한 것이므로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는 일은 생명의 원리를 망각한 행동이 된다.
사도 바울은 이 권리마저도 복음에 장애가 없게 하려고 참았던 진정한 일군이었다. (고전9;12)
작금의 모든 종교 지도자들은 권리만 생각하지 말고, 복음에 방해가 없는지 깊이 반성할 일이다.
道者同於道, 德者同於德, 失者同於失。(도자동어도, 덕자동어덕, 실자동어실) - 도덕경 제23장.
도를 아는 사람하고는 도로서 함께하고, 덕을 아는 사람하고는 덕으로 함께하고, (道德을) 잃어버린 사람과는 잃어버림으로 함께 한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 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행동한 바울의 행동은 (고전9:20~22) 위 도덕경 제23장과 너무나 흡사하다.
도와 덕을 잃은 사람은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울 것이므로 성인은 제 먹을 것은 제가 구하여 다닐 것이다.
14-3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롬14:17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 약3:8.
是以聖人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 도덕경 제2, 43장.
이런 까닭에 성인은 함이 없음의 일로 살고, 말로(言) 하지 않음의 가르침을 행한다.
多言數窮, 不如守中。(다언삭궁, 불여수중) - 도덕경 제5장.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니 마음으로 지키느니만 같지 아니하다.
먹고 마시는 일은 입(口)으로 한다. 이것은 본능이며 육체가 먹지 않으면 죽으므로 영혼의 성장도 함께 멈출 수밖에 없으므로 먹는 것이 더러울 수 없다.
그러나 입속의 혀(舌)는 간사하여 다섯 가지 맛을 느끼게 하여 사람으로 하여 입을 변하게 하며 더 좋은 맛을 탐하게 하고(五味令人口爽-도덕경 제12장) 말(言)을 많이 하여 나를 더럽히지만(多言數窮-도덕경 제5장), 그 혀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약3:5~8).
그러므로 성인이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가르친 것이(行不言之敎-도덕경 제2장) 곧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고,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싯달타의 가르침인 것이다.
그러므로 말 자체가 더럽다는 의미가 아니고 ‘깨달은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모른다.’라는 것이다(知者不言, 言者不知-도덕경 제56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