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자본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는
한국의 노동조합을 파괴하려 하는가
대표이사 “다음카드 직장폐쇄”언급 등 노조파괴 시나리오 진행의혹
정현철(시흥안산일반부회 분회장)
올해 3월31일,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이하․회사)에 다니는 생산직 직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금속노조 경기금속지역지회 한국히타치화성분회(이하․노조)는 “회사의 일방적 지시와 직원들의 의견이 무시되는 현실을 극복하고, 노동자가 존중받는 회사를 만들고자” 노동조합의 문을 두드렸다. 불필요한 주야간 교대 근무를 없애고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을 주요한 요구로 회사에 교섭을 요청했다.
하지만 회사는 처음부터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을 마친 후 교섭을 요청한 노조에 회사는 “회사 밖에서 근무시간 외에 교섭하자”는 답변을 보내왔다. 어디서 많이 보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2016년 촛불항쟁 이전에 회사에 노조가 생기면, 많은 회사들은 일단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양태가 “회사 밖에서, 근무시간 외에 교섭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원칙’이다”는 주장이었다. 그 뒤에 모습은 대체로 불성실교섭(노조요구안 수용불가), 파업, 직장폐쇄로 이어지는 노조파괴 시나리오였다. 일본자본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도 똑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노조 설립 이후 한 달이 지난 5월 8일에야 겨우 회사와 대면할 수 있었다. 교섭장소는 호텔이었다. 회사는 노조와 교섭이 아니라 ‘세미나’ ‘HR회의’ 등의 이름으로 호텔 회의실을 대관했다. 한번 대관에 수 십만원이었다. 2주 1회(1회당 4시간), 노사가 제안한 장소에서 번갈아 가며 교섭을 하기로 하고, 8월 8일까지 7차례에 걸쳐 교섭을 진행했다.
회사는 불성실 교섭으로 일관했다. 교섭안을 제시하기로 한 날 교섭안을 제시하지 않고, 정작 제출한 교섭안은 최저수준이었다. 노조의 요구는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였다. 지난 8월 8일 교섭에서 사측 교섭태도는 최악이었다. 전차 교섭에서 이미 합의한 사항을 번복하는가 하면, 교섭위원들은 ‘결정권한이 없다’면서 결정을 미루었다. 이미 합의된 사항도 ‘결정권한이 없다’고 하다가 노조에서 반발하자 마지못해 수용하였다. 그동안 결정권한도 없이 형식적 교섭만 해온 것이다. 회사에서 직원들 몰래 취업규칙을 변경한 사실이 들통났으나 취업규칙에 있는 문구를 단체협약에 넣자는 노조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노조는 한 번에 수 십만원씩하는 호텔이 아니라 사내에서 교섭을 하자고 하였으나 사측은 끝내 거절했다.
8월 19일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이하 지노위)는 조정중지 결정을 내렸다. 지노위는 “△회사내 교섭 △조합비 일괄공제(조합원의 동의를 얻어 조합비를 월급에서 공제하여 노조 통장에 입금 하여주는 것)를 받아들이면 조정기간을 연장하겠다”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이 정도는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요구이므로 회사에서 수용하면 파업을 하지 않고 노사간에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회사는 거부하였다.
지노위의 최소 중재도 거부하고 회사는 ‘노조가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비조합원들을 선동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는 소박하다. “노동조합인정,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 주간연속2교대제는 회사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남은 쟁점은 노동조합인정이다. 결국 회사는 노동조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조는 8월 20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거쳐 21일부터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어떤 시나리오를 가지고 직장폐쇄 등 노조파괴작업을 진행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파업 3일째인 지난 8월 23일 노조 조합원들은 30도가 넘는 불볕더위를 피해 이전부터 사용하던 회사 휴게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자 회사 총무부장 및 대표이사는 “휴게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휴게실은 쟁의행위 전부터 조합원들 뿐만 아니라 생산직 직원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던 공간이다. 이러한 공간을 조합원들만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나가라’고 하는 것은 조합원들에 대한 차별이며 부당노동행위다. 또한 휴게실에 있는 정수기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한여름 30도가 넘는 더위를 피해 휴게실을 찾은 조합원들에게 대표이사가 “나가라고 했는데 왜 안나가느냐”고 한 것은 반인권적 행위이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직장내 괴롭힘이다.
그리고 대표이사가 “다음 카드 알지. 직장폐쇄”라고 운운한 것은 회사가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성실하게 교섭하기 보다는, 그 악명높은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가지고 노조 파괴공작을 시행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했다. 만일 대표이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다음 시나리오는 직장폐쇄일 것이다. 하지만 직장폐쇄는 노조파괴를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사용자가 방어적 수단으로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어떤 ‘시나리오’에 따라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노조파괴용’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정당성을 얻기 힘들 것이며, 위법한 직장폐쇄다. 회사는 직장폐쇄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노사간의 대화와 교섭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2016년 촛불항쟁이후 한국사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노동현장에도 촛불의 영향은 깊숙이 끼쳤다. 문재인정부의 ‘노동존중사회’ 표방도 노동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숨죽였던 노동자들이 기지개를 켰다. 반월시화공단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5년 이후 단 한건도 없던 노조설립이 2016년 말부터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반월시화공단에 13개의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이 새로 만들어졌다. 특징적인 것은 사용자의 저항이 적어진 점이다. 일단 노동조합은 인정하고 세부적인 내용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변했다. 노동조합 자체를 부정하던 촛불 이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러던 것이 한국히타치화성전자재료에서 탁 막혔다. 이것이 노조혐오가 있는 일본 자본 탓인지, 대표이사 개인의 일탈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노동존중사회’를 표방했던 문재인 정부의 노동정책이 친기업으로 후퇴하면서 나타난 현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부의 태도가 그러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새로운 노조를 안착시키는데 있어 노동부의 역할이 매우 컸다. 처음 노동조합이 만들어 지면 대부분이 사용자들이 충격을 받는다. 노동부가 그 충격을 완화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끼친다. 지난해까지 노동부는 노사간의 큰 마찰(파업) 없이 노동조합을 안착시키려고 부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 노동부는 기계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 이 모습 역시 촛불이전의 행태 데쟈뷰다. 눈치빠르고 감각적인 사용자들은 정부의 태도에 민감하다. (이것은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합리적 노사관계, 상생의 노사관계는 사용자의 막무가내 앞에서 막힌다. 노동조합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촛불항쟁 이전으로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퇴행이다. 결국 이 퇴행을 막아내는 힘도 노동자에게 있다. “단결하는 노동자는 패배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등에 새기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는 노동자의 발검음을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