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회장님은 내게 빛으로 다가오셨네유......
지금부터 만 3년전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눈이 오던날 서럽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 사치라고
자신을 나무라면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일이라고 무슨 거창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경비원이라는 일이었습니다.
물론 가족을 위하고 인생을 개척하는 훌륭한
동종의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누를 끼칠까
염려가 되는 마음에서 조심스럽기는 합니다.
양해를 부탁합니다.
그 당시 저는 암울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시작만 있고 끝을 알수없는 절망에 빠져서
살아가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나는 세상에 혼자 되는 줄도 모르고
혼자 남게된 나는 궁여지책으로 살던 아파트를
빈손으로 나와서 고시원이라는 1평짜리 방으로
이사를 하고 갓 50살을 넘긴 비교적 젊은 나이에
60-70대가 주축을 이루는 그 직업에 뛰어든 것이
나를 그렇게 어둡고 춥고 우울하고 힘들게 하였습니다.
물론 난 내탓으로 돌리고 세상에 진 빚이 너무나
많다고 자책하고 그 빚을 갚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것을 내가 받아들이는데는 휠씬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요.
그때까지 20여년간을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련은 있었지만 그런대로 버티고 5식구를 먹어살렸는데
이런 암담한 상황이 벌어질지는 정말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불면의 밤을 지내게 되고......
그후 3년이 지났습니다.
내가 일했던 아파트 주민이었던 70대의 K회장님이
나에게 그분의 자택으로 방문을 주문하셨습니다.
(난 그 아파트경비원을 떠난지 10여일 지났을때 전화가 왔지요
갑자기 용역회사 소속으로 바뀌는 바람에 월급이 14만원이나 줄어서
그 아파트를 떠나서 다른 곳에 아파트경비원으로 다시 취업했음)
그리고 그분은 말씀을 이어나가셨습니다.
내 회사에 와서 같이 살자고.....
그 70대의 회장님은 내게 빛으로 다가오신 것입니다.
난 감사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지난 3년 전에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참한 절망감에 글을 썼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려서 절망에 빠진 환자가 섹스(SEX)에
몰두하며 세상의 괴로움을 잊는 심정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냥 글을 쓴 것이지 소설을 쓴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를 못했습니다.
일찍이 문학적인 소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문학을 공부한 바도 없었고 기껏해야 70년대 초중반에
서울에서 법과대학을 졸업한 것이 모두인
내가 공부다운 공부를 한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쓴글을 인터넷 카페에 올렸더니
국보문인협회 L회장님이 소설가로 등단을
권유하였고 가까스로 계간 국보문학으로
김용철소설가님의 추천으로 소설가로 등단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2년정도 국보문학에 연재소설을
올렸습니다(새끼 손가락이 유난히 길었던 그여자 外).
국보문학 2007년 겨울호에서는
‘ 겨울에 만난 소설가 ’로 독자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
K회장님은 지난 3년간 말없이 나를 지켜보신 것같습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적도 없는 분입니다.
무더운 여름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부는 겨울에는 음식물쓰레기통을 비우고
눈쌓인 마당을 쓰는 모습을 눈여겨 보신것 같습니다.
물론 나만이 그런 고생을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어제는 k시로 k회장님 회사(공장)를 회장님 내외분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박씨네 추어탕집을 들려서
뜨거운 추어탕으로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곧 그 70대 회장님 회사에서 함께 일을 하기로
했기 때문에 다시 직장을 옮기고 고시원방도 옮겨야
할것같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젖먹던 힘까지 다하여 그 회장님 회사가 번창하도록
열심히 일할 생각입니다.
지난 3년전 암울했던 절망 속에서 쓴
저의 등단소설 반전(反轉)처럼 70대 회장님은
내게 밝은 빛으로 다가 오셨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그동안 그런일 있어군나 일제야 항상 힘내고 잘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