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간이역의 무엇이 나를 매혹하는가. 시골 역의 어떤 시정에 홀리게 하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거기엔 굼벵이들이 탐닉할 만한 갖가지 성찬이 차려져 있다. 태연한 퇴락, 무참한 적막, 태평한 방심, 쓸쓸한 독거, 은은한 서정, 바로 이런 것들이 간이역의 식탁을 이룬다. (펴내는 글 中)
역을 나서서, 광장을 벗어나, 흥청흥청 시골의 풍정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산간 시골의 어여쁜 풍경 속으로 입장해 순수하고 순결한 자연경관을 관람했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하오의 그윽한 암자를 찾아들었다. 오래된 산촌 오지를 탐승했으며, 양처럼 정말 순한 산골의 양 사람들과 교제를 했다. (펴내는 글 中)
빗물 주렴 저편의 산촌 풍경은 촉촉해서 더욱 은밀하다.(19)
마을 구경은 아꼈다 조금 뒤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동네 복판의 소로를 따라 양동을 가로질러 뒷산 기슭의 호수에 닿는다. 안개댐이라는 이름이 붙은 호수다. 저 멀리 임하댐 물을 도수관으로 끌어올여 조성한 상수원이다.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꾸민 저수지다. 드러나 자연스럽다. 아름답다.(22)
그래서 숲길을 내려올 땐 어떤 깊은 취기로 걸음마저 거의 비틀거릴 지경이다. 그래, 황급히 산자락 아래 호젓한 찻집을 찾아든다. 찻집의 3백년 된 사랑채 마루에 오른다. 사랑채 저 아래로 마을 전경이 덩달아 시야 가득 올라온다.(25)
향락이 부글거리고 돈이 돌아다니는 근동 최고의 색주가라는 명성은 세월이라는 도적에 의해 탈취되었다. (32)
우구치리의 금광인 금정광산의 활기 역시 역전 유흥가의 불야성에 이바지했다.(33)
춘양역에서 북쪽으로 20리쯤 떨어진 석현리의 각화산(1176.7미터) 중턱을 향해. 거기에 각화사가 있다. (34)
햇살 내려 자울자울 졸고 앉은 대웅전 산신각 범종각의 지붕 위로 푸른 산색이 흐르고, 그 위엔 하늘의 치맛자락이 걸려 있다. (35)
간간이 자동차가 지나며 횡포처럼 와지끈 적막을 뒤흔든다. 소음 뒤엔 오히려 정적이 무거워진다. 다방 안 역시 고요하다. 수족관처럼 고요하다. (40)
하여, 시들어가는 내 얼굴엔 우수의 고랑과 허무의 이랑이 패이기도 한다. (42)
그런데 지질학자들이 ‘한국판 그랜드캐니언’이라 부르는 협곡이 있다.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남쪽 오십천 상류 일대에 형성된 통리협곡을 일컬어 하는 얘기다.(49)
쌍쌍이 어깨를 겯고 죽죽 뻗어나가는 철길의 행진이 어지러운 가운데 플랫폼 가득 햇살 파편이 자글거린다. (54)
반고개를 넘어 오른편 농로를 따라드니 옴팡하면서 헌칠하고, 조촐하면서 포실한 산간 동리가 연달아 나타난다. (61)
바람이 분다. 한결 매서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봄이 문득 스텝을 잘못 밟고 있는 모양이다. (69)
무창포 앞바다엔 작은 섬 하나가 떠 있다. 석대도다. 푸른 소나무들이 독채 전세를 내고 살아가는 무인도다.(73)
토박이들의 이런 대찬 자존심의 반영인 양 독산 해변에 이르는 길은 전혀 변변치가 않다. 구불구불 오르락내리락 난처한 흙길 소로를 거쳐서야 해변에 닿게 된다. 길이 이렇게 된 데는 이곳이 오랫동안 군사지역으로 묶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민간인 출입이 가능해진 지 오래인 지금까지도 이 해변은 해변의 본색과 본연을 고스란히 간수하고 있다. 아는 이가 드문 데다 널리 소문난 장소도 아닌 바람에 바닷가 특유의 야성과 본성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76)
탑리역 광장을 벗어나자 이내 금성면의 중앙통이 이어진다. 역전과 달리 자못 반듯하고 싱싱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역시 여긴 시골이다. (80)
산운마을의 예스런 돌담길을 에워도는 중에 붉은 꽃밭이 곳곳에서 출렁거린다. 홍화밭이다.(83)
홍화밭을 지나 금성산이 성킁성큼 눈길로 걸어 들러오는 걸 바라보며 한결 깊어지는 산의 내장으로 접어든다. (88)
거기에 적막한 산사가 있다. 수정사다. 부드러운 자연석 돌계단을 딛고 올라 수정사 경내로 들어선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몇몇 전각과 요사채가 정방형으로 들어앉아 산숲의 정적에 귀기울이고 있다. (88)
승부리는 산 많은 경북 북부 안에서도 으뜸가는 진정한 오지인 한편, 그 수려한 자연경관으로서 기억에 새겨지게 마련인 경승지이기도 하다. 산간 협곡 사이로 푸른 강물이 구르는 것이다. 저 위 태백시 황지에서 생명 현상을 시작한 낙동강 청류가 승부리를 관통하는 거다 . 말하자면 승부역은 강물가 정거장이다. (97)
써늘한 산중 공기가 살갗을 파고든다. 하지만 햇살은 다사롭다. 밝다 못해 푸른 기를 머금은 한낮의 햇볕이 유리 알갱이처럼 쟁강쟁강 부서져 내린다. (105)
역사를 빠져나오자 마을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철리다. 소백산 아랫자락에 달린 어여쁜 산촌이다. 마을 가운데로 계곡 물이 솰솰 흐르고, 그 양편 둔덕 여기저기에 집들이 들어앉아 있다. (105)
어쩌다보니 나는 주로 혼자 여행하길 즐기는 사내가 되어버렸다. 둘이면 오붓하고, 셋이면 흥겨워서 좋지만, 혼자면 더 오붓하고 더 흥겨운 거다.(107)
2.5킬로미터에 이르는 죽령 옛길 끝에는 ‘죽령주막’이 있다. 조선의 주막을 재현한 초가 목로주점이다. (112)
자동차와 행인들과 식당에서 새오나오는 음식 냄새가 뒤섞여 출렁이는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119)
방금 떠나간 기차가 이 역에 고여 있던 일점의 소음마저 스펀지처럼 흡수해 떠난 듯, 열차의 발진음이 사라진 삼탄역은 물속처럼 적막하다. (128)
남한강 청류가 느릿느릿 산굽이를 휘어돈다. 산 그림자 드리운 강물이 역사 앞을 흘러나간다. 말하자면 삼탄역은 강변 정거장이다. 강가에 주민등록을 낸 희귀한 기차역이다. (129)
삼탄이란 세 개의 여울탄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위쪽의 광청소여울, 소나무여울, 그리고 아래쪽 따개비소여울을 뭉뚱그려 삼탄이라 부른다.(133)
동량역과 삼탄역 사이에 뚫린 인등터널은 태백선 고한역과 추전역 사이의 정암터널이 건설되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장의 철도 터널이었다.(134)
황홀하여라! 진달래꽃 사이에 누운 오수 한바탕!(137)
산과 계곡과 하늘이 은도금을 한 세공품처럼 영롱한 빛을 머금고 있다. (139)
역을 뒤로하고 운산리 중심부로 접어든다. 운산리는 안동시 일직면의 면소재지 마을이다. (152)
소호헌은 조선 중기의 건축 공학과 미학을 엿보게 하는 명품 한옥이다. (155)
정겨운 골목이 구불구불 음악처럼 흐른다.(162)
오늘날 관아터에는 주포초등학교 보령중학교가 들어 있다. 이 두 학교의 아이들은 지금까지 성곽 아래를 지나 학교를 드나든다. 성의 남문에 해당하는 해산루라는 누각이 교문 노릇을 한다. (163)
발 아래 바닷물 속에선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다. 등 푸른 고기들이 수중 열병식을 펼치고, 연달아 유리 세공품처럼 투명한 잔고기들이 뒤를 잇는다.(167)
하지만 이는 매우 짧은 동안의 소요에 불과한 것이어서 거리의 끝으로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자마자 다시 둔탁한 적막이 고여든다. (173)
추사의 제주도 귀양살이는 자그마치 9년동안 계속되었다. 유배객이란 끈 떨어진 뒤웅박과 마찬가지 신세. 해서 추사는 일쑤 고독으로 뼈가 시렸다. 하지만 고난과 수난의 9년 귀양을 추사는 오히려 영혼의 보약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마침내 저 불세출의 서도 미학인 추사체를 완성 정립했으며 불가사의한 생의 미궁을 구도적 열정으로 관통해 도인의 풍모를 구현하기에 이르렀다.(180)
앵무봉 남사면에 화암사가 있다. 작은 암자, 하고도 허름한 수행처다.(182)
별안간 거센 바람이 소용돌이치고 폭우가 쏟아진다. 한낮의 거리를 거닐던 행인들이 메뚜기처럼 튀더니 잠깐 새에 비를 피해 모두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191)
과거의 유구한 행정타운이었던 향석리는 면소에서 남쪽으로 10리쯤 떨어진 내성천변에 자리해 있다. 원래의 관아터에 들어앉은 향석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범상한 농촌이다. (192)
마을의 뒷산 기슭에 들어선 용궁 향교 역시 제각각 전통과 유서를 자랑하는 40여문중이 27위의 성현을 모시고 때가 되면 극진한 제례를 올리는 마을 최고의 지성소다(192)
회룡대에 오르자 대뜸 희한한 경치가 발 아래 저 멀리에서 붕붕 솟아오른다. 회룡포 마을의 그림 같은 절경이 막대기로 쑤셔대듯이 눈길을 파고든다. 회룡포 마을을 휘휘 에워도는 내성천 푸른 물길이 절로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든다. (193)
역원의 말대로 직지사에 이르는 10리 길은 산뜻한 시골길이다. 휘파람 휙휙 날리며 걷기에 충분한 상쾌한 여로다. 포도밭과 황금들판과 야트막한 야산들을 사열하게 되는 괜찮은 행보다.(199)
일주문을 지나 대양문, 금강문, 사천왕문을 차례로 통과하자 점입가경으로 산문의 풍치와 운치와 흥취가 점차 고조되고 이윽고 대웅전에 이른다. 직지사 치고의 성전이다. 삼존불이 봉안된 대웅전 내부 후면 벽에는 세 폭의 후불탱화(보물 제 670호)가 높이 걸려 있다. 완벽한 구성, 분방한 묘사, 정교한 장식,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조선 후기 불화의 걸작이다. (201)
나의 발길은 산과 산 사이 후미진 골짜기로 접어들고 있다. 매정리를 지나 쌍봉리를 거쳐 증리로 향한다. (210)
쌍봉사에 이르자 경내에 떨어지는 햇살이 더욱 평명해진다. 이양면 증리 중조산 기슭에 자리한 산문이다. (212)
‘고현정 소나무’는 관광재료로써 기절할 만한 진가를 발휘해 정동진의 팔자를 일거에 뒤집어버렸다. 반면 ‘김영애 소나무’는 이렇다 할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이렇다 할 이름값을 하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이 지역의 평온을 유지케 하는 데 이바지했다.(222)
나는 지금 보성강의 가장 아름다운 구간을 지나고 있다. 곡성군 석곡에서 압록에 이르는 보성강 수계를 흔히 ‘석압계곡’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석압계곡 하류 구역을 통과하고 있는 거다. (224)
지금 나는 산사의 적막에 휩싸여 있다. 경쇠소리도, 물소리도, 새소리도 끊긴 채 여기에 오직 차분한 적막이 있을 뿐이다. 뜨락에 흐드러진 상사화 물빛꽃이, 담장에 늘어진 능소화 붉은 꽃이 산사의 깊은 적막을 경청하고 있을 뿐이다.(227)
비는 야멸차게 쏟아진다. 덩달아 바람이 장단을 맞추어 산도 나무들도 들판도 보릿대 춤을 추어댄다. (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