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산서원
병산에서 산불의 흔적을 보다.
안동에는 사액을 받은 서원이 8개나 된다. 그 중 우리는 도산서원, 병산서원, 호계서원, 역동서원을 방문하려 했다. 이번 답사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서원의 문을 닫은 역동서원을 제외하고 도산서원, 병산서원, 호계서원을 방문하려고 한다. 이 중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호계서원은 최근 국학진흥원 옆에 새로운 모습으로 이전 복원되었다. 국학진흥원에는 유교문화박물관이 있어, 박물관도 함께 살펴볼 예정이다.
서원 답사는 충주에서 가까운 순으로 병산, 호계, 도산서원 순으로 답사하려고 한다. 병산서원은 안동시 풍천면 낙동강변에 있다. 이곳에 가려면 옛날에는 풍산읍을 지나 하회마을 앞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이제 경북도청이 풍천면으로 이전하면서 풍산농공단지에서 들어가는 지름길이 생겼다. 하회리에서 병산리로 들어가는 길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비포장도로다.
병산서원은 화산(華山)을 진산으로 병산(屛山)을 안산으로 하는 배산임수의 형국에 위치한다. 이름 그대로 병산이 서원 앞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병산과 서원 사이에는 낙동강이 동에서 서로 흐른다. 서원을 방문한 것이 5월로 녹음이 한창이다. 그 때문에 지난 4월말에 발생한 산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능선의 소나무들이 갈색을 띠고 있다. 산불이 병산서원으로 번질까봐 소방차들이 서원 앞에 대기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만대루에 올라 병산을 바라보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외삼문이 복례문(復禮門)이다. 『논어』에 나오는 ‘극기복례(克己復禮)’에서 나온 말로, 예로 돌아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2층 누각을 만난다. 만대루(晩對樓)다. 서원의 유식공간으로 유생들이 놀면서 휴식을 취하는 건물이었다. 이 때 유식은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을 말한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건물로, 1층 가운데를 통해 강학공간인 입교당(立敎堂) 앞마당으로 올라갈 수 있다.
만대는 늦게 마주한다는 뜻으로, 앞의 병산을 오후 늦게 바라볼 때 가장 멋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만대라는 이름은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의 한 구절에서 따 왔다. 전혀 다른 곳을 읊은 시이지만, 병산서원 앞 풍경과 산수의 어우러짐이 비슷하다.
강은 차가운 산 누각 앞으로 흐르고 江度寒山閣
성은 높이 솟아 수루가 우뚝하다. 城高絶塞樓
푸른 병풍 같은 절벽 느지막한 때 봄이 좋고 翠屛宜晩對
하얀 골짜기 모여 놀기에 좋도다. 白谷會深遊
이처럼 병산서원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건물은 만대루다. 만대루에 앉거나 서서 8개의 기둥 사이로 펼쳐진 병산과 낙동강을 바라보면 자연을 그린 7폭 병풍이 된다. 그런데 일반관광객들은 그 풍경을 감상할 수가 없다. 만대루 2층 누각 출입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만대루에서 병산과 낙동강을 바라보면 자연과 건물이 어우러진 절경을 볼 수 있는데 정말 아쉽다.
그런데 우리는 류한욱 하회마을보존회 이사장의 배려로 만대루에 오를 수 있었다. 류 이사장은 엊그제 비가 많이 와 병산서원에 수해를 입은 곳이 없나 살피러 온 것이었다. 우리가 팔봉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을 하는 팀으로, 병산서원을 방문했다고 하니 흔쾌히 만대루에 오르게 했다. 류 이사장은 계단 앞에 교육중이라는 팻말을 세워놓고 병산서원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준다. 말 그대로 이곳 주인에게 듣는 살아있는 강의였다.
입교당(立敎堂)과 존덕사(尊德祠)
입교당은 병산서원 강당이다. 병사서원은 복례문, 만대루, 동․서재, 입교당으로 단을 높이며 올라가는 구조다. 병산서원의 중심에 위치한 입교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 가운데 세 칸은 대청이고, 양쪽 두 칸은 온돌방이다. 동쪽 방은 명성재(明誠齋)로 원장이 기거하는 방이다. 서쪽 방은 경의재(敬義齋)로 유사들이 기거하는 방이다.
여기서 명성(明誠)은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 명의 바탕은 성(性)이고 성의 바탕은 교(敎)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성에서 명이 나오고, 명에서 성이 나온다고 했다. 이는 명과 성의 상호보완 관계를 말하고 있다. “하늘의 명이 성이고, 성을 따르는 것이 도고, 도를 닦는 것이 가르침이라”는 『중용』의 첫 구절이 생각난다. 이곳 입교당에서 가르침을 닦고 도를 닦아 천성에 이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경의(敬義)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로, 군자가 지켜야 할 덕목이다. “군자는 경으로 내면을 곧게 하고, 의로 외면을 바르게 한다(君子 敬以直內 義以方外).”는 말이 있다. 이와 관련해서 입교당 앞 동재는 동직재(動直齋)고, 서재는 정허재(靜虛齋)다. 행동할 때는 항상 곧아야 하고, 마음을 고요하게 할 때는 항상 마음을 비워야 함을 말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갖춰야 할 자세를 곧음과 비움으로 표현했다.
입교당과 동․서재로 이루어진 강학공간에서 인간은 교육을 통해 군자로 되어가는 것이다. 공간적인 측면에서도 계단을 오르면서 인간을 완성해 나간다. 그래서 입교는 가르침을 통해 인간의 기초를 세움을 의미한다. 유생들은 서원에서 공부를 통해 인격을 도야하고 군자로의 길을 걸어간다. 그러한 군자의 길을 먼저 간 사람들이 현인이고 성인이다. 다음 단계는 현인을 만나러 존덕사로 간다. 그곳에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모셔져 있다.
존덕사에 오르려면 계단을 올라 신문(神門)으로 가야 한다. 3칸의 신문은 향사 때만 열린다. 신문 안에는 사당인 존덕사가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류성룡을 주벽으로 하고 동쪽에 류진을 종향하고 있다. 류진(柳袗)은 류성룡의 세 번째 아들로 1662년 추가 배향되었다. 병산서원 향사는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행해지고 있다.
병산서원에는 장서실(藏書室)과 장판각(藏板閣)이 있다. 장서실은 서재 안쪽에 현판으로 남아 있다. 병산서원의 장서로는 『징비록』『서애선생문집』『서애선생별집』『오리집(梧里集)』등이 있다. 장서목록은 『병산서원 서책목록』으로 남아 있다. 병산서원 장서는 1,071종 3,039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장서는 일부가 충효당(忠孝堂) 유물전시관인 영모각(永慕閣)에, 상당수가 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되고 있다.
장판각은 사당 서쪽 강당 북쪽에 독립된 건물로 존재한다. 장판각은 공부에 필요한 서적의 책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책판이 25종 1,907매, 현판이 11매 있었는데, 현재는 국학진흥원에 기탁 보관하고 있다. 책판으로는 『서애선생문집』『징비록』『문순공 퇴도이선생 언행통록』『성학십도』『동몽수지』 등이 있다. 병산서원 장판각에서 간행한 서적으로는 『서애묵적(西厓墨跡)』『수암(修巖)선생문집』『병곡(屛谷)선생문집』 등이 있다. 수암은 류진이고, 병곡은 권구(權矩)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