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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장, 4장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 하늘에 있는 성도의 시민권, 영광의 면류관
1~11절을 볼께요
3: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4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5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개들'은 고대 세계에서 일반적인 조롱의 말이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일부 유대인들은 의식적으로 부정한 존재로 간주된 이방인들을 가르치면서 사용한 단어였습니다. 바울은 신랄한 반어법으로 이방인들이 아니라 유대주의자들이야말로 그렇게 불려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의 반어법은 바울이 율법의 선행을 찬양하는 이들을 '행악하는 자, 몸을 상해하는 하는' 자라고 부르면서 계속 이어집니다(2절).
육체에 행하는 할례를 상징하는 이들과는 대조적으로 참된 하나님의 백성(할례파)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즉, 칼빈의 표현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것"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삼위 하나님의 세 위격, 즉 "하나님"(성부) "그리스도 예수"(성자) "하나님의 성령"(성령)을 전부 언급합니다(3절).
유대주의자들에 대한 바울의 반대는 바울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유대인 '혈통'에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육체'- 그리스도가 오시고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지배적이었던 삶의 방식 전체에 대해서 말하자면 바울에게는 완벽한 자격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구약 율법에 따라 8일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 민족의 일원이었고 자신의 출신 지파를 알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 이는 아마도 바울의 유대인 조상들의 혈통을 가리킬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이말에 바울이 헬라어를 사용하는 다소 출신이면서도 아람어 당대 이스라엘의 모국어를 사용했다는 뜻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가장 엄격한 종교의 분파인 바리새인 출신이었습니다. 바울이 열심히 교회를 박해할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바울은 아마도 자신이 열심에 있어서 비느하스나 엘리야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로 여겼을 것입니다. 만일 누군가를 율법을 따르는 데 있어서 흠이 없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곧 바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의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교회를 박해하는 것은 박해하는 가운데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딤전 1:15)임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4~6절).
'그 안에서 발견되려', 이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 결과 신적인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무죄하다고 간주되는 것을 뜻합니다. 바울은 한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지위가 아닌 율법에 대한 순정에 바탕을 둔 내가 가진 의를 신뢰했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평생에 걸친 완벽한 순종의 기록을 전가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순종을 그 사람에게 속한 것으로 여기시며 따라서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삽니다. 이는 이신칭의가 하나님이 보시게 공평한 것으로 여겨지는 근거입니다. 모든 인간은 죄를 짓기 때문에 의는 율법을 통해 올 수 없고 따라서 신적인 심판자이신 하나님 앞에서의 바른 지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 앞에서의 신자의 의입니다(9절).
<하늘에 있는 성도의 시민권>
12~21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바울은 자신이 이미 온전히 이룬 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지금도 타락한 세상에서 분투하는 삶에 관여하고 있고 따라서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부활의 완전한 영광은 아직 미래의 일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기에는 믿음과 행위, 하나님의 부르심과 신자의 반응 사이의 균형이 있습니다(12절).
'푯대', (헬, '스코포스')는 경주에서의 결승선이나 활쏘기의 과녁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삶은 목적이 있는 삶 입니다. 그는 끊임없이 천상의 목표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이란 다가올 시대에 있을 충만한 복과 보상이며 그 가운데 가장 특별한 상은 영원히 그리스도와 완벽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14절).
바울은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빌립보 교인들에게 함께 바울 자신과 다른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을 본받으라고 명할 만큼 자신의 기독교적인 삶에 대해 자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상징은 대부분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본받는 데서 비롯됩니다(17절).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그리스도의 섬김의 본을 따르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높아지심과 영광에도 함께 참여할 것입니다. 완성은 부활때 비로소 찾아올 것입니다.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이는 구약에서 끌어온 메시아적인 표현입니다(21절).
<영광의 면류관>
1~9절을 볼께요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그러므로', 이 전환 구절은 앞 단락에 대한 마무리나 4장의 도입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 빌립보 교인들의 영적인 성공은 바울의 최고의 성취일 것이고 그들의 인내와 최종적 구원은 바울에게 큰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갈등의 원인은 밝히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2장2절에서 진술한 원리를 적용하도록 권면합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말과 "한 마음을 품어"라는 말은 똑같은 헬라어 표현입니다(1~2절).
'기뻐하라', 바울이 요청하는 기쁨은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행복이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 바탕을 두고 있고 따라서 항상 심지어 어려운 때에도 경험할 수 있는 '주 안에서' 누리는 깊은 만족입니다(4절).
'관용'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관용은 단지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최선인 것을 추구하는 마음가짐입니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 말은 예수님이 심판자라서 분명히 다시 오실 것이며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5절).
바울은 신자들은 염려하지 말고 자비로우신 하늘 아버지의 손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예수님의 산상 설교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을 지킬 것입니다. 바울이 지킨다는 말을 사용한 것은 바로 자신의 투옥이나 군대 주둔지가 있는 빌립보의 로마식민지로서의 지위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경우에도 신자들을 지키는 것은 로마 군인들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하나님은 지존하시며 모든 것을 통제하시므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모든 어려움을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고 모든 면에서 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감사의 자세는 이러한 내적 평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합니다(6~7절).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립보 교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섬김을 북돋을 수 있는 것들로 생각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올바른 영적 세계관을 바울에게서 본 바를 행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진보를 이룰 때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단순히 하나님의 평강이 아니라 평강의 하나님 자신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8~9절).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것 할수있음>
10~20절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 지원에 대해 감사하면서도 자신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웠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기를 원합니다. 삶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비결은 단순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그에게 복주실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하나님과 타인의 섬기는 일에 강조점이 있는 이 편지의 문맥 안에서 해석해야 합니다(10~13절).
빌립보 교인들은 영적인 차원에서 만이 아니라 재정적 지원이라는 실제적 차원에서도 바울의 사역에 참여합니다. 그들은 바울이 역시 마게도냐에 있는 '데살로니가'로 간 지 얼마 안된 때 뿐만 아니라 '마게도냐'를 떠난 뒤에도 바울의 사역을 도왔습니다(14~16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그가 앞의 여러 장의 섬김 중심적인 관점에서 벗어났다고 상상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자신이 그들의 선물을 받는 것조차 궁극적으로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사업의 비유를 사용하면서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한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생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17절).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선물로 인해 풍부하며 그 선물이 복음의 섬김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졌으므로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차용한 이미지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선물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입니다. 문자적인 구원의 제사 제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되었지만 하나님께 바치는 귀한 헌신이라는 제사의 배경이 되는 원리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18절).
하나님께 대해 관대한 이들은 하나님이 그들에 대해 관대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이 '모든 쓸 것'을 채우실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19절)
"그리스도 찬가"가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처럼 바울도 이 편지의 본문을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는 송영으로 마무리합니다(20절).
<문안과 축도>
21~23절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22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는 권면은 바울의 편지의 개인적 성격을 강화하여 이 편지에 담긴 진리들이 실제 사람들이 실제 세상 속에서 삶으로 실천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가이사의 집사람들'은 왕족만이 아니라 군인, 노예, 또는 자유민을 포함하여 황제를 섬기는 일과 관련된 모든 사람을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집단 가운데 일부는 아마도 바울의 메시지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황제의 실제 가족이 신자였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로마 황제의 주변에 속한 어떤 이들이 복음을 믿었다는 사실은 로마 땅인 빌립보에서 특별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21~22절).
축도, 바울은 삶 속에서의 참된 진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상기시키며 편지를 끝맺습니다(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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