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눈물이 흔해진다더니 어른들 얘기가 맞는 것도 같다 연속극을 보며 울고있는
아내를 보고 가끔은 비아냥거리기도 했는데 감정의 벽도 얇아지는 모양이다
무료한 오후에 가요무대 재방송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남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잉꼬부부라고 했다 사실 내 성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타인에게는 배려도 할 줄 알고 재미있다는 얘기는 듣지만 아내한테는 항상~ 일정한
기준의 잣대로 아내를 묶어 놓고 있었다 젊을때 부터 닥달을해서 내가 차에서 기다리면
뛰는척이라도 했지만 환갑이 지나고 부터는 "내가 뭐라고 해도 절대로 뛰지 말라"고 얘기를
하지만 습관이 되어서 안 되는 모양이었다
누구나 흔하게 부르는 "번지없는 주막"이라는 노랜데 웬지 허허한 내 영혼을 송두리째
먹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긴~긴~머리 쓰다듬어 맹세는 길어도 못 믿겠소 못 믿겠소
울던 사람아~>하는 구절이였다
아내는 은행잎이 고사리 손 만큼 피어 날 때 먼저 떠났다 벌써 4년이나 지났는데 아내가
남긴 빈자리는 시간이 갈수록 넓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제는 살림도 다 배웠다
아기를 낳는 것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은 병중에도 나를 훈련 시킨
아내의 깊은 배려였음을 아는데는 자그만치 35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나는 항상 총각의 눈으로 아내의 늙어가는 모습만 보였고 내가 곁눈질을 할 때도 모른척
해 준 아내의 속 마음을 아는데도 35년이 걸렸다 개나리 꽃이 노랗게 뚝방을 물들일 때
아내는 병원엘 가보자고 했다 가끔씩 요로결석으로 몇 번인가 바쁜 걸음을 했기에 또 한번
급한 걸음을 해야겠구나 하며 "병원엔 왜~??" 했더니 "혈변이 나오네~!!"한다
예감이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체구는 작아도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던 아내였다
이 말이 신호탄으로 아들 하나 뿐인 우리 가정에 검은 구름이 밀려오고 있다는 것을 나~역시
모르고 있었다 의사가 보호자를 찾을 때도 아내를 밖으로 내보내기에 예감이 좋지를 않았다
"대장암 같은데 간에도 두 개가 보입니다" 순간 귀에서 앵~ 소리가 나더니만 아무소리도
듣기질 않아서 다시 되물었다
"뭐라구요~??" 대장암 3기같은데 간에도 이상이 있단다 슬퍼할 시간도 없었다
갑자기 하늘이 머리위로 내려앉는듯 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집에까지 왔는지도 모르고 전화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 유명하다는 아산병원은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한단다
급한대로 모든 지인들을 동원해서 이틀 후에 삼성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왜~ 하필이면 나한테 이런 일이 닦칠까??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전화국에 있던 처남도 45세라는 나이에 장암으로 갔는데... 병문안을 갔을 때 눈썹이 없었던
처남 얼굴이 떠올랐다
이튿날 부터 구르기 시작한 자동차 바퀴는 10개월이라는 세월을 뒷자리 이불위에 아내를 싣고
방향을 가리지 않고 쫒아 다녔다 서울~부산~충주~대전~함안~청도로...
돈에 대한 개념도 바뀌어 버렸다 아내만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이 만큼 사는
것도 모두 아내가 일구어 놓은건데 무엇이 아까우랴....
신혼때 전셋집에 살면서 시장에서 고추가루 봉지도 버리지 않고 알뜰하게 가정을 일구어 온
아내가 아니던가... 5시간의 수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시간이였다 혼자 빠져나와서 담배를
빼어 물고 멍한 시선 앞으로 수없는 자동차들이 오갔지만 무엇 때문에 저렇게 빨리 달리는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1차 항암제로 아내의 머리가 몽땅 빠져버렸다 무심코 화장실 문을 열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가발을 사주고 모자도 예쁜 걸로 너댓개를 준비했다 평소엔 쇼핑이나
온천엘 가면 항상 나는 볼메인 소리가 나왔지만 아내만 좋다면 뭣이든지 해주고 싶었다
그날 저녁 내 품에 안겨서 나와 아내는 한없이 울었다 "여보~ 걱정마라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살릴거니까 힘들겠지만 이겨 보자"고 아내를 달랬다 2차 항암제로 일주일을 아무것도
입에 대지를 못했다 의사한테 항의를 했다 먹는 약으로 달라고.....
의사는 이 환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환자란다 다만 몇일이라도 아내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었다
안동병원으로 원격치료를 요청해서 가까운 곳에서 치료를 하기로 했다 이제는 새벽 바람에
환자를 싣고 고속도로를 질주하지 않아도 되었다 중간 중간에 CT를 찍어 보았지만 좀처럼 호전의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벌써 병마와 싸운지 5개월....환자식 위주로 음식을 하고 내가 먹을 밥은
따로 지어 먹지만 죽지않기 위해서 입을 들썩거릴 뿐이다
의사와 상의 끝에 대체의학쪽으로 생각을 해보라고 한다 희망이 없다는 얘기였다 뒤돌아 나오는
내 귓등에 호스피스 아줌마의 얘기가 들렸다 "완쾌 되시거든 연락을 주세요"
수 개월 동안 환자를 돌보느라고 나도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되나" 이 두가지의 나 대로의 질문에 아무런 해답이 없다
수일후 청도 윤성요양원으로 아내를 싣고 갔다 아내의 먹거리도 문제였지만 나도 체중이 줄 정도로
쇠약해져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입원실을 잡아주고 청도 고개를 넘는데 장윤정의 첫사랑 노래에
나는 그만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떼어놓고 오는 아내가 잘가라고 손을 흔들던 모습이 어쩌면 마지막 모습같이 보여서였다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나에겐 아무런 감동도 주질 못했다 닷새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나는 아내가 좋아는 음식을 사가지고 갔지만 제대로 먹는 것 같지 않았다
하루는 마산에 처형이 전화를 했다 "유서방~ 힘들더라도 남이와 같이 있으면 안될까??"
환갑이 지난 나이에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외로움의 병이 더 크다는 것을....
다음날 일찍 아내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며칠 후 충주호 부근에 기공으로 암을 치료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와 같이 갔다
중국에서 온 기공사라는 의사가 진료실을 나오면서 "너무~ 늦은 것 같습니다"하며 환자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산 길을 구불구불 내려오면서 아내는 눈물이 그치질 않았고 나 역시 충주호의
검은 빛갈처럼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아내의 가슴이 불룩하게 솟아 올랐다
간에 복수가 차면 위험하다고 했는데 고생한 결과가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젠 어느 병원엘 가도 몰핀 외에는 처방이 없었다 아내는 고통을 참으며 약을 먹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는 이슬 맺힌 눈으로 아내 몰래 야채쥬스에 의식적으로 약을 섞고 있었다
아들에게 연락을 했다 공무원이니까 한 달만 년가를 내라고.... 충주를 다녀오고는 생명의 끈을
놓았는 것 같았다
하루하루가 변해가는 아내의 모습에서 35년의 묵은 때가 벗겨지고 있었다 아내는 기침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낮에는 아들이... 밤에는 내가 교대로 아내를 안고 앉아서 밤을 지냈다
하루는 아침을 먹다가 옛날 얘기가 나와서 서로의 감정에 복받쳐서 울음 바다가 되었다
아들도 그 동안 참았던 울음을 화장실에서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아내가 떠나기 전날 밤..나는 장농에 기대어 아내를 안고 자는데 아내의 머리가 자꾸 앞으로
떨어진다 나도 깜빡깜빡 잠이들었다가 깨면서 놀라곤 했다 넥타이를 장농 고리에 묶고 아내의
머리를 고정을 시켜 보았지만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새벽 5시... 아들을 깨워서 119를 부르라고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하고 아들한테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혀가 말려서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담당의사가 출근을 해서 1인실로 옮기고 길면 삼일이라고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가늘어져
가는 숨소리를 들으며 온 식구가 손수건을 적셨다
영구차를 타고 병원을 나오며 나는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해줬다
"여보~ 이젠 병원에 안와도 된다 잘가~ 미안해...미안해~"
나도 35년 동안 뭉쳐진 사랑의 표현이 이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여보~!! 기다려............................곧....갈께................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가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첫댓글 친구야 마음이 너무아파서 글을 다읽을수가 없구나...그래도 다읽고간다...노래역시 글과사연이 같아서 눈물이난다...
공연히 눈물만 나게 해서~ 미안하네.. 기분전환을 하시게나~~^^
우천아 눈물이 나서 읽기가 힘들고 설음이 북바처 가슴이 아리다못해 아프다 뎃글도 못달겟다
친구야 어제밤에는 정말 눈물이 나서 쓸수가 없엇어 친구가 얼마나 마음아팟는지
격어보지못한사람은 모를거다 우리들은 모두가 그런 아픔을 격은 사람들이니가 충분희
친구의 마음 알고도 남는다 두사람의 정이 그렇게 두터웟으니 더 말할것도 없겟지
어느 누구도 그마음을 채울사람은 엄다 또다시 마음이 아프구나 ~~~아마 착한 사람이니
하늘 나라에서도 잘살거다 그렇게 위로하면서 살자 ~~~
자네도 나와 똑같은 아픔을 가슴에 담고 살지....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를 시켜야되는데~~ 그것이 쉽지를 않구나...
친구도 아픈사연이있구나 친구야 할말이없다 ...
읽어줘서~ 고마워~~~^^ 건강하고~ 알지~??
친구사연을 다읽었어 나도 깊은사연을 방송국에보내서 방송이 된적있었어
그길은 같이도 못가고 간사람이 불쌍한지 산사람이 불쌍한지
어떻땐 분간이 안될때가많아 97년에 나도 남편이 남으불끄다
그것도 묘지에 얼마나 충격이였는지 내심장이 방이항칸나갔어
살아가는데는 여자가낳은것같기는해 근데 보낸사람을 있고사는게
현명한 거라생각해 보고싶다 그런일이 없었음 얼마나 좋을까는
나한테 아무덕이 안되드라고 가신님도 못있는걸 원치는안을거야
정말사랑한다면 현실에서 잘살기을 바랄거야
명절에 손자들 재롱을보면 생각나고 외식을가도 생각나고 근데
세월이 약이야 힘내고 눈물이나네 내슬퍼서리 !!!
정임이도 가슴에 아픔을 담고 사는구나... 우리나에엔 쏠로가 많겠지만 남자가 홀로되면
정말로 비참해지는데~ 나는 그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지... 고마워~~ ^^
어제보지못한 글을보고있는대 .친구의 글 사연을보고 마음이 저려온다 누구나 행복한 부부의 사랑을영원히.함께하순 없겠지만은 병마와 싸우다 이기지 못하고 .먼저 부인을 보내야했던 친구의마음 조금은 알수 있을것갔다 오늘 이 글을보면서 친구의 그런사연을 알게되엇군 .나는 그런일을 겪어보지는안지만 . 누구나 이은 있을꺼야 . 노래 한구절이 생각나내 (최히준)노래 인생은 나그내길 어데서 왔다가 어데로 가느냐 그래 우리 함께 남은 시간 겁계 살자고 ....
다~ 지나간 일인데 노래소리에그만 옛날 얘기를 했구만~~
부부는 함께 있을때 아름답다고 하지.. 잘~ 해드리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