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사고를 치고 다니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고뭉치지만 축구를 더럽히는 행동은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그가 구설에 자주 오르내리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를 멋진 축구인으로 기억하는 건 그가 적어도 그라운드에서만큼은 순수한 열정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마라도나도 축구 앞에서는 언제나 겸손한 존재였다.
대구FC 시절 변병주 감독의 모습. 그는 최악의 부정을 저지르며 지난 2009년 12월 구속 수감돼
K리그에서 퇴출됐다. (사진=연합뉴스)
변병주 대구FC 전 감독이 다시 축구계로 돌아왔다. 대구 팬은 물론 K리그 팬 전체를 분노케 했던 그는 잘못을 저지른지 불과 14개월 만에 또 다시 은근슬쩍 K리그로 복귀했다. 변병주 씨는 올 시즌부터 상주상무의 전력분석관으로 일하고 있다. 그가 축구를 더럽혔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다시 이 세계에 발을 내민다는 건 무척 괘씸한 일이다. 물론 상주나 변병주 씨나 함께 일한다는 사실이 그리 자랑스럽지 않다는 건 아는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변병주 씨는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현직 감독을 맡고 있다가 구속된 역사적 인물이다. 2007년 브라질 출신 에닝요(현 전북)와 계약하면서 에이전트로부터 10만 달러와 1,900만 원을 건네 받은 변병주 씨는 같은 해 4월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 입단 당시 3만 달러, 이듬해 3월 브라질 출신 선수 선발 때도 7만 달러를 받았다. 대구FC가 외국인 선수 몸값의 두 배 이상 지급한 돈은 결국 에이전트를 통해 변 씨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대구FC가 지급한 외국인 선수 몸값은 결국 5만여 명에 이르는 대주주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다. 어려운 팀 사정에 보탬을 주고자 지역 기업에서 후원한 돈도 여기에 포함돼 있다.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임하고자 한다. 오직 대구FC의 부흥과 승리를 위해 죽을 각오로 다음 시즌을 준비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구단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사실은 팬들을 분노케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결국 범죄 사실이 발각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억1천208만원을 선고받았다.
화가 나는 일이지만 법의 심판을 받게 됐고 K리그를 떠났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변병주 씨를 잊고 살았다. 나 역시 재발 방지를 주장하면서 철창 신세를 지고 있을 그는 잊고 살았다. 그런데 올 시즌 그가 다시 K리그 경기장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도 그와 경기장에서 몇 번 마주쳤는데 그때마다 “다시는 K리그 경기장에 오지 못할 사람이 참 뻔뻔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러 루트를 통해 그의 최근 근황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올 시즌 상주상무 전력분석관으로 임명됐습니다.”
기가 찰 노릇이다. 불과 몇 개월 전 K리그에서 최악의 부정을 저질러 쫓겨난 사람이 은근슬쩍 다시 이 바닥에 들어온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그는 축구판을 당연히 떠나야 하는 사람이고 참회하는 마음으로 다시 축구 발전을 위해 봉사하려거든 오랜 시간 동안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집행유예 기간 동안 다시 K리그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대구 시절 당시 당신을 믿었던 제자들과 팬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더군다나 상주상무는 군인 팀이다. 그 누구보다 정정당당하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팀이어야 한다.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운영하는 축구팀에 가장 청렴하지 못한 이가 속해있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이수철 상주상무 감독과 변병주 씨가 청구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사실은 더 씁쓸하다. 그가 상주에 꼭 필요한 전력분석관이라 할 지라도 이건 아니다.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해당 분야의 명예에 먹칠을 한 이라면 당연히 퇴출되어야 하지만 그는 당당히 돌아왔다.
축구의 명예에 먹칠한 그가 K리그의 군인팀에서 다시 일 한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사진=연합뉴스)
만약 그가 음주운전이나 다른 범죄를 저질렀더라면 이번 복귀가 찜찜하기는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물론 음주운전이나 다른 범죄 역시 당연히 저질러서는 안 되겠지만 그는 축구를 수단 삼아 자기 주머니를 채운 이다. 그가 다시 축구계로 은근슬쩍 돌아온다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변병주 씨가 감방에서 나와 어떤 사업을 하건 축구와 관련돼 있지 않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또 다시 고개를 당당히 들고 K리그 경기장을 활보하고 있다.
그는 집행유예로 풀려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축구계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일 역시 팬들이 분노하기에 충분했다. 대구시에 위치한 박주영 축구장 관리 감독을 그가 맡았기 때문이다. 변병주 씨가 범죄를 저질러 축구팬들의 가슴을 멍들게 했던 그 땅, 대구에서 또 다시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사실에 팬들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사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적어도 구속된 지 불과 10개월 만에 대구에서 그렇게 보란 듯이 복귀해서는 안 됐다. 복귀 시기도 일렀고 장소 선택은 더더욱 잘못됐다.
최근 한국 축구는 승부조작으로 충격에 빠졌다. 이 와중에 K리그에 몰래(?) 복귀한 변병주 씨 소식은 이슈도 아니다. 하지만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협회와 연맹은 승부조작 가담자가 적발되면 축구계를 아예 떠나도록 하는 영구 제명 등 강경한 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 와중에 영구 제명되어야 마땅한 전직 축구 감독은 당당히 K리그로 돌아왔다.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축구로 사기를 친 범죄자도 다시 축구계로 돌아오는 마당에 축구계에서 정의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