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도론의 자애 수행
[일러두기]
주석이나 보충하여 설명하는 부분, 하늘과 사람의 스승께서 전생에 수행한 덕들의 예들은 뺐습니다.
인용을 포함한 문장을 조금 바꾼 곳이 있습니다.
1.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이라는,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이 있다.
이 가운데서 이제 자애를 닦고자하는 수행자는
만일 그가 초심자라면 장애를 끊고 명상 주제를 배워 공양을 마친 뒤,
식곤증을 떨쳐버리고 한적한 곳에서 잘 마련된 자리에 편안히 앉아,
먼저 성냄의 위험과 인욕의 이익을 반조해야 한다.
2.
왜 그런가?
이 수행으로 성냄을 버려야 하고 인욕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허물을 버릴 수 없고 알지 못한 이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경을 통해 성냄의 허물을 보아야 한다.
“도반이여, 성내거나, 성냄에 휩싸이거나, 마음이 성냄에 시달릴 때 생명조차 앗아간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경 등을 통해서 인욕의 이익을 보아야 한다.
“관용이 그 특징인 인욕은 최상의 고행이고,
열반은 최상이라고 부처님들은 설하신다.”
“인욕의 힘과 인욕의 힘의 군대를 가진 자,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설한다.”
“인욕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
3.
이와 같이 성냄의 허물을 살펴보고 성냄으로부터 마음을 격리시켜, 많은 이익을 가진 인욕에다 묶어두기 위해서 자애의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수행을 시작할 때, 먼저 사람에 대한 허물을 알아야 한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일 먼저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되고,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된다.’
4.
왜냐하면 이 자애는
첫째, 싫어하는 사람,
둘째, 아주 좋아하는 친구,
셋째, 무관한 사람,
넷째, 원한 맺힌 사람,
이 네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는 제일 먼저 닦아서는 안 된다.
특히 이성에 제한하여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되고,
죽은 자에 대해서는 절대로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된다.
5.
무슨 이유로 싫어하는 사람 등에 대해서 제일 먼저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되는가?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자의 위치에 두는 것은 피곤하기 때문이다.
아주 좋아하는 친구를 무관한 사람의 위치에 두는 것도 피곤하다.
그 친구에게 사소한 괴로움이라도 일어나면 눈물을 흘리는 것과 같다.
무관한 자를 존경하는 분의 위치와 좋아하는 자의 위치에 두는 것도 피곤하다.
원한 맺힌 사람을 생각 할 때는 노여움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싫은 사람 등에 대해 제일 먼저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된다.
6.
이성에 대해서 자애를 닦을 때 애욕이 일어난다.
한 대신의 아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친근한 장로께 여쭈었다.
‘존자시여, 어떤 사람들에 대해 자애를 닦아야 합니까?’
장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의 부인을 사랑했다.
그가 자애를 닦을 때 밤새 벽과 싸웠다.
그러므로 이성에 제한하여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된다.
7.
죽은 사람에 대해서 닦을 때 본삼매를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근접삼매도 얻지 못한다.
한 젊은 비구가 그의 스승에 대해 자애를 닦았다.
그의 자애수행은 전진이 없었다.
그는 대장로를 뵈러 가서 여쭈었다.
‘존자시여, 저는 자애를 통한 선의 증득에 능숙합니다.
그런데 도무지 증득을 이룰 수가 없으니 어찌된 영문입니까?’
장로는,
‘여보게, 명상주제의 대상인 그 표상을 찾아보게.’라고 말씀하셨다.
찾아본즉 그의 스승이 사망한 것을 알고서 다른 자를 대상으로 자애를 닦으면서 증득에 들었다.
그러므로 죽은 자에 대해서는 절대로 자애를 닦아서는 안 된다.
8.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해 거듭거듭 닦아야 한다.
‘내가 행복하기를 …, 고통이 없기를 … ’
혹은, ‘내가 원한이 없기를 …, 악의가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기를 … ’
이와 같이 제일 먼저 자기를 자애로 가득 채워야 한다.
11.
그 다음에 자애를 쉽게 일으키기 위해,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존중하고 공경하는 스승이나, 스승에 필적할 만한 분이나, 은사나 은사에 필적할 만한 분에 대하여,
그 분에게서 발견되는 좋은 말씀 등과 존중과 공경을 생기게 하는 계행과 학식 등을 계속해서 생각하여,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자애를 닦아야 한다.
‘이런 참된 분께서 행복하시기를 …, 고통이 없으시기를 …’
그는 이런 사람에 대해서 반드시 본삼매에 든다.
12.
그러나 이 비구가 이만큼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런 한계를 부수고자 할 때는,
그 다음으로 아주 좋아하는 친구에 대해,
아주 좋아하는 친구 다음에는 무관한 자에 대해,
무관한 자 다음에는 원한 맺힌 자에 대해 자애를 닦아야 한다.
닦을 때 각각의 경우에 마음을 유연하고 적합하게 만들어 각각 그 다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13.
그러나 원한 맺힌 자가 없거나 대장부 기질을 타고나서 해를 입더라도 남들에 대해 원수라는 인식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는
‘무관한 자에 대해서는 자애심을 적절하게 닦았다.
이제 그것을 원한 맺힌 자에게 적용시키리라,’라고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무관한자 다음에 원한 맺힌 자에 대해 자애를 닦아야 한다.’라고 하는 것은, 원한을 맺은 적이 있는 자와 관련해서 설한 것이다.
14.
만약 그가 원수에 대해 마음을 가져갈 때, 그가 지은 해약이 기억나서 적개심이 일어난다면,
처음에 언급한 세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대해 거듭거듭 증득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거듭거듭 그 사람에 대해 자애를 닦음으로 적개심을 제거해야 한다.
15.
만약 이와 같이 노력해도 제거되지 않으면,
톱 등의 비유의 경책을 계속해서 생각하면서,
적개심을 버리기 위해 거듭거듭 노력해야 한다.
그는 이와 같이 자신을 경책해야 한다.
‘오, 성난 자여, 세존께서 설하지 않으셨던가?’
“비구들이여, 무지막지한 악당들이 양쪽에 자루가 달린 톱으로 사지를 토막토막 자르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음속에 화를 낸다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화를 낸 자에게 화로써 앙갚음을 하는 자는
처음 화를 낸 자 보다 더욱 비열하다.
화로써 앙갚음하지 않을 때
승리하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한다.
상대방이 화난 것을 알고서
마음챙기면서 고요하게 머무는 자는
자기와 남 둘 모두를 이롭게 한다.”
“비구들이여, 적을 즐겁게 하고 적에게 도움 되는 일곱 가지 법이 있어 여자거나 남자거나 간에 화난 자에게 찾아온다.
무엇이 일곱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그의 적에게 이와 같이 원한다.
‘이 자가 참으로 흉한 꼴이 되기를 …’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자기 적의 아름다운 모습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 화난 사람은 화에 압도되고 화에 정복되어, 비록 목욕을 하고 향수를 뿌리고 이발과 면도를 하고 하얀 옷을 입더라도, 그는 화에 압도되어 흉한 꼴이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적을 즐겁게 하고 적에게 도움 되는 첫 번째 법으로 여자거나 남자거나 간에 화난 자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다시 비구들이여, 적은 그의 적에게 이와 같이 원한다.
‘이 자가 괴롭게 잠들기를 …,
이 자에게 행운이 따르지 않기를 …,
이 자에게 부가 따르지 않기를 …,
이 자에게 명성이 따르지 않기를 …,
이 자에게 친구가 없기를 …,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이나 천상에 태어나지 않기를 …’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비구들이여, 적은 그의 적에 선처에 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 화난 사람은 화에 압도되고 화에 정복되어, 몸으로 삿된 행위를 하고 말로 삿된 행위를 하고 마음으로 삿된 행위를 한다.
그는 화에 압도되어, 몸으로, 말로, 마음으로 삿된 행위를 하여,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비참한 곳, 나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마치 화장터에서 사용된 나무토막 있어 양끄튼 불타고 중간은 악취가 난다면, 마을에서도 그것을 장작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수페서도 장작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사람은 그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대가 이와 같이 화를 내면 세존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리라,
화로써 앙갚음 할 때 처음 화낸 자 보다 더 비열하여 승리하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리라,
그대의 적이 지은 일들을 그대 스스로 그대 자신에게 지을 것이고, 화장터에서 사용된 나무토막과 같을 것이다.
16.
그가 이와 같이 노력하고 애를 쓸 때, 만약 적개심이 가라 앉는다면 좋은 일이다.
만약 가라앉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고요함과 청정한 상태와 그것을 계속해서 생각할 때, 믿음을 일으키는 그런 법을 기억하면서 적개심을 없애야 한다.
17.
어떤 자의 경우는 몸으로 짓는 행위만 고요하다.
그의 고요한 상태는 중대한 소임을 볼 때 모든 사람들이 안다.
그러나 말로 짓는 행위와 마음으로 짓는 행위는 고요하지 않다.
그러면 그런 것들은 기억하지 말고 오직 몸으로 짓는 행위의 고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18.
어떤 자의 경우는 말로 짓는 행위만 고요하다.
그의 고요한 상태는 모든 사람들이 안다.
즉, 그는 천성적으로 친절하게 환대함에 능숙하고, 친절하게 말하고, 좋은 말을 하고, 기뻐하는 말을 하고, 환한 얼굴을 하고, 먼저 공손하게 말을 하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법을 외우고, 의미와 표현을 원만히 갖추어 법문을 설한다.
그러나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마음으로 짓는 행위는 고요하지 않다.
그러면 그런 것을 기억하지 말고 오직 말로 짓는 행위의 고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19.
어떤 자의 경우는 마음으로 짓는 행위만 고요하다.
탑전에 예배하는 등에서 그의 고요한 상태는 모든 사람들에게 분명하다.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은 자는 탑전이나 보리수나 장로들에게 예경 할 때 공손하게 예배드리지 않는다.
법을 듣는 자리에서 마음이 산만하거나 졸면서 앉는다.
마음이 고요한 자는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예배한다.
귀를 기울여 신중하게 몸과 말을 통해 마음의 깨끗함을 나타내면서 법을 듣는다.
이와 같이 어떤 자의 경우는 마음으로 짓는 행위만 고요하다.
그러나 몸으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와 말로 짓는 행위는 고요하지 않다.
그러면 그런 것을 기억하지 말고 오직 마음으로 짓는 행위의 고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20.
그러나 어떤 자의 경우는 이런 세 가지 행위 중에서 단 한 가지도 고요하지 않다.
그러면 지금은 비록 이 자가 인간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며칠도 못 가서 여덟 가지 큰 지옥이나 열여섯 가지 작은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고, 그 사람에 대해 연민을 일으켜야 한다.
연민을 통해 적개심은 가라앉는다.
어떤 자의 경우 이 세 가지 행위가 모두 고요하다.
그러면 그가 가진 세 가지 가운데 어떤 것이라도 그가 원하는 기억하면 된다.
그런 사람에 대해 자애를 닦는 것은 어렵지 않다.
22.
만약 그가 이와 같이 애를 써도 적개심이 일어나면, 이와 같이 자기를 훈계해야 한다.
만약 원수가 자기의 영역으로 삼은
그대의 몸에 고통을 줄지라도
무엇 때문에 그대는 그의 영역이 아닌
그대의 마음에 고통을 주려하는가?
많은 도움을 주었고 눈물을 흘리던
가족들마저 버렸거늘
무엇 때문에 크나큰 해약을 초래하는
그대의 적인 화는 버리지 않는가?
멋대로 부리는 화는 참으로
그대가 보호하는 계행의 뿌리를 멸절시키나니
그대같이 어리석은 자
또 누가 있겠는가?
다른 자가 비열한 행위를 했다고
그대는 불같이 화를 낸다.
왜 그대는 그대 스스로 남이 했던
같은 일을 하려하는가?
만약 나를 화나게 만들고자
남이 불쾌한 행위를 했다면
무엇 때문에 그대는 화를 내어
남의 소원을 만족시켜주려는가?
그대가 화를 내어 그에게 고통을 줄 수도
혹은 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화가 초래한 고통으로
당장에 그대 자신을 태우리,
만약 원수들이 분노로 인해
눈멀어 악처의 길을 간다면
무슨 이유로 그대도 분노하여
그들을 따라 가려는가?
적이 분노로 인해 그대에게
해로움을 끼쳤다면
그 분노만을 끊어버려라
무엇 때문에 적절치 않게
그대에게 불쾌한 행위를 했던 사람을 괴롭히는가?
오온의 법들은 순간적인 것이다.
이미 없어져버렸거늘
지금 그대는 누구에게 화를 내는가?
그에게 고통을 주려해도 그가 없다면
누구에게 고통을 주겠는가?
그대의 존재가 바로 고통의 원인이거늘
무엇 때문에 그에게 화를 내는가?
23.
만약 이와 같이 자기를 훈계해도 적개심이 가라앉지 않으면, 그는 자신이나 남에게 업이 각자 자기의 주인임을 반조해야 한다.
우선 이와 같이 자기 것을 반조해야 한다.
‘여보게, 그에게 화를 내어 무엇을 할 것인가?
화냄으로 인한 그대의 업이 장차 그대를 해로움으로 인도하지 않겠는가?
그대의 업이 바로 그대의 주인이고, 그대는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대의 권속이고, 업이 그대의 의지처이다.
그대는 그대가 행한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이 행위는 정등각을 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벽지불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고 아니고,
성문의 지위에 이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범천과 제석과 전륜왕과 지방의 왕 등 가운데 어느 지위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이 행위는 교단으로부터 물러나게 하여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지경에 처하게 하고, 지옥 등 갖가지 고통을 겪게 한다.
이 화내는 업을 행할 때, 양속에 시뻘건 숯과 똥을 쥐고서 다른 자에게 던지려는 사람처럼, 첫 번째로 자신을 태우고 악취나게 한다.’
24. 이와 같이 자기의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반조하고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반조해야 한다.
‘그가 나에게 화를 내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것이 그 자신을 해로움으로 인도하지 않겠는가?
이 존자는 자기 업의 주인이고, 업의 상속자이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이 존재의 권속이고, 업이 이 존자의 의지처이다.
이 존자는 그가 행한 업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
이 행위는 정등각을 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벽지불의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도 아니고,
성문의 지위에 이르게 하는 것도 아니고,
범천과제석과 전륜왕과 지방의 왕 등 가운데 어느 지위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이 행위는 교단으로부터 물러나게 하여 먹다 남은 음식을 먹는 지경에 처하게 하고, 지옥 등 각가지 고통을 겪게 한다.
이 화내는 업을 행할 때, 바람을 안고 서서 다른 자에게 먼지를 뒤집어 쐬우려는 사람처럼, 바로 자신이 뒤집어쓸 뿐이다.’
세존께서 이처럼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분노하지 않고 청정하고 허물없는
그런 사람에게 화를 내면
그 악은 바로 그 어리석은 자에게 돌아가나니
마치 바람을 향해 던지 가는 먼지처럼.
25.
만약 그가 이와 같이 업이 자기의 주인임을 반조해도 가라앉지 않는다면, 그는 하늘과 사람의 스승께서 전생에 수행한 덕들을 반조해야 한다.
26.
이것이 반조하는 방법이다.
‘여보게, 출가하여, 그대의 스승께서는 깨닫기 전, 아직 정등각을 성취하지 않은 보살이셨을 때, 4아승지와 10만 겁 동안 바라밀을 완성하시면서 곳곳에서 적들이 살해하려할 때에도 결코 화를 내지 않으셨다.’
36.
만약 그가 이와 같이 하늘과 사람의 스승께서 전생에 수행하신 공덕을 반조하는데도, 오랫동안 오염원의 노예가 되었던 탓에 그 적개심이 가라앉지 않으면, 그는 그 시작이 알려지지 않은 윤회를 반조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설하셨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이전에 그대들의 어머니가 되지 않았던 중생을 얻기 어렵고,
이전에 아버지가 되지 않았던 중생을이, 형재가, 자매가, 아들이, 이전에 딸이 되지 않았던 중생을 얻기 어렵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대해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은 전생에 나의 어머니가 되어서 나는 열달 동안 그녀의 모태에서 지냈으며,
태어난 뒤, 오줌, 똥, 침, 코 등을 마치 전단향 처럼 역겨워 않고 치워주고, 가슴에 안고 놀아주었으며, 등에 업어서 키워주었을 것이다.
그는 전생에 아버지가 되어, 양들이 다니는 길과 갈고리를 사용해야만 하는 험난한 길 등을 다니면서 상업을 하였고,
나를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양쪽에서 진을친 전쟁터에 나갔고, 배를 타고 대양으로 항해했고, 또 다른 어려운 일들을 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야지하는 생각으로 갖가지 수단으로 돈을 벌면서 나를 키웠을 것이다.
형제, 자매, 아들, 딸이 되어서이 사람은 이런 저런 도움을 주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대해 마음으로 화를 내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37.
만약 이와 같이 해도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다면, 이와 같이 자애의 이익을 반조해야 한다.
‘오, 출가자여, 세존께서 이와 같이 설하지 않으셨던가?’
“비구들이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열심히 시작할 때, 열한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무엇이 그 열한 가지인가?
편안하게 잠들고, 편안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간 아닌 자들이 좋아하고, 신들이 보호하고,
불이나 독이나 무기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마음이 쉽게 삼매에 들고, 안색이 맑고,
매하지 않은 채 죽고, 더 높은 경지을 통찰하지 못하더라도, 범천의 세상에 태어난다.”
만약 그대가 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면, 이러한 이익을 잃게 될 것이다.
38.
이와 같이 해도 가라앉힐 수 없다면, 요소들을 분석해야 한다. 어떻게?
“오, 출가자여, 그대가 그에게 화를 낼 때 무엇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머리털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아니면 몸털, 손, 발톱, 오줌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혹은 머리털 등에 있는 땅의 요소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아니면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다섯 가지 무더기, 열두 가지 감각장소, 열여덟 가지 경계 등을 의지하여 이 존자는, ‘어떤 분’이라고 불린다.
그 가운데서 빛깔의 무더기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아니면 느낌의 무더기, 생각의 무더기, 의도의 무더기, 인식의 무더기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혹은 눈의 감각장소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빛깔의 감각장소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마음의 감각장소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법의 감각장소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혹은 눈의 요소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빛깔의 경계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눈의 인식의 경계에 대하여 화를 내는가?’
이와 같이 요소들을 분석할 때, 마치 바늘 끝의 겨자씨처럼, 허공에 그림처럼 화는 발판을 얻지 못한다.
39.
요소들을 분석할 수 없을 때 보시를 통해서 성냄을 제거해야 한다.
자기의 소유물을 남에게 보시해야 하고 남의 소유물을 자신이 받아야 한다.
만약 남의 생계가 청정하지 못하여 그의 자구를 사용할 수 없다면, 자기의 소유물을 보시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할 때, 반드시 그 사람에 대한 적개심이 가라앉는다.
그 사람의 경우도 그가 전생부터 품어오던 화가 그 순간에 가라앉는다.
마치 찟딸라 산의 사원에서 발우을 보시받은 대장로의 경우처럼,
탁발 음식만 수용하던 장로는 세 번이나 대장로에 의해 거처로부터 쫒겨났지만,
‘존자시여, 이 발우는 8개 금화의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재가자인 저의 어머니께서 보시한 것입니다. 법에 걸맞게 얻은 것입니다.
선량한 청신녀에게 공덕이 되게 하소서.’라고 말하면서,
발우를 보시로 올렸던 것이다.
이와 같이 보시는 참으로 큰 위력을 가진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설하셨다.
“보시는 조어되지 않은 사람을 조어하고
보시는 모든 이로움을 성취시킨다.
보시와 상냥한 말씨를 통해 시주자는
편안해지고 시물을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인다.”
40. 이와 같이 하여 원수에 대해 적개심이 가라앉으면,
좋아하는 사람, 아주 좋아하는 친구, 무관한 자 등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그 원수에게도 자애의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거듭거듭 자애를 닦으면서, 자기 자신과, 좋아하는 사람과, 무관한 사람과, 원한 맺힌 사람이라는, 이 네 사람에 대해 평등한 마음을 성취하면서 한계를 부수어야 한다.
50.
이와 같이하여,
“모든 중생들이 원한이 없기를 …, 악의가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살기를 …,
모든 생명들이 …, 모든 존재들이 …, 모든 인간들이 …, 몸을 가진 모든 자들이 …, 원한이 없기를 …, 악의가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기를 … ”
51.
“모든 여자들이 원한이 없기를 …, 고통이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살기를 …
모든 남자들이 …, 모든 성자들이 …, 모든 범부들이 …, 모든 신들이 …, 모든 인간들이 …, 악도에 떨어진 모든 자들이 …, 원한이 없기를 …, 고통이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살기를 …
이런 일곱 가지로 한정적으로 가득 채운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는다고 알아야 한다.
52.
“동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원한이 없기를 …, 고통이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살기를 …
서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북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남쪽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동북방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서남방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동북방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서남방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아래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 원한이 없기를 …, 고통이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살기를 …
동쪽에 있는 모든 생명들이 …, 모든 존재들이 …, 모든 인간들이 …, 몸을 가진 모든 자들이 …, 원한이 없기를 …, 고통이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살기를 …
동쪽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모든 남자들이 …, 모든 성자들이 …, 모든 범부들이 …, 모든 신들이 …, 모든 인간들이 …, 악도에 떨어진 모든 자들이 …, 원한이 없기를 …, 고통이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살기를
서쪽 …, 북쪽 …, 남쪽 …, 동남방 …, 서북방 …, 동북방 …, 서남방 …, 아래 …, 위에 있는 모든 여자들이 …, 원한이 없기를 …, 고통이 없기를 …, 근심이 없기를 …, 행복하게 살기를 …,
이런 열 가지로 모든 방향에 가득 채운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는다고 알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