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주부전(자라 이야기)

별주부전(토끼전)북쪽 바다에 사는 용왕이 옥항상제의 심부름으로 황주 땅에 비를 내리러 갔습니다삼년 동안 가물었던 땅에 많은 비가 내리니 타고 있던 장작에 물을 쏟아부은 듯뜨거운 김이 생겨나서 용왕이 있는 곳까지 자욱하게 피어올랐습니다깊은 바다 차가운 물 속에 살던 용왕은 갑자기 뜨거운 김을 들이마시자 숨이 콱 막히면서 심한 기침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번 시작한 기침은 쉽게 가라않지 않았습니다.그렇게 시작한 용왕의 병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습니다.충성스런 신하들이 바다속에서 구할수 있는 약들은 다 구해서 정성을 다해 달러 먹었지만 아무련 효과가 없었습니다. 북쪽 바다 속은 옴통 근심만 쌓여갔습니다그러던 어 느날 수염이 배위 까지 늘어진 도사 한분이 찾아왔습니다.이 도사는 팔백살 이나 먹도록 깊은 산속에서 도를 닦아 세상의 모든 이치를 환히 꿰꿇어 알고 있었습니다.마침 북쪽 지방을 지나가다 용왕이 큰 병이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겁니다용왕께서는 황주 땅에 비를 내리려 가셨다가 얻은 병이라 하시니 그 원인이 대층 짐작이 되옵니다.그러나 그 약이 있긴 있는데 구하기가 어렵습니다용왕은 대체 어떤 약이기에 구하기가 어렵다 하시야 면서 도사의 대답을 제촉 하였습니다 그 짐승은 토끼라는 놈인데 본래 달 속에서 떡방아를 찧고 살던 놈이옵니다 어쩌다 호기심이 나서 땅 위 세상에 내려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산속에서 살게 된 것이지요약효의 뛰어난 까닭으로는 토끼의 몸에는 달의 맑은 기운이 서려 있고 또 산에서 나는 귀한 약초를 날마다 먹으니 토끼 간이 용왕의 병을 낳게 할 것 이옵니다.이말을 남기고 도사는 순신간에 사려졌습니다용왕은 모든 신하들을 불러 들었습니다토끼를 잡으려 가는 회의를 하기 위함이지요(영의정 거북이) (좌의정 잉어)(우의정 은어)(이조판서 농어)(호조판서 방어)이렇게 수도 셀수 없이 물고기 이름나오는데 40마리는 나오는거 같습니다 이렇게 물고기 신하들이 회의을 거처 별 주부인 자라가가 토끼잡으려 뭍으로 나가게 됩니다별 주부는 잉어가 토끼의 화상을 그려준 것을 움츠린 목 속에 숨기고 떠나려는데용왕이 친히 유리잔에 술을 부어 주며 말하였습니다.이제 나의 목숨이 그대 손에 달렸으니 그대가 토끼를 잡아 돌아오면 나라의 절반을 주어 부기 영화를 함께 누릴것을 약속하노라 라고 말했습니다 뭍으로 나온 별주부는 덩치 큰 소생원의 신세 한탄도 들어주고 괴로워하는 소생원을 위로까지 해 주었습니다그러고 하루밤 들어가 쉴 바위틈을 찾아 두리번거리다가 친척 간인 남생이도 만납니다별주부는 남생이를 따라가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하룻밤을 잘 쉽니다그리고 내일 산속에 짐승들의 잔치가 벌어지는데 토끼가 잔치에 참석한다는 정보까지 얻었습니다 토끼는 잔치에 참석해서 즐겁게 보냈습니다잔치중에 어른대접 한다고 여럿이 권하는 술을 받아 마시고 목이 말라 시냇가를 찾아가는 중이였습니다.별주부는 시냇가에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습니다.우리가 한 하늘 아래 태어나고도 땅 위와 물 속이 서로 달아 오래도록 모르고 지내다가 오늘 비로서 만나게 되니 반갑기 그지없소 라며 별주부는 토끼에게 점잖게 인사를 청합니다이렇게 해서 토 생원과 별 주부는 통성명을 하게 됩니다그리고 서로 나이가 많다고 형님이라고 부를기를 청하기지만 입씨름만 할뿐 결말이 나오지가 않자 우리 둘 다 옛날에 태어나기는 마찬가지라 형이 되기도 어렵고 아우되기도 어려우니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기로 했습니다.별 주부는 친구가 된 토 생원에게 용궁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기 시작 합니다내가 그대의 고생하는 모습을 낱낱이 이를 테니 한번 들어 보게 편하게 놀고 먹는 팔자라지만 그것도 봄, 여름 더운 때뿐이지, 가을 지나 겨울 오면 차디찬 눈 속에서 굶어 죽기 아니면 얼어 죽기 딱 좋도다. 다행히 죽지 않고 겨울을 지나 붐 볕이나 쪼이려고 양지쪽으로 나가니 먹이 찾는 독수리가 쏜살같이 달려들고 걸음아 날 살려라,골짜기로 도망가니 호랑이와 늑대가 서로 먼저 잡아먹겠다고 다투어 달려들고큰 짐승 피해서 얕은산 찾아가면 사냥꾼들이 쫏아 오고, 들판으로 도망치면 밭 갈던 농부들이 토끼탕 해 먹자고 돌팔매질하며 달려들고 여름 장마 시작되면 번갯불 번쩍이고 벼락 치는소리 우르릉 쾅쾅, 걸핏하면 사태 나서 굴도 무너지고 땅 위에 사는 일이 이토록 어렵고 고달프거늘 어찌 일신이 평안하다 하겠느냐이렇게 산속에서 고생만 하고 사느니 차라리 나와 같이 용궁으로 가서세상에 없는 좋은 경치도 구경하려니와 땅 위에서는 구경도 못하는 온갖 맛난 음식을 먹기 싫을 때까지 먹고 날마다 춤추고 노래하며 즐겁게 지낼 것일세별 주부가 길게 늘어놓는 말에 토 생원은 점점 더 귀가 솔깃해집니다.마침내 용궁에 가서 영화를 누릴 욕심으로 가득 차고 말았습니다 별 주부의 꾐에 빠진 토 생원은 멀미와 구토를 참아가면서 희망에 부풀어 용궁에 도착했습니다별 주부는 토 생원을 문밖에서 기다리게 해 놓고 급히 용왕에게 달려가 토끼를 산채로 잡아 왔다고 아뢰었습니다한편 토 생원은 오래 기다리게 한 별 주부가 의심이 들어 문 뒤에 숨었습니다.별 주부는 용왕이 벼슬을 준다고 어서 나오라고 또한번 거짓말을 합니다.숨어 있던 토 생원은 용왕이 높은 벼슬을 주려고 기다린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문기둥 뒤에서 슬며시 앞으로 나왔습니다.그러자 졸개 고기들이 이때 다 하고 와락 달려들어 붉은 오랏줄로 네 발을 꽁꽁 묶었습니다 토 생원이 미처 버둥거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졸개 고기들은 토 생원을 번쩍 들어 어깨에 메고 바람처럼 달려가서 용왕 앞에 내려놓은 다음에야 묶은 것을 풀어주었습니다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토 생원은 얼이 다 빠졌다가,“토끼 잡아 들였소” 하는 큰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용왕이 점잖게 말하였습니다내가 옥황상제 명을 받아 황주 땅에 비를 내려 주려 갔다가 독한 바람을 쏘이고 병이들어 온갖 약을 써 보아도 낫지 않았도다 우연히 토끼 간이 내 병에 특효약이란 말을 듣고 별 주부를 보내어 너를 데려온 것이니라 네가 나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면 네가 죽은 후에도 은공은 잊고 않고 내가 명당자리에 장사 지내주고 너의 후손을 찾아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했습니다.토 생원은 그제서야 별 주부의 달콤한 꼬임에 넘어가서 죽을 곳을 찾아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토 생원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용왕이 한 말을 생각하는 척하다가 한 번 더 공손히 절을 한 뒤에 꿇어 않아 아뢰었습니다.“제 작은 몸으로 대왕님의 병환이 낫게 된다면 그런 다행이 어디 있으리까만은대왕님의 분부를 지금 따르지 못할 사정이 있어 안타까울 뿐이옵니다” “네가 한번 죽을 작정을 하면 그만이지, 사정은 무슨 사정인고? 혹시나 도망갈 틈이 없을까 잔꾀를 부리려는 수작이 아니냐?”용왕이 눈을 부릅뜨고 호통을 쳤으나 토 생원은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은 후라 조금도 겁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꾸했습니다.“제가 이 마당에 도망을 가려 한들 어디로 가겠나이까? 제 목숨은 이미 대왕님 손에 들어 있는 것이나 한가지이오니 염려 놓으시고 제 말을 들어 보시지요”용왕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토 생원은 차분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오래 전부터 땅 위 세상에 저의 간이 만병통치약이란 소문이 나서 사람이나짐승이나 저를 보기만 하면 간을 나누어 달라고 졸라 대니 귀찮기 짝이 없었나이다 그래서 사람이나 짐승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는 으레 간을 빼놓고 가옵니다별 주부를 만나던 날도 마침 산중짐승들의 잔칫날이라 간을 빼놓고 갔었는데 ,별 주부가 용궁 자랑을 하면서 함께 가자 하여 잠깐 구경이나 하려고 들어오고 말았나이다 처음부터 대왕님의 병환에 제 간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면 빼놓은 간을 찾아 가지고 올 것을 별 주부가 그런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는 바람에 그만 ...하고는 갑자기 공손하던 태도를 바꾸어 화난 얼굴로 별 주부를 돌아보면 꾸짖었습니다듣고 있던 별 주부는 할 말이 없어 눈만 껌벅이고 있는데 그때 용왕이 큰 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요만한 토끼놈아 감히 누굴 속이려 드느냐 우리 몸 속에는 태여날 때부터 오장이 없게 되면 목숨이 끊어 지느리라 하고 넓은 전각 안에 찌렁 찌렁 하게 소리쳤습니다그러자 졸개들이 달려 들어 토 생원을 바닥에 자빠뜨려 놓고 꼼찍 못하게 사지를 잡아 눌렀습니다토 생원은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덩어리의 토끼 고기가 될 판이었습니다보통 토끼 같으면 살려 달라고 애걸 복걸 하거나 무서워 기절이라도 할 판이었습니다 그러나 토 생원은 바닥에 번듯이 드러 누은채 얼굴 빛 하나 변하지않고 큰소리로 한바탕 껄껄 웃었습니다배를 가르려고 덤벼들던 졸개 고기들이 오히려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습니다토 생원이 때를 놓치지 않고 용왕에게 말했습니다“대왕님께서 저의 배를 갈라 간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일 없다면 제 목숨만 억울하게 없어질뿐 대왕님의 병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옵니다토 생원은 죽음의 눈앞에서도 두득한 베짱과 제치있는 말솜씨로 목숨을 지키는부분에서는 놀랍기도 하고 용왕이 끝까지 속아주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어보기도 했습니다아무튼 토 생원는 죽음의 문앞에 까지갔다 오만가지 잔꾀를 부려 살아나서 천만다행이라 생각 했습니다 토 생원이 그럴듯하게 주워섬기는 말에 용왕은 완저히 속아 넘어가고 말았습니다용왕은 또 바다 속의 진기한 보물들을 가져오라고 하여 토 생원에 주었지만 토생원은 보물도 하나 고맙지 않고 오로지 빨리 물 밖으로 나고고 싶을 뿐이었습니다”이런 물건들은 나중에 대왕님께 간을 가져다 드리고 난 후에 받는 것이 제 마음에 떳떳하겠나이다.어서 별 주부에게 명하시어 저를 밖으로 내보내 주소서.“토 생원의 말에 용왕은 더욱 믿음직스러워하며 말하였습니다.”물질에 욕심이 조금도 없으니 진실로 믿음직한 군자로다.저토록 덕이 있는 인재가 어찌 땅 위 세상에서 높은 벼슬을 하지 못하였을꼬?혹시나 뽀족 나온 입과 발그레한 콧 구멍이 노상 오물오물하는 것이점잖지 못하게 보여서 그런 것이나 아닌지 몹시도 궁금하도다“용왕이 그렇게 말하고 슬며시 웃음을 지으니 주변에 있는 신하들까지도 눈짓을 하며 피식피식 웃었습니다.토 생원은 기분이 나빴지만 속으로 어디 두고 보자고 벼르면서 천연덕스럽게 대꾸합니다 ”예로부토 덕이 있는 분들은 겉모습만으로 남을 평가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대왕님께서 그처럼 궁금해하시니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겠나이다.제가 오랫동안 달 속에서 신선들과 어울려 지내다 보니 굳이 먼지 나는 땅 위 세상까지 내려와서 벼슬을 하고 싶지 않았사옵니다.저의 입이 이처럼 뽀족 하게 된 것은, 어느 때인가 달에서 함께 놀던 신선 하나가 입가에 큰 부스럼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거의 죽게 되었는데, 옥황상제께서 입가에 난 부스럼은 달에 사는 토끼와 입을 맞추면 즉시 낫는다고 하시면서 저더러 입을 한 번 맞추어 주라 분부를 내리셨나이다. 제가 할 수 없이 그 신선과 입을 한 번 맞추었더니 그 심하던 부스럼이 씻은 듯이 나았나이다.그 후 소문이 온 하늘나라에 파다하게 퍼져서 날마다 입 맞추기를 청하는 신선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사옵니다 제가 그 많은 신선들과 일일이 입을 맞추기가 너무도 힘이 들고 싫증이 나서 땅 위 세상으로 내려와 산속에 숨어 살게 된 것이옵니다 그런데 땅 위 세상에서조차 그 소문을 듣고 입가에 부스럼만 났다 하면 모두들 찾아와서 다투어 입을 맞춘 탓으로 입이 뽀족하게 되었나이다 .제가 귀찮아서 고개를 돌리려 하면 귀를 꼭 붙잡고 입을 맞추니 귀까지 이처럼 길어진 것이옵니다.“ 토 생원의 이야기를 들은 용왕과 신하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그런데 누구보다 먼저 토 생원에게 부탁을 해 온 것은 용왕이었습니다.용왕이 매우 겸연쩍은 웃음을 띠고 토 생원에게 귓속 말을 하였습니다.왕비가 마침 입가에 부스럼이 크게 나서 여러 달째 밥을 제대로 못먹고 고생을 하고 있도다. 토 선생의 입맞춤이 입가에 난 부스럼에 그처럼 신통한 효험이 있다 하니 왕비를 위해 한번 만 수고해 주기를 바라 노라.“실은 토 생원이 용왕의 신하들 가운데 입가에 부스럼이 난 자들이 많은 것을 보고 한 번 골려 주려고 그런 이야기를 지어낸 것인데, 이제는 한술 더 떠서 용왕 마누라하고도 입을 낮추게 되었습니다.토 생원이 왕비와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산하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입가에 부스럼이 난 신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심지어는 아무렇지도 않은 신하들까지도 미리 부스럼을 예방한답시고 앞다투어 토 생원과 입을 맞추었습니다용왕이 또 토 생원에게 간청하였습니다.나의 아들이 소화 불량으로 높은 열까지 내며 않은지가 벌써 여러날 째인데, 그럴 때는 어떤 약이 좋은지 가르쳐 주기 바라 노라토 생원은 재미가 나서 한 번 놀려 먹으려고 ”소화 불량에는 토끼 똥이 가장 좋은 약입니다.토끼 똥은 뱃속에서부터 미리 환약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나이다토끼 오줌 또한 열을 내리는 데는 신통한 효험이 있사옵니다.하니 용왕이 그것 또한 한 바가기씩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용왕의 신하들이 이 소문을 듣더니 앞다투어 토 생원을 자기들 집으로 초대하였다 한 상 잘 차려서 대접한 다음에는 토 생원의 대소변을 한 그릇씩 받아 챙기었습니다그러느라 날짜가 자꾸 늦어지자 용왕이 마침내 빨리 토 생원을 물 밖으로 내보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토 생원도 한시 바삐 물 속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별 주부를 재촉했습니다별 주부도 토 생원의 말을 듣고 젓 먹던 힘까지 다 내어 바삐 네 발을 놀려 순신간에 땅 위에 당도했습니다아무것도 모르는 별 주부는 나는 여기서 기다릴테니 어서가서 간을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토 생원이 그제서야 깔깔 웃으면 대꾸합니다네가 받들어 모시는 용왕이야 말로 세상 일에 어둡고 미련하고 염치없고 못나 빠진데다가 심보마저 고약하도다하늘이 세상 만물을 평등하게 내셨으니 크고 힘센 짐승이나 작고 약한 짐승이나 하나뿐인 목숨은 똑같이 소중한 것이리라. 그런데 어찌하여 병들어 죽어 가는 용왕을 살리기 위해 죄 없는 토끼가 대신 죽어야 한단 말이더냐?그대는 간만 가져오면 될 터인데 죽기는 왜 죽는단 말인가별 주부가 눈을 멀뚱거리며 되묻는 말에 토 생원이 배꼽을 쥐고 웃었습니다.세상에 간을 꺼내도 죽지 않는 짐승이 어디 있더냐? 토끼는 그만두고도 벼룩 같은 미물도 간을 꺼내면 죽느니라 그제야 별 주부가 속은 것을 깨닫고 소리칩니다“괘씸한 토끼 놈아 네가 감히 전하와 나를 속이고도 살기를 바라느냐애초에 거짓말로 나를 꼬드겨 목숨을 빼앗르려 한 것은 그대가 아니던가 나는 오직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대들을 잠시 속였을 뿐이로다 이제라도 다시 나를 잡을 수 있다면 어디 한번 잡아 봐라 토 생원은 깡충깡충 뛰어 달아나며 줄방귀를 쉴새 없이 뿡뿡 뀌다가 오줌도 졸졸 싸며 별 주부를 놀려 대었습니다그릇 가져다가 다 받아 가거라 .용궁에 갖고 돌아가면 병든 너희 족속들이 다투어 먹으리라별 주부가 분해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짧은 네 다리를 아무리 바삐 놀려도 토 생원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별 주부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용왕은 화가 나서 펄펄 뛰었습니다.당장 신하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는 불호령을 내렸습니다“토끼를 놓아주고 온 별 주부를 큰 칼 씌위 바다 밑 감옥에 가두어라그리고 바다 속 고기들을 총동원해서라도 짐을 속이고 도망간 그 괘씸한 토끼 놈을 다시 잡아 오렸다 드넓은 바다 속의 왕인 짐이 그따위 보잘것없는 산짐숭 한테 속아 물 밖 세상에까지창피스러운 소문이 나게 되었으니 분해서 견딜 수가 업도다전하의 노여움이 크시니 소신들은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과연 토끼란 짐승이 요망하고 괘심하기 짝이 없는지라 다시 붙잡아 오라시는 전하의 분부가 지당하나이다소신들이 곧 군사를 동원할 거이오나 그에 소신이 전하께 특별이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토끼의 간사한 거짓말에 속은 것은 별 주부 뿐만이 아니라 소신들도 마찬가지옵니다.벌을 내리시려면 소신들까지 전부 옥에 가둬야 마땅하지 않겠나이까? 더구나 별 주부는 죽음을 무릅쓰고 물 밖에 나가 토끼를 데려온 공이 있사옵니다그 공로를 보아서도 감옥에 가두라는 분부는 거두어 주소서용왕이 듣고 보니 자기 자신부터 토 생원에게 속아서 선생이라 부르며 극진한 대접을 한 터라 속이 뜨끔하였습니다곧 이어 신하들이 토끼를 잡기 위해 군사들을 모으고 전략을 짰습니다우선 신하들 중에서 힘세고 용감한 자 여덟을 뽑아 장군으로 삼고 군사들을 여덟 부대로 나누어 토끼를 잡으러 나서기로 하였습니다용왕이 이렇게 물 숙 어족들을 총출동시키고 토끼 잡기를 고대하던 중에 하루는 대장군 하백이 장계를 보내왔습니다.용왕이 무슨 좋은 소식이나 있을까 하여 바삐 뜯어 보았습니다. 대장군 하백은 감히 아뢰나이다. 그 동안 군대를 여덟 곳에 나누어 지키게 하면서 밤낮없이 토끼의 종적을 찾아보았으나 끝없이 넓은 바다에 물결만이 세자고 어지럽게 일어날뿐 토끼는 그림자도 찾아낼 수가 없었사옵니다 토끼가 이미 물 밖으로 달아난 지 오래인데 물 속에 진을 치고 산간의 토끼를 잡으려 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얻으려는 것이나 한가지일 듯하옵니다 아무리 군사가 많고 양식이 넉넉하다 하나 아무런 계책 없이 진을 치고 머물러 양식만 낭비함은 곧 국고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게 되어 애석하기 짝이 없사오며 그래도 혹 요행을 바랄 곳은 별 주부 장군이 지키고 있는 산골짜기위 시냇가뿐인가 하나이다소신들이 산골짜기 시냇가마다 진을 치고 수십 일을 가다렸으나 도망간 토끼 놈이 산 중에 소문이라도 내었는지 눈먼 토끼 하나 얼씬하지 않사옵니다 군량조차 얼마 남지않아서 참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나이다.대장군 하백과 별 주부의 장계를 읽고 난 용왕은 더욱 실망하였습니다신하들도 할 말이 없이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였습니다. 마침내 영의정 거북이 다른 신하들의 의견을 물은 다음 용왕에게 아뢰었습니다군량이 떨어져 가는 곳은 별 주부 장군의 군대만이 아닐 것이옵니다이처럼 언제 잡힐지 알 수 없는 토끼 한 마리 때문에 각처에 병사들을 오래 머물게 하오면 결국 국가의 재물만 낭비하게 될 뿐 이오니 속히 회군령을 내리심이 옳을까 하나이다수 많은 군사가 출동하여 토끼 놈 하나를 잡지 못하고 막대한 국고만 낭비하고 말았단 말이냐? 짐이 그 괘씸한 놈을 잡지 못하면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겠도다 이번에는 내가 몸소 대장군이 되어 군사들의 앞장을 설 것이니 모두들 내 뒤를 따르라 하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쉰 목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신하들이 말리느라고 진땀을 흘리는데 가마솥 뚜껑만큼이나 커다란 게 한 마리가 집게발을 높이 치켜들고 나서서 소리쳤습니다전하께서 그까짓 조그마한 토끼 한 마리를 상대하여 옥체를 돌보지 아니하고 친히 나서시는 것은 체통에 걸맞지 않은 일이옵니다 제가 지금 한 계고를 생각해 냈사온데 이대로만 하시면 여러 군사들의 힘을 허비하지 않고 그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 옵니다 전하깨서는 바람과 구름을 부리셔서 땅 위 세상에 비를 내려주시 옵니다땅 위에 사는 모든생물들은 다 전하께서 비를 내려 주셔아만 살아갈 수 있으니,비록 산신령이라 할지라도 전하의 분부를 거역할 수는 없을 것이 옵니다그러므로 산신령에게 그 토끼 놈이 지은 죄를 낱낱이 적은 편지를 보내시어 잡아 보내시게 하심이 옳은 줄로 아나이다듣고 보니 그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을 것 같았습니다용왕은 풍백을 불러 산신령에게 전하고 한편으로 별주부에게도 분부를 내렸습니다 산신령이 짐의 편지를 받고 그 토끼 놈을 잡아 보낼 것이니 그대는 바닷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고 얄미운 놈을 실수 없이 붙들어오라풍백이 곧 토 생원이 살고 있는 산으로 찾아가 산신령에게 용왕의 편지를 전하였습니다 북해 용왕은 산신령에게 편지로써 부탁 말씀을 올리노라 내가 얼마 전에 옥황상제의 명으로 가뭄이 심한 북쪽 땅에 비를 내려주러 갔다가 뜨겁고 독한 수증기를 쏘인 것이 큰 병이 되었도다 다행히 한 도사가 토끼 간이 특효라고 가르쳐 주었노라 내가 충성스런 신하로 하여금 한마리 잡아 오게 하였더니 그 요망한 놈이 교묘한 거짓말로 나를 속이고 달아났도다내가 분하고 창피하여 병이 오히려 더 깊어졌으니 바라건대 그 토끼를 도로 잡아 보내기를 청하노라 내가 그놈의 간을 내어 병도 고치고 분한마음도 풀고자 하니 신령은 나의 뜻을 거스리지 말라 우선 편지를 전하고별주부로 하여금 바닷게에서 기다리게 하겠노라 산신령은 용왕의 편지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북해 용왕이라면 넓은 바다의 사분의 일을 다스리고 있을 뿐 아니라 옥황상제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으시는 분입니다.고작 산 하나를 맡아 다스리는 산신령으로서 맞서기 어려운 상대였습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여러 짐승들 중의 하나인 토끼를 선뜻 잡아 내주기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산신령은 궁리 끝에 산속의 다른 짐승들을 한자리에 불려 모아 의견을 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남생이가 종씨인 별주부가 낭패 본 것을 애석하게 여겨 한가지 의견를 내놓습니다. 토 생원이란 자가 저를 잡으러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어딘가에 꼭꼭 숨어 버린 듯하옵니다 호랑이와 곰과 원숭이가 비록 힘세고 용맹하며 눈치가 빠르다 한들 어찌 쉽게 찾아낼 수 있으리이까 ? 그놈이 용궁에 잡혀 갔다가 혼자 힘으로 도망쳐 온 것만 보아도 꾀 많은 짐승이틀림없으니 그놈을 잡는 일은 그보다 더 꾀가 많은 짐승이 아니고는 어려울 줄로 아옵니다 그렇다면 그놈보다 더 꾀가 많은 짐승이 어디에 있을꼬?제가 들은 바로는 여우 무리 중에 나이를 삼천 살이나 먹었으나 도술을 부려 곁모습을 새끼 여우처럼 하고 있는 자가 있다 하옵니다 이름은 백여우 도령이라 하는데 젊어서부터 산속 바위틈에 숨어서 술법을 익혀 여러 가지 재주를 부리고 둔갑술까지 쓴다는 소문이 자자 하옵니다 그만하면 아무리 꾀 많은 토끼라도 잡아 올 수 있지 않겠사옵니까?산신령이 곧 여우 무리에게 명하여 백여우 도령을 데려오게 하였다조그마한 토끼 한 마리 잡기가 일도 아닐 줄 알았더니 힘세고 날래다는 벼락범 대장과 곰과 원숭이까지 모두 실패하고 돌아와서 내 근심이 컸노라 마침 그대가 신통한 술법을 쓴다는 말을 들었으니 그대는 산중 토끼 무리 가운데 토 생원이라 이름 붙은 자를 속히 잡아들이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용왕의 노여움이 이 산간에까지 미치리라 백여우 도령이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그까지 토끼 한 마리 잡는 것쯤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사오니 아무 염려 마소서한편 산신령의 명을 받은 벼락범 대장과 곰과 원숭이가 토 생원을 잡으러 나왔다가 실패하고 돌아갔다는 소문은 토 생원이 숨어 있는 곳에까지 전해졌습니다토 생원은 다음에는 또 어떤 짐승이 잡으려 올지 모르니 아예 변장을 하고 지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마침 나무에 벼락이 떨어져 타고 남은 불티가 있는 곳을 발견하고 그 위에 가서 뒹굴었습니다.그러자 누르스름하던 털빚은 검게 그슬리고 긴 털은 짧게 모지라져서 완전히 모습이 바뀌고 말았습니다.그런데 백여우 도령도 토 생원이 변장을 하였으리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토 생원을 그냥 잡으러 다녀서는 벼락범 대장이나 곰이나 원숭이처럼 실패할 것이 뻔하다 생각하고 우선 노루로 둔갑을 해서 글을 적은 두루마리를 목에 걸고 토끼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가 크게 외쳡습니다 여기 산신령님께서 내리신 공문을 내가 전하려 왔소 이 산의 신령인 내가 이산중에 사는 토끼를 잡아 용궁으로 보내고자 한 것은 나의 본 뜻이 아니었노라 옥황상제이 직속 부하인 용왕과 맞서기에는 나의 힘이 부치는 탓에 혹시나 그 부탁을 거절했다가 산중에 사는 다른 무리들에게 더 큰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마지못해 그리 한 것이니라 이제 다행히 용왕이 죽었다는 기별이 왔으니 물 속 나라의 불행이 우리 산속 나라에는 오히려 다행이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너희 무리가 모두 마음을 놓고 살라포고문을 읽고 모두 기뻐하면서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유난히 털빛이 저저분하고 짧게 모지라진 토끼 한 마리만이 얼굴에 그다지 기쁜 빛도 띠지 않고 아무와도 이야기 한마디 나누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하였습니다.그래서 재빨리 지름길로 달려가 노루에서 별주부로 모습을 바꾸고 토끼 무리가 돌아가는 길목에 엎드려 있었습니다이윽고 포고문을 보러 온 토끼들이 하나 둘씩 짝을 지어 돌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별 주부로 둔갑한 백여우 도령은 한 자리에 엎드려 있으면서 지나가는 토끼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었습니다그러자 다른 토끼들은 다 무심히 인사를 받고 지나가는데, 유독 털빛이 지저분한 아까 그 토끼만은 얼굴빛이 변하면서 못 들은 척 외면을 하였습니다백여우 도령은 속으로 저놈이 바로 변장한 토 생원이 틀림없다 생각하고 태연히 목소리를 높여 그대는 그사이 아무 일 없이 잘 지내는고 하니 토 생원이 화들짝 놀랐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시치미를 떼었다이상도 하도다 그대는 누구인데 날 아는 척하는고그대은 토 생원이 분명하건만 어찌 나를 모른다고 하는고토 생원이 속으로는 겁이나서 죽을 지경이었지만 자기가 지금 변장을 하고 있다는 것만 믿고 큰소리를 쳤습니다토 생원이 펄쩍 뛰어 달아나려 하니 별 주부로 둔갑한 백여우 도령이 몸을 날려 그앞을 막고 말했습니다내 등에는 아직도 그대가 앉아 있던 엉덩이 자국이 남아 있거늘 어찌 시치미를 떼는가 그까짓 변장술로 모습은 조금 달라졌으나 몸놀림이나 목소리는 전에 보던 토 생원이 분명하도다 내가 여기 까지 온 것은 우리 대왕님이 돌아가신 소식을 건넸거늘 그대는 어찌 모른 척하고 도망갈 궁리만 하는고 참으로 섭섭하도다 별 주부로 둔갑한 백여우 도령이 하는 말이 너무도 천연덕스러워서 조심성 많은 토 생원도 그만 속아넘어 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을 놓고 대꾸하고 말았습니다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전에 보던 별 주부가 틀림없도다 이런 데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천만 뜻밖이라 그대가 전보다 많이 뚱뚱해져 얼른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지 내가 일부러 모르는 체한 것은 아니로다 너무 서운케 여기지 말라드디어 정체를 드러내니 백여우도령이 옳다구나 하고 곧 그 자리에서 재주를 한 번 넘어 본래 모습인 여우로 변하였다 그리고 꽁무니에 차고 있던 붉은 오랏줄로 토 생원을 잡아 묶어 산신령에게 끌고 갔다 별 주부는 자기를 골탕 먹이고 달아난 토 생원을 다시 잡아 등에 태우고 용궁으로 돌아게게 되어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목을 길게 뽑아 토 생원을 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습니다토 생원은 별 주부가 반갑기는커녕 얄밉기만 했습니다용왕 앞에 가는 즉시 간을 빼앗기고 죽을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습니다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궁리를 했습니다.날짜가 흘러 어느덧 용왕의 장례 절차가 끝나니 왕세자가 뒤를 이어 새 용왕이되었습니다. 새 용왕은 토 생원을 끌고 오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토 생원이 졸개 고기들에게 끌려 새 용왕의 앞으로 나아가니 새 용왕은 바로 토 생원을 형장으로 보내어 목을 치라 했습니다.그런 것쯤은 이미 각오하고 있던 터라 토 생원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무슨 죄가 있다고 덮어놓고 죽이라 하시나이까? 그 이유나 알려 주소서 우리 둘은 이미 한 하늘 아래 함께 있을 수 없는 원수지간이 되었거늘 어찌 지은 죄를 모른다고 하는고? 제가 새 용왕님을 만난 것이 머리털 나고는 처음인데 언제 원수질 틈이 있었다고그러시옵니까? 지난날 선왕께서 너에게 간을 가져 오라 하섰을 때 속이고 도망갔으니 어찌 죽을 죄가 아니랴? 그것은 한쪽 말만 듣고 오해하신 것이옵니다. 이제 제가 일의 자초지종을 자세히 아뢰겠으니 통촉해 주소서 지난날에 제가 별 주부와 함께 물가에 이르러 그곳에 별 주부를 기다리게 하고 산 위에 가서 간을 가지고 와 본 즉 별 주부가 그새를 못 참고 이미 돌아가 버렸사옵니다 제가 몸에 비늘과 지느러미가 없으니 어찌 홀로 용궁을 찾아오리이까? 처음부터 별 주부가 경솔한 탓이옵고 제가 일부러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옵니다. 네가 또다시 간교한 거짓말로 나를 속이려 드느냐? 네 말처럼 일부러 도망가려 한 것이 아니라면 어째서 그때 백사장에 내려서 오줌도 졸졸 싸고 방귀도 뽕뽕 뀌먼서 별 주부를 놀리고 달아났더란 말이더냐?새 용왕의 소리가 대들보를 쩌렁쩌렁 울렸지만 토 생원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차분히 변명을 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별 주부를 만났을 때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기로 약속을 하였사옵니다 또한 등에 타고 용궁으로 들어왔고 간을 가지려 나갈 때 역시 동행했으니수천 리 물 속 길을 오고 가며 허물 없고 다정한 사이가 되었나이다.그러므로 백사장에 내렸을 때 정다운 마음으로 농담를 한 것이옵니다그것을 별 주부가 그처럼 불쾌히 여기고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나이다토 생원이 능청스럽게 하는 말에 새 용왕이 고개를 갸우뚱하고 별 주부를 돌아보며 물었습니다그 때 저자가 한 말 중에 듣기 거북한 대목이 있긴 하였사오나 친구 간에 농담을 했을 뿐이라고 우기니 또 그런 것 같기도 하옵니다 그렇다면 그 뒤에 선왕께서 풍백을 시켜 네 산의 신령에게 편지를 보내 너를 보내라 하였을 때는 어찌하여 숨어서 나타나지 않았더냐? 그것만 봐도 네 스스로 죄를 지었음을 알고 겁이 나서 숨은 것이 틀림없도다 나까지 속이려 든 죄 죽어 마땅하도다 제가 별 주부와 함께 간을 가지러 나갔을 때에 왕복 삼백 리나 되는 길을 젖 먹던 힘을 다하여 줄달음질을 친 끝에 병이 났었사옵니다 또 한 그처럼 애를 썼으나 별 주부가 먼저 돌아가 버려 용왕님의 병환을 낫게 해드리지 못한 일이 한스러워 마음의 병까지 얻었나이다.그런 까닭에 굴속에 조용히 틀어박혀 병 치료를 하느라고 한동안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였는데 그사이에 용왕님께서 저희 산의 신령님께 편지를 보내셨던가 보옵니다. 제가 일부러 숨은 것은 결코 아니옵니다 그 말대로라면 모든 잘못은 토 생원과 함께 간을 가지러 나갔다가 토 생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돌아온 별 주부에게 있다고 해야 옮을 것 같았습ㄴ다새 용왕이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데 토 생원이 갑자기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습니다새 용왕이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네가 나의 추궁에 변명을 부옇게 하고 나서 새삼스레 소리 내어 우는 까닭이 무엇인고? 토 생원이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형님께서 생전에 제게 순수 보배 잔에 신선 술을 따라 주시며 먼길에 잘 다녀오라고 다정하게 말씀해 주시던 정경을 생각하니 눈물이 절로 앞을 가리나이다아니 형님이라니 용궁에 잡혀 온 주제에 감히 형님이라니 새 용왕과 용왕을 모시고 있던 신하들이 모두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습니다 병조판서 숭어가 급한 성미에 화가나서 길길이 뛰며 전하 저놈이 아마도 죽을 것이 겁나서 제정신이 아닌 듯하옵니다 저따위 망령된 말로 선대왕을 모욕하였으니죽어 마땅하옵니다새 용왕 역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토 생원을 노려보며 당장 끌어내어 목을 치라고 호통을 쳤습니다선대왕께서 생전에 저와 형제의 인연을 맺으신 것은 깊고 깊은 궁중의 안방에서 일어난 일이라 이 자리에 있는 산하들도 잘 모르는 일이옵니다의심이 나시면 대비마마께 여쭈어 보소서 그때 대비께서는 입가에 부스럼이 잔뜩나서 바깥 출입을 못하셨기에 선대왕께서 저를 안방까지 데리고 들어가 형수님께 절을 올리도록 하셨나이다토 생원이 온 전각 안을 공 튀듯이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통에 눈앞이 어지러운데다 늘어놓은 말 또한 너무나 뜻밖이어서 새 용왕은 골치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하지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기는 지금 삼촌을 죽일 놈 살일 놈 하고 있는 샘이였습니다 새 용왕이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데 영의정 거북이가 전하 황공하오나 대비마마께 시녀를 보내여 과연 그런 일이 있는지 여쭈어보는 것이 옮을 줄로 아옵니다 대비마마께 다녀온 시녀은 토 생원 말이 다 맞는 말이라고 전하자 새 용왕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토 생원을 자기 옆 자리로 모셔 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과 의형제를 맺으셨으니 제게는 숙부뻘이 되는 어른인데 그동안 무례가 많았나이다 앞으로는 숙부님으로 대할 것이니 용서해 주소서 전하께서 모르고 하신 일인데 용서하고 말고가 있겠나이까새용왕은 시녀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차려 내오도록 분부하였습니다그리고 또 생원과 마주 않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 받았습니다그러다 보니 슬기롭고 세상 물정에 밝은 토 생원이 아주 좋아졌습니다이런 자리에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니 토 생원이 올때까지 기다려 주지않은 별 주부가 괘씸하고 원망스러워 졌습니다그리하여 별 주부는 새 용왕의 명령으로 북쪽 바다 제일 끝에 있는 차거운 얼음물 속으로 귀양을 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며칠후 토 생원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새 용왕은 무척 섭섭해 했습니다그리고 시녀들에게 용궁에 있는 보물을 전부 꺼내오라고 하여 토 생원에게 보이며 이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것 한 가지를 고르라고 했습니다저를 이처럼 정답게 대해 주시니 참으로 고맙사옵니다 그러나 제게 한가지 청이 있사온데 그 청만 들어주신다면 여기 있는 보물을 몽땅 주시는 것 보다 감사하겠나이다그 청이 무엇이옵니까?별 주부와 저는 선대왕의 명을 받들어 여러 차례 물 속과 땅 위를 오가면서 함께 고생을 나누었사옵니다.하온데 저는 전하께 이처럼 큰 상을 받고 별 주부는 무거운 벌을 받았으니 제 마음이 편치 못하옵니다 그러니 별주부를 용서해 주세요라고 하였다그러자 새 용왕은 별 주부는 나라의 중요한 임무를 맡아서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였으니 결단코 용서할 수가 없나이다토 생원이 무릅을 끓고 다시 한 번 간청하였습니다 아버님과 형제의 의를 맺으신 분의 부탁이니 그 낮을 보아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하겠나이다 그리고 그날로 별 주부의 귀양을 풀어 주었습니다별 주부가 다시 용궁으로 돌아오니 새 용왕이 말하였습니다토 선생을 다시 물 밖으로 보내 드려야 하겠는데 그대가 이미 늙어서 물 밖에까지 나가기가 힘들 듯하도다 이번에는 그대의 아들을 시킴이 어떠할꼬?그러나 별 주부는 자기가 귀양에서 풀려난 것이 토 생원의 은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터라 굳이 자기가 가겠다고 우겼습니다,마침내 토 생원이 또다시 별 주부의 등을 타고 여러 날 만에 바닷가에 이르렀습니다 서로 헤어지기 전에 별 주부가 귀양에서 풀려나게 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니 토 생원이 웃으며 말하였습니다그대가 내 목숨을 구해 주면 내가 그 은공을 잊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던가?나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로다.토 생원이 두 번씩이나 용궁에 잡혀 갔다 살아 나온 일은 온 산중에 짜하게 소문이 났습니다.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찾아오는 자들 때문에 토 생원이 사는 골짜기는 장이 선 것처럼 날마다 북적거렸습니다.때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모셔다가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토 생원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을 몰랐습니다더러는 그 신기한 이야기에 넋이 빠져 자기들도 한번 그 용궁이라는 데에 가 보았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습니다그러면 토 생원은 뭐니 뭐니 해도 자기가 태어나 사는 곳이 제일이라오.용궁이 그리좋았으면 내가 왜 다시 돌아왔겠소?하고 말하면서 잔잔한 웃음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자들이 너무 많아 한가할 때가 없으니차라리 모든 것을 글로 써서 전하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고 한 권의 책을 써서 남긴 후에조용한 곳을 찾아가 평화롭게 여생을 마쳤습니다그 책이 세상에 전해지면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으니 이야기책으로 남는 것은 “토끼전” “별주부전” , 노래로 지어진 것은 “수궁가” “토별가” 등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