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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과 빛의 대결 구도 속에 나타난 인간애의 지향
- 김혜식의 수필세계 -
권대근
한국문인협회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 교수
I. 열며
수필은 어디까지나 인간적 온기의 총체여야 한다. 정말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가슴 깊이 담아두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수필이 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그가 속한 환경과 이에 대처하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이기 때문이다. 수필은 그늘진 현실을 보다 심미적 가치를 지닌 삶의 실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김혜식의 <행복한 거짓말>은 제목부터 낯설게 하기가 되어 있어서, 이 수필은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에 민감한 우리의 인지시스템을 자극한다. 비록 이 수필이 개인사적인 문제를 가지고 출발했다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인간애의 보편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 발견의 문을 열어가고 있기 때문에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가슴이 서늘하거나 후끈한 인간미가 배어 나오지 않은 글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화인은 정치적으로는 부와 쾌락을 원하나 예술적 실존으로는 내핍과 괴로움을 원하는 모순적 상태에 있다고 한 트릴링의 말과 쾌락을 거부하고 반쾌락에서 만족을 찾는 인간의 본능적 충동이 있다고 한 프로이트의 지적을 토대로 살펴 볼 때, 이 수필은 치매라는 '궁'의 상황이 보다 나은 창작의 충분조건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 활동은 인간 내부의 두 개 자아를 일치시켜나가려는 몸짓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혜식에 있어서, 어머니의 치매가 가져다 준 정신적 '궁'의 상황, 즉 아픔은 작가 내부에 그렇지 않았던 상태와의 괴리감을 인식시키고, 이로 인해 동일성의 상태에 조금 더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상실감이 강하면 강할수록 갈망도 커지는 것이니, 동일성의 추구란 현실과 자아, 혹은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에 형성된 긴장 관계를 청산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 수필의 창작 과정 또한 이러한 내적 요구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작품은 어둠의 강을 건너는 한 방식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신선하다. 작가는 어머니의 치매가 안겨준 어둠과 인연의 절대성에 기반한 영혼구제라는 대결 구도를 통해 양극단의 동일화를 추구한다. 이제 망원경을 가지고 작가와 치매 어머니 사이의 특별한 인연을 조망하고, 그 안타까운 상황을 현미경과 프리즘의 렌즈 속으로 끌어들여 살펴봄으로써 인간애의 본질 확인에 다가가려고 한다.
II. 펼치며
언제나 김혜식 작가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명제다. 물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게 되면 썩게 마련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이 수필의 생성 배경이 된다고 하겠다. 우리 인간의 몸과 정신도 늘 새로운 것으로 채워지면서 한편으로는 나쁜 것들을 속히 배출시키지 않으면 몸과 정신이 병들게 된다는 인식은 어머니를 어떻게든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인간은 영적으로 늘 새로움을 향하여 열려 있지 않으면 시든 풀잎처럼 영혼이 메마르기 쉽다. 그런데 수필은 다른 장르의 문학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몸과 정신에 새롭고, 신선한 것, 좋은 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이 수필은 이런 차원에서 그 역할을 다함으로써, 문학적 성취의 자리를 굳히고, 기쁨을 주는 높은 치유성 차원의 교시성을 가진다.
<행복한 거짓말>은 어떤 작품보다 인간적인 향기로움이 전해져오는 패밀리즘의 수필이다. 작가는 인지장해를 겪는 어머니 일그러진 영혼 속으로 직접 들어가서 어머니의 고장 난 인지와 대화하면서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물론 거짓말을 해서라도 흐트러진 영혼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이 문학일 수 있는 근접성은 바로 이런 인간애에 있다. 작가는 어머니가 주는 로또복권의 처리를 통해 치유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 의미화할 뿐만 아니라, 로또 당첨이라는 어머니의 염원에 자식을 향한 모성원리가 내재한 것으로 인식한다. 로또 당첨이 소원이기도 한 어머니에게 ‘로또에 당첨되었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작가는 구원의 길을 찾고 어머니와 교감을 나누면서 인간적인 삶의 태도를, 그리고 자식으로서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수필 속에 잘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서 인지장해에 때문에 근본적으로 방황하는 영혼을 구하고자 동생의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하는 열린 자세가 아름다워 이 수필은 감동을 창출한다. 때 묻지 않은 삶, 오직 자식이 잘되어야 한다는 그 무엇을 힘껏 치닫는 어머니의 온전한 영혼을 위해서 행복한 거짓말을 결심하는 작가의 건강한 모습이 아침 햇살처럼 그려진다. 그녀가 걸어가는 삶의 길은 싱그러운 청록이 물결치고 영혼의 축제가 펼쳐지는 구원의 공간이고, 어머니가 있는 모정의 곳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열망 중의 하나는 가족과 행복한 동행을 이루는 일이다. 이 수필은 어머니의 사랑이 곧 인간 본연의 자세라는 주제의식이 잘 형상화되어 있어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하겠다.
침대 시트 무늬가 노려보는 것 같아 가위로 오렸다며 어머닌 내 눈치를 살핀다. 시트 무늬는 장미꽃이었다. 면 소재에 새겨진 장미꽃 무늬는 그 형체가 희미하나 은은한 분위기여서 언제 봐도 정이 간다. 내 딴엔 비싼 가격을 주고 침구 집에서 맞춘 시트였다. 멀쩡한 침대 시트에 손바닥 크기만큼 구멍이 뻥 뚫린 것을 볼 때마다 아까운 마음이 들었으나 겉으로 내색할 수 없었다. 오히려 “잘하셨어요.”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어야 했다.
어머닌 요즘 때때로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듯하다. 눈만 감으면 눈앞에 귀신들이 나타난다며 무섭다고 몸을 웅크리곤 한다. 어느 날은 몇 시간 집을 비웠더니, 어디서 젊은 이처럼 머리를 커트하고 와서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나 예쁘지?”를 수없이 묻곤 한다. 척추 골절, 흉부 골절로 당신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분이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위 인용 예문은 김혜식의 <행복한 거짓말> 발단부 ‘접근단계’에 해당한다. ‘침대 시트 무늬가 노려보는 것 같아 가위로 오렸다며 어머닌 내 눈치를 살핀다.’라는 이 수필의 첫 문장은 문제 제기로서 위기상황을 암시한다. 이 수필의 주인물인 노인의 행동심리도 흥미를 끈다. 어떤 인식을 통해 해답을 찾으려는 노력, 즉 우리 삶의 지혜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대단히 의의 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작가는 "무엇을 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직관과 사색으로 그 본 것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했느냐가 중요하다"고 한 레제트의 말을 우리에게 다시 전한다.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수필적 소재가 바로 인간적인 내적 풍경이라면, 이 수필의 화소는 적재가 아닐 수 없다.
이 문단은 치매 어머니의 특수 상황을 간결한 문장과 담백한 어조로 증언하고 있는 부분이다. 작가와 어머니가 주고받는 대화의 극적 분위기와 이야기의 맛은 강렬한 의미와 이미지를 창조하는 데 도움을 준다.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어머니의 내면 풍경을 아름답게 색칠해야겠다는 그녀의 노력은 삶의 끈을 이어가려는 동행에의 의지인 것이다. 이 수필은 어머니의 행복한 모습을 꿈꾸며 노심초사하다가 거짓말을 해서라도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고, 이를 통해 어머니의 일그러진 영혼을 구제하고야 말겠다는 작가의 아름다운 모습이 수필화되어 있다. 해결할 수 없는 것도 관심을 가지고 보면, 가치 있는 무엇이 보이고, 그것에서 독특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이 수필은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남동생의 갑작스런 죽음에 어머닌 그 충격으로 초기 치매 증세를 보였다. 지금은 다소 호전이 된 듯하나 그동안 나는 참으로 힘들었다. 혈육이 아니고선 그렇게 하지 못하였을 것이란 생각을 여러 번 했다. 뼈 골절의 고통 여파인지 최근엔 치매 증세가 다시 도지고 있다. 금세 식사를 하고도 “네 년이 밥을 안 주니 내가 허기가 진다.” 라며 내게 욕설까지 하는 어머니다. 사실 요즘 나는 어머니에게 우리 자식들은 당신의 목숨이며, 인생의 전부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 어린 날 아무리 우리가 말썽을 피워도 매를 들거나 윽박지르지 않던 자애로운 분이였다. 그런 어머니가 요즘은 걸핏하면 내게 사소한 일로 짜증을 부리고 트집을 잡고 화를 내며 욕설까지 퍼붓곤 한다. 주방에 가스불도 켜놓는다. 화장실의 샤워기도 잠그지 않아 뜨거운 물이 ‘콸콸콸’ 몇 시간 쏟아지게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뜬금없이 어린애마냥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어머니의 젊은 날을 떠올려 본다. 커다란 눈망울, 희디흰 피부, 적당한 키와 날씬한 몸매의 어머니의 모습은 어린 눈에도 복사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다웠었다. 어머니는 학교에 올 때마다 선생님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었다. 그런 어머니였다.
김혜식은 맑은 영혼의 빛살들로 가득 찬 그리움의 세계를 가진 작가다. 그녀의 수필을 이루는 하나의 견고한 줄기는 근원에 대한 본능적 편향성, 어머니로의 지향성이다. 그 그리움의 귀착지는 멋진 어머니의 젊은 날에 대한 초상이다. 작품 한 줄 한 줄에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없는 게 없다. 한마디로 절절한 사모곡이다. ‘행복한 거짓말’과 같이, 이 역설의 낯설게 하기가 주는 미학은 그녀를 무한한 포용성의 얼굴을 가진 작가로 부각시킨다. 삶을 원망하고 현실에 불만을 토로한다고 해서 삶의 질이 어느 한 순간에 돌변하여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회상을 통해 타자-되기, 나아가 우리-되기의 공간을 보여줌으로써 긍정의 정서를 견인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이 수필은 생취를 느끼게 하고 있다. 이처럼 바람직한 인간상은 모든 문학작품의 지향적 목표라는 점에서 주제적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일상사에 담긴 아픔이 긍정적인 인생관과 버물어져 탄생한 것이어서 공감을 준다.
인간은 흔히 자신의 현재적 삶이 충족된 상태로 여기기보다는 무언가 결핍된 상태로 여기며 사는 수가 많다. 그것이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자신에게는 무언가 결핍된 것들이 많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흔한 것이다. 또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불만족, 슬픔, 소외감, 허전함, 결핍감이나 욕망의 갈증 등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김혜식은 이 수필을 통해서 문학은 모든 것이 충족된 만족 속에서 나오지 아니하고,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무참하게 버려진 느낌 속에서 더욱 밝게 빛나는 법이라는 걸 말해준다. 결핍의 인식 상태에서 사물에 대한 감각은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가슴 속의 응어리가 날카로운 촉수가 되어 이전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게 만들어준다. 이 수필은 이런 결핍된 상황으로부터 탈출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지난날 푸르름은 시든 지 오래이고, 심신은 내 주먹만큼이나 왜소해진 어머니다. 나이 든 어린애라고 하였든가. 요즘 어머니는 세 살 배기 같다. 그 행동이 억장을 무너지게 할 때가 많다. 불쌍한 어머니! 눈물이 절로 난다.
어머니를 홀로 집안에 둘 수 없어 모시고 가까운 대형 마트를 찾았다. 복권방 앞을 지날 때였다. 어머닌 지갑을 열더니 대뜸 복권 2장을 사서 내게 맡기며, “이 복권 당첨 되면 나 맛있는 것 많이 사다오.” 하였다. 어머니의 간청에 그 복권을 받아 핸드백에 넣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얘, 너 내가 사준 복권 어떻게 했니?” 라는 말에,
“네 어머니 그 복권 맞춰 볼게요.”
그렇게 대답하곤 얼른 컴퓨터를 켰다. 어머니 복권 번호와 맞는 숫자는 하나도 없었다.
이후 며칠이 지났는가. 어머닌 또 당신이 산 복권을 기억해내곤 내게 말을 건다.
“얘, 너 그 복권 당첨 되면 나 은행 한 채 사줘, 그럼 사업 하느라 힘든 우리 아들 은행에 돈 다 갖다 줄 수 있잖니?” 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이렇듯 기상천외한 말씀을 하는 걸까. 막내딸이 조심조심 나를 자기 방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할머니한테 희망을 드리면 어떠냐고 제의를 해온다. 할머니가 복권에 대해 물어오면 거짓 대답을 하자는 것이다.
엊그제 일이다. 어머니가 또 복권 이야기를 꺼낸다. 나는 어머니가 사준 복권으로 우리 동네에 있는 새마을 금고를 한 동 샀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곤 금고에서 돈을 한 자루 꺼내서 동생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어머닌 만면에 화색이 돌며 갑자기 나를 끌어안더니,
“역시 우리 딸이 최고야. 세상에 태어나서 오늘같이 기분이 좋기는 처음이구나. 이제 우리 아들 사업도 잘될 테니 내가 오늘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겠다.” 라고 한다. 어머니가 그토록 기분 좋아하는 모습을 최근에 들어 나는 처음 본 것 같다.
어머닌 극심한 고통의 와중에도 자식에 대한 걱정과 염려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업 하는 남동생이 불황으로 회사 사정이 안 좋은 것을 가슴 한 구석에 묻어둔 어머니다. 심신이 고통스러운 상태에서도 자나 깨나 자식 걱정만큼은 잊지 않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내가 어머니께 한 거짓말이 정녕 그릇된 게 아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오히려 어머니를 참으로 행복하게 해 드린 다는 사실에 이 거짓말을 멈출 수 없음을 느꼈다.
작가의 어머니는 남동생의 사고로부터 인지장해를 겪는 어머니의 치매 행동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동양의 시학에도 문학은 고통의 끝에서 태어나고, 대문호 괴테도 ‘천국에는 예술이 없다’는 말로 ‘시궁이후공론’의 가치를 묘파한 바 있다. <행복한 거짓말>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영혼을 구제해야 하는 작가의 지혜로움이 돋보이는 휴먼 수필이다. “어머닌 극심한 고통의 와중에도 자식에 대한 걱정과 염려의 끈을 놓지 않았다.”라는 문장에서 보듯, 어머니의 무의식 속에는 오직 아들 걱정뿐이다. 작가는 어머니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고장난 인지체계를 가진 어머니에게 안타까움을 전한다.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식이 부모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유교적 윤리의 실천은 아름다운 것이며, 어머니야말로 존재의 근원이라는 사실이다.
문학은 모든 질병을 치유할 수 잇다는 치유성이라는 목적을 잘 보여주는 이 수필에서 작가가 어느 수준까지 영혼구제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행복한 거짓말’은 통사론적으로는 참이나, 인식론적으로는 거짓된 낯설게 하기 표현이다. 작가는 이를 통하여 손맛을 느끼게 한 전략을 짠 것이다. 문학적 성취를 느끼게 하는 건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런 언어미학도 큰 역할을 한다고 하겠다. 전개부는 어머니의 치매 행동이 통제불능의 상태에 이르렀다는 사실과 그런 의식 장해 속에서도 자식을 잊지 못하는 희생과 헌신의 어머니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는 ‘휴머니즘’이란 주제의식을 엿보는 데 있다. 김혜식 수필세계의 한 축에는 자기 성찰의 축제가 항상 열리고 있다. 절대적 인연의 소중함으로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작가의 마음가짐이 우리에게도 평화로운 안식을 안겨주기에, 이 수필은 문학적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복권 당첨금 어찌 했느냐 어머니가 물어오면 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곤 한다. 복권 당첨금으로 새마을 금고 한 채 사서 그 안에 있는 돈 한 자루 꺼내어 남동생에게 택배로 보냈다고 말하곤 한다. 이즘엔 복권 당첨금 애기를 더 자주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뇐다. 그러나 귀찮지 않다.
어머닌 딸의 말을 들을 때마다 잠깐이기는 하지만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다. 잃었던 두 눈에 초점이 생기고, 반짝 반짝 보석처럼 빛이 난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투정도 안 부리고, 한 마리 양처럼 온순한 어머니가 된다. 자식으로서 어머니께 이보다 더 좋은 효도는 없을 듯하다.
이렇듯 로또복권은 우리 어머니에게 최고의 명약이자 희망이다. 어머니가 로또 복권을 산 것은 우연 아닌 절대자의 섭리라 믿고 싶다. 그 복권을 사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어머니를 어떻게 간호할 수 있을까.
나는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짓말쟁이가 될까 한다.
이 수필의 결말부 단락은 주제의식이 농축된 부분이다. “나는 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되뇐다. 그러나 귀찮지 않다.”는 대목에서 우리는 작가의 어머니에 대한 무한 사랑을 감지할 수 있다. 늘 복권의 결과를 묻는 어머니의 질문에도 귀찮아하지 않는 작가의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한 사람이 고생하면 여러 사람이 편해진다는 작가의 철학이 있어 모든 식구가 행복하다는 전통적 가치관이 수필을 통해 구체화됨으로써 이 글은 휴머니즘이란 큰 틀 속에서 이타적 행동에 대한 가치, 즉 헌신의 소중함을 주제의식으로 내세우고 있다. 참된 사랑이 무엇인지 말하는 그녀의 글 마당에 서면, 문체에서도 힘이 느껴진다. 희생을 통한 공존의 역학 관계가 공감을 자아내고 있기 때문에 공감은 따놓은 단상이다.
어머니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어떤 거짓말이라도 하겠다는 작가의 견고한 의지는 전통적인 가치관의 수용이다. 요즘 시대는 내가 우선되는 게 상식이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녀는 한사코 한국적 정황과 현실 속에서 인간의 도리와 규범을 설정하려 한다. 공존의 전제는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양보 정신이요, 비움의 철학이다. 힘들 때는 현실을 운명론적으로 수용하며, 긍정의 마인드로 나를 무장하는 것이다. <행복한 거짓말>은 젊은 시절에 무척 고왔던 어머니가, 치매로 인하여 난폭해지면서 작가 자신이 겪게 되는 특수한 경험을 이 세상의 모든 치매 걸린 어머니를 둔 자녀들에게 바치고자 하는 수필이라 하겠다. 어머니의 영혼 구제를 위해 행복한 거짓말을 해드렸다는 이야기를 통해 자식의 참된 자세가 무엇인지 말해주어 감동을 준다.
III. 닫으며
수필은 인간을 위하여 그리고 인생을 보다 낫게 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김혜식 작가가 보다 인간적인 삶의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삶의 온전한 지향점을 향해 묵묵하게 걸어가는 자식으로서의 자세와 인생의 정점에서 지나간 세월을 성찰의 자세로 어머니를 돌보는 마음의 여유가 존재와 삶에 대한 자각과 어우러져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이 작품은 인간성과 구원성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드러낸 글이다. 결핍의 삶에 필연적으로 따르기 마련인 가족의 힘을 이 작품은 잘 반영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부딪치고 체득되어지는 여러 가지 환경적, 인연적, 절대적 상황들을 외면하지 못해서 작가는 이를 자신의 작품 속에 투입시켜 주제의식으로 구체화하였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머니의 치매 이후에 오는 고독한 영혼의 갈증을 수필로 극복하고자 하는 소박한 작가의식이다.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의무의 차원에서, 어머니에 대한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살리며 자신을 다독이는가 하면, 늘 어머니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삶의 희열을 구가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끝까지 어머니를 책임지겠다는 다짐도 하고, 어머니의 건강을 기원하기도 한다. 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수필적 재료라 하겠다. 이 수필은 정의 미학을 구축하고 있는가 하면, 생활 체험적 이야기로, 건강한 삶을 구축했다고 할 수 있다. 한 편의 글에 ‘어머니’란 단어가 서른 번이나 넘게 발견되었다. ‘어머니’는 작가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작가의 삶에 살아 숨 쉬고 있기에, 이 글 또한 독자들에게 깊은 반향을 불러일으킨다고 하겠다. 좋은 글로 더욱 더 중부권 수필의 숲을 푸르게 가꿔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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