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미신, 지식보다 역량이 중요하다.
1장에서 저자는 현대 교육이 지식(사실적 지식)의 습득보다 주된 초점을 역량 함양에 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이론적 배경에서 루소의 교육,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 듀이의 교육을 자신의 주장과 상반되는 예시로 들면서 인정받는 교육 사상이나 교육가치는 저자가 생각하는 사실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육학에서 인정받는 거대한 주요 사상이나 교육법을 자신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으로 활용한 것은 그만큼 현대 교육이 사실적 지식을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하는 점을 부각한 것 같지만 그만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나 자료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의 국가교육과정을 말하면서, 그들의 국가교육과정에서 교과별 역량과 교수법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규정하고, 객관적 사실과 지식에 대해서는 교사가 수업에서 선택 가능한 것으로 보았지만, 사실 그것은 지식의 가치를 경시, 적게 가르치도록 한 것이라고 한다. 서론에서 언급한 실제적인 몇 가지 증거는 들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적용되고 있는 주요 교육적 가치와 정책에 상반되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에는 조금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1장이 끝나갈 때쯤 저자는 사례를 들며, 지식을 갖고 있을 때 복잡하고 고차적인 답변을 할 수 있다는 것과, 셰익스피어의 사례를 통해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은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사실적 지식의 가치와 지식을 가르치는 방식에 대해 여러 이론가나 교육기준청 등 정부기관이 본질적으로 회의적이고 학생의 이해력과 상반된다는 입장이지만, 본질적으로 역량이나 사실적 지식 이외의 것들은 사실적 지식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고자 하는 부분인 것 같다.
두 번째 미신, 학생주도의 수업이 효과적이다.
두 번째 장에서 저자는 학생주도의 수업이 항상 효과적인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루소는 ‘어린이들이 스스로 이익이 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는 학습환경을 조성’, 듀이는 ‘아동의 자발성과 관심을 고려해야함’, 프레이리는 ‘토론, 대화 및 질문을 기반으로 한 대안교육방식’을 주장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이러한 생각들은 교사의 역할의 중요성을 축소시키고 학생들 자신의 교육에서의 역할이 부각되지만 과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가? 본질적인 교육일까? 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교실 수업이 주로 교사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 같지만, 현실을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그들의 1/3정도가 자기주도 학습을 어려워하고 이것이 교사주도의 교육환경이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교실환경은 교육기준청 지침인 교사들이 수업을 주도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함에 따라 보다 학생위주의 수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나라의 장학사의 학교교육에 대한 역할처럼 영국 또한 비슷한 상황이기 때문에 영국의 교육기준청의 영향도 우리나라의 교육청과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교육기준청이 강조하는 부분이 교사가 절대로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 수업의 많은 부분을 직접지도 하면 안된다는 점, 사실적 지식을 기억하도록 지도하지 않도록 하는 점 등은 교사보다는 학생 주도의 수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말해준다. 하지만 저자는 학생들이 필요한 모든 지식을 개별적으로 학습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지, 자기주도적인 학습자로 성장시키기 위해 교사의 역할은 축소 혹은 배제되어야 하는 지에 대해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교사의 수업과 지도가 필요한 증거를 역사적, 이론적, 경험적 세가지 측면으로 언급하면서, 학생은 일정 수준의 사실적 지식이나 배경지식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교사의 직접 가르치는 방식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장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교육상황에서 좀 더 융통성 있고 적절한 교육이 이뤄질 수 없을까? 였다. 교수법이나, 학습자, 교실상황, 컨텐츠 등 교육환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좀 더 복합적으로 고려할 경우 책에서 제시된 자기주도 학습법이 항상 옳지는 않을 것이다. 영국의 교육은 현재 어떤 상황인지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교육은 과거에 비해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하여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교사의 주도적 역할을 강력하게 주장한 것은 그만큼 호응을 받지 못하고 있기에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미신, 21세기는 새로운 교육을 요구한다.
저자는 3장에서 21세기 교육과 관련하여 역량중심 교육과정에 조금은 불편한 내색을 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경제의 변화에 따라 학생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르쳐야한다는 점, 21세기 교육과 19세기 교육이 상당히 관련성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어떻게 상반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는지를 언급한다. 저자는 지식보다 역량을 특별히 선택하고, 미래에 중요할 것으로 제시하는 논리를 제시함에 있어, ① 과학기술 발달에 따라 사람들이 방대항 양의 정보를 기억하거나 암기할 필요가 없게 된 점, ② 지난 수 십년간 경제와 직업에 큰 변화가 일어난 점을 말한다. 왕립예술협회가 설정한 다섯 가지 핵심역량에 관한 내용도 나오는데,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도록(학습계획 수입, 시간관리, 개별 학생의 학습방식) 교육과정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3장에서 저자가 주장한 부분에 동의하였는데 특히, 21세기 역량(문제해결력, 창의력, 비판적 사고, 인간관계 능력 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역량들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닌 과거에도 있었던 진부한 논리라는 점과 역량중심 교육과정을 주장하면서 지식 교육을 제외하려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에 크게 공감하였다. 21세기 역량이라는 이념 하에 최신의 지식, 최신의 방법 등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러한 최신의 것들은 과거의 경험과 지식의 누적이라는 점도 간과하면 안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나온 대로 현대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나날이 발전하고,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학생이 역량(비판적, 창의적, 인간관계력, 문제해결력)을 갖춰야하는 것은 맞지만 학교에서 그것을 기존의 지식보다 훨씬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 책에서 나온 대로 현대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고, 나날이 발전하고,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학생이 역량(비판적, 창의적, 인간관계력, 문제해결력)을 갖춰야하는 것은 맞지만 학교에서 그것을 기존의 지식보다 훨씬 중요한 것으로 가르치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게 되었나요?
<교수법이나, 학습자, 교실상황, 컨텐츠 등 교육환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좀 더 복합적으로 고려할 경우 책에서 제시된 자기주도 학습법이 항상 옳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에 동의합니다^^ 교육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여러 요소를 좀 더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저 역시도 생각합니다.
저자의 주장에 공감하였습니다. 말한 기존의 지식에 대한 교육도 일정 부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장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교육상황에서 좀 더 융통성 있고 적절한 교육이 이뤄질 수 없을까? 였다. 교수법이나, 학습자, 교실상황, 컨텐츠 등 교육환경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좀 더 복합적으로 고려할 경우 책에서 제시된 자기주도 학습법이 항상 옳지는 않을 것이다.> 공감합니다. 교생실습을 했던 학교에 계셨던 수석교사 선생님은 교사주도의 학습과 학생 주도의 학습을 섞어 교육하셨습니다.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례를 제시했으며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파악할 수 있는 학습만화 및 자료집을 제시해 학생들이 직접 지식을 찾아보게 하는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자 보다 집중도 높은 수업이 이루어
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