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科書와 參考書
지난 번 어떤 골동품점에 들렀더니 옛날조선총독부시대의 교과서가 한 권 눈에 띄었다. 뒤져 보니 마침 내가 배운 책이었다. 보통학교 4학년의 국어독본이라고 쓰여 있지만, 물론 그때는 일본 식민지 시대였기 때문에 '국어(國語)' 라는 용어는 '일본어(日本語)'를 말하는 것이다. 말이야 어느 나라 말이 되었던지 눈에 익은 책이어서 반가운 마음으로 사들고 나왔다.
나이 들어서 지난날의 교과서를 보면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요즘 나는 묵은 교과서에 대한 애착이 부쩍 늘어난 것 같다. 잠시나마 그것을 배우던 시절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도 나는 지난날의 교과서를 별로 많이 갖지 못하고 있는 것이 유감천만이다. 조금 있다는 것이 대학교재 정도이고 초, 중등시절의 것은 바람 아닌 세월과 더불어 거의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애석한 일이다.
중학교 시절에 어떤 선생님이 "항상 중등학교의 교과서만 멀리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의 각 분야에서 지식수준은 별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타이르시던 일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초, 중, 고, 대학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배운 교과서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는 귀중한 장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험으로는 강의시간의 교재나 글을 쓰는 소재의 경우나 지난날 교과서에서 한 번 배운 지식은 자신을 가지고 인용할 수 있어서 든든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나는 학생들에게 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교과서 보존을 수시로 당부하고 있지만, 귀담아 듣는 학생이 얼마나 될는지는 미지수이다. 지난 번 어떤 교원 강습회에서도 이런 점을 강조했더니 다들 수긍이 가는 눈치였다.
언젠가 신문에 어느 여학교의 우정 어린 자매결연 기사가 나온 일이 있었다. 1, 2, 3학년의 같은 반, 같은 번호의 학생끼리 말하자면 3자매결연인 셈인데 매우 기발한 착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중에는 나의 견해와 많이 다른 내용이 들어서 쓴 웃음을 지은 일이 있었다. 선배들이 졸업하거나 진급함에 따라서 옷이나 학용품, 교과서 등을 후배에게 물려준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는데, 교과서의 경우는 한 번쯤 재고해 볼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교과서는 한평생 간직할 만한 장서가치가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바 있지만, 특별히 곤궁한 사정만 아니면 새 학년. 새 학기에는 산뜻한 새 책으로 학업을 시작하는 것이 기분이 새로워서 즐거울 것이다. 이 말은 내가 결코 출판사나 서점의 점수를 따기 위한 저의가 있어서 하는 말은 아니다.
나는 학창시절 넉넉지 않은 학비에서나마 교과서 값에는 인색하고 싶지 않아서 항상 새 것을 샀었다. 그런데 중학 2학년 때 딱 한 번 교과서 몇 권을 헌책을 산 일이 있는데, 그때의 잉크로 얼룩지고 때 묻고 찢어진 낡은 교과서 생각만 하면 지금도 기분이 구겨져서 유쾌하지 않다. 내가 중학교 2학년에 진급을 했을 때 같은 반에 유급생 한 사람이 있었다. 먼 지방에서 소위 경성(京城)까지 유학을 온 K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나보다는 나이도 많고 체구도 훨씬 컸다. 옷차림이 항상 구질구질하고 표정이 몹시 어두운 아이였는데 웬일인지 나에게 가까이 접근을 해 왔다. 결국은 교과서에 눈독을 들인 수작인데 시골에서 올라온 얼뜬 촌뜨기인 내가 교과서 떼먹기에는 적격자로 물색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루는 하굣길에 나의 하숙집에 함께 들리고 싶다고 지분대는 것이 아닌가? 별로 달가운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차마 잡아 뗄 수가 없어서 따라 오게 했다. K는 나의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영어사전을 비롯해서 값나가는 교과서를 뽑아놓더니 하루만 빌리자는 것이다. 무슨 말을 둘러 댔는지는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빌리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댔던 것 같다. 나는 다음 날 학교에서 틀림없이 돌려받기로 굳게 약속을 하고 이 불청객을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는 그 뒤 독촉을 받을 때마다 터무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을 뿐 책을 돌려 줄 기색이 없었다.
결국 이 사건은 K의 자퇴로 끝났고 책도 영원히 나의 서가(書架)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K가 떠난 뒤에 튕겨진 일이지만 사전이나 교과서를 떼일 뻔 한 사람이 나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다소 위안이 되었다. 결국 실제로 당한 것은 나 한 사람뿐이기는 했지만.
그 뒤부터는 나는 교과서에 관한 한은 절대로 남에게 빌려 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해 나는 할 수 없이 종로(種路)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겨우 구색을 맞춰서 한 해를 넘겼다.내가 잘 아는 의사 한 분은 애매한 진단이 나올 때는 가끔 교과서를 들먹였다. ‘우리가 배운 교과서에 따르면… ’ 하는 식으로 여간해서 교과서의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이 잘하는 일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그만큼 교과서는 권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의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때로 교과서의 내용은 우리의 삶의 궤도를 지시해 주는 구실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앞에서 말한 K군의 경우는 교과서 때문에 귀중한 학창생활을 아주 이탈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교과서 이야기에서 연상되는 것은 우리가 살아나가는 태도에는 어떤 의미에서는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런 말을 쓸 수 있을는지 어떨는지는 모르지만 교과서적 인생과 참고서적 인생이란 말, 말이다.
교과서적 인생이란 흔히 교과서처럼 고지식하되 융통성과 요령이 없고 좀 답답한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 반면에 참고서적 인생이란 참고서처럼 폭넓고 응용력이 있으며, 수완을 발휘하면서 융통성 있게 사는 사람을 말할 것이고.
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은 소위 각자의 생활철학에 속하는 문제일 터이므로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나는 가끔 나의 생활은 어느 편에 드는 것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무래도 나는 융통성 없고 요령 없는 점으로 미루어 생각할 때 참고서 쪽보다는 교과서 쪽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40년간을 함께 살아온 우리 집 안방 실장의 의견도 그렇거니와 눈을 멀뚱멀뚱 뜨고 교과서나 떼이는 것도 그렇고, 홍수처럼 흘러나오는 신간서적을 제쳐 놓고 해묵은 옛날 교과서에 남다른 애착을 느끼는 것도 답답하다면 좀 답답한 성격이기도 하다.그렇다고 그동안 교과서처럼 틀에 박힌 나의 생활이 이제 와서 바뀔 것 같지는 않고 또 바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隨筆公苑, 19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