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 회향문
지혜의 실천 ㆍ 감사와 회향 ㆍ 방편지업청정
1. 회향문 해설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향함
다 함께 안락한 연기의 세계관을 실천함
『왕생론』 제5 회향문
어떤 것이 회향인가.
일체 고뇌하는 중생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다.
마음에 항상 원을 지어 회향을 으뜸으로 삼아야
대비의 마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云何廻向. 不㭘一切苦惱衆生.
心常作願, 迴向爲首 得成就大悲心故]
【해설】 제5 회향문( 廻向門)
회향문은 관찰문에서 얻은 지혜로써 자신이 닦은 공덕을
밖으로 돌려 베푸는 지혜의 실천을 말한다.
회향은 줄생의 고뇌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근본이며,
수행을 하면서도 인연이 도래하면 중생의 안락을 위해
공덕을 베풀겠다는 원을 마음에 항상 지녀야 가능해진다.
회향은 대비의 마음을 일으키는 방편행이다.
회향하지 않으면 대비심을 일으키기 어렵기 떄문이다.
『왕생론』 제5는 원림유희지문(園林遊戲地門)
나가는 제5문은 대자비로써
일체 고뇌하는 중생을 관찰하여 응화신을 보이는 것이다.
생사의 동산 번뇌의 수풀 속으로 돌아 들어가는 것이다.
신통을 자재하게 부리며 교화의 땅에 이르러
본원의 힘으로 회향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나가는 제5문이라고 이름한다.
[出第五門者 以大慈悲 觀察一切苦惱衆生, 示應化身.
廻入生死園 煩惱林中.
遊戱神通 至敎化地, 以本願力廻向故. 是名出第五門]
【해설】관찰문에서 지혜를 얻고 회향문으로부터 나와서
생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번뇌가 가득한 중생계로
들어가는 것을 회향문이라고 말한다.
회향문은 나가는 문이라고 하지만 실천의 현장을 말한다.
정토에서 예토의 중생계로 나간다면
또다시 예토의경계를 맞이할 것인데 어떻게 나가는가?
정토와 예토는 두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며
대상을 지혜로써 관찰하기 때문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지혜를 얻은 사람은 범부인가 화신인가?
범부임을 자각하고 염불문에 들어가지만 지혜를 얻게되면
범부라는 인식도 화신이라는 인식도 갖지 않게 된다.
다만 중생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그가 원하는 바를 알아서
법시(法施)나 재시(財施)나 무외시(無畏施)를 행하니
응화신(應化身)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법시는 먼저 불교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전해야 한다. (210쪽)
다음은 대승의 근본인 일심의 법과 부처님의 네 가지 지혜를
진실로 믿고 바르게 알아 발심하고 실천하도록 돕는다.
재시는 다양한 삶의 괴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물리적 괴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능력껏 재불을 베푸는 것이다.
무외시는 두려움을 없애고 안심을 얻게 하는 것이니
염불의 오념문을 권하는 것보다 나은 것은 없다.
신통은 역사와 시대상을 통찰하고, 남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자신을 아는 것 등, 수행력이 깊으면 자연히 얻는 지혜이다.
본원은 발심이며, 순리발심한 자는 물러나지 않는다.
1) 회향의 뜻
여래의 자비행은 무연자비(無緣慈悲)라고 이름하고
십지[地上]보살의 자비행은 대비(大悲)라고 부른다.
지전보살이 베푸는 행위는 회향(廻向)이라고 이름한다.
발원이 깊으면 회향하고 다시 대비의 마음을 일으킨다.
회향은 세 방면으로 실천해야 다 함께 안락한 세계를
점점 높고 넓고 깊게 확보해 나아갈 수 있다.
보리회향(菩提廻向)은 지혜로써 깊은 번뇌를 끊고
위로 보리를 구하기 때문에 높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회향(實際廻向)은 다양한 선법을 닦고 관찰하며
정토를 구현하기 때문에 넓고 깊다고 말하는 것이다.
중생회향(衆生廻向)은 중생을 안락하게 하기 위하여
그 마음을 깊이 헤아려 법시와 재시와 무외시를
널리 행하기 때문에 넓고 깊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삼처회향(三處廻向)의 뜻이며, 발심의 실천잉다.
2) 회향은 방편지혜의 행위이다.
회향은 일심의 근원에 돌아가 대비의 마음을 성취하는
방편지혜의 행위이며, 지혜와 복덕이 빠르게 증장한다.
정정취의 행을 실천하지만 법신을 얻은 것이 아니므로
방편지혜의 행위[신구의 삼업]라고 말하는 것이다.
방편이란 진실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바른 법을 말한다.
정정취의 바른 삼처회향은 묘관찰지를 깨달아
비유비무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행하는 것이다.
공(空) ㆍ 무상(無相) ㆍ 무원(無願)을 어기지 않는 것이니
베푸는 자와 받는 자를 마음에 두지 않고
회향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방편지혜의 행위[업]를 청정하게 하는 것이며,
청정한 회향이 선행되어야 대비심이 성취된다는 것이다.
3)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향함
불교는 연기의 세계관[철학]을 바탕으로 존재와 지혜와 가치를
밝히고 실천하는 종교(宗敎)이다. 그러나 모든 현상의 존재를
연기로 통찰하는 지혜와 그 가치를 실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기의 도리를 이해하는 자체가 어렵고, 불법을 이해하는
근기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펴 보이신 방편법이
백 갈래인 것이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요, 지혜의 종교"라고
말하는 것은 위대한 철학을 바탕으로 성립된 종교인 까닭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깨달음이나 지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기의 세계관을 실천하는 타자와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염불문은 큰 깨달음이 아니라도 연기의 세계관을 실천하는
뛰어난 방편을 보였으니, 바로 일체를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관하고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향하는 것이다.
이는 철학적인 지혜를 종교적인 지혜로 승화시킨 것이지만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다. 만약 연기의 세계관을 통찰하여
묘관찰지를 얻고 중도를 깨달은 자라면 염불문의 화신관과
실천은 말법시대에 가장 불교다운 수행법임을 알 것이다.
회향문은 넓고 깊다. 무생법인의 지혜를 얻거나, 아공법공의
지혜로 육바라밀을 행하거나, 비유비무의 지혜로 삼처회향을
행하는 자는 모두가 정저위이다. 사사(四事)의 은혜, 부오의
은혜, 삼보의 은혜, 중생의 은혜, 자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향함은 다 함께 안락한 연기의 세계관을 실천하는 것이다.
회향문은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향하는 문'이다.
-209쪽-
첫댓글 회향함은 다 함께 안락한 연기의 세계관을 실천하는 것이다.
회향문은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향하는 문'이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염불문은 큰 깨달음은 아니어도 연기의 세계관을 실천하는
뛰어난 방편을 보였으니
바로 일체를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관하고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향하는 것이다
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회향문은 관찰문에서 얻은 지혜로써 자신이 닦은 공덕을
밖으로 돌려 베푸는 지혜의 실천을 말한다.
모든 인연의 은혜에 감사하고 회향하는 문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 ()
[회향문]
지혜의 실천 ㆍ 감사와 회향 ㆍ 방편지업청정
甘露華n님 감사합니다.^ㅡ^
일심 광명 화신 아미타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