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괴里(리)에서 / 박선옥
도시에서
새들의 부리에 쪼여가는 새벽은
어디로 부려지는가
그 풍경의 자물쇠를 따고 있는
우리의 기도는
아득한 선사시대로 나이테를 날려보내며
세월의 두께에 갇혀
나이 만큼한 영혼을 볼 수 없구나
깊은 강 이마를 쓸며
바람은 재를 질러 와
대밭에서 화음을 고르고
도시를 떠난 새벽의 하이얀 피를
가을볕에 그을린 순간 길들에게 묻히우고 있을 때
스레트지붕 위를 달력 속의 숫자들이 손짓해 오고 있음이여
아이들은
여러날 벼르던 머리칼을 녹슬은 가위에 맞물려 가며
한 번 다녀간 눈사람을 궁금해 할 뿐
뱀처럼 누워있는 길을 따라
해묵은 교과서 속의 아이들과 물구나무선다.
팔괴里에서
아주 뒷날에 불것을 약속하고 떠나는
바람의 자태를 누가 보았는가
물물이 키가 자라는 낟가리에 입맞춤하고
아프게 돌아서는 바람의 실한 허리를
와락 껴안는 허수아비의 이별을 우리는 알지, 알어
저탄장의 삽소리에 기슭을 돌아오는 적막
가을하늘을 나르는 신문지 쪼가리에 세상은
절로 며칠 전으로 돌아가
우리가 살아온 생의 눈금을 몇 개 털어주기도 하고
아주 뒷날에 불 바람의 당도를 위해
길을 익히고 돌아 오는 새들은
平原石의 거처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등허리에
수도 없는 모국어를 남발하며
헐겁게 새벽을 부리고 가는 것을.
저 홀로의 몸무게에 쩌들려
추스리지 못하는 강물의 깊은 살점
그 무지의 살점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물고기의 비늘을
홀연히 내려다보고만 섰는 하늘이여.
짖어도 개들의 목청은 끝간데 없고
새들에게 부려지는 새벽의 씨알만이
팔괴里에서 아침 햇살로 아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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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