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해안
대기는 땅의 옷과 같다. 대기는 땅을 부분적으로 감추어 더 아름답게 만든다. 이 아침 신화의 나라에 자연은 가장 적합한 외투를 주었다. 해안을 에워싸고 있는 대기는 이제 해안을 흐릿하게 숨기고, 신기루처럼 크게 만든다. 은폐와 착각은 모두 같은 원인, 즉 특정 해류에 기인한다.
아시아의 동쪽 해안을 따라 일본어로 구로시오 또는 흑조라고 하는 것이 흐른다. 그것은 미국의 대서양 연안의 걸프 해류와 비슷한 해류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 이 두 개는 해류 강 중 가장 큰 해류에 속한다. 육지에 방해 받지 않고 흐르는 바다의 강이지만, 육지의 강과는 달리 점점 불어나지는 않고 오히려 반복적으로 갈라진다. 흑조가 첫 번째로 갈라지 면, 속이 꽉 찬 덩어리 같은 해류는 시작된 곳에서 북쪽으로 흘러 일본열도의 남단까지 흐른다. 너무 꽉 차서 일부가 잘려나간다. 주류는 해안선을 따라 북쪽과 동쪽으로 육지 가까이 스쳐 지나 쿠릴, 캄차카, 알류산열도를 지나 미국 북쪽해안으로 흐른다. 과거에, 인간은 본의 아니게 고속도로처럼 이용했다. 폭풍에 의해 바다로 날아간 쓰레기들은 해류의 힘으로 바다를 건넌다.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떠돌다가 긴 여행 끝에 다른 대륙의 해안으로 던져졌다.
한편, 갈라진 지류는 그렇게 멀리 흐르지 않는다. 북쪽으로 바로 틀어, 조선반도와 일본 사이의 해협으로 들어간다. 그 가운데 동해의 파수꾼 같은 두 개의 섬 쓰시마가 있다. 이 불운한 해류의 흐름은 여기서 끝난다. 그 곳은 완벽히 막다른 골목이다.
지도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출구는 없다. 한 번 들어온 해류는 빙글빙글 돌 수밖에 없다. 아시아 본토와사할린, 예소와 일본 본섬 사이의 해협들은 얕다. 얼마 전, 밀른(Milne)씨는 일본은 대륙에 연결되었었다고 알려주었다. 그 후, 이러한 사슬이 조력 때문에 끊겼다. 아마도 갇혀있는 사나운 해류가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 자체로 따뜻하지만, 북쪽의 바다를 만나서 차가워진다. 도망칠 수도 없고, 잘 섞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찬물 위의 공기는 찬 채로 있게 된다. 그래서 일 년 중 어느 기간 동안은 안개가 끼고, 나머지 기간 동안 신기루가 생긴다. 여름동안, 반도의 해안과 시베리아를 따라 인접한 해안들은 연무에 싸여 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무거운 응축 증기는 점차 공기에 흡수되어 사라진다. 한편 수면에서는 증발이 여전히 계속된다. 육지 표면에서의 증발은 아무것도 볼 수 없어서 그렇지 실제보다 두 배 많다.
그러나 해안의 특징은 공기로 인한 마법의 손길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웅장하다. 신기루는 그것을 이상하게 만들 뿐이다. 선명하게 산이 많은 지대가 계속 이어져, 검푸른 산들이 파란 하늘빛으로 물들 때까지 펼쳐져 있다. 남쪽 끝에서 서쪽의 중간 지점까지 반도는 섬들로 둘러싸여 있다. 어떤 산들은 가라앉아 바다에 의해 허리가 잘리고, 어떤 산들은 물가에서 갑자기 솟아올라 고립된 채 가파르다. 모두 높고, 어떤 곳은 1,000피트 혹은 2,000피트에 달한다. 신기루로 두 배가 되면 그 효과는, 우리가 흔히 보는 사람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 즉 절벽이 공중에 떠 있는 것과 비견될 뿐이다.
바다에서 조선으로 다가오는 배가 제일 먼저 만날 육지는 부산항 주변의 높은 산이 될 것이다. 나중에 조선과 이웃 나라들 사이를 다니기 시작한 대부분의 배들이 그 항구에 먼저 닿는다. 상하이에서 온 기선이든, 요코하마에서 온 기선이든, 어느 경우든, 나가사키를 출발지로 삼고, 그러고 나서 13시간에서 16시간 동안 항해하면, 조선반도의 남동쪽 끝에 있는 부산까지 갈수 있다. 첫 인상은, 멀리 보이는 파란 줄을 육지로 착각하는데, 거주 할 수 없는 험준한 바위와 사람이 안사는 산비탈로 인해 엄청 음산했다. 기선이 산비탈을 따라 돌아가면 - 그곳이 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 거의 완전히 산으로 둘러싸인 병목 같은 포구가 보인다. 입구에 바위가 세 개가 꽂혀 있다. 그 바위들은 마치 자신들의 아래 부분에 거칠게 부딪치는 바다처럼 거세고 무자비하게 보인다. 바다 쪽의 경치는 으스스하고, 만을 올려다보면 황량하다. 수직으로 솟은 바위 위로 완만한 산이 있지만, 사람이 살 것 같지는 않았다. 나무가 보이면 가까이에 사람이 있을 법하지만, 나무도 듬성듬성하다. 조선에 대한 첫 번째 생각은 버려진 땅 같았다.
기선이 갑자기 낮은 산을 향해 돌아섰는데, 산기슭에는 몇 채의 가옥이 모여 있다. 멀지 않은 곳이라 얼핏 보아도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이 일본인 거류지 초량왜관이다. 그곳은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거류지다. 첫째, 지금까지 일본인들이 가진 거류지로서 유일하다. 무역 정신, 즉 거류지화를 위한 큰 동력은 일본인의 성격상 강한 요소가 아니다. 한편, 중국인은 극동의 영국인이다. 둘째, 그곳은 역사적인 장소다. 수 세기 동안 그곳은 이식된 일본의 일부였다. 1592년 조선 침공 이후 일본은 거의 끊임없이 이곳을 지켜왔으며, 이국땅의 작은 요새였다. 비록 오랜 시간 동안 조선의 풍습과 관습 속에서 살아와서 조선인들에 의해 아주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곳은 여전히 일본이다. 조선인들은 그 반대급부를 누리지 않았다. 무역을 하고 싶은 욕망과 외국 모습에 대한 호기심에 조금 더 자극을 받은 동네 토박이들은 낮에는 이곳을 찾지만, 밤에는 자기 마을로 돌아간다. 그들이 습득한 유일한 것은 일본어에 대한 지식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조선어에서 일본어로 통역하는 사람들은 초량왜관 인근에서 온 사람들이거나 혹은 일본에서 귀환한 난민들이다.
부산의 조선인 마을은 2마일 정도 떨어져, 포구를 둘러싸고 있다. 집의 초가지붕과 시든 갈색 풀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면 기선이 정박하자마자 바로 알아볼 수 있다. 초량왜관에서 바다가 보이는 산 경사면을 지나 그곳으로 통하는 길이 있는데, 멀리 귀신의 행렬이 이 길을 따라 천천히 끝나는 곳을 보면 그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먼저 알게 된다. 조선인의 흰옷 차림과 느릿느릿한 움직임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정신적인 환각에 빠져들게 한다.
그들이 실제 사람인가 의심하다보면, 다음에 그들의 성별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상륙하자마자 당신은 공손하지만 기대에 찬 군중에 둘러싸이게 된다. 선착장 주변에 모여 있는 남자들과 함께 많은 젊고 예쁜 얼굴들이 섞여있다. 그들은 남자들보다 키가 작은데, 비슷하게 옷을 입었지만 모자를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르며, 특정 연령대의 어린 미국 소녀들의 유행처럼 등 쪽으로 머리를 한 줄로 땋았다. 모든 이방인들은 그들을 여자아이들로 착각했고, 적지 않은 전함 승무원들도 주의해서 본 바 여자아이일거라고 떠벌렸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 깊게 본 대상이 남자 아이들 뿐이라는 말에 크게 당황했고, 동료들의 놀림도 푸짐했다.
머리를 닿는 것은 남자아이들의 어릴 적 관행이며, 단순히 남자아이가 아직 미혼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라서가 아니라, 어려서 키가 작고 예쁘장할 뿐이고, 성징이 없어서 여자로 오인되었을 뿐이다. 진짜 여자라면 쉽게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상류층은 7살부터 엄격히 격리되어 있고, 가난한계층은 접근하면 놀란 사슴처럼 도망칠 것이다. 외국인에게 조선에서의 성차별의 첫 단계는 보이는 것은 남성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조선에 상륙했을 때 받는 첫인상은 미지의 땅위에 서 있다는 느낌일 것이다. 마을 위 산을 수백 피트 정도 올라가면 일부 보이는 해협과 쓰시마 섬을 건너 단지 14시간 거리에 있는 일본을 생각나게 하는 것은 첫눈에 아무것도 없다. 누구든 자신이 낯선 땅 위에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 감정은 일본인들한테도 마찬가지다.
공통적으로 느끼는 고립감은 서로에 대한 친밀감을 갖게 만든다. 그런 친밀감은 한 민족이 다른 나라에서 몇 년을 보낸다 해도 결코 느끼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라를 떠날 있을 때 고국이 가장 좋게 보인다.
초량왜관은 주로 하나의 긴 거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중간 중간 직각으로 길이 나있다. 마을은 목수의 직각자 형태를 취했으며, 우리가 내린 포구 혹은 어떻게 보면 2개의 포구가 바깥 경계를 이루고, 가파른 산이 직각자 안쪽에 위치해 내륙으로 확장을 막는다. 큰길 한복판을 따라 수 피트 폭의 도랑이 있고, 일정 간격으로 판자를 걸쳐 두었다. 그것의 옆을 따라 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직각자 바깥쪽 모퉁이에는 마을 이름을 딴 산이 있다. 부산은 "가마솥 산”라는 뜻이며, 그 이름은 이 산이 뒤집은 가마솥을 닮은 것에서 붙여졌다. 산꼭대기에는 일본절이 있으며 전체가나무로 덮여 있다.
거류지의 거리를 어슬렁거리거나, 험한 산길을 오가는 조선 사람들은 부산에서 온 떠돌이들이다. 그들만의 큰 길을 따라 끊임없이 오가는 개미들의 긴 줄을 만난 사람이 호기심에서 개미집을 찾기 위해 그 줄을 따라가는 것과 같이, 낯선 사람들은 호기심으로 부산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 사람 개미집 즉 부산을 찾아 헤맨다. 일본 마을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까지는, 유쾌한 길이 아닌 어떤 길에도 걸음을 재촉하는 것이 타당하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조선의 첫 성곽마을이 나타난다.
산이 있어, 필요하지만 속도를 내어 몇 개의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헛되이 가다 보면 마침내 해안으로 내려가고, 토종 고깃배들이 포구에 설치한 정치망에서 방금 잡은 어획물을 내려놓기 위해 긴 모래 위에 정박 중이며, 온갖 종류의 물고기들이 모래 위에 흩뿌려져 있다. 해변은 시장이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흥정하고 가끔 구매도 해, 시장은 활기차다. 낯선 사람이 물고기를 살피는 동안, 군중들은 그를 살핀다.
해변에서 벗어나면 바로 집들이 시작되는데, 마을 외곽이다. 집의 대들보 높이는 10 피트, 처마 끝까지 7피트도 채 되지 않으며, 길은 1층짜리 집과 어울려 좁은 골목길이다. 가끔씩 이방인의 모습에 어떤 여자들은 놀라 도망가느라 시끌시끌해 오히려 활기차 보이는 수백 야드의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가면 마을의 성벽에 이른다. 밖에서 보면 단단한 돌로 된 구조물이지만, 그 위에 올라 안에서 보면 화강암으로 된 껍데기로 둘러싸인 흙으로 되어 있다. 겉은 20피트고, 안은 12피트 이하이며, 바깥벽에 총구멍이 있다. 난간과 안쪽 벽 사이는 흙을 다져 넣어 걸어 다닐 수 있다. 높이가 높지는 않지만, 관청 같이 눈에 띄는 건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내려다볼 수 있다.
양쪽에는 초가지붕이 초원처럼 늘어 서 있다.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을 쌓은 이후 마을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거대한 뱀처럼, 마을의 오래된 지역 주변에 구불구불하고 불규칙하게 뻗어 있다. 성문은 문 위의 누각과 한 묶음으로 눈에 띄는데, 출입도로 역할을 한다. 성 안쪽으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관청이 있다. 1층의 낮은 건물이지만주위의 초가지붕 위로 솟아 있으며, 성문 다음으로 높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관청이 있다. 그것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건물들의 집합체다. 집들 밖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문이 하나 있는데 관청의 문과 비슷하지만, 혼자 달랑 서 있다. 일종의 뼈대만 있는 문으로서 통행문을 지으려고 올린 얼개 같다. 마치 건축가가 건물을 지으려다 포기하기로 했다가 너무 게을러서 이미 세워 둔 가설물을 치우지 않은 것 같아 보인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눈에 띈다. 도로 한가운데 홀로 서 있고, 두 개의 높은 기둥을 연결하는 가로 막대 두 개가 서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토리이와 비슷하며, 관청의 외부관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어느 건물의 한부분인 것 같지만 전혀 연결이 안 된 출입문으로서, 그것은 부산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인다. 양쪽에서 들어가긴 하는데, 어디에도 당신은 없다. 당신이 부산에 있으면 조선에 있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다. 육로로 수도를 여행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바닷길로 가야 한다. 육로로 여행하는 것은 유럽인들에게는 생활의 필수품의 일부인 안락과 이동수단이 없는 열흘의 지루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서울 근처인 조선반도 서쪽 항구에 얼음이 얼어 바다 여행이 불가능하면 조선은 다시 한 번 세계로부터 차단된다.
부산에서 서해안 인천항인 제물포까지 36시간의 항해를 한다. 만약 날씨나 선박에 이상이 생긴다면 - 내가 글을 쓰는 기간에도 그랬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흔하다 - 목적지에 도착하는 데 시간이 무한정 걸릴 수도 있다.(비교적 운이 좋아서 부산에서 인천으로 이동하는데 이틀 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해도의 해안은 불완전하게 그려져 있다. 만약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안개가 몰려오면, 즉시로 항해가 위험해지며, 선박들은 자연 항만에서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다. 게다가 그곳을 운항하는 몇 안 되는 기선들 중 대부분은 정상 상태가 아니며, 사고도 드문드문 일어난다. 다행스럽게도, 심각한 사고는 아주 가끔 발생한다.
해가 기울고, 뒷산 그림자가 마을로 은밀하게 기어들고, 살금살금 뻗어 나가는 거대한 팔처럼 어둠을 감싸고 있을 때, 기선은 닻을 올려 재촉하듯 달렸고, 항구 입구에 있는 수척한 보초들을 지나 깊은 곳으로 빠져나갔다.
배가 방향을 틀어 남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바다에 젖을 물리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갑자기 잿빛으로 변했고, 감각적으로 생각하면 오싹한 기운이 포구의 평화로운 고요함을 대신했다. 바다는 빛깔을 잃었고, 물보라가 배의 뱃머리에서 튀어 올라오면서 사방의 차갑고 딱딱한 모습을 더욱 고조 시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밤이 깊어갔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조선의 남쪽 끝 섬들 사이에 있었다. 외로운 배가 더 외로운 해안으로부터 떨어져서. 유럽식 옷을 입은 일본인 선장은 같은 일본인 항해사와 함께 선교를 천천히 걷고, 거의 잘 모르는 해안의 유일한 신호등인 섬들이 먼 곳으로부터 점점 커지는 것을 걱정스럽게 지켜본다.
짙은 파란 점처럼, 지평선의 파란 원 위에 무리 지어 떠오르고, 더 커지고 뚜렷해지며, 지나고 나면, 뒤쪽으로 멀리, 마찬가지로 다시 가라앉는다.
이 섬들 중 가장 큰 섬이자 남쪽으로 가장 먼 섬인 제주도를 지나자마자 바다에 가장 뚜렷한 변화가 나타난다. 일본 앞바다와 쓰시마 해협을 지나는 물은 아름다운 파란색이지만, 지금 우리가 들어오는 황해는 진흙의 빛깔에 대한 시적으로 이상적인 표현으로서 충분히 그 이름을 가질 만하다. 수많은 작은 하천 외에도 황허강과 양쯔강은 엄청난 양의 모래와 진흙을 끌어내리는데, 이것은 황허강의 이름이 특이하게 진흙투성이임을 증명한다. 이 강들은, 그 강들이 비운 바다의 얕은 곳에서부터, 광활한 거리까지 펼쳐져 물을 물들이고 있다. 그 효과를 높이기 위해, 간만의 차는 엄청나다. 넓은 갯벌을 따라 하루에 4번씩 휩쓸고 다니는 조수의 바닥 쓸기가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영국해협과 펀디만에서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 데, 두 곳 모두 간만의 차가 특이하게 크고 수심도 얕다. 이 갯벌 가운데 수많은 섬들이 있다. 몽생미쉘과 섬 주위의 지형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의 손으로는 그렇게 만들 수 없는 지형이 무한히 반복되는 조선 서해안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나 산은 밀물 상태에 따라 양서류처럼 섬이거나 육지에 연결된 산이 되는데, 가까이 접근하기에는 고약하다. 그것들은 정말로 물에 잠긴 산으로, 시간과 그 추종자인 풍화작용은 섬을 벌거벗기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시간과 풍화작용은 산들의 표면을 침식해 더 작게 만들었다. 흙이 없는 가파른 바위들은 이전의 그것들 자신의 해골처럼 물가에서 솟아난다. 그러므로 조선인의 상상력에 주목할 바, 그들은 시적 은유법으로 바위는 따뜻하게 살아있는 땅의 뼈, 흙은 살이라고 부른다. 비록 많은 부분이 비에 씻겨 주변에 진흙층으로 쌓이게 할지라도, 큰 산은 아직도 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짧은 풀이 그것들을 덮고 있지만, 덤불과 나무들은 거의 없다. 일부 경사지의 기슭을 따라서만 때때로 수풀 덤불이 보이며, 이는 항상 낮은 초가지붕이 무리 지어 있다는 조짐이다. 민둥땅인 이유는 어느 정도 토양의 결과이지만, 훨씬 더 큰 이유는 연료가 필요한 결과다.
정부가 탄광의 작업을 금지함에 따라 겨울의 혹한기에 온기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목재, 심지어는 나뭇가지로 몰리고 있다.
사람들의 무자비한 손은 아름다움을 아끼지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오직 미신만이 신성모독의 정점에서 벌목을 멈추게 만들었다. 나무들의 외로움 때문에 더욱 눈에 띄는 두세 그루의 나무가 산꼭대기에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볼 때 외로운 초목의 실루엣처럼 보인다. 그 나무들은 천천히 산 위로 기어 올라가는 파괴로부터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접근 불가능해서가 아니라, 그 나무들이 서있는 위치가 보호자였다. 그 나무들은 신성하다. 그것들은 종교자체로는 아무런 장점이 없는 종교의 상징이다. 오래 전에 들여온 종교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그래서 그 나무들은 오늘날 고립된 채 웅장하게 서 있다. 한때 있었던 모든 것들 중에서 선별되어 먼 과거의 미신을 선포한다. 음산한 넓은 바다를 가로질러 서로 보이는 보초들처럼 말이다.
부산에서 출발한 지 이틀 만에, 유실된 배처럼 손을 멀리 뻗으면 제물포가 닿을 것 같은 곳까지 항해하고 있었다. "세상을 잊어 가면서, 세상 속에서 잊히고,” 인간의 증언에 대한 강한 믿음만이 우리가 어떤 것에든 접근하고 있다는 가정을 정당화했다. 사람과 땅의 묘한 모습에 감정이 고조 되었다. 나의 옷차림은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상상할 할 만한 것이었고, 내가 한때 지구에 존재했다고 여겨지던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해안으로 눈을 돌리자, 우주에서 변화가 생기기 이전의 지질학적인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았다. 내 주변은 먼 옛날 지구 미형성 시대를 암시하는 것 같았다.
거대한 돌고래 등 같은 산은 나무가 하나도 없어 보기 흉했고, 진흙평야에는 갯고랑이 번갈아 있었다. 그 풍경은초기 지질 시대의 황량함을 보이고 있었다.
12월에 처음 본 그곳은 특히 음울하였다. 그 위에는 납뚜껑 같은 구름이 덮고 있었다. 날씨는 추웠고,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가 부드럽게 떨어져 내리며, 요동치는 바다와 더 평온하다고는 할 수 없는 진흙으로 똑같이 사라졌고, 불안한 죽은 영혼처럼 갈매기 몇 마리가 끝없이 이리저리 빙빙 돌며 찾을 수 없는 것을 찾아 헤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