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6. 예수비전교회 주일낮예배 국민의 평안한 생활을 위해 유백선 목사
디모데전서 2: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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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기정 시인이 “어제 그제 옛날에”라는 시집을 냈습니다. 거기에 “세상을 바꾸는 힘”이란 시(詩)가 있습니다. “하루에 몇 번 웃으십니까? / 웃는 얼굴이 만남을 소중히 가꾸는 우리들 본연의 모습입니다. / 웃는 얼굴은 굳게 닫힌 가슴을 여는 사랑입니다. / 우리 모두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서 웃어봅시다. / 하루 열 번의 웃음이 세상을 바꿉니다.” 과학자들이 15,000명의 환자들에게 ‘건강과 웃음’을 실험하였습니다. 그 결과를 말했습니다. “웃어야 복이 오고 오래 산다.” 웃으면 마음이 저절로 부유해집니다. 좋은 것들이 반복되는 삶이 더 행복한 것입니다. 지식으로 안다고 해서 체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것을 삶으로 실천할 때 살아 있는 지식이 되어 내 몸에 체득이 됩니다.
여러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일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수많은 일들 중에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것만이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습니다. “인간은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행복은 심리적으로 ‘기분 좋다’가 아니라 성공적인 삶이다.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동적인 활동이다. 인간이 인간다움의 최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 덕을 함양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참된 덕은 영혼의 올바른 힘(아름다움)입니다. 인간이 종교를 통해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복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추구하는 복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복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신령한 복을 사모합니다. 영적인 복을 얻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사도 바울이 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지 말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기 때문이다.”(엡 1:3)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성공하고, 승리하는데 두지 않습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성숙해집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줍니다. 나눔으로 행복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화평의 일을 힘씁니다.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씁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기 때문입니다.(롬 14:18-19)
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우리나라가 평안하고, 국민들이 건강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평안한 생활을 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본문 2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여기서 “평안한 생활(헤쉬키온 비온/ησυχιον βιον/hesyxion bion)”이란 “자기 자리를 유지하는 생명, 방해되지 않는 인생, 평화로운 삶, 조용한 생활, 방해하지 않는 재산(부)”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평안한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민의 지도자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국민의 지도자가 왜 하나님께 구원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권세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세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모든 권세가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세를 거스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면 심판을 받는다고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롬 13:1-2)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권세에 복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권세(력)를 많이 가져도 교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지도자는 국민을 섬기고, 복된 일에 전심전력합니다.
국민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구원을 믿지 않으면 사탄의 지배를 받고 통치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자기 영광을 구합니다. 자신의 권세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켜서 국민의 생명을 희생시킵니다. 지도자가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기도 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역사입니다. 애굽을 통치했던 바로 왕이 하나님의 구원을 부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이스라엘)을 해방하라.” 하지만 바로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로 애굽의 백성들이 10가지 재앙을 받았습니다. 이 재앙들로 엄청난 고통과 피해를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바로 왕은 마음이 완악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잡아오려고 병거 600대를 선발했습니다. 지휘관들에게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였습니다. 애굽의 바로 왕과 병거들을 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하느냐?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않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는데, 왜 다시 애굽 사람들의 종이 되겠다고 말했습니까? 왜 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자유가 없는 종으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을까요? 노예로 구속을 받고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나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을 믿었던 지도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다.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출 14:7,11-14) 하나님을 신뢰하고, 전적으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나(우리)를 위해서 행하시는 구원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바로 왕과 군대를 홍해에서 심판하셨습니다. 이처럼 영혼이 없는 지도자가 나라를 통치하면 국민이 고달프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한 지도자 때문에 백성들이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부정하는 지도자는 국민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기 권력을 지키고,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세속적인 지도자는 권력을 더 탐냅니다. 겉으로는 조국과 민족을 내세우지만 가식된 사랑으로, 거짓 애국심으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님이 쓴 <권력이 사람의 뇌를 바꾼다.> 라는 책에서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있을 때 왜 권력을 놓치 않으려고 하는가? 왜 다르게 변화하는 것인가? 악의 평범성 때문이다. 독일이 나치정권 아래에서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명령에 순종했다. 히틀러의 명령을 받아 수행하지 못했을 때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개인이 권력을 가지면 공감능력이 감소한다. 권력의 힘이 개인을 파괴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수많은 권력자들이 말로가 비참하게 몰락하는 것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탐하다가 감옥에 가는 것이다...” 사람은 지위가 높아지고, 권력이 커질수록 부패와 거짓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권력이 부패와 함께 가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움직이는 지도자들은 어디서 리더십이 나옵니까? 의사소통 능력과 담론 창출의 능력에서 나옵니다. 권력은 사람에게 신뢰를 주는 정직성에서 나옵니다.(김경우 교수/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
여러분! 모든 사람이 방해받지 않는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 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여기서 “구원을 받는다(소떼나이/σωθηναι/sothenai)”라는 말은 “구조하다, 보호하다, 고치다, 보존하다, 자하다, 완전하게 만들다, 위험과 파괴로부터 구출하다, 안전하고 튼튼하게 지키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평안을 방해하는 요인들이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이 평안을 방해합니다. 탐욕(심)이 평안을 방해합니다. 죄와 죄책감이 평안을 방해합니다. 질투와 분노가 평안을 방해합니다. 두려움이 평안을 방해합니다. 불신과 불안과 불만이 평안을 방해합니다. 현대인에게 이 세 가지가 지속적으로 정신적인 방해를 받으면 암이 발병하는 요인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왜 진리를 알아야 합니까? “진리를 알아야 자유하기 때문입니다.”(요 8:32) 여기서 “진리(알레떼이아/αληθειας/aletheias)”는 “참되다, 진실성, 객관적인 사실, 주관적인 경험적 진실, 기독교의 본질”을 말합니다. 진리는 불변성을 갖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환경, 어느 시대에도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보편성을 갖습니다. 진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다 적용됩니다. 주의 진리를 행하는 사람은 한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합니다.(시 86:11) 진리는 절대성을 갖습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진리를 상대적으로 알고, 믿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도 편리하게, 편의성을 따라 자유롭게 하고 있습니다. 진리는 영원성을 갖습니다. 진리는 유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에서 구원을 받았던 노아에게 영원한 언약을 주셨습니다. 노아의 후손과 함께 하는 모든 생물들에게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땅을 멸망시킬 홍수가 다시 있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을 기억하도록 하나님의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시고, 사람들이 보게 하셨습니다.(창 9:9-10,13)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사람은 사실과 진실과 진리를 구분할 줄 압니다. 사실과 진실이 다른 것을 압니다. 사실일지라도 진실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진실한데 진리가 아닌 것이 있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상대적이고, 상황에 따라 늘 변합니다. 진리가 아닌 것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알아야 자유를 얻습니다.
여러분! 진리를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기 때문입니다.(렘 5:1) 공의의 열매가 화평입니다. 공의의 결과가 영원한 평안과 안전입니다.(사 32:17) 인간은 불법(의)과 죄악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잃어버렸습니다.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합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항상 고통의 멍에를 메고 살아갑니다. 이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습니다.(고전 2:8)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죄인들과 하나님께서 화목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소멸하셨습니다.(엡 2:16)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골 1:20) 예수님께서는 이 진리로 믿음의 사람들이 거룩하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진리로 저희를 거룩하게 하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요 17:17) 진리는 인격화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진리를 알고, 이 진리를 믿는 사람은 모든 결박과 속박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자신의 죄들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 죽음을 맞습니다. 이 죽음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진리를 아는(믿는) 사람은 사탄(마귀, 귀신들)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사탄(마귀, 귀신들)을 멸망시키려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진리를 믿는 사람은 날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성취하고, 하나님의 법을 완성합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은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를 얻습니다. 율법의 저주로부터 해방을 받은 것입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를 믿는 사람은 자유를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 모든 사람(국민)이 평안한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믿고,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그 진리이시다.(요 14:6) 그 진리가 예수 안에 있도다. 진리 안에서 행하고,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요삼 1:3) 진리의 말씀을 듣고,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아가지 않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새 사람을 입은 것입니다.(엡 4:21-24) 진리를 알고, 진리를 믿고, 예수님 안에 사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평안한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 모든 국민이 평안한 생활을 하도록 기도하고, 감사합니다. 본문 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여기서 “도고(엔튝시스/εντευξις/enteyksis)”는 “만남, 면접, 탄원”이란 뜻입니다. 지금 나(우리)는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나라,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얼마나 기도하고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왜 진리를 알고, 진리를 믿고, 구원을 받도록 기도해야 합니까?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3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 앞에 선하신 것은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까지 계속해서 기도하고, 탄원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흑인 이슬람교도(이슬람국가/Nation of Islam) 지도자 루이스 파라칸이 심각한 질병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래리 트로터 사제가 병원에 입원한 그를 방문했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며 고백했습니다. “엘리야 무함마드 스승님이 부재 중인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해 주신 것에 감사한다... 나의 구원자가 살아계심을 알고 있다. 나의 예수님이 살아계시다. 이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구원자가 살아계시기 때문에, 나 역시 죽음의 문을 통과하겠지만 죽음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파라칸은 뉴서니마운트 미셔너리침례교회 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아는 예수님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다. 오, 예수님!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평안한 생활을 하려면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주의 법(진리)을 사랑하는 사람은 큰 평안이 있습니다. 장애물이 없습니다.(시 119:165)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안의 복을 받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나라,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원하십니다.(시 67:2) 이것을 하나님께서 선하게 여기십니다. 이제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 사는 우리에게 사명이 주셨습니다. ‘나라와 국민이 진리(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한 생활을 하도록 기도하고, 만나고 주의 은혜를 나누어주라.’ 모든 사람들이 주의 은혜로 구원을 받기를 소망하며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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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비전교회91 원문보기 글쓴이: bsy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