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료는 영남일보 김봉규 기자가 쓴 것으로서 아직 기사화되지 않은 것입니다.
참고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무흘구곡
한강(寒岡) 정구(鄭逑)는 경북 성주(星州) 출신으로 이황(李滉)․조식(曺植)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1573년(선조 6)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계속 관직을 사임하며 학문에만 힘썼다. 1591년 통천군수(通川郡守)에 부임하고 다음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각 군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도록 선도하였다. 1594년 우승지, 강원도관찰사, 공조참판 등을 지냈고 1608년(광해군 즉위년) 임해군(臨海君)의 옥사가 일어나자 관련된 사람들을 석방하라는 상소를 올리고 귀향하였으며 13년 계축옥사(癸丑獄事) 때 상소하여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구하려 하였으며 향리에 백매원(百梅園)을 세워 유생들을 가르쳤다. 경서,병학, 의학, 역사, 천문, 풍수지리 등 모든 분야에 통달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뛰어났다.
寒岡(한강) 鄭逑(정구) 는 주자가 무이정사를 짓고 무이구곡을 경영하였듯이, 퇴계가 도산서당을 짓고 도산구곡을 경영하였듯이 무흘정사(武屹精舍)를 짓고 무흘구곡(武屹九曲)을 경영하였다. 즉 그가 나서 자란 성주군 수륜면의 봉비암(鳳飛巖)으로부터 김천시 증산면 용추(龍湫)까지 넓은 지역을 구곡원림으로 설정하고 경영하면서 대가천(大加川)의 시내를 따라서 펼쳐지는 가경을 대상으로 武屹九曲歌(무흘구곡가)를 지었다. -앙화주자무이구곡시운십수-
한강의 이 구곡시는 제목으로 보면 무이구곡을 읊은 시로 인식할 수 있고, 후손들의 기록에 의하면 무흘구곡을 읊은 시로 볼 수 있다.
한강이 무흘구곡을 경영한 자료는
1776년경 후학들이 대가천 일대 무흘구곡 조성
天下山誰最著靈 (천하산수최저령) 천하의 산중에 어느 것이 가장 신령한가
人間無似此幽淸 (인간무사차유청) 세상에 이같이 그윽하고 청정함이 없어라
紫陽況復曾棲息 (자양황복증서식) 더욱이 주자가 다시 서식하니
萬古長流道德聲 (만고장유도덕성) 오래도록 도덕성이 길이 흐르네.
*(著=나타날저. 況=하물며황.)
一曲灘頭泛釣船 (일곡탄두범조선) 일곡이라 여울가에 고깃배를 띄우니
風絲繚繞夕陽川 (풍사료요석양천) 석양이 드리운 시내에 실바람이 둘러도네
誰知捐盡人間念 (수지연진인간념) 그 누가 알리오 세상 근심 모두 버리고
唯執檀槳拂晩煙 (유집단장불만연) 박달 노를 잡고 늦은 안개 헤칠 줄을.
*(泛=뜰범. 繚=얽을료. 繞=두를요. 捐=버릴연. 執=잡을집. 檀=박달나무단. 槳=상앗대장. 拂=떨칠불.)
二曲佳妹化作峰 (이곡가매화작봉) 이곡이라 어여쁜 여인이 산봉우리되어
春花秋葉靚粧容 (춘화추엽정장용) 봄꽃과 가을잎으로 아름답게 단장했네
當年若使靈均識 (당년약사령균식) 그 때에 굴원으로 알게 하였다면
添却離騷說一重 (첨각이소설일중) 이소에다 한두 구절 더했으리라.
*(靚=단장할정. 却=물리칠각. 騷=근심소. 소동할소.)
三曲誰藏此壑船 (삼곡수장차학선) 삼곡이라 누가 이 골짜기에 배를 숨겼는가
夜無人負已千年 (야무인부이천년) 밤에 질 사람 없어 이미 천년을 흘렀네
大川病涉知何限 (대천병섭지하한) 큰 내는 건너기 어렵거늘 끝이 어디인가 *(涉=건널섭.)
用濟無由只自憐 (용제무유지자련) 건널 방법 없으니 다만 절로 가련하네
四曲雲收百尺巖 (사곡운수백척암) 사곡이라 백척암에 구름이 걷히니
巖頭花草帶風髮 (암두화초대풍발) 바위 위에 꽃과 풀이 바람에 흩날리네
箇中誰會淸如許 (개중수회청여허) 그 중에 누가 이러한 청정함을 만나겠나
霽月天心影落潭 (재월천심영낙담) 하늘에 개인 달 그림자가 못에 드리우네 *(霽=비갤제.)
五曲淸潭幾許深 (오곡청담기허심) 오곡이라 맑은 못이 얼마나 깊은가
潭邊松竹自成林 (담변송죽자성림) 못가의 솔과 대가 절로 수풀 이루네
幅巾人坐高堂上 (폭건인좌고당상) 유건 쓴 이 높은 당 위에 앉아서 *(巾=수건건.)
講說人心與道心 (강설인심여도심) 인심과 도심을 강설하네. *(講=강구할강. 익힐강.)
六曲茅茨枕短灣 (육곡모자침단만) 육곡이라 띠집이 짧은 물굽이에 자리하니
世紛遮隔幾重關 (세분차격기중관) 세상의 시비를 막는 것이 몇 겹이나 되는가
高人一去今何處 (고인일거금하처) 고인은 한번 가니 지금은 어느 곳인가
風月空餘萬古閑 (풍월공여만고한) 풍월이 속절없이 남아 만고에 한가롭네.
*(茨=쌓을자. 灣=물굽이만. 遮=막을차.가릴차.)
七曲層巒繞石灘 (칠곡층만요석탄) 칠곡이라 층층의 봉우리 돌여울 둘러 있어
風光又是未曾看 (풍광우시미증간) 이러한 풍광 또한 일찍이 보지를 못했어라
山靈好事驚眠鶴 (산령호사경면학) 산령이 잠든 학을 깨우는 일 좋아하니
松露無端落面寒 (송로무단낙면한) 소나무 이슬이 무단히 얼굴에 떨어져 차갑네
*(巒=산봉우리만. 繞=두를요. 灘=여울탄.)
八曲披襟眼益開 (팔곡피금안익개) 팔곡이라 옷깃을 헤치니 눈이 더욱 열리는데 *(襟=옷깃금.)
川流如去復如廻 (천류여거부여회) 시내가 흘러가다 다시 돌아오는 듯하여라
煙雲花鳥渾成趣 (연운화조흔성취) 안개 구름 꽃 새 모두 정취를 이루니 *(渾=흐릴혼.)
不管遊人來不來 (불관유인래불래) 유인이 오든 말든 관계하지 않을래라
九曲回頭更喟然 (구곡회두갱위연) 구곡이라 머리 돌려 다시 탄식하니 *(喟=한숨쉴위.)
我心非爲好山川 (아심비위호산천) 나의 마음 산천을 좋아하지 않아라
源頭自有難言妙 (원두자유난언묘) 원두는 말하기 어려운 묘처가 있으니
捨此何須問別天 (사차하수문별천) 이를 버리고 어찌 별천지를 묻겠는가. *(捨=버릴사.)
鄭逑, 寒岡全集권2, 詩, 「仰和朱夫子武夷九曲詩韻十首」.
무흘구곡은 제1곡이 봉비암, 제2곡이 한강대(寒岡臺), 제3곡이 무학정(舞鶴亭), 제4곡이 입암(立巖), 제5곡이 사인암(捨印巖),제6곡이 옥류동(玉流洞), 제7곡이 만월담(滿月潭), 제8곡이 와룡암(臥龍巖), 제9곡이 용추이다. 무흘구곡은 한강이 27세 되던 1569년(선조 2)에 성주 창평(蒼坪)에 복거하면서 경영이 시작되어 1573년 한강정사, 1604년에 무흘정사를 건립하고 1612년에 노곡정사(蘆谷精舍), 사양정사(泗陽精舍)로 이주하기까지 무흘구곡의 경영이 지속되었다.
수헌(壽軒) 이중경(李重慶)은 혁혁한 문벌의 후예로서 1599년(선조 22)에 외가인 예천군의 고평리(高坪里)에서 태어나 외조부인 반몽벽(潘夢壁)과 외숙인 동주(東洲) 반로(潘)에게 글을 배웠고 약포(藥圃)의 아들인 동호(東湖) 정윤위(鄭允偉)를 사사하여 약포와 퇴계의 학문에 간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20세 되던 해에 고향으로 돌아와 강호지락(江湖之樂)을 즐기게 되었다. 그의 나이 44세 때인 1642년(인조 20)에 운문산을 유람하다 청도군 하남면 오대(烏臺)의 절승을 발견하고 이곳에 오대정사(梧臺精舍)인 봉서정(鳳棲亭)을 세워 구곡원림을 경영하며 오대어부가구곡(梧臺漁父歌九曲)」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