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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다리/ 이강희
사람과 사람 사이
벽은 탐욕과 미움과 어리섞음으로
인해 두터워 지고
다리는 신의와 인정 그리고
도리로 인해 놓여진다
다리는 활짝열린 마음끼리
만나는 길목이다
좋은 세상이란 사람과 사람사이
다리가 놓여진 세상이리라
추억의 소요산 / 남 정 이
만학도의 소풍날
모닝콜을 마쳐놓고 늦은 밤잠을 청한다.
여러 번 갔던 산이었기에 소요산에 대한 두려움과 먼 거리에는 아무렇지 않았었다. 시간에 맞춰 창동역에서 친구를 만나 동두천 행 열차를 타고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많은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옆에는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여러 사람 보인다.
대추, 산나물, 산초, 머루와 다래 여러 가지 약초도 보였다. 나는 풋대추를 파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서 모르는 길도 물어 볼 겸 대추 한 대를 샀다. 대추는 빨간 댕기를 두른 듯 반은 빨갛게 익고 반은 파란모양이 너무 예쁘다. 보기에도 아주 맛있어 보였다. 역시 먹어보니 달고 맛있었다. 대추봉지를 손에 들고 뛰어 따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어가는 친구들에게 몇 개씩을 나누어주며 먹어보라고 하였다. 친구들은 하는 말 언제나 언니가 최고야, 하며 대추를 받으며 아이들처럼 웃는다. 우리는 소요산 밑 어느 식당 앞에 약속 했던 장소를 찾아가고 있었다. 아직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먼저 온 사람들끼리 우리들은 인원파악을 한 다음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역시 소요산은 나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지니고 있는 산이었다.
30대 중반에는 직장에서 막내아들을 등에 업고 야외놀이 처음 왔을 때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직장인들 끼리 장기자랑을 했었다. 그날의 추억은 잊을 수 없다. 사장님은 하필이면 귀가 먹어 듣지 못하는 동수, 먹보총각을 심사위원으로 앉혀놓고 직원들 노래자랑을 시켰었다. 우리들은 제각각 멋들어지게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노래자랑이 끝이 나고 모두 심사위원 얼굴만을 쳐다보며 푸짐한 상품을 타려나 하고 기다리는데! 노래를 잘 불렀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은 모두 떨어지고 하필이면 제일 못 불렀던 나를 택하여 직장인 모두의 웃음으로 산이 떠나가는 줄 모르고 웃다가 내려 온 적이 있었다.
50대 중반에는 고향친구들과 40년 만에 만나 산중턱 소나무 밑에 둘러앉아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지나간 세월을 옥구슬처럼 꿰어가며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갑자기 날씨가 변하여 눈보라가 휘날리더니 폭설로 변하여 쏟아지는 하얀 눈에 앞이 가려 내려오는 길이 보이지 않아 고생을 많이 한 적도 있었다. 나에게 소요산은 많은 추억을 주었다.
60대의 이번 소요산은 또 무슨 추억을 남기려나, 이런 생각을 하며 만학도인 나는 가을 추억을 소요산에서 즐기려고 가고 있다. 학생들은 모두 각자의 형편으로 어릴 적에 교육의 때를 놓쳐 나이가 많은 사람, 혹은 부모님의 사별로 교육을 받지 못해 다시 시작 하는 사람, 혹은 장애우, 이런저런 사연으로 인하여 교육을 받지 못했던 여러 사람들이 모인 학교였다.
오늘도 일행들 인파에 묻혀 정신없이 올라가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우리는 땀을 닦으며 정상 평평한 곳에 모여앉아, 각자의 도시락을 앞에 놓고 둘러앉아 허기진 배에 넣기 시작 했었다.
어느 친구는 큰언니 이것 좀 먹어봐요, 하며 이것저것 반찬을 내게로 밀어 보낸다. 고마워요, 잘 먹을게요, 솜씨 좋은 친구는 자랑하듯 배낭으로 가득 짊어지고 와서 나누어먹는다. 나는 내 것도 겨우 가져갔었다.
오늘 일행 중에는 잘생긴 성민이가 있다. 우리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학생이다. 성민이는 19살인데 중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과 매를 맞아 우울증으로 병을 얻었다고 하였다. 그래서 성민이는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는 어머니와 함께 다닌다. 그날도 어머니와 소풍을 온 것이었다. 우리들은 모두가 성민이 어머니가 되어 아픔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내 옆에 성민이가 앉아, 함께 손을 잡고 만남, 사랑으로, 동무생각 추억어린 노래를 부르며 나의 손을 잡고 있었다.
내 손자 보다. 나이가 어린 성민의 손을 잡고 앉아있는 할머니학생은 가끔 학교에서
“성민아 엄마랑 같이 학교 왔어?”
성민이, 웃으며 "예!”
“성민아, 공부 잘해.”
우리들의 가슴에 성민이는 아픈 손가락이 되어 오늘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오늘의 소요산은 지난날 어느 때 보다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았다. 우리들의 이웃 소요산은 하루해를 보내기에는 거리도 알맞고 경치도 좋은 산이다. 봄에는 진달래가 아주 유명하고 여름에는 녹음이 짙어, 오르는 길목에 아카시아 꽃 향이며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행락객이 끊이지 않는다. 가을에는 목청 좋은 새들의 노래 소리에 온갖 나무가 고운 새 옷을 갈아입고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도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다.
따사로운 해님은, 다정한 얼굴을 우리에게 내려쬐고 있었다. 둘러앉았던 우리 만학도 들은 둥그렇게 어깨를 감싸 안고 노래를 불렀다. 오늘도 많은 추억을 가슴에 안고 발길을 돌려 산을 내려오며 오늘 하루는 재미있게 보냈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올라갈 때 예약해 놓았던 식당으로 우리는 모두 들어가 간단한 저녁을 먹고 젊은이들은 다시노래를 시작했다. 나 역시 즐거운 마음에 노래를 부르고 감사의 뜻으로 일금 십 만원을 노래방비에 보태라고 내놓았다. 아깝지 않다. 오늘의 추억은 돈에 값보다 훨씬 소중 할 테니까!
나는 생각 해 본다. 언제다시 이런 시간들을 내가 경험 하겠는가 정말 나에게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또 어렸을 때 격어보지 못했던 것이어서 하루하루가 추억을 간직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많건 적건 생각의 차이는 모두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교육의 기회를 주신 학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오늘의 소요산 가을소풍을 마칩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 수필가 위용환
중국 춘추시대 때의 이야기다. 춘추 오패로 유명한 제나라 환공이 명재상 관중과 대부 습붕을 대동하여 고죽국을 정벌하라 갔을 때다. 고죽국에서는 지형을 잘 이용하여 수비했기 때문에 의외로 고전을 했다. 봄에 시작한 전쟁이 겨울까지 이어졌다. 정벌을 끝내고 귀국하는 길에 군량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귀국을 서두르다 보니 전군이 길을 잃고 어찌 할 바를 모르게 되었을 때다. 관중이 제 환공에게 건의 했다.
“노마지지(老馬之智) 가용야(可用也) 풀이하자면 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하자는 것이다. 포로로 거둔 병사들 중에 늙은 말을 가진 자를 골라서 그 말들을 풀어 놓게 하였더니 말들은 그들이 나고 자란 고장이므로 길에 익숙했으며 본능적으로 길을 찾는 지혜가 있어서 대 부대가 그 뒤를 따랐더니 무사히 길을 찾아 나올 수가 있었다.
또 행군 중에 물이 없어 부대가 심한 갈증에 시달릴 때에 대부 습붕이 개미란 대개 한 자 깊이로 집을 짓는다. 흙이 많이 쌓인 개미집을 찾으면 그 밑을 약 칠, 팔 자 정도 파면 물을 얻을 수가 있다고 하여 그의 말대로 개미집을 찾고 그 밑을 팠던 바 물을 얻을 수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한비자 설림(說林) 상편(上篇)에 나오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의 지혜가 소중하다는 가르침이다. 전쟁터에서 쓸모없어 뵈는 늙은 말이지만 그 경험과 지혜는 쓸 만하다는 이야기다.
항차 미물인 말도 그렇게 관리했거늘, 작금의 우리사회를 보면 다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경륜과 지혜를 겸비한 많은 노련한 인력을 현역에서 은퇴시켜 뒷방늙은이로 전락시키고 있다.
복지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은근히 일찍 죽어주기를 바라는 사회의 조류마저 있다. 차마 노인들을 죽으라고 까지는 안 하지만 살아있음이 듣기에 따라서는 욕되는 그런 말 들이 나오고 있음이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선거 때 표를 얻을 생각으로 그럴싸한 공약(空約)으로 가난한 늙은이들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을까.(했을런지.)
자신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늙은 어버이를 사실상 버리면서 요양원에 모신다고 한다. 이는 현대판 고려장의 다른 형태일 뿐이다. 부모가 늙어서 병들고 돈 없으면 짐만 되고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죽은 뒤에 화환이 숲을 이루고 리무진에 태워서 세를 과시하기라도 하듯이 수많은 승용차와 버스가 뒤따르는 장의 행렬이 어색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고급스런 리무진의 긴 차체를 만나면 전에는 한번 타봤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지금은 관이나 나르는 음산함이 먼저 떠오른다.
또 대개의 요양원은 한적한 오지이거나 교통이 상당히 불편한 곳에 있다 그렇게 외딴 곳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한 고인을 마지막으로 활용하는 장소가 대형 장례식이다. 부모의 장례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얄팍한 상업주의 소치다.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장례가 조의금을 모으는 장소로 전락돼 보이는 것이 나만의 시각일까?
이야기가 조금은 빗나갔다. 옛날에 전쟁터에서 늙은 말을 먹이고 돌보는 것은 그 말의 빛나는 전공을 기려서가 아니라 군량이 모자라면 군량으로 쓰려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은 전쟁터를 누볐으며 늙어서는 군량으로 배고픈 군사들에게 살신의 보시를 한 수많은 늙은 말을 궂이 조문까지는 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오늘 날 늙은 부모를 마치 저승의 보충대쯤인 요양원이란 곳에 버리는 것에 대비해 본다.
동물들을 보면 태어나자마자 걷고 잠깐의 시간이 흐르면 뛰고 먹이를 먹는다. 하지만 사람은 어미가 돌보지 않으면 생존할 수조차도 없다. 대개 세 살은 돼야 말하고 걷고 제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부모는 살 수 없는 어린 것을 정성을 다해 길렀으며 지금도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부의 대물림은 말할 것 없고 청문회에 나온 높은 자리에 오르려는 분들도 자녀들을 위해서 위장전입은 물론 병역을 면제케 해주거나 쉽게 병역을 마치도록 주선한 사례를 추궁 당하는 것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그렇담 치매라든지 중병으로 혼자서 생활하지 못하는 부모를 최소한 삼 년 정도는 뒷바라지 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자는 몰라도 받은 만큼은 갚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중요한 일을 결정하려면 지혜 있는 노인, 즉 자신의 부모님께 여쭌 다음으로 미루는 것이 예사였다. 즉 시하(侍下)란 핑계로 좀 더 심사숙고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결정권이 어른에게 있음도 당연한 것으로 알았는데, 언제부터인지 노인이 집에 있어도 중요한 가정사의 결정권은 없어졌다. 어찌 보면 늙은 말보다 못한 것이 늙고 병든 어버이들이 아닌지 하는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첫 머리에 예로든 제나라 환공도 관중이 늙어서 죽기 전에 자신의 후임으로 습붕을 천거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식을 요리하여 아부한 요리사 역아, 총애하던 미소년 내시 수초, 외국인으로 부모를 버리고 출세만 추구하던 개방, 이 세 사람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권력싸움의 빌미를 제공하였으며, 삼 년 못가서 자신은 높다란 담장 안에 갇혀서 물도 못 마시고 굶어 죽은 것은 늙은 관중의 지혜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속담에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이 하나 불타는 것과 같다”고 했다. 기록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아프리카에서 노인 한 명이 숨을 거두면 토착 지식 등 정신적 자산이 사라지는 것과 같을 것이다.
어디 아프리카 뿐이랴. 우리나라도 노인들이 가진 경륜과 지식의 양은 측정하기가 어렵다. 전통과 예절은 구시대의 유물쯤으로 치부하여 사회 주역들이 늙은이들을 무시하고 복지비용만 들어가는 폐물 취급을 한다면 자신들의 미래를 부정하는 격이다.
IT세상이 오니 젊은이들에게 밖에서 뭘 물어보면 집에 가서 자녀들에게 물으라고 하거나 기피한다. 자녀들은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후다닥 저 혼자 해버리거나, 똑 같은 걸 몇 번째 묻느냐고 면박 주기 일쑤다.
현 사회의 주역들에게 권한다. 늙은이들은 사회의 자산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관중이 늙은 말에게서 배우고 활용했듯이 노인들의 지혜를 존중함은 물론이고, 경륜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알량한 복지비용 운운하면서 아까운 자원을 사장시키지 말아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설마 노인의 지혜가 늙은 말보다 못할까? 노인들이 존경받고 행복한 사회는 우리시대가 바라는 복지사회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음미해볼 사자성어 두 개를 붙인다.
노마십가(老馬十駕): 늙은 말이 열 수레를 끈다.
노방생주(老蚌生珠): 늙은 조개가 진주를 낳는다.
바람부는 날에 /동화작가 이건희
바람부는 날에 숲속을 바라봐
키 작은 나무들과
긴 풀들이 서로 머리채를 흩날리며
춤을 추는 걸 봐
어린 나무들은 서로 잎맥을 부딛치며
싸-아 싸-아 신나서 박수치고
햇빛 한 뭉텅이 비집고 들어가
배시시 웃고 있어
새들이 푸드득 푸드득 장단 맟추다가
바람 타고 훌쩍 하늘에 오르고
땅거미 질 무렵
하늘은 수년 전에 잃은 별을 생각하며
헛헛해진 마음에
또다시 낮빛이 어두워지고 있어
바람부는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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