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 무렵이 되자 제법 땀을 식힐 만한 바람이 한 줄기씩 불어왔다.
노을에 물든 하늘도 아름답거니와, 길을 가는 행인의 얼굴에도 활기가 흐르고, 출출한 나그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 이리 아름다운데, 하물며 가냘픈 몸매의 여인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살포시 숙이고 사뿐사뿐 걸어가는 모습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취광주루(醉狂酒樓)의 이층 창가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지나가는 여인들의 자태를 감상하
던 자찬괴는 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취한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개봉의 번화가에 위치한 취광주루는 우람한 대들보에, 멋들어진 오색 처마를 얹은 화려한
자찬괴는 자신의 풍류에 걸맞는 외양과 이름이 붙은 이 주루가 꽤 마음에 드는지 연신 고
그때 한 요염한 여인이 자찬괴를 향해 생긋 웃으며 지나가자, 풍류남아의 가슴에서 참을
수 없는 시심(詩心)이 솟아났던지 자찬괴의 입에서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찬괴는 이만한 수준의 즉흥시를 지어낸 자신의 재능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대견하다는
듯 두 눈을 지그시 내리감으며 한참을 음미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그에게 미소를 던졌던 여인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후다닥 달아났으며 주루 안의
이제 막 시의 절정 부분을 읊으려던 자찬괴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가 시상(?)을 깨버리자
"이 시에 시 자도 모르는 녀석이, 이해를 못 하겠으면 밥이나 계속 먹지, 왜 방해냐?"
그러자 한참 쩝쩝대며 음식을 쑤셔넣고 있던 선권괴가 눈을 치켜떴다.
"그런 것도 시라고 하냐? 운율도 맞지 않는 엉터리 음란시만 짓는 주제에 큰소리는?"
자신의 명작(?)을 비하하는 말을 들은 자찬괴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러나 자찬괴는 곧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선권괴는 빈 접시를 수북이 쌓아놓고도 아직까지도 먹어대고 있었는데, 옷에 묻은 온갖 양
념들 하며 입가에서 번들거리는 기름기를 보자 자신의 영롱한 시심이 모두 날아가는 것 같
'이런 녀석과 함께 삼절삼괴라는 명호를 나누어써야 한다는 현실이 원망스럽구나!'
자찬괴가 속으로 한탄하며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지만 좀 전의 여인은 이미 그 자
여인이 사라진 것이 선권괴의 탓인 양 자찬괴가 선권괴를 노려보았다.
그때 선권괴는 어느새 다 먹어치웠는지 빈 접시를 싹싹 핥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나서도 접시 핥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 속 울렁거리던 소리가 뚝, 멈추더니 갑자기 잠잠한 정적이 몰려왔다.
자찬괴가 흘깃 바라보니 선권괴가 탐욕스러운 눈초리로 자신의 술잔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자찬괴가 술잔과 술병을 얼른 옆으로 치웠다.
선권괴가 음흉한 웃음 소리를 내며 손가락 하나를 펴보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에게는 술이 음식이라고 절대 할 수 없지."
선권괴는 잔뜩 화가 나 외치고는 자찬괴에게 등을 돌려 앉았다.
자찬괴는 선권괴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술을 한 잔 따라 마셨다.
그리고 무료한 듯 잠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중얼거렸다.
자찬괴가 주루의 계단 쪽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어느새 돌아앉았는지 선권괴의 손이 술
병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그러자 낌새를 눈치챈 자찬괴가 갑자기 고개를 획 돌리며 끄느름
그때 계단에서 발소리가 들리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권괴가 툴툴거리자 자찬괴도 술잔을 털어넣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이다. 발걸음 소리로 보아 무공을 익힌 자들이구먼."
이윽고 선권괴의 말대로 남녀 한 쌍이 이층에 올라섰다.
석 자 정도 길이의 직배도를 등에 교차해 맨 작달막한 키에 고집스러워 보이는 얼굴의 노
인과, 얼굴에 색이 넘치다 못해 줄줄 흐르는 미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적게 보아도 칠순은 되어 보이는 노인과 삼십대밖에 안 돼 보이는
요염한 여인이 마치 한 덩어리인 양 서로 부둥켜안고 있으니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 상태로 천천히 걸어와 선권괴의 옆 탁자에 앉았다. 선권괴의 눈길도 그들을 따
그 순간을 이용해 자찬괴는 술을 병째로 들이붓기 시작했다.
선권괴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계속 그들을 바라보다가 삼십대 미부의 터진 치마 사이로 드
러난 매끈한 허벅지에 시선이 이르자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때 마침 술을 다 마신 자찬괴가 술병을 내려놓으며 뜨거운 숨을 토해 냈다.
아까부터 계속 술을 마셨던 자찬괴인지라 이젠 어느 정도 술기운이 오르는지 혀가 약간 꼬
"네가 마시고 주정 피우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술이 좀 약하더라도 내가 마시는 것이 낫
대답에는 관심없다는 듯이 선권괴는 혓바닥을 내민 채 술병을 거꾸로 들어 떨어지는 마지
"한 모금이라도 남겨줄 것이지…… 인정머리없는 녀석."
선권괴가 투덜거리고 있을 때, 옆자리의 노인이 여인의 몸을 주물럭거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여인의 어깨에 얹어놓았던 손을 끌어당겨 부드러워 보이는 여인의 몸을 살며시 끌
그러자 노인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던 여인이 콧소리를 흘려냈다.
그러나 선권괴의 귀에는 여인의 목소리가 거부의 뜻으로 비춰진 모양이었다.
'칠십 노인에 삼십 요부라니…… 살다 보니 별 더러운 꼴을 다 보는군.'
그러나 노인은 남의 이목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여인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안달하는 듯한 노인의 말에 여인은 고개를 살짝 돌려 외면하며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었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여인은 한쪽 다리를 들어 노인의 허벅지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노인은 정염에 불타오르는 눈길로 쓸어보며 두 손으로 다리를 쓰다듬어 올라갔다.
무슨 보물이라도 만지는 것처럼 정성스레 여인의 다리를 만지던 노인은 참을 수 없었는지
이렇게 탄성을 내지르며 그는 여인의 앞섶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
노인이 흉흉한 눈길로 주변을 쓸어보노라니 실제로 주점 안의 이목이 모두 자신에게 쏠려
'저 나이에 젊은 애인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돈이 억수로 많거나, 아니면 그 기술이
주루 안의 사람들은 저마다 먹고 있던 음식에서 손을 놓은 채, 노인의 손길을 따라 그들도
그러나 무시무시한 눈빛과 부딪친 그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하나 둘 고개를 돌려야 했다.
자신의 으름장이 먹혀 들어가자 노인은 "남녀가 애정 표현하는 것 처음 보냐?" 하고 소리
모두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가운데, 노인과 여인의 끈적이는 목소리와
그러나 선권괴만은 그런 노인을 더욱 노골적으로 쏘아보고 있더니 비위가 틀리는 듯 인상
이렇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려보니 자찬괴는 술을 이기지 못해 탁자에 엎어져 잠이 든 상
'자식, 술이 올라 곯아떨어졌군. 그러기에 내가 좀 마셔주겠다고 했는데도 혼자 다 마시더
곁에 있던 동료가 잠들었다고 생각하니 괜히 무료한 생각이 드는 선권괴였다. 사람이란 무
료해지면 뭔가 다른 유희거리를 찾게 마련이다. 그리고 지금 선권괴에게는 확실한 유희거리
가 있었다. 그는 도끼 눈을 부릅뜨고 옆 자리의 노인을 쏘아보았다.
'몸도 근질근질한데, 장유유서(長幼有序)고 나발이고 저걸 그냥 한 방에 날려버려?'
선권괴가 워낙 노골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으니 노인에게도 그 느낌이 전달될 수밖에 없었
다. 노인은 고개가 아주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물론 상대를 압도할 만한 무서운 눈길을
노인이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쏘아보았지만 이 정도에 기죽을 선권괴가 아니었다.
얼마나 분노했는지 탁자를 움켜쥐고 부르르 떠는 노인의 손아귀에서는 부서진 나무 가루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네놈이 노부의 명호를 듣고도 그런 소릴 할 수
노인이 자신의 별호를 늘어놓으려 하자 선권괴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얼마나 대단한 명호를 지녔는지는 몰라도 내 눈에는 젊은 여자를 희롱하는 늙은 수컷으로
보일 뿐이다! 망령이 들어도 아주 더럽게 망령이 든 늙은이로 말이야."
엎어져 있던 자찬괴는 선권괴의 고함에 잠이 깬 듯 힘들게 눈을 뜨며 부스스한 얼굴로 고
그때 주점 안 여기저기에서는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치솟는 노기를 참지 못해 노인의 안면근육이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그때 멍청한 눈으로 노인과 요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자찬괴가 갑자기 잠이 확 달아
"저들은 흉악하기로 소문난 이면요부(二面妖婦)와 추심악노(醜心惡老) 부부인데……"
그러나 그가 말릴 겨를도 없이 선권괴는 그 별호에 어울리게도 벌써 주먹을 휘둘러내고 있
"늙으려면 곱게 늙을 일이지, 어디 할 짓이 없어 백주에 부녀자를 희롱하는 것이냐? 그러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인의 등에서 쏴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직배도가 뽑혀 나왔고,
선권괴가 내지른 우권에서는 무서운 경풍이 쏟아져 나왔다. 권풍에 휘말린 탁자가 날아올랐
추심악노는 코웃음치며 두 자루 직배도로 날아오는 탁자를 그대로 갈라버렸다.
추심악노도 더욱 화가 나 이리저리 몸을 날리며 공격을 퍼부었다.
그의 도기가 이르는 곳은 벽이건 바닥이건 쩍쩍 갈라지고 있어서 그의 공부 또한 만만치
부서진 탁자들이 날아다니고 권풍과 도기가 난무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밖으로 몰려나갔다.
주루의 주인은 이런 경험이 많았던지 재빨리 입구 쪽의 계산대 뒤로 몸을 숨겼다.
선권괴와 추심악노의 주변은 이미 아수라장이 된 지 오래였지만 그들은 잠시도 멈추지 않
추심악노는 이리 날고 저리 날며 두 자루 직배도를 민첩하게 그어댔고, 선권괴는 하체를
굳건히 버티고 서서 위맹한 권격을 연속적으로 뿜어냈다.
그렇게 이십여 초가 지나자 선권괴의 강한 권풍에 밀린 추심악노의 행동반경이 점차 좁혀
들기 시작하더니 종내에는 일 장도 못 미치는 영역 안에서 매우 힘겹게 공격을 피해 다녀야
선권괴의 호탕한 웃음 소리에 추심악노의 입술이 실룩이는가 싶더니 곧 그의 도법이 눈부
선권괴의 위맹한 권풍에 갇혔던 추심악노의 도세가 번개처럼 돌아가며 선권괴가 보낸 내력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권풍과 살을 저미는 듯한 도기에 옷자락과 머리카락을 흩날리고 있
는 자찬괴의 얼굴에는 한심스럽다는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거, 바람이 시원하기는 한데…… 선권괴가 또 쓸데없이 참견을 해서 시끄럽게 되었군. 아
부서진 탁자며 의자의 잔해들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계산대 뒤에 숨어 있는 주인은 주판을
"그 동안 선권괴가 싸우는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지만 오늘처럼 요란하긴 처음이군. 보통은
선권괴의 주먹 한 방이면 끝나곤 했었는데…… 배상비가 적지 않겠어."
그때 부서진 탁자 다리가 날아와 계산대 안쪽 벽에 진열돼 있던 술병 하나를 박살냈다. 향
긋한 국화 향이 그윽하게 퍼져 나왔다. 그러자 주인은 보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주판알을
추심악노의 목소리가 분명한 신음성이 짧게 터져 나오더니 직배도 한 자루가 계산대를 퍽,
뚫고 날아와 주인의 코를 스치며 벽에 꽂히는 게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란 주인은 엉덩방아를 쿵 찧었다. 뒤이어 침묵이 찾아왔다.
주인은 계산대 위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 상황을 살펴보았다.
추심악노라 불리던 노인이 낭패한 얼굴로 오른손에만 도를 움켜쥔 채 서 있었는데, 도를
"이 선권괴 앞에서 파렴치한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가르쳐 주
두 사람의 눈빛은 동시에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그들이 잠시 눈빛을 교환하는 사이 선권
"이제라도 잘못을 시인하면 용서할 테니 무릎을 꿇어라!"
추심악노는 이미 대항할 힘을 잃은 듯 반격할 기미도 없이 넋을 놓은 채 그의 공격을 바라
그의 주먹이 추심악노의 가슴에 꽂히려는 순간이었다. 이면요부의 팔이 가볍게 흔들리자
그녀의 소매 속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선권괴에게 쾌속하게 쏘아져 갔다.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는 것은 낚싯바늘 세 개가 묶여 있는 듯한 모습의 갈고리였는데 그
수가 또한 세 개였다. 그것은 소매로 연결된 천잠사를 통해 조종되고 있는 듯 허공을 자유
추심악노만 염두에 두고 있던 선권괴는 의외의 공격에 흠칫 놀라 급히 몸을 틀어 갈고리
하나를 쳐냈다. 그러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추심악노가 쾌속하게 도를 베어왔다.
머리로 날아들던 갈고리가 튕겨나가고 추심악노의 도가 비껴나갔으나, 세 번째의 갈고리가
그리고 먼지를 털 듯 바지에 묻은 핏방울들을 털어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이면요부와 추심악노가 함께 덮쳐 오자 선권괴가 형형한 안광을 폭사하며 소용돌이가 이는
추심악노는 부상을 입은 데다가 칼 하나를 잃는 바람에 좀 전과 같은 위력적인 공격을 할
그러나 이면요부의 갈고리들은 연이 바람을 타듯 선권괴의 권풍을 타고 들어왔고, 선권괴
가 갈고리를 막기 위해 손을 빼면 기다렸다는 듯이 추심악노의 도세가 밀려들었다.
두어 번의 위기를 넘긴 선권괴가 흘깃 보니 자찬괴는 여전히 탁자에 앉아서 하품을 하고
은근히 약이 오른 듯 선권괴는 이면요부의 갈고리를 쳐내 자찬괴에게 쏘아보냈다.
그러자 자찬괴는 갈고리들이 코 앞에 이를 때까지 멀거니 보고 있더니 귀찮다는 듯 손을
한 번 쓸어냈다. 아무렇지도 않은 손짓이었지만 강력한 내력이 실려 있는 듯 갈고리들은 방
이면요부가 재빨리 무기를 회수하며 놀란 얼굴로 자찬괴를 바라보았다.
'저자의 내공이 선권괴보다 강하면 강했지 약하지는 않겠어. 둘이 아는 사이라면 골치 아
플 것 같은데…… 혹시 삼괴 중 하나인 자찬괴가 아닐까?'
그러나 이면요부의 걱정과는 달리 자찬괴는 관심없다는 듯 창 밖을 보며 또다시 하품을 해
이면요부는 안심하는 기색으로 선권괴에게 다시 맹공을 퍼부었다. 동시에 선권괴의 정면에
있던 추심악노가 한 손으로 도를 휘두르고 다른 손으로 일 장을 뻗어왔다.
선권괴는 상체를 틀어 도를 피하며 좌장으로 추심악노의 장공을 마주쳐 갔다.
두 사람의 장이 마주치는 순간 요란한 격타음 대신 손뼉을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나오며
장심이 찰싹 달라붙어 버렸다. 동시에 추심악노의 내력이 장심을 통해 물밀듯이 쏟아져 들
선권괴는 크게 놀라 손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장심이 맞붙은 상태에서 상
대가 내력을 뿜어내는 데 손을 빼려면 치명적인 내상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심악노의 계략에 보기 좋게 걸려든 셈이었다. 추심악노는 징그러운 미소를 흘리며 전력
을 다해 내력을 쏟아냈다. 이렇게 되자 선권괴도 단번에 그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의 내력을 견디지 못한 주루의 바닥이 금방이라도 갈라질 듯 요란한 비명을 질러댔
이때 이면요부의 갈고리 세 개가 그물처럼 퍼지며 선권괴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선권괴로서는 실로 난감한 일이었다. 내력 대결이란 온몸의 진기를 쏟아부어야 하는 만큼
다른 공격에는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 만약 이면요부의 공격을 막기 위해 내력을 분산시킨다면 추심악노의 내력이 밀려들어
'악독한 계집! 저를 도우려 싸우고 있는데 오히려 나를 공격하다니.'
속으로 투덜거려 보아도 상황이 바뀌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갈고리들이 선권괴의 두부(頭
部)를 찢어발길 듯 쇄도해 들어왔다. 이젠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할 때였다.
선권괴는 어쩔 수 없이 내력의 일부를 우수로 보내 갈고리들을 막으려 하였다. 위험을 무
공기가 찢어질 듯한 음향이 일며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온 물체가 갈고리를 일거에 튕겨내
천잠사의 진동으로 느껴지는 내력으로 보아 범상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면
요부는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커다란 술잔이었다.
그 순간을 이용해 선권괴는 혼신공력을 몰아냈고, 그 힘을 이기지 못한 추심악노는 피를
앞섶을 선혈로 물들인 추심악노가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자찬괴를 쏘아보았다.
추심악노와 이면요부, 그리고 선권괴의 시선이 동시에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구무괴가 한 손에 술병을 든 채 빙그레 웃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이인 듯 추심악노와 이면요부의 안색이 허옇게 탈색되었다.
옆에 서 있는 이면요부의 얼굴에도 못마땅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그들 간에 무
'저 인간이 나타나면 반드시 안 좋은 일이 생기는데……'
그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고 있던 선권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구무괴에게 물었다.
구무괴가 다시 추심악노와 이면요부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구무괴의 물음에 이면요부는 샐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고, 추심악노는 억지웃음을 지으
이면요부가 속으로 이렇게 다짐하고 있자니 구무괴가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오늘은 어째 늦은 시각까지 젊음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웬일인지 이면요부는 매우 놀라 허둥대며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연유인지 몰라 멀뚱히 서 있는 선권괴의 뒤로 자찬괴가 다가왔다.
선권괴가 되묻자 자찬괴의 입가에 조롱기 어린 미소가 번져 나갔다.
"저 둘은 아주 정상적인 부부 사이거든. 네가 생각하고 있는 불륜 관계가 아니고 말이야."
선권괴가 못 믿겠다는 듯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추심악노 부부를 바라보았다.
추심악노는 낭패한 표정으로 서 있고 이면요부는 요염한 자신의 얼굴을 감싼 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부부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정상적인 부부라면 무슨 이유로 구무괴를 껄끄럽게 대한단 말인가? 보통 구무괴에
게 꼼짝 못 하는 부류들은 뭔가 약점이 잡힌 인간들뿐이었다. 그러니 분명히 추심악노 부부
도 불륜의 현장을 들킨 일이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선권괴였다. 그는 아무래도 아니
라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자찬괴를 바라보았다.
"너 혹시 술 덜 깼냐? 저들이 정상적인 부부라니, 웬 헛소리야?"
선권괴의 핀잔 섞인 말에 자찬괴가 이면요부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찬괴의 말을 도무지 못 믿겠다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던 선권괴는 눈 앞에
서 벌어지고 있는 괴사를 발견하고는 입을 쩍 벌렸다. 또한 두 눈은 안구가 툭 튀어나올 만
양손으로 감싼 이면요부의 얼굴 살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이 점점 확산되더니 잠시 후에는 온몸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모두가 인상을
찌푸리고 바라보는 가운데 이면요부의 입에서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떨림이 점점 확산되어 나가던 이면요부의 피부가 더욱 무섭게 요동치더니 종내에는 수십
이면요부의 신음성이 괴성으로 바뀌고…… 팔다리가 기이하게 꺾이며 온몸의 혈관들이 피
그토록 요염했던 얼굴은 사라지고 쭉 찢어진 메마른 두 눈 밑으로 드러난 납작한 코와 주
름진 입술. 변하지 않은 것은 그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괴성뿐이었다.
목의 피부들도 말라죽은 고목처럼 변했고, 머리를 감싸쥔 고운 손도 주름이 잡히고 관절이
선권괴가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자, 그의 뒤에서 자찬괴가 낮게 말했다.
"이면요부는 주안술을 잘못 익혀서 낮에는 젊은 모습으로 있다가 해가 지면 본 모습으로
한참을 괴로워하던 이면요부가 머리에서 손을 내리며 고개를 들었다.
노려보는 듯한 쭉 째진 두 눈, 거품 자국이 말라붙은 입술, 그리고 짙은 가래가 끓는 듯 그
르렁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이 추심악노보다 더 늙고 추악해 보였다.
"그래도 여자는 예쁜 게 좋아. 너는 경험을 못 해봐서 그렇지, 은은한 불빛 아래서 코를 맞
대고 있어봐. 추녀와 있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더구나 저런 얼굴이라면……"
"그건 그래. 여자는 밥과 빨래만 잘하면 그만이지만 저렇게 추악한 얼굴이라면 문제가 약
간 달라지겠지. 밥맛이 떨어져 갖고야 아무리 음식을 잘해도 소용없을 테니까."
늙은 모습으로 돌아온 이면요부가 광기 어린 눈으로 선권괴를 노려보았다. 추심악노도 하
"너, 계속 입을 함부로 놀릴 테냐? 혼이 덜 난 모양이지?"
금방이라도 한바탕 붙을 듯이 으르렁거리는 두 사람의 말을 끊으며 구무괴가 나섰다.
"자, 자, 진정들 하시고. 그래, 두 분께서 이곳 개봉에는 웬일이시오?"
그러자 선권괴를 노려보던 추심악노가 구무괴에게 시선을 돌리며 야릇한 표정으로 대답했
구무괴는 술병을 들어 한 모금 목을 축이며 추심악노를 힐끗 쳐다보았다.
가볍게 바라보는 것이었지만 구무괴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추심악노도 이런 점을 느꼈
"클클클…… 그런 소문은 믿지도 않을 뿐더러, 사실이라 해도 천하의 그 누가 삼괴의 품
속에 든 물건을 꺼낼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저 개봉을 구경하기 위해 온 것뿐이니 괘념치
"클클…… 자네들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는데, 이 늙은이가 허튼 소리를 하겠는가?"
추심악노는 왠지 음산해 보이는 미소를 흘리며 대꾸했다.
이어 발길을 돌리려던 추심악노의 시선이 아직도 이면요부를 괴이한 듯 바라보고 있는 선
"저 어린 녀석의 소행이 괘씸하긴 하지만, 구무괴의 얼굴을 봐서 오늘은 조용히 물러가기
구무괴가 웃으며 대꾸하자, 추심악노가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이면요부와
그러나 이면요부는 못내 분했던지 걸어가면서 무서운 눈으로 선권괴를 계속 노려보았다.
선권괴가 코웃음을 치더니 고개를 잔뜩 쳐들고 가슴을 쫙 펴보였다.
"흥, 이 선권괴가 사과하기를 원하시나 보지? 그래, 미안하외다. 흉측한 늙은이를 아름다운
미부로 착각해서…… 그냥 생긴 대로 살 것이지, 원."
이면요부가 소매 속에 감춰진 갈고리를 짤그랑거리며 부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선권괴를 쏘
아보았다. 그러자 추심악노가 그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겨 길을 재촉했다.
못내 분한 듯 이면요부는 독살스러운 일갈을 토해 내고는 쌩 하니 돌아섰다.
잠시 후, 말울음 소리가 들리더니 추심악노 부부가 말을 타고 떠나는 모습이 창문 밖으로
자찬괴는 남아 있는 술기운을 몰아내려는 듯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멀어져 가는 추심악노
"독날하기로 소문난 추심악노 부부가 순순히 물러나는 게 이상하군. 자네와 알고 있는 사
"일전에 나에게 잘못 시비를 걸었다가 내 구공(口功)에 휘말려 반 년간 별거를 한 적이 있
"독날무비한 성격을 지니기는 했어도 부부 사이만큼은 끔찍한 것으로 유명한 추심악노 부
구무괴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더니 말을 이었다.
"둘이 다시 합치고 얼마 되지 않아 복수를 한답시고 다시 찾아왔더군."
자찬괴의 물음에 구무괴가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내가 좋은 말로 몇 마디 해주었더니 다시 일 년간 별거에 들어갔다가 사흘 전에야 겨우
"이번엔 한 삼 년쯤 헤어지게 만들어줄까 했더니, 미리 알고 조용히 물러나는군."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우리도 말을 타고 쫓아가세. 그래서 그 고약한 두 노인네를 완전히
"이 녀석 말은 무시하게. 공연히 말썽만 피우고 말이야."
자찬괴의 핀잔에 멀쑥해진 선권괴는 뭔가 한마디 쏘아붙이려 했지만, 조금 전 일은 분명
자찬괴는 웬일이냐는 듯 선권괴를 힐끗 쳐다보고는 구무괴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사람은 곧 비교적 온전한 탁자를 골라 자리를 잡고 앉아 얘기를 시작했는데, 선권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자찬괴의 말에 단단히 심기가 틀린 모양
그사이 주루 주인이 나와 어질러진 내부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한참만에야 간신히 정리를
끝낸 주인은 주방으로 뛰어 내려가더니 술과 안주를 준비해 올라와 구무괴와 자찬괴의 탁자
"그렇다면 추심악노와 이면요부 또한 그 오행도에 관심이 있어 개봉에 나타났을 터, 산 속
에서 죽을 날이나 기다려야 할 노물들까지 기어나오다니…… 오행도의 위력이 대단하긴 대
"우리 삼괴를 곤경에 빠뜨리려면 그 정도 미끼는 써야지. 하지만 이 음모를 꾸민 자가 누
두 사람이 한동안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계단 아래쪽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
가 들려왔다. 언뜻 듣기에도 탁자며 식기들이 부서져 나가고 있는 소리가 분명했다.
구무괴와 자찬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아래층에서 주인이 허둥지둥 뛰어 올라왔
사색이 되어버린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구무괴와 자찬괴는 뭔가 생각이 난 듯 무릎을 탁
아래층은 아예 난장판이었다. 잠깐 사이에 얼마나 때려부쉈는지 조금 전 추심악노 부부와
선권괴는 유일하게 성한 탁자에 앉아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는데, 주변에 술동이가
십여 개나 뒹굴고 있었다. 반 식경도 못 되는 사이에 이만큼 퍼마셨으면 쓰러질 법도 하건
만, 선권괴는 술을 마시면 더욱 힘이 솟는 특이한 체질을 지녔는지 여전히 술타령을 하고
구무괴가 고개를 내두르며 먼저 다가가서 탁자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에구…… 어쩌자고 저 자식에게 술을 줘가지고…… 이제 발동이 걸렸으니 근방 십 리 안
자찬괴는 혀를 끌끌 차더니 뒤에 따라붙은 주인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 수레를 끌고 나가 근처의 술이나 긁어모으시오. 저 술고래가 마시
는 양을 대주지 못했다가는 근방 주점들이 무사하지 못할 테니 말이오."
무력을 써서라도 제지할 수 없겠느냐는 눈초리였다. 자찬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몰라서 물으시오? 저 인간 뱃속에 술이 한 잔이라도 들어가는 날엔 설사 황제가 나타난다
해도 그 더러운 주벽을 말릴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오."
"그러니 더 안 된단 말이오. 아무리 꼴 보기 싫은 녀석이라도 친구인 것은 분명한데 어찌
"죽이지 않고 선권괴의 손에서 술동이를 빼앗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거요, 지금?"
주인은 잠시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몸을 돌려세웠다. 주루에 남
아 있는 술이 다 떨어지기 전에 술을 더 구해놓기 위해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선권괴의
주벽을 모르는 상인이 없는지라 그 때문이라고 하면 주저 않고 술들을 내놓을 것이란 사실
주인이 힘없이 문을 나서자 자찬괴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술 취한 놈 주정 받기에는 같이 취하는 방법이 최고지."
점원들이 부지런히 술동이를 내오고 선권괴와 구무괴는 날을 받았다는 듯 입 안으로 들이
붓고 있었다. 그러나 취하기는 역시 술이 약한 자찬괴가 먼저였다.
"끄윽! 좋군. 술이란 좋은 거야. 퍼마시기만 하면 짐승이 되어버리는 인간들만 없으면 말이
곁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구무괴가 화다닥 놀라 얼른 자찬괴의 입을 막았지만 이미 때는
아직 술이 부족한 듯 조용히 술만 들이켜고 있는 선권괴의 주벽에 자찬괴의 말 한마디가
으르렁거리며 눈을 부라리는 선권괴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사생결
단이라도 내자고 할 기세였다. 먼저 취하기는 했지만 아직 이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어서, 자
"내가 뭐라 그랬나? 그냥 네가 술을 멋있게 마신다고 해본 소리지. 하하……"
선권괴는 별 의심을 하지 않고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한 동이를 비우고
났을 때였다. 그는 술동이가 부서질 듯 쾅, 내려놓으며 분하다는 듯 고함을 질렀다.
"주안술을 익히고 있는 늙은이일 줄 내가 어떻게 아느냔 말이야, 엉?"
아마도 조금 전 추심악노 부부와 싸웠던 일이 생각나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자찬괴의 안색
그의 예상대로 선권괴는 혼자서 한참을 떠들어대더니 갑자기 무섭게 눈알을 부라리며 자찬
"너 아까 내가 이면요부의 갈고리에 당할 뻔했을 때도 하품만 하고 있었지?"
"하하…… 그건 네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어쨌든 구무괴가 도와줬
자찬괴가 궁색한 변명을 해보지만 선권괴의 귀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친구가 죽어가는데 하품만 해? 항상 제 자랑만 늘어놓았지, 네가 잘하는 게 도대체 뭐냐?
어지간하면 참으려 했던 자찬괴였지만 자신의 예술이 모독받자 화가 불끈 솟아올랐다.
"좋게 봐주려고 했더니…… 그러는 너야말로 잘하는 게 뭐 있냐? 술 마시고 행패부리는 주
사가 일절이요, 남의 일에 끼여들어 말도 하기 전에 주먹부터 휘두르는 선권무언(先拳無言)
이 일절이요,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계집들이나 하는 요리, 빨래, 애 보기나 좋아하는 가사
취미(家事趣味)가 일절이니 네 삼절 중 써먹을 것이 뭐가 있냐?"
"자, 자, 그만 하고 술이나 마시자. 서로 헐뜯어서 나올 게 뭐 있다고 이러냐?"
구무괴가 둘을 뜯어말리려 했지만, 이미 술에 절은 선권괴와 화가 잔뜩 난 자찬괴의 귀에
약이 바짝 오른 선권괴가 질세라 자찬괴의 삼절을 잡고 늘어졌다.
"그러는 네놈의 삼절은 어떠냐? 말이 좋아 시(詩), 음(音), 화(畵) 삼절이지. 기껏 분다는 단
소는 색음공(色音功)이고, 그림은 그려봐야 벌거벗은 여자나 그리는 도색화(桃色畵)에다가,
말도 되지 않는 엉터리 시나 지어서 읊조리는 주제에 말이야. 아까만 해도 그래. 그녀의 마
음이 어쩌고저쩌고 하더니 '구무괴는 크기만 할 뿐 내 기술엔 어림없기에' 라고? 그게 그렇
게 잘난 기술이냐?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기술이냐고!"
여태껏 둘을 말리던 구무괴도 자신의 막중대사(?)가 거론되자 금방 쌍심지를 돋우며 끼여
"내가 뭐 틀린 말 했냐? 말이야 바른말이지, 기술은 내가 훨씬 좋은 게 사실이잖아?"
"네가 감히 이 구무괴의 삼절 중 주색을 깔아뭉개려 드는 것이냐?"
"네 삼절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핏대를 세우느냐? 이간질, 독설, 주색이 내세울 만한 장점
그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자신의 특기인 구공을 발휘해 자찬괴를 몰아붙였다. 자찬괴
또한 지지 않고 대들었으며, 여기에 선권괴까지 가세하니 도대체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 시진 동안이나 서로에 대해 험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는 사이
에도 술은 쉬지 않고 마시고 있어서 주루는 바야흐로 빈 술동이로 가득 들어찰 지경이었다.
구경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보통은 이렇게 심한 입씨름을 하다 보면
주먹이 오가게 마련인데 그들은 희한하게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말보다 주먹이 먼
그렇게 한참을 떠들어대던 삼괴는 한 순간 동시에 말을 멈추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갑자기
조용해진 주루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만약 누군가 먼저 도발하기만 한다면 주루가 통째로
그 정적을 깨뜨린 것은 구무괴였다. 그는 두 사람을 계속 노려보며 한 손을 천천히 들어올
렸다. 나머지 두 명도 더욱 무서운 눈빛으로 구무괴를 노려보았다. 구무괴의 손이 정점에 이
탁자가 부서질 듯한 비명을 질러내며 먼지를 물씬 피워냈다. 그러자 선권괴와 자찬괴도 동
시에 탁자를 내리쳤다. 이어서 서로 머리를 들이밀며 으르렁거렸다.
주루에 있는 점원들은 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저러다가 세 사람이 본격적으로 싸우기
라도 한다면 자신들의 주루뿐 아니라 근방은 온통 쑥대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주루 주인이 술을 한 수레 가득 구해 와서는 문 앞에 멈추어섰다. 술을 얻으러 돌아
다니며 선권괴에게 왜 술을 주었냐고 핀잔을 들어서인지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밤을
지샐 만한 양을 구해 왔으니 다행이었다. 그는 지친 몸을 추슬러 술 한 동이를 들고는 주루
주루가 떠나갈 듯한 파안대소가 삼괴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오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주루가 조용한 이유 때문에 불안해 하던 주인이 크게 놀라며 어렵게 구해
웃음을 터뜨리던 삼괴는 동시에 웃음을 멈추며 소리쳤다.
그 동안 잔뜩 긴장한 채 마음을 졸이고 있던 점원들로서는 황당한 일이었지만 삼괴는 이렇
게 의기투합한 채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들이붓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라질…… 누가 삼괴 아니랄까 봐, 목소리까지 커가지고…… 아까운 술동이만 깨버렸잖
정말 무공만 배웠으면 사생결단이라도 내고 싶은 주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은
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점원들과 함께 수레에 실려 있는 술을 날라오기 시작했다. 아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