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차 코스 : 장전고개~발산재
▼장전고개 도착, 산행시작
장전고개는 고성군 대기면 송계리와 척정리 사이를 잊는 고개로 1009번 군도가
지나가는 장전고개는 장밭(場田)은 마당만한 밭이 많았다고 하여 마당(場),밭(田)를
붙여고, 장전마을에서 유래한 고개로, 이곳 주민들은 장전고개라고 하면 모르고
장탙(場田)고개로 통용되고 있다고 한다.
장전고개 도로 밑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인 고성터널이 있다.
장전고개 정류장 오른쪽 화살표 방향은 원 정맥길이고 왼쪽 임도길 방향은
임도를 따라 오르는 길인데, 어느 길을 선택하던 약 14분 후에 다시 만나게 된다.
원정맥길도 등로가 뚜렷하지만 여름철에는 왼쪽 임도따라 가도 무방하겠다.
▼장전고개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곧바로 좌측 화살표 방향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좌측으로 올라가다 잠시후 좌측숲길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오름길이 이어진다.
나는 장전고개 정류장 들머리에서 3분정도 개인적 볼일을 보면서 맨 후미에서
산행 시작을 하는데.. 얼마나 빨리 올라가는지 정맥님들은 벌써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산행을 하면서 느낌점은 산행시작 오름길은 최대한 힘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맨 뒤에서 몸 풀면서 나 홀로 천천히 따라 올라간다.
▼합류지점 도착
좌측 숲길 등로길따라 오르막길을 이어오면 묘지를 지나고 무명봉 올라
완만하게 이어가면 묘지아래쪽 임도길 만나서 좌측 화살표 방향으로
꺽어져 곧바로 장전고개에서 올라오는 임도길 만나 우측으로 묘지옆 지난다.
장전고개에서 어느 길을 선택하던 이곳 임도길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성지산 갈림길 도착
묘지옆 이어지고..잠시 후 성지산 갈림길에 도착하게 된다.
우측으로 떨어져 있는 성지산(393m) 가는길은 희미하게 보인다.
진혁진 개념도의 성지산으로 빠지게 되는데 국립지리정보원 지도에는
그 성지산을 단순히 삼각점이 있는 393봉으로 표시되어 있는만큼 성지산은
정맥길에 있는 산으로 보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정상에는 삼각점도 있다고 하여 갔다 올까 하다가 그냥 가기로 한다.
잠시후 철탑을 지나면서 우측 아래쪽 민가 불빛이 보여서 잠시 깜깜한
민가 방향을 쳐다보며 오늘 구간을 생각하며 잠시 머물다 간다.
▼459봉 도착
일명: 성지산이라고 부르고 있는 정맥님도 있는 459m봉 도착한다.
아래쪽으로 조망이 될 것 같은데 새벽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연화산? 시루봉? 갈림길 도착
459봉에서 100m 정도 이어오면 갈림길에는 특별한 표시는 없지만
좌측으로 시루봉? 연화산? 가는 방향이고, 정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가파른 내리막 길이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수직에 가까운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안부를 지나서
철탑 아래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갈림길 도착
좌측으로 뚜렷하게 하산로가 있는 갈림길 지나서 완만하게 무명봉 넘어
철탑 지나서 묘지를 연이어 지나 내려가면 떡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떡고개 도착
묘지와 드넓은 잔디가 깔려 있는 안부 갈림길인 떡고개에 도착한다.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서 사진을 담아 보지만 나오지 않는다.
▼떡고개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가다 나무사이로 운해가 보인다.
▼덕산(278.4m봉) 도착
된비알 힘들게 오르면 삼각점이 자리잡고 있는 덕산에 도착한다.
주의지점
화살표 방향으로 10m 지점에 덕산정상이 있는데 등로가 희미하다.
직진방향으로 지나치면 덕산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나게 된다.
고성군 개천면과 마암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나무그루터기에 '고성 덕산'
이란 나무 팻말이 걸려있고,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다.
▼덕산 정상에서 내려서면 철탑 좌측으로 지나서 배치고개 도착한다.
▼2차선 포장도로 배치고개 도착
고성군 마암면과 개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1007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고개다.
예전에 이 고개를 넘을 때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나 고개를 숙이고 넘었다고 해서
배치(拜峙)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그저 밋밋하고 평범한 고개이다.
또 다른 유래는 오래전 옛날 천지가 개벽하여 해일로 온 세상이 물에 잠기게
되었을 때, 뒷산으로 피신하였던 마을 주민들이 계속 불어난 골짜기의 물에
실려 갔다가 어디선가 밀려온 한 척의 나룻배를 발견하고는 배를 타기 위해
밀고 당기고 하다가, 대부분은 배를 못타 물에 빠져죽고, 몇 사람만 겨우 배를 타고
이 재를 넘어 개천면 쪽으로 흘러 갔다고 한다.
그래서 불어난 골짜기 물에 실려 고개를 넘어가던 배를 탔던 고개라고 하여‘배타재’로
불렸던 것이 변음되어 배치고개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유래가 있다.
배치고개가 낙남정맥 중간지점이라고 표시판도 있다.
여기에서 중간지점까지 무사히 걸어 온 감사와 앞으로 남은 낙남정맥길
잘 보살펴 주시길 기원하며 간단하게 산신께 재를 올리고 간다.
▼작은 오르내림을 몇차례 반복하니 좌측으로 밤나무 단지가 있는 곳 지나간다.
밤나무밭 상단 가장자리 지나는 등로길에 낙엽이 쌓여 바스락 소리가 난다.
▼대나무밭도 지나고..
▼매봉산 갈림길 도착
매봉산 정상은 정맥길에서 우측으로 160m정도 떨어져 있으며 매봉산 정상에는
삼각점도 없고 아무런 표시도 없는 그저 특색없는 봉우리로 그냥 지나치는 것이
좋겠다.
되돌아 와 신고개로 이어간다.
▼신고개 도착
고성군 개천면 좌연리와 마암면 성전리를 잇는 고개마루다.
신고개에는 올라서면 불조심 기간 입산금지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신고개에서 완만하게 오름길 이어가면 건너편 앞쪽으로 가야 할 봉우리가 보인다.
등로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며, 밋밋한 봉우리인 탕근재에 도착하게 된다.
▼369m봉(탕근재) 도착
탕근재은 고성군 개천면과 마암면 그리고 구만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삼면계봉으로 고성군 구만면과 개천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재(峙)로서 ‘재’라기
보다는 ‘봉우리’라 불러야 맞을 듯 싶다.
우리가 가진 지도에도 탕근재라 표기되어 있고, 재 아래에 있는 개천면 좌련리
좌이마을에서는 좌이산 또는 탕근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탕근재란 옛날 선비들이 집에서 맨상투를 드러낼 수 없어 쓰던 작은 관, 즉 앞은
낮고 뒤는 높은 형태의 탕건(宕巾)을 닮아 얻은 이름이다.
한국지명총람에는 소바구 또는 우암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소처럼 생긴 바위가 탕건(宕巾: 옛날 선비들이 갓 안에 바쳐쓰던 관) 처럼
보여 탕건재라 했던게 탕근재로 바뀐 모양이다.
▼봉광산(386m) 도착
탕근봉을 내려서 지나가는 듯한 봉우리에 올라서니 봉광산 정상에 도착한다.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조망도 없고 그저 이정표 역할을 하는 정상이다.
▼앞 봉우리가 보이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사면으로 이어진다.
여기저기 성급하게 핀 진달래꽃이 보인다.
▼수원백씨묘지 지나 내려서면 새터재에 내려선다.
▼새터재 도착
6번 지방도가 지나는 도로에 "수원백씨묘지입구" 큰 표석이 자리잡고 있다.
고성군 구만면과 개천면을 지나는 군도가 지나는 곳으로 원래는 새터(鳥峙) 또는
조치리(鳥峙里)라고 불렀는데 이름이 쌍쓰럽고 듣기가 거북하다고 하여
새 조(鳥)字에다가 궤를 씌워 봉치리(鳳峙里)라 부른다.
새터재 아래에 있는 마을이 개천면 봉치리이다.
이곳도 아주 예전에 천지가 개벽하여 온 천지가 물에 잠겨 버릴때, 이곳도 모두가
다 잠겨버리고 새 한마리 앉을 정도의 장소만 있었다고 하여 '새터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편백나무옆 지나서 안부 갈림길에서 필두산을 향해 된비알 올라가고..
▼필봉산? 갈림길 도착
안부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앞 봉우리를 S자 형태로 가파르게 올라오면
봉우리에 직전에 소나무 가지등 등로를 막고있어 이지저리 피해서
봉우리에 올라 우측으로 내려가면 등로길이 어수선하게 이어진다.
▼필두봉(420m) 도착
필두산은 고성군 개천면과 구만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봉우리가 붓처럼
뾰족하게 생겼다 하여 필봉이라 하며 정상에는 작은 돌탑이 하나 있고, 봉우리를
넘어서면 구만면 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정맥길은 좌측으로 내리막 급경사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가야할 용암산과 옥녀봉이 눈앞에 보인다.
오늘 구간은 해발은 그렇게 높지 않은 산이지만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구간답게
오르내림이 반복되고 체력을 분산하여 산행을 이어간다.
▼임도길 만나 여기서 다 함께 식사를 하고..
솔로몬님과 함께 먼저 산행을 이어가면 철탑지나 담터재에 도착한다.
▼담티재 도착
경남 고성군 개천면과 구만면을 잇는 2차선포장도로(1002번 지방도로)
엣날에 담장처럼 길게 경계를 이룬 고개라고 하여 담치 또는 장치재로 불렀다고 한다.
경남 고성군 구만면과 개천면의 경계 지점의 고개로, 1002번 지방도가 지난다.
<구만면>
구만면은 소가야 시대에는 의선향(義宣鄕)에 속하였으며,고려현종 9년(1018년)에
고성현(固城縣)으로 개칭되면서 구만촌(九巒村)으로 불리워 지다가, 근세조선시대
(갑오경장시) 군제실시 이후에 높은 산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어 굴안 같다고 하여
구만면으로 개칭되었고, 고성읍에서 17.8㎞ 동북쪽에 위치하여 동쪽은 회화면과
마산시 진전면, 그리고 남쪽은 회화면과 서북쪽은 개천면과 마산시 진전면과 접하고
있는 사방이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 싸인 분지형태의 지형이다.
담티재 좌측에는 규모가 꽤나 규모가 큰 청심목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담티재에서 오름길에 좌측으로 목장초지가 보이고..청심목장 방향 조망
용암산 오름길은 또다시 된비알 오르막을 올라간다.
▼용암 암봉 도착
좌측으로 지나온 필두봉이 붓처럼 뾰쪽하게 지명의 뜻을 말해 주고 있다.
용암바위 전망대에 올라 구만면의 평야지대를 바라보고 간다.
암봉에 박건석님께서 용암산이라고 표찰을 나무에 메달아 놓았다.
용암산 정상이 가까워지면 바위지대가 군데군데 나타나기도 하고..
▼용암산(399.5m봉)도착
용암산(龍岩山)은 용모양을 한 바위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잡목으로 둘러 쌓여 있어 조망은 볼 수가 없으며 덕산에서 시작하여 용암산
정상의 표지판은 김문암이라는 산우님이 제작하여 메달아 논 걸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이정표 역할과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을 할 수가 있어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또다른 작은용암산 표찰과 깃대봉이라는 표찰을 메달아 놓았다.
정성은 감사하나 깃대봉이라는 표찰은 여기가 아니 지도상 기대봉(깃대봉)
삼각점도 있는 그곳에 메달아 놓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혹 후답자분께서 이 표지판을 가지고 가서 그곳에 메달아 주세요"
이곳에서 마산의 숨은 명산인 적석산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용암산에서 완만하게 내려서면 철탑옆 지나고..임도길 만나 임도길따라
계속이어가면 좌.우 갈림길 안부에 도착하게 되고 직진으로 이어간다.
▼옥녀봉(玉女峰.388m) 도착
용암산에서 13분쯤 지나 만나는 338봉인데 옥녀봉이란 이름을 붙여 놓았다.
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평이한 마루금 등로길에 옥녀봉 표시판이 있다.
옥녀봉이란 지명이 무엇인지? 그저 무명봉이라 생각이 든다.
▼옥녀봉에서 완만하게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묘지군을 지나게 되는데..
<적석산(積石山)>
산세가 마치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여 있어 적석산(積石山)이라고 부른다.
창원시 진전면의 진산으로 진해만으로 흘러드는 진전천의 발원지이며, 정상
주변에 벼락바위, 양산바위,마당바위,벽바위 등 바위 봉우리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적석산 정상은 크게 세 개의 봉우리로 나뉘어져 있는데 특이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양촌리에서 바라보면 왼쪽 봉우리는 적삼봉, 오른쪽은 칼봉이라 부르고 있다 한다.
옛날에 홍수가 났을 때 적삼 하나와 칼 한자루 놓을 만한 자리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고 해서 적삼봉 또는 칼봉이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산세가 마치 돌을 쌓아 올린 듯 해서 적석이라고 하며, 적산이라고도 부른다.
적삼봉 정상은 40평 정도 되는 평탄한 암반으로 되어 있으며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샘이 있다고 하는데...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다.
▼남성치 도착
남성치는 구만면 화림리에서 개천면 나선리를 이어주는 고개마루다.
좌측으로 선동마을로 들어가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으며, 정맥길 고개마루에
빗돌을 세워 놓은 곳이 드문데.. 남성치에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임도따라 다시 정맥길은 완만하게 오름길 올라가고..
▼남성치에서 진행하여 이어가면 "학생 전주최공과 배 함안이씨" 묘지지나
넓은 임도 소나무 숲길을 지난다.
지금까지 구만면과 개천면의 면계를 따라 왔는데.. 이곳에서 부터는
면계를 떠나 구만면으로 들어가 마루금이 이어진다고 한다.
▼정맥 갈림길 도착
남성치에서 약 8분 진행한 지점에서 우측 2~3시 방향으로 이어간다.
된비알 올라오면 봉분이 사라진 넓은 공터 묘지에서 우측으로 이어간다.
▼안부를 내려와 오름길에 소나무 군락지가 운치가 있어 힘든 산행길에
솔향기가 여독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418.5봉(벌밭들) 도착
경남 고성군 구만면 주평리에 위치한 봉우리로, 벌발들이란 명칭이 특이 하다.
삼각점(함안 439)이 있는 벌발들은 다른 지도에는 ‘벌밭들’이라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벌발들의 정확한 의미는 찾을 길 없고,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벌발들을 ‘풀국새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양지쪽 산이 유난히 따뜻해 이른봄 일찍 풀국새가 보인다하여 풀국새산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풀국새’는 전래동화 ‘콩쥐팥쥐’에 나오는 이야기 속의 새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것은, 왜 산정상을 "산 또는 봉"으로 표시하지 않고 "들"로
표시를 했는지 궁금하다.
▼선동치(仙洞峙) 도착
418.5봉에서 약 5분 정도 내려오면 좌직진 11~12시 방향으로 정맥길이고,
우측 방향의 선명한 하산로 등로길이 있다.
이곳에서 약 5분 정도 내려가면 신동치 직전에 왼쪽에 민가가 한채 있다.
<선동치(仙洞峙)>
경남 마산시 진전면 일암리와 고성군 구만면 주평리 선동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선동마을 뒤쪽 ‘선박골’의 풍경이 아름답고 자연용수가 약수로 이름나
있어, 옛날에 선인(仙人)이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 갔다고 하여 유래되었다고 한다.
진행방향 우측으로 마산의 숨은 명산인 적석산이 보인다.
▼선동치에서 정맥길은 가파르게 고도를 높혀 오르막을 올라간다.
제법 큰 바위들이 보이고..주능선에 오르면 앞쪽으로 깃대봉이 보인다.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있고 이곳에서 적석산이 잘 보인다.
▼깃대봉(520m) 도착
창원시 진전면과 진주시 이반성면 그리고 고성군 구만면이 만나는 경계봉이다.
일제 강정기에 자본수탈을 위해서 깃대를 꽂아 측량하기 위한 수단으로 하였던
것이 깃대봉이라는 설이 많이 있다.
깃대봉은 산에서 만나는 국사봉과 백운산 만큼이나 많은 산이 깃대봉이다.
이곳에서 조금더 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실질적인 깃대봉이라는 말도 있다.
옆나무에 박건석님이 가나무봉이란 표찰을 메달아 놓았다.
정맥길은 좌측(효렬공고공후묘소입구.발산재)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
▼전망처 도착
남해바다가 보이는 깃대봉이지만 잡목으로 인해 조망이 별스럽다.
깃대봉을 지나 전망바위에 서니 사방팔방으로 조망이 있어 낙남을 정맥길에
만나는 시원스런 조망에 가슴이 확터지는 느낌이 힘든 산행길을 잊져 버린다.
마루금 바라보며.. 가야할 암릉길에 자리잡고 있는 깃대봉이 보인다.
전망바위에서 남서쪽을 바라보니 지나온 마루금 능선이 조망된다.
여기서 남은 막걸이 한잔하며 휴식을 하고 정맥길을 이어간다.
▼이곳에서 부터 짧은 암릉길이 이어지고, 간간히 조망처가 나온다.
뒤돌아 본 암릉 전망처에 유기농님과 경준대방님이 보인다.
시원스럽게 주변 조망을 바라보면서 이어간다.
▼산행지형도상에 표기된 깃대봉(528m)도착
삼각점은 너럭바위 지나서 15m쯤 뒤쪽에 표지판과 삼각점이 있었다.
삼각점을 확인하고 다시 되돌아 와 정맥길을 이어간다.
준봉산 직전에서 만나는 이 곳에서 좌측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준봉산(520m)도착
준봉산은 진주시 이반성면과 창원시 진점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커다란
너럭바위 암릉위에 아담하게 정상석이 자리잡고 있다.
이 준봉산에서 이어가면 만수산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하면 만수산, 보잠산
으로 진행을 하여 영천강으로 잠기는 약 28.6km의 긴 장군대단맥길이라 한다.
그리고 이 줄기를 따라 고성군 개천면과 진주시 일반성면의 시계가 되므로
지금 이 지점이 창원시 진전면과 이들 시, 군이 만나는 삼시봉이 되겠다.
짧은 구간이지만 암릉과 암벽구간을 지나고 만수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만수산 갈림길 도착
준봉산에서 약 2분정도 이어오면 우측으로 정맥길을 이어가야 한다.
좌측으로 정맥 만큼이나 멋진 능선길이 흘러가고 있다.
만수산과 보잠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멋지게 펼쳐지고 있다.
만수산은 마을 북쪽에 있는 기암괴석이 많은 명산으로 옛날에 천지가
개별할 때 산이 물에 잠기고 산 정상만 남아 이 곳에서 만명의 생면을
구하였다 하여 만수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방화선길인지...편안한 산길이 이어지고
▼바위 전망대 도착
조망바위 뒷쪽으로 끝없이 시원하게 펼쳐진 산그리메가 환상적이다.
저 멀리 다음에 가야할 낙남정맥 마루금이 환상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우측으로 길다란 능선이 배처럼 보인다는 여항산(餘航山)이 보인다.
▼암릉지나고.. 묘지도 지나고..진달래꽃이 반겨주고..
▼갈림길 도착
발산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으로 내려선다.
좌직진길은 동물이동통로를 경유하여 가는 길이고, 날머리를 이용할 시
에는 우측에 수발사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서 산행을 마무리 하게 된다.
▼효열공 고종후장군의 묘소 도착
후세들이 2009년 4월 비석에 이렇게 새겨져 놓았다.
고종후장군이 임진왜란당시 의병장인 고경면의 장남으로 태여나 진주성이
함락되자 진주남강에 의병장 김천익, 최경휘 등과 투신 순절했다는 역사를
기록해 두었다.
묘지를 내려가면 시멘트 임도길따라 발산재로 내려간다.
▼효열공 고종후 장군의 신도비 큰 비석옆을 지나면 발산재에 도착한다.
고종후장군의 후손들이 4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이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런 역사의 현장을 지나면서...
우리 선조들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하는 시간이 된 것 같다.
▼발산재(鉢山峙)>도착
경남 진주시 이반성면과 마산시(지금의 창원) 진전면의 경계지점이다.
발산(鉢山)재란 스님의 탁발을 엎어 놓은 형상을 하고 있다는데서 유래한
지명이라고 한다.
여기에 산악회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이쪽으로 내려 왔는데..
반대쪽에 버스가 보인다.
산허리를 잘라 4차선 도로가 생기면서 재라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며
아래의 굴다리를 통과하여 지금은 영업을 하지 않은 발산재 휴게소로
진행하여 산행을 종료한다.
▼<발산재(鉢山峙)>
이곳 발산재는 400년 전 임진왜란 당시 김준민 장군과 고종후 장군 등 선열들이
왜적에 맞서던 역사의 현장이라고 한다.
당시 발산재 싸움은 진주성 전투에 앞서 치열하게 벌어진 격전지로 전해지고 있다.
지금도 고개 양쪽으로 토성의 흔적들이 남아 있으며, 고개 바로 아랫마을 발산저수지
부근에는 김준민 장군 신도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신도비는 파리장서 사건으로 유명한
면우 곽종석이 지은 문장이라고 한다.
김준민 장군은 발산전투를 지휘했고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그가 죽자 아들 김봉승이 다시 의병장이 되어 부친의 원수를 갚는다며 아예 가족까지
이끌고 발산으로 넘어오는 왜적을 물리쳤다고 전한다.
또한 발산재는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에 밀려후퇴하다 창설된지 얼마 안된 '김성은
부대'로 불리던 해병대가, 1950년 8월 1~3일 진주에서 발산재를 넘어오는 북한군
6사단의 정찰부대를 궤멸시킨 곳으로, 서북산 전투와 더불어 인근의 진동리 전투에서도
북한군을 섬멸하고 이후 통영 장평리 해안에 기습상륙하여 통영의 관문인 원문고개에서
북한군 7사단과 치열한 백병전을 펼친 끝에 대승을 거두기도 했던 해병대의 기상이
서린 지역으로써 미국의 여기자 '마거릿 히긴스'가 이때의 김성은 부대를 일컬어 ‘귀신
잡는 해병’ 이라고 기사를 쓰게 된 단초를 제공한 작전지대 였다고 한다.
발산재에는 공사가 진행중이며, 새로운 휴게소가 생기는지 공사중이다.
후답자분들은 버스가 이쪽에 대기하고 있으면 발산재 갈림길에서 좌직진으로
내려오면 이동통로 건너서 내려오게 된다.
▼최근 내 주변에 경준대장님이 최고의 산악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짧은 수년간에 원정과 종주등 산행길 500회 산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한
산꾼이라 생각하며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낙남정맥 7구간도 나름데로 산세가 있는 마루금을 무사히 종료하고 양촌리 맛집
양촌 돼지 고기집에서 맛나게 뒤풀이 후 무사히 귀경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