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21. 『내 삶의 소유권』
고전 8:10-13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로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1.반석교 이원묘 권사님 가족 이야기
미탄 반석교회에 이원묘 권사님 강춘자 권사님 부부가 계셨습니다. 김학중 목사님 시무하시는 꿈의 교회 관리 권사님 부부셨습니다.
춘천에서 신발가게를 하던 중 불이 나서 다 탔습니다. 지금 같으면 화재보험이라도 있죠. 그 당시에는 아무 것도 없어서 쫄딱 망했습니다. 네 가족이 모여서 다 같이 죽자고 통곡했고 아이들도 따라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안산으로 이주하셨고 꿈의 교회 그 당시에는 새안산교회죠. 관리권사로 일하게 시작했습니다.
그분들 고백에 의하면 정말 교회 일을 내일처럼, 아니 내일보다 더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아내 권사님도 전도특공대 앞장서서
“욕을 먹어도 시기와 핍박을 당해도 우리는 전도특공대.” 그러면서 진짜 열심히 전도하셨답니다. 그런데 두분 고백이
“목사님 진짜 열심히 주님을 위해 살았는데 하나님이 다른 것은 다 안 주셨는데 신기하게 아들들에게 지혜의 은사를 주셨어요.”
큰 아들 어떻게 가르치나 싶었답니다. 공부를 못하면 포기를 하는데 아들이 제법 또 공부를 잘하는데 모른척 하기도 그렇고 가르치자니 부담이고 그런데 아들이 알아서 천안 북일고 3년 장학생으로 갔습니다. 대학도 4년 장학생으로 의대에 갔고 지금은 삼성병원 소아암 전문의가 되었습니다. 믿음도 얼마나 좋은지 군대 대신 대체복무한다고 미얀마로 의료선교를 떠났습니다. 여기까지는 너무 완벽 그 자체 엄마 아빠의 바람에서 일점일획도 틀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마울 정도로 아들이 너무 잘해주었습니다.
미얀마에 가서 의료선교를 하던 아들이 하루는 대뜸 하는 말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냐고 물었더니 미얀마 교회에서 만난 미얀마 자매랑 결혼을 허락해달라는 겁니다.
두 분 권사님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남편 되시는 권사님은 반쯤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엄마 권사님은 얼마나 상심이 크고 배신감이 큰지. 3년 동안 전화도 카톡도 집에 와도 아들 얼굴을 안 봤습니다.
하루는 아들이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엄마 붙들고 하는 말이
“어머니가 매일 저를 놓고 기도하실 때 이 아들은 내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옵소서. 그렇게 기도하셨잖아요? 그 여자 내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지켜 준 여자에요. 그 여자라면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허락해주세요.” 그 순간 권사님 표현대로라면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고 합니다.
“내가 너무 살기 힘들고 어떻게 해줄 것이 없어서 이 아들은 하나님이 키워달라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도했는데 이제 와서 아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다니 하나님 죄송해요. 하나님 뜻대로 인도해주세요.”
오늘 예배하는 성도님들 중에도 자녀들 배우자 위해서 기도하는 분들 계시죠? 하나님의 뜻대로 되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며칠 뒤 권사님께서 전화하셨습니다. 같이 내려오라고 처음보는 미얀마 며느리 손을 잡고 권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 집에 딸이 없어서 내가 외로웠는데 하나님이 나에게 딸을 주셨나보다. 아가 앞으로 잘 지내보자.”
2.스크랜턴 모자 이야기
이화여대의 전신이죠. 이화학당을 세우신 스크랜턴 대부인은 미국 클리브랜드에서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클리브랜드는 미국에서도 알아주는 IVP CLUB입니다.
아들 스크랜턴은 그 당시 미국 사회 상위 3% 안에 드는 의사였습니다. 대저택이 있었고 고급 승용차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승용차는 정말 어마어마한 사치품이었다고 합니다. 아쉬울 것 없는 삶이었는데 스크랜턴 대부인이 기도만 하면 성령께서는 조선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리고 가슴이 뜨겁게 뛰는 것입니다. 며칠을 고민하던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조선으로 부르시는 것 같다.”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일까요? 완전 날벼락입니다. 웃음 밖에 안 나오는 말입니다.
세계 최고 미국, 미국에서도 상위 3% 안에 들던 삶을 버리고 세계 하위 3%에 해당하는 후진국 조선으로 온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만약 나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계속해서 외면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외아들이 천상 보좌를 버리고 종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십자가를 지신 복음을 정말로 믿지 못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어리석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러나 스크랜턴도 어머니 말씀에 결국 순종합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조선으로 건너와서 어머니는 이화학당을, 스크랜턴 선교사는 세브란스 병원과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사역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크랜턴 대부인과 그의 아들 스크랜턴 선교사가 쫓았던 것은 결국 무엇이었습니까?
3.바울의 소유권
사도 바울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초대교회 안에서 이방인들과 겸상을 하는 일은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베드로조차 이방인과 식사 도중에 유대인들이 들어오자 자리를 일어나서 그 자리를 피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함께 식사하던 이방인 성도들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요?
하지만 사도 바울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하였습니다.
지난번 말씀처럼 다른 사도들은 모두 가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선교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안질과 간질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은혜는 약함 가운데 충만하기 때문이라고 하시자. 곧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돌에 맞아 죽을 뻔 하였고
타우르스 산맥에서는 풍토병으로 고생고생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누명을 쓰고 매를 맞은 후 감옥에 갇혔습니다.
지중해에서 유라굴라라는 태풍을 만나 약 보름간 해도 달도 보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오로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에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시면 고기를 먹지 않고
또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어야 하는 이에게는 율법으로
철학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헬라인들에게는 철학으로
법이 발달된 로마인들에게는 법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단순히 먹고 마시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내 삶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냐는 것입니다. 내 삶의 주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면 나는 아직도 내 주장 내 생각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내 삶의 주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인정한다면 나는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헌신하고 충성할 것이며 그 길이 오히려 감사할 것입니다.
4.갈무리-김용선 목사님의 손주
지난 수요일 2월 연합속회 때 말씀을 전해주신 횡성 대동교회 김용선 목사님께는 목회하는 큰 아들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목회를 시작하면서 아들을 낳았으니 첫 손주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럽겠습니까?
그러나 이름도 생소한 장애 때문에 그 손주를 먼저 보냈을 때 김용선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아들 목사님 사모님은 얼마나 상심이 컸겠습니까?
아무도 없는 화전민 교회에 가서 목회하시면서 교회 건축도중 지붕과 벽이 무너져 생명을 잃을 뻔 하셨고
이단에게 넘아갈뻔한 교회를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동분서주하시면서 주의 일을 하셨건만
하나님께서 상급이나 위로를 주시지 않고 오히려 이런 아픔을 주셨을 때 얼마나 상심하셨을까요?
그렇지만 목사님께서는 이일을 계기로 장애우들을 돌보는 목회를 시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자를 통해 장애우들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심장이 얼어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주인이 되지 않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에게 내 삶의 모든 소유권을 넘기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헌신할 수 있겠습니까?
목사님을 배웅하고 저는 제게 물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내게 같은 상황을 주신다면 나는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 원망하지 않고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장애로 어린 생명을 걷어가신 하나님께서 장애우 목회를 또 다른 사명으로 주셨다고 그 사명을 순종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삶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내 삶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우리 모두 주님의 참된 종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위에 잠시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