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의 죽음/마경덕-
노점상 여자가 와르르 얼음포대를 쏟는다
갈치 고등어 상자에 수북한 얼음의 각이 날카롭다
아가미가 싱싱한 얼음들, 하지만 파장까지 버틸 수 있을까
사라지는 얼음의 몸, 한낮의 열기에 조금씩 각이 뭉툭해진다
질척해진 물의 눈동자들
길바닥으로 쏟아지는 땡볕에 고등어 눈동자도 함께 풀린다
얼음은 얼음끼리 뭉쳐야 사는 법
얼음공장에서 냉기로 꽁꽁 다진 물의 결심이 풀리는 시간,
한 몸으로 들러붙자는 약속마저 몽롱하다
서서히 조직이 와해되고 체념이 늘어난다
핏물처럼 고이는 물의 사체들
달려드는 파리 떼에
모기향이 향불처럼 타오르고 노점상은 파리채를 휘두른다
떨이로 남은 고등어, 갈치 곁에 누워버린
비리고 탁한 물
이곳에서 살아나간 얼음은 아직 없었다
노점상은 죽은 생선에 자꾸 죽은 물을 끼얹는다
<감상>
우리는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을 대부분 얼음 풀리듯 녹아내리는 사실들을 많이 보고 겪어간다. 말하자면 작심삼일 같은 것
말이다. 그런데 마경덕 시인의「얼음의 죽음」에서 느끼듯이 방해를 하는 자와 방해를 받는 자의 치열한 삶의 세계는 자본
주의 사회에서 얼음의 희생으로 다른 한쪽이 살아갈 수 있는 죽음을 선택한 시인의 매섭고도 따뜻한 시 한 편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인위적 배타적인 소유욕이 가지는 현실을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리라고 억압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줘야 하
는 것인지에 대해 시를 놓고 우리는 침잠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 번 걸린 그물에 누구도 살아갈 수가 없는 현시대를 비판하
는 글이라 여긴다. 서민들의 아픔을 이렇게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시인이 몇이나 있나 싶을 정도로 냉철한 시를 내놓는 시인
의 눈은 정말 예사롭지 않다.
-서문기(시인)